비포 선라이즈 - Before Sunris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리처드 링클레이터
주연 : 에단 호크, 줄리 델피

벌써 15년 전쯤에 만들어졌던 영화다. 나는 뭐 때문이었는지, 개봉 당시에 보지 못하고 이제서야 봤다. 그런데 이 영화 지금 봐도 너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보게 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개봉 당시에 봤다면 '뭐 영화가 이래?'하며 시큰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지금 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왜 그리도 아련한지.  

우리가 가끔 옛날 사진을 보는 것은 추억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것처럼 지나간 시절의 영화를 보는 것은 그 영화속에서 옛 추억을 음미하며, 시간을 더듬어 보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15년 전이면 나도 저 주인공들만큼이나 젊었다.  그래서 그만큼 감정이입이 잘 되는 느낌이다. 영화를 볼 때만큼은 나도 저 남녀 주인공의 나잇대로 돌아가 그때를 음미해 보고 싶어진다. 특히 그때의 느낌과 정서를. 그리고 생각한다. 영혼도 나이를 먹는 걸까? 하고.   

마침 영화 가운데 저 둘이 나누는 대화가 잊혀지지 않는다. 여자가 말했다. 자신은 아주 많이 늙어서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에 반해 남자는, 자신은 지금도 13살인데 어른인 척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 같다고.  나는 그들의 말에 공감한다. 더 공감하기론 남자의 말에 더 공감하지만.  어느 때, 나는 10대 시절을 너무나 또렷이 기억하는데(그것은 그때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그때의 감정, 정서까지도) 지금 나는 그때에 비해 너무 많은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지곤 한다.  

아무튼, 저들의 대화를  이렇게 듣고 보면 영혼은 아주 어린 아이였다가도, 아주 늙음을 자유자재로  고무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볼 때 놀라운 것은, 여행길에 만난 두 남녀가 하루동안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데 얼마나 걸릴까? 물론 각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몇분에서 몇 개월 또는 몇년씩 걸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적어도 이들이 기차에서 내려 어느 레코드 가게에서 서로가 고른 레코드를 골라 부스에서 음악을 들어 볼 때다. 둘은 음악을 듣다 서로 키스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물론 거기선 하지 않지만.  

이 영화가 지금 봐도 좋은 것은, 사실 그 시절에도 CD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CD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추억의 LP판을 고른다는 것이고, 그것을 역시 턴테이블로 듣는다는 것에 있다. 낭만적이고, 추억이 고스란히 돼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건 감정이입이 되도 키스만큼은  감정이입이 잘 안 된다. 어느 영화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그런 대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키스할 때 코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설마 코 때문에 키스를 못할까?  하지만 나이들어 가면서 그 욕망도 점점 사라진다.  하게 되더라도 아주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키스만하게 되고. 흔히 말하는 뽀뽀 정도. 그나마 그것도 할 생각을 못하게 되는 때가 온다. 그래서일까? 그 둘의 키스가 왠지 좋아보이지만은 않는다. 역시 키스도 젊을 때 한 때 할 수 있는 것인가 보다. 물론 또 모를 일이다. 황혼에 사랑이 가능한 것처럼, 황혼의 키스도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몸은 늙어도 영혼은 늙지 않는다면 몸은 구속 받지 않게될 것이다.  

이렇게 이들은 영화에서 엄청나게 키스를 많이 하지만, 섹스는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에로틱이 아닌 플라토닉이다. 남녀가, 그것도 피끊는 청춘이 사랑을 하는데 어떻게 섹스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맥 빠져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리하게 잘 만들어졌다. 보여줘 봤자 아주 잘 보여주지 못 할 것이라면 슬쩍 눙치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결과 19금은 면했으며, 15세 등급을 받고, 미국내 모처에서 '죽기전에 꼭 봐야할 영화'에 그 이름을 등재시켰으니 영리하달 밖에.  

영화는 때로 누구나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 보다, 보여 줄 수 없는 것을 보여주거나 아예 안 보여주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그때도 유행이었을  프리 섹스의 시대에 플라토닉 러브는 얼마나 시대착오처럼 보여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감독은 과감하게 그것을 보여주고, 저 남녀로 하여금 사랑을 무형의 타임캡슐 속에 집어넣고 봉인한 채 헤어지게 만든다. 물론 그들은 6개월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그런데 여자가 다시 기차에 몸을 싣는 순간, 나는 정신이 들듯, 과연 저들은 정말 사랑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랑을 하면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잖는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과연 저들이 다시 만나기로 한 6개월 후에도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하지만, 그 무엇도 옮고 그른 것은 없다.  사실 저들의 나이 땐 인생을 관조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기성세대 특히 부모세대의 사랑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과거의 철부지 사랑을 얘기하며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물론 저들은 사랑을 시작했으니, 그러해왔던 것처럼 한동안은 뜨겁게 타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 사랑을 혹사시키지는 말자고 했을 일일지 모를 일이다. 오래도록 서로를 사랑하는 이 마음을 가지고 헤어지자고 했을 것이다. 누구는 이게 무슨 사랑이냐고 할지 모르고, 또 누구는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사랑이라고 할 것이다.  

어제 라디오를 들으니, 한 진행자가 그런 멘트를 한다. 망각만큼 완벽한 기억은 없다고. 사람의 기억은 완벽하지가 않아서 기억할 때마다 왜곡되고 뒤틀려 버리기마련이므로 망각속에 집어 넣으면 기억은 그대로인채 보존되는 것이다. 참 역설적이지만 맞는 얘기다 싶다. 그런 것처럼 저들의 사랑도 그런 건 아니겠는가? 사랑하게 됐다고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면 또 그만큼 오해하고, 갈등하고, 미워해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을 가지고 헤어지게 되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왠지 이들의 사랑이 일견 대견하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사람 사는 모양은 똑같다고 해도, 다른 식의 삶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먹고 퇴화의 과정을 거치면 못하는 것이고, 가능하면 젊을 때 가능하다.  

모처럼 좋은 영화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대사가 좋은 영화다. 귀에 밟히는 대사들이 많았다. 이 영화의 후편이 나왔다고 하는데, 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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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4-2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참 좋아했던, 그래서 여러번 보았던 영화예요!

후편은 10년뒤에 만들어졌지요.
기대를 많이 갖고 보았는데, 생각보다는 별로였습니다.
이 영화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기대가 컷던 탓인 것 같아요.
함께 본 아내는 좋았다고 하더라구요.(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요.)

stella.K 2011-04-21 14:4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형만한 아우가 없다고,
전편만한 후편이 없다는 속설을 못 깰까요?
근데 왠지 저는 보고 싶어지네요.^^

네오 2011-05-04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영화를 2006년 7월의 디브디로 봤네요~ 11년이 지난 후의 영화라며 마음놓고 보다가 커다란 충격의 휩싸여 그 이후 아마도 이 영화를 50번 넘게 본거 같네요~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였습니다~(대본집도 구입해서 그 대사대사 하나하나 외우고 있었던 시절이^^) 제가 지금 왜 이 영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있냐면 지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사랑을 카피하다>가 이 영화가 유사해서요~ 중년업그레이드버전이라고 할 만하더군요~ 이 영화도 물론 좋습니다~

stella.K 2011-05-04 11:08   좋아요 0 | URL
오, 네오님, 대단하십니다.
무려 50번을 넘게 보시다니!
이 영화 참 괜찮았어요. 그죠?
별것 아닌 것 같은데도 여운이 참 짙게 남아요.
<사랑을 카피하다>도 이런 류군요. 나중에 한번 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