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이상범· 최순우·권진규 등 이달내 지정
이광수·이상·이중섭·박종화·홍난파 등 줄이을듯


20세기 한국의 문화예술을 이끌었던 인물들의 고택(古宅)이나 작업장이 사상 처음으로 문화재로 지정된다. 서울시는 9일 ‘님의 침묵’의 한용운(韓龍雲·1879~1944), 조선 후기 천재화가 장승업의 화풍을 계승했던 한국화가 이상범(李象範·1897~1972), 한국미를 국내외로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술사학자 최순우(崔淳雨·1916~84), 전통에 바탕을 둔 한국적 리얼리즘을 조각으로 승화시킨 권진규(權鎭圭·1922~73)가 작품활동을 했던 고택과 화실(畵室) 등을 지정예고기간을 거친 뒤 5월 하순쯤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또 이광수 이상 이중섭 박종화 홍난파 마해송 등이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했던 9채의 고택〈표〉에 대해서도 문화재 등록을 최근 문화재청에 신청했다. 이에 따라 이들 건물들은 오는 6월 등록문화재로 등록될 것으로 보인다.

근·현대 한국 문화예술계를 이끌었던 인물들이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던 고택들은 그동안 “문화예술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문화재적인 가치는 낮다”는 이유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한국 문단의 사실주의 대표작가였던 현진건(玄鎭健·1900~43)의 종로구 부암동 고택, 청록파 시인 박목월(朴木月·1916~78)의 용산구 원효로 4가 고택이 최근 잇따라 헐리면서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의 ‘문화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올해 들어 철거 위기에 놓였던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1915~2000)의 관악구 남현동 봉산산방(蓬蒜山房), 화가 이상범의 종로구 누하동 화실(畵室), 작곡가 홍난파(洪蘭波·1898~1941)의 종로구 송월동 1번지 고택을 매입하는 등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의 문화유적 보존에 박차를 가했고, 지난 4월에는 서울시에 있는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의 고택을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심의를 벌였다. 이번 지정 조치는 앞으로 각 지방에 산재한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의 고택이나 작업실 등이 문화재(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독립운동사에 남을 한용운 고택

종로구 계동 43번지, ‘ㄷ’자 형식의 목조 기와집이다. 대지 35평 건평 15평. 만해(卍海)는 설악산 오세암에서 1918년 이곳으로 옮겨와 월간지 ‘유심(惟心)’을 창간하며 계몽적 성격의 논설과 수필·시를 발표했다. 3·1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될 때까지 거주했던 곳으로, 독립운동사와 불교사에 길이 남을 곳으로 꼽힌다.

◆'수묵화의 터전' 이상범 화실과 고택

화실은 종로구 누하동 181번지에, 고택은 누하동 178번지에 접해 자리하고 있다. 30대 초반부터 타계할 때까지 여기서 살았다. 평범하고 친숙한 산천 들녘을 담은 화풍을 이곳에서 창조했기에, 현대 한국 수묵화의 터전으로 평가되는 공간이다. 그는 1955년 6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화실과 고택을 “나의 모든 창조적인 계기를 계시·정리·실현해 주는 곳이자 내 생명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평했다.

◆'한국미술사 연구의 산실' 최순우 고택

성북구 성북2동 126-20번지에 있는 대지 110평의 목조 기와집이다. 한국미술사 연구의 토대를 닦았던 선생이 말년에 6년 동안 거주했던 곳이다. 최근 내셔널트러스트에서 매입해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적 리얼리즘' 권진규 아틀리에

성북구 동선동3가 251-13번지에 있다. 대지 23평의 시멘트 양옥이다. 동세대 작가들이 서구 조각의 흐름을 모방하기에 골몰할 때, 신라 토우 등 전통에 뿌리를 둔 한국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정립하려 했던 선생이 일본에서 귀국한 직후부터 자살로 생을 마칠 때까지 15년 동안 활동했던 공간이다. 일본에서 교수직을 제의했지만 조국에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며 거절했던 그는 막상 국내에서는 ‘시대착오적 복고주의자’라고 비판받았다. 가난과 질병·멸시 속에서도 예술혼을 지켜냈던 한 예술가의 삶이 오롯이 담긴 공간이다.

(신형준기자 hjshi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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