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갈피엔 무슨 사연 숨었을까>


▲ 전 세계를 돌며 구한 돌로 쌓았다는 ‘책 탑 2002’.
전시장에 기둥처럼 책 10여권이 쌓여 있다. 종이가 아니라 대리석이나 화강암 등 돌을 깎아 만든 책이다. 만져보면 차갑고 단단하고 부드럽다. 속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넘겨 볼 수 없는 이 신비한 책들이 등장하는 전시 제목은 ‘쿠바흐-뷜름젠 & 쿠바흐-크롭’. 부제는 ‘책이 된 돌, 빛과 소리가 된 돌’이다.

전시장에 등장하는 작품 44점을 만든 작가들은 한 가족이다. ‘쿠바흐-뷜름젠’은 독일 출신의 볼프강 쿠바흐와 안나 뷜름젠 부부. 1968년부터 공동작업을 펼쳐왔다. ‘쿠바흐-크롭’은 이들의 딸 리비아 쿠바흐와 사위 미하엘 크롭. 10여년 전부터 팀을 이뤄 작업하고 있다. 이들은 넷이 함께 살면서 함께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마치 쌍둥이가 태어나듯, 우연히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쿠바흐-뷜름젠’ 팀에는 보물찾기 하듯 돌을 고르러 떠나는 여행이 곧 작업의 시작이다. 작품마다 노르웨이, 터키 등 돌을 발견한 지명도 소개해 놓았다. 책이 펼쳐진 채 날아가는 듯한 형상의 ‘이카루스’ 시리즈는 브라질의 산타세실리아 채석장 인근에서 날개처럼 생긴 화강암을 발견하면서 만들게 된 작품이다.

이들 부부는 이처럼 그 지역만의 고유한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돌을 가지고 인류의 지혜를 담아놓은 책의 형상을 만든다. 이들에게 돌은 쪼개고 다듬어 무엇을 만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땅의 정신을 담아내는 동맥’. 보통 조각가들은 무늬 없이 매끈한 돌만 쓰지만 이들은 수천, 수만년 동안 자연이 서서히 그려낸 돌의 얼룩을 조각에 그대로 살린다.

반면 딸과 사위는 돌에 빛과 소리를 담으려 한다. 거대한 화강암에 그물처럼 무수한 구멍을 내고 햇빛과 바람이 술술 드나들게 하는 식이다. 육중한 돌은 날아갈 듯 가볍게 다가온다. 밑이 둥근 반구 모양의 돌을 여러개의 돌기둥으로 지탱해 놓은 작품은 슬쩍 건드리면 돌끼리 부딪치면서 맑은 톤의 ‘달그락’ 소리를 낸다. 흰 구름 흘러가는 푸른 하늘 아래, 혹은 바람 부는 야외에서 보면 몇 배 더 감명 깊을 듯하지만 지금은 좀 답답한 갤러리 안에 전시돼 있다.

전시 개막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주 한국에 온 이들 가족은 강화도의 고인돌 유적, 덕수궁 내 석조물을 돌아보고 큰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들이 살고 있는 독일의 바트뮌스터 암슈타인에는 이들의 작품을 닮은 ‘쿠바흐-뷜름젠 & 쿠바흐-크롭’ 미술관도 들어설 예정이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전시는 5월 8일까지 박여숙 화랑. (02)549-7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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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2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여숙화랑에서 하는 전시면 일단 믿을만 하던데...이 전시 기회되면 함 보고 싶네요. 좋은 정보 감사!

stella.K 2004-04-28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탑이 너무 독특하고 좋아서요.^^

김여흔 2004-04-29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해요. ^^

잉크냄새 2004-04-29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수건인줄 알았어요... 미안해요...^^;

갈대 2004-04-2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 하나 훔쳐다가 책꽂이에 뒀으면 좋겠네요.
잉크냄새님 절 웃기시다니..ㅋㅋ

stella.K 2004-04-2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얼핏 보면 수건 같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