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마포평생학습관에서 있었던 <100인의 책마을 저자 간담회-3인3색>에 다녀왔다.
이 책은 원래 23인의 공동저자로 되어있다. 원래 저자 간담회라면 저자가 몇 사람이 되었든 다 나와서 독자와의 만남을 가져야겠지만 그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예상했고, 그중 책읽기의 고수라 불릴만한 저자 3인이 대표로 나와 각자의 독서론에 대해 들을 수가 있었다. 이들 저자 3인방을 보면, 북칼럼니스트 이동환님과 번역가인 박은영님. 교육가이면서 저술가인 김보일님이다.
책 읽기에 무슨 왕도가 있겠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책읽기의 고수들의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참고가 될만한 이야기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왕도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3인3색은 잘 차려진 비빔밥을 먹는 기분이랄까? 출연진마다 책 읽는 방법은 조금씩 달랐다.
책, 정말 완독해야 하는 것인가?- 이동환님
나는, 사춘기 시절 책에 맛을 들이기 시작할 즈음 우연히 라디오에서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중간에 읽다가 포기하거나 건너뛰기를 하면 그건 온전히 읽었다고 할 수 었다."는 말이 뇌리에 박혀 늘 완독을 목표로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완독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어서 완독하지 못한 책에 대해선 묘한 죄책감과 열등감을 갖곤 한다. 지금은 그것에서 많이 자유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에 대한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좋은 책이더라도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감동할 수 없는 책이라면 과연 그 책이 정말로 나에게 좋은 책일까? 나는 이 물음에 90% 는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왜냐구? 누구의 말마따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고 했던 것처럼,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기 때문이다. 세상에 읽어야할 책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읽지 못한 책에 대해 언제까지 죄책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을 것인가?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나머지 10%가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면, 올해 베스트셀러였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 같은 경우. 나도 언젠가는 읽어보리라고 다짐한 책이긴 하지만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물론 게을러서이기도 하지만, 과연 내가 이 책을 온전히 소화해 낼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해 이날 첫 발제를 맡은 북칼럼리스트인 이동환님, 읽은 사람도 많이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적지않은 사람들이 읽기를 포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그 책은 현재 베스트셀러다. 하지만 반드시 베스트셀러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며, 아울러 완독에 대한 강박에서도 자유로워질 것을 당부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조금 더 자유로워진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이동환님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던 다치바나 다카시를 예로들었다. 그 사람 역시 집어드는 책을 완독하는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부분 부분 책을 읽는다고 했다. 또한 그것은 이동환님 자신도 그렇게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부분 부분 읽는 것과 완독을 병행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한 소설 같은 경우는 완독할 것을 권했다. 그래도 이분이 한 해 동안 완독하는 책은 거의 200여권에 이른다고 한다. 역시 북칼럼니스트란 타이틀은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참고로, 북칼럼니스트도 자기 분야는 있는 법인데, 이동환님의 전문분야는 과학과 인문 분야다. 서평을 전문으로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이분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즉 이 분이 이 분야의 서평을 쓰게 된 것은 10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인문과 자연과학 분야의 냉담을 보고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그쪽 분야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서평을 써 온 것이다. 이렇게 이동환님은 남이 잘 하지 않는 분야 즉 블루오션을 개척해서 북칼럼니스트가 된 사례다. 그러면서 청중들에게 가급적이면 많이 읽고, 많이 쓸 것을 당부했다. 그분은 그렇게 자신의 하는 일을 요리사가 요리를 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독특하게도 독서와 글쓰기를 Nature(본성)와 Nurture(양육)에 비유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우리가 독서하는 것은 본성에 가까운 행위로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글쓰기는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는 양육에 비유한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맞는 말 같다. 그러나 나 같은 귀차니스트에겐 이 말이 얼마나 냉정하게 들릴지는 귀차니스트가 아닌 사람은 모를 것이다. 아, 어쩌라구?
내키는 대로 읽고 행복하라-박은영님
그래도 그 시간,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폴리즘을 쏟아 내는 것과 같은 감동과 울림이 있었던 건 두번째 발제를 맡은 박은영 씨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분은 앞서 번역가로도 소개했지만, 현재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분은 정말 책과 삶을 하나로 연결시켜 가슴 절절하게 자신의 독서론을 얘기했던 분이기도 하다.
70년 대 초중반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계몽사의 50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을 기억할 것이다. 그녀 역시 부모님이 사준 이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도 결코 만만치 않은 분량의 전집을 무려 10독을 했다고 한다. 생전 처음으로 책에 매료된 순간이었고, 그 책들이 너무 좋아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때 아침에 눈을 떠보면 집안에 식구들은 온데간데 없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든 자신만 덩그마니 혼자 남겨진 적도 많았다고 하는데, 무섭다기 보단 혼자만이 누리는 텅빈 충만을 초등학교 2학년인 약관의 나이(?)에 경험했다고나 할까?
나 역시 어렸을 적, 그 전집이 우리집에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것은 박은영 씨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 책은 나와 내 동생에겐 너무 어려 읽을 수 없을 거란 엄마의 판단에 의해 금서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심술스런 오빠가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오빠 본인도 잘 읽지도 않으면서. 그나마 나 보다 네 살이 많은 언니는 좀 열심히 읽는 편이었다. 그런고로 그책은 나 보다 네 살이 많은 사람의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 읽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오빠가 나와 내 동생에게 그 책을 만질 수 있게 해 준 때가 있었는데 그건, 그 책들에 먼지가 끼었을 때다. 그것들의 먼지를 닦아내고 일렬로 늘어놓게 한 후 1권부터 50권까지 빠른 시간내에 책꽂이에 꽂기 시합을 벌이는 것이다. 그것도 무료한 낮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그것 외엔 읽어 볼 생각을 못했다.
그녀는 앞서 이동환 씨와는 조금 다른 독서 철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냥 그 책을 읽으면서 행복하면 된다. 맛있으면 된다. 그러나 행복은 그때 그때 다르더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책 읽기를 즐겼던 그녀가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모처의 독서 도우미 클럽에 나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거기서 알게된 사람들의 온갖 다양한 독서 취향에 자신은 얼마나 편협한 독서를 해 왔는지 열등하다 못해 자괴감마저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저명한 인문학자 강유원 씨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 당신의 서가에서 굳이 갖고 있지 않아도 되는 책들을 다 뽑아 보라. 뽑고 ,뽑고, 또 뽑다 보면 결국 남는 건 고전일 것이다. 그 고전을 읽으라고 했단다. 결국 어떤 사람이 어떤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도 그것이 고전이 아니라면 그 책을 안 읽었다고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정말 맞는 말 같다.
그녀가 말미에, 행복은 그때 그때 다르더라.고 한 것엔 또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사춘기의 열병을 치뤄내고 있는 딸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녀는 최근 표명희 작가의 <오프로드 다이어리>란 책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노라고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별로 관심있게 볼 책은 아니었는데,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딸과 함께 사춘기 열병을 치뤄내고 있는 중이었기에 이 책의 내용이 절절하게 다가오더라고 했다. 어찌보면 쉽지 않은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자신에게 뭔가의 통찰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책을 읽을 때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더불어 우리에게도 <삐삐롱 스타킹>으로 잘 알려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라스무스와 방랑자> 그리고 그 유명한 <피노키오> 완역본을 읽으면서 그것이 주는 행복을 청중들에게 전해 주었다. 우리는 흔히 어른이 되면서 이런 이동문학을 떠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책들이 우리가 어렸을 때 읽는 것과 어른이 되었을 때 특별히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을 때 읽는 감흥은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담삼아, 번역은 어려우니 알려진 동화책을 어머니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을 써 볼까하는 생각을 가져본다고 했을 때 청중의 많은 격려를 받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부모가 돼 보면 이런 동화책의 의미가 다를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박은영님은 책을 머리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분 같았다. 그날 그녀의 결론은, "내키는 대로 읽고 행복하라" 였고, 요즘은 폴 오스터 푹 빠져있다고 했다.
잠시 쉬어갈 겸, 여기서 돌발퀴즈. 이날 이동환, 박은영, 김보일 세 분의 저자가 공통적으로, 책에 대해 관심을 갖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어라고 추천한 책은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이 글 말미에.
나는, 나 자신을 툭 찔러주는 책을 좋아한다.-김보일님
<100인의 책마을>도 그렇고, 최근에 읽은 <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도 그렇고. 김보일님의 문장은 가히 명문이다. 어쩌면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사람의 가슴에 살포시 내려와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까? 놀라고 감탄한적이 있다. 그런 그가 그 시간, 무조건 책과 친해지는 방법을 소개했다.
첫째,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려들면 수명만 단축된다. 몰라도 좋다. 즐길 수 있는 부분만 즐겨라.
둘째,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개척하라.
세째, 책은 정보의 보물 창고다. 고급 정보를 이용하라.
확실히 첫번째와 두번째 조항은 맨먼저 발제를 맡았던 이동환님의 그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무엇보니 그는, 자신을 툭 찔러주는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을 추천했다. 왜 그런지는 맛을 봐야 맛을 안다고, 이 책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교사인만큼 가끔 수업중에 이솝우화의 한 대목으로 학생들에게 넌센스 퀴즈를 낸다고 한다. 무거운 소금 짐을 지고 가는 당나귀가 개울을 건너다 실수로 넘어졌다고 하다. 그런데 물에 소금이 젖자 자신의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깨닫고, 게울을 건널 때마다 넘어졌다고 한다. 이것을 안 주인은 벌로 당나귀의 등에 솜을 얹었다고 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뭐가 있을까? 그러자 열이면 열 모두는, 꾀 피우지 말자라고 했단다. 솜이 물에 젖으면 무거워지니까. 물론 이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른 답은 없을까? 즉, 똑똑한 당나귀라면 자기 등에 무엇이 얹어 있나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길을 선택해서 걸었을 것이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렇게 생각의 허를 찔러주는 책들 말이다.
김보일님은 세 분의 강연자 중 가장 많은 책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울지 않은 늑대>,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지렁이>,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바이오테크의 시대>, <거꾸로 생각해 봐>, <잡초는 없다>같은 책인데, 이것이 바로 자신이 읽은 툭 찔러주는 대표적인 책이라고 했다.
더불어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도 소개했다. 이 책은 책에 대해 갈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보일님은 독서는 액소더스다.라고 말한다. 정말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는데 독서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그분은 문장가답게도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했다. 현실에 만족하면 글을 쓰지 않는다고. 역시 같은 이유에서 현실에 만족하면 책 또한 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작가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결핍을 알기에 쓴다고 했다. 확실히 세겨들을만 하다.
그분은, 세상에 실패한 독서는 없다고 말한다. 예전엔, 만원을 주고 책을 샀는데 실제로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을 땐 속이 상하곤 했는데, 지금은 아무리 만족스럽지 않은 책이라도 그 책에서 한 문장이라도 건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독서라고 말한다.
이 세 분의 말을 종합해 볼 때, 역시 독서란 가장 즐거워야 하고, 자유로워야 하며, 보람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다시 책을 붙들어야겠다.
그럼 여기서 돌발퀴즈 정답. 이미 거의 답이 나왔지만, 정답은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