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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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대, 내가 강남에 산지도 어느 덧 30년 세월을 넘어 40년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한곳에 이렇게 오래 살게될 줄은 정말 몰랐다.    

처음 강남 땅을 밟은 건 아주 어렸을 때다.  부모님이 그 집을 계약하고, 앞으로 이 집에 살게 될 거라고  나를 처음 데려가신 적이 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부모님은 전 주인에게 잔금을 치르기 위해 그 집을 가셨던 것 같고, 앞으로 이 집이 우리집이 될 거라니 나는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고,  믿기지도 않았다. 그 집 주인 내외는 뭔가 우리와는 달라 보였다. 고상하고 지적여 보엿다고나 할까? 물론 그런 집에서 산 사람에 대한 착시 효과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그 사람네들은 제법 근사하게 보였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그해 가을 우린 정말 이사를 했다. 한강 다리를 건너 우리 가족이 탄 차가 미끄러지듯 현깃증을 느끼며 굴다리를 지나면 강남구 신사동 경계다. 굴다리를 지나 올 때 달린 간판엔 강남의 전신인 '영동 지구'란 팻말이 달려 있었다.  그날로부터 나의 친척들은 우리 엄마를 부를 때 'ㅇㅇ 엄마'라고 불리지 않고 '영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 엄마는 친척들로 부터 그렇게 불려진다.   

새로운 집은 중구 광희동이란 먼저 살던 집과는 사뭇 달랐다. 먼저 살던 동네는 기와집 아니면 지붕을 슬레이트로 덮은 집이 많았지만, 새집은 그때만해도 새롭게 불리던 '양옥'이라 불리우기에도 손색이 없는 집이었다. 우리집이 있던 골목엔 시에서 찍어내듯 비슷한 구조의 '시형주택'이란 것이 쪼르라니 있었는데, 딱 두 집이 개인주택이었고, 그중 하나가 우리집이었다. 마당엔 잔디에 꽃도 많았고, 집 뒤론 '대머리산'이란 조그만 야산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집만 좋았다 뿐이지 도무지 이 동네가 먼저 살던 집 보다 뭐가 좋은지를 어린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땅은 아직도 닦이지 않아서 바람이 불라치면 흙바람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고, 비가 오면 진창이되어 미끄러질듯 뒤뚱거리거나 발이 땅에 깊이 들어가 한 발 띄어 놓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언덕 꼭대기에 있었던 우리집은 나올 땐 어떻게 나왔는데, 다시 들어갈 땐 어떻게 저 흙언덕을 올라갈 것인가 한숨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적어도 먼저 살던 동네는 시멘트 길이라 그런 문제점은 없었다. 이쯤되면 먼저집이 그리웠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강남'의 기억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소가 달구지를 매고 지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고, 실개천을 건너야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랫길엔 개천도 있어 오폐수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없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과 2,3년 안에 개천은 메워지고, 땅은 회색 시멘트도 잘 닦여졌다. 지금도 궁금한 건, 그 비슷한 시기에 달구지 매던 소도 자취를 감췄던 것 같은데 그 소는 어디로 갔을까? 하는 것이다. 모르긴해도,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그 소의 주인은 얼마의 돈을 받고 동네를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다른 모든 건 다 잊어도 달구지 매고 거리를 지나다녔던 그 소의 걸음걸이를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못할 지도 모른다. 오늘 날, 이렇게 세련된 도시에서 무슨 희귀한 소리냐고. 정말 희귀한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내가 아는 '강남'은 분명 그랬다. 

황석영 작가. 확실히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굵직하고도 독보적인 작가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이 한권의 책에 '강남 형성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며 물 흐르듯 풀어낼 수 있을까? 그 막힘없는 필치에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채 이 책을 읽었다. 특히, '아, 소설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하며 감탄했던 건, 몇몇을 제외하곤 거의 실명 또는 실제의 사건을 조금의 각색도 없이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소설체로 쓰고 있으니 무슨 '비사(秘史)'를 조근조근 듣는 것도 같다.  

특히, 첫 장면을 1995년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당시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이는 필시 '강남'에 대한 아니, 우리나라 전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하나의 예시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당시 삼풍 백화점이 무너져 내렸을 때, 이것이 주는 적지 않은 사회적 파장이 있었다. 안전불감증은 물론이고, '빨리 빨리'가  줬던 후유증,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건이 다른 곳도 아닌 '강남'의 한 복판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과연 현대의 자본주의 세례가 그렇게 달고 좋기만 한 것이냐는 사회적 각성과 비판까지, 실로 우리나라 현대사에 남을만한 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사건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묘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어떻게 백주대낮에 하고 많은 땅중에 그 상류층만 다닌다던 백화점이 일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누가 그렇게 될거라고 감히 상상이나 해 봤겠는가? 그때 그 근처에 발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던 일반 시민들조차 하도 어이가 없어 한동안 멍한 상태였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될만한 사건은 비록 내 삶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동공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때로 신기할 때가 있다. 그래서 '국민'이라고 하고 인간이라 했는가 보다.   

어쨌든 그 사건을 가지고 황석영 선생은, 자유당 때부터 있어 온 정치 깡패 김진의 이야기를,  꽃뱀이자 복부인의 박선녀의 이야기를, 기회주의자 심남수의 이야기를, 또한 빠질 수 없는 조폭 홍양태의 이야기를, 그리고 가난한 자를 대변하는 임수정의 이야기를 깍아지른 듯 배치시켜 놓았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대성 백화점'이란 성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사실, 강남의 제2의 새마을 운동(시형주택이 허물어지고 다가구 건물이 들어선 것)과 그로인해 '나가요'업소의 사람들이 방을 점령하고 사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긴 하지만, 선생의 소설이 전혀 근거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웬지 일견 불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 밝혔던대로, 나의 '강남'은 이런 아름다운 기억이 있는데,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그곳을 기억할 사람도 있을텐데, 작품은 너무 거시적이고 어두운 강남을 다룬 것은 아닌가 아쉬웠던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인 것인지, 아니면 실제적인 분석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젠 강남이 지난 세대 동안 누려왔던 명성과 또 앞으로 누릴 수혜 때문에 '강남 불패'니 '강남 신화'니 하는 말을 공공연히 수면위로 떠올랐다. 불과 한 세대 동안(적어도 내 기억 속엔 그렇다. 우리집이 이사 오자 곧바로 개발붐이 일어났으니까) 강남은 비약적인 발전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런 말이 강남을 제2의 고향으로 알고 살아 온 나에겐 그다지 편하게만 들리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는 그 옛날 왜 이 강남으로 이사 올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버지도 그 시절 개발붐이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이사할 생각을 하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네가 하도 삭막하여 2,3년 정도만 살다가 나올 생각을 하셨다고도 하니 그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기도 하다. 또한 그렇게도 유행해 마지않았던 '부동산 투기의 시대' 때도, 우린 지난 30여년 동안 마치 남의 나라에서 이사 온 사람처럼 살았다. 글쎄, 우린 점 같은 건 보지 않지만, 아마도 점쟁이들은 우리 가족의 사주를 보면 부동산 운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집 같이 살고 있는 강남 사람들이 더 있지 않을까?  

강남이 다 높은 빌딩에, 주상복합 건물, 으리으리한 빌라만 들어차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이 강남 어디에선가 빈곤층은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또 언제 제3차 강남 개발붐이 일어 살던 곳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개발이란 건 이제 없는 사람만이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평범하게 한달 벌어 한달 먹고 사는 중류층 가정에도 언제 살던 곳을 내주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강북도 강남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고 하며 들썩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거기에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은 철거민으로 내려앉을 것이고, 이사를 가야할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엔 이것을 반기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살던 곳을 떠난다는 게 어디 쉬운 것인가? 원래 강남에 살던 사람이 개발이 되자 성남 등지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산다고 들었다.  이런 사람들의 상처를 강남 사람들이 알까? 그런 헤아림도 없이 밀어내기만 했다. 강북도 그러지 않겠는가? 또 성남이 개발이 되면 그곳에 사는 사람은 또 밀려나야 한다. 이런 철거민의 악순환의 고리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계속 개발만을 외친다면 그것도 민주주의 국가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이 보호되면서 개발을 된다면 그것 이상의 좋은 개발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강북은 강남을 벤치마킹하지 못해 안달이다. 도대체 강남이 겉으로야 화려하지만 뭘했다는 것인가? 그래서 강북에도 삼풍 백화점이 생기고 그런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딨겠는가? 강북은 강남과는 뭔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질적 개발은 이루었을지 몰라도 정신적인 개발은 이루지 못한다면 그러고 개발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언제부턴가 강남은 내게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을 제외하고 그다지 매력적인 곳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내가 이 작품에서 위로를 받았던 건 끝에 다뤄졌던 임수정의 부분이다. 부자라고 해서 오래 잘 사는 것이 아니며, 가난하다고 해서 언제나 절망 속에 사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해를 비춰 주신다. 마지막 생존자로 임수정이 구출되고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있다.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탐욕하지만 않는다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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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0-07-29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문장의 후반부가 굉장히 인상깊은 리뷰군요.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되돌아 보지요.^^

stella.K 2010-07-30 16:07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야클님도 강남에 꽤 오래 사셨나 봅니다.^^

2010-07-30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0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0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0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1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7-30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남에 오래 사셨군요. 님의 사신 이야기와 책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재미난 리뷰가 되었네요. 강북을 강남처럼 만들게 되면 또다시 철거민들의 비애가 시작되겠지요.ㅠ.ㅠ

stella.K 2010-07-31 13:17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전 제발 위에 계신 분들 개발에 대해 다시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