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중파에서 하는 몇 개의 드라마를 지켜보고 있는데(공교롭게도 그 보는 것이 다 사극이다. 이러다 아무래도 나도 사극 매니아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중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다면 그건 당연 <추노>일 것이다. 매주 보는 장혁과 함께 추노질 하는 그 일파들이 보여주는 초콜릿 복근(요즘엔 아예 대놓고 보여주더만)도 나름 볼만한 것이긴 하지만, 너무 대놓고 말하면 그도 밝힌다 하여 폐일언하고. 난 스토리는 물론이요 영상과 음악이 좋아 본다. 더불어 저런 영상이 가능하도록 만든 연출자가 누구인가 했더니 곽정환 PD다. 곽정환이라. 나로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얼마 전, 전호인님 서재에서 발견한 사실은, 곽정환은 이미 2007년 <한성별곡-정>이란 8부작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2007년이라. 알고 봤더니 그땐 이미 M TV에서 <커피프린스1호점>이 TV 브라운관을 점령하고 있었을 때라 당시 윤은혜도 그렇지만 나는 공유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어 이 드라마가 눈에 들어 올리가 없었다.     

결국 난 그 사실을 알고 <한성별곡-정>을 허겁지겁 꺼내봤다. 


과연 훌륭한 작품이었다. TV 드라마라고 하지만 영화를 보는 듯 하다. 특히 최루성 강한 음악이 정말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정조의 독살설을 소재로 하여 그의 죽음의 과정과 음모 과정을 추리기법을 사용하여 밀도있게 그려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인기가 없었던 것은 물론 <커프>의 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이렇다 할 스타를 기용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예를들면, 좌포청군관 역을 맡은 진이한의 경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도 누구지? 고개를 갸웃거릴만 하고, 의녀 역을 맡은 김하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천희 정도는 알겠는데 지금이나 알아 줄만 하지 2007년이면 그도 그다지 알려진 배우는 아니었을성 싶다. 그뿐인가? 정조역을 맡은 안내상도 그 무렵쯤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을 것이므로 대비역의 정애리 정도가 그나마 굵직한 캐스팅이었나고나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어쩌면 곽정환PD만의 전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스타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끌어지는 드라마 보다 드라마를 위한 드라마. 뭐 그런. 횟수도 딱 8회에서 끝을 냈다. 아무리 못해도 16부작을 하던데 8부작이니 농축된 느낌이다. 쓸데없이 긴 것보다 훨낫다. 

 박상규 (진이한 분)  
  

 

 

 

특히 이 드라마에서 내가 지켜보게 된 인물은 좌포청군관 박상규 역의 진이한이다. 원래 드라마 첫 장면부터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첫 장면부터 진이한이 등장한다. 그래서 혹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이한은 처음부터 찌질하게 나온다. 목소리도 작고, 싸움도 못하며, 뭔가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하는 인물이다. 뭔가의 포스는 느껴지기는 한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주인공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진이한 이상의 주인공 포스를 느끼게 하는 인물은 더 이상 없는 것으로 봐 이 사람이 주인공은 맞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이 인물 끝까지 와신상담, 개과천선 같은 거 하지 않는다. 우왕좌왕 한다는 것은 우유부단함의 태도를 이르는 말이니 그 인물 그대로를 유지하되 그런 인물의 대표격은 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아니었을까? 나 개인적으론 딱 그 햄릿의 분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초인적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없고, 영웅이 되는 것도 없다. 그저 서얼이었기에 그 불명예를 안고, 기 한 번 제대로 표보지 못하는 고독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에게도 사랑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단 그 사랑이 끝이 닿지 않는 것이기에 애절하고 안타깝고, 그래서 묘하게도 보는이로 하여금 모성본능을 자극하게 만든다. 

극본은 어떠한가? 원래 시나리오 작가였다고 한다. 확실히 극작가가 쓰는 대본과 시나리오 작가가 TV 드라마를 위해 극본을 쓰는 것은 좀 달라 보이긴 한다. 과유불급이라 다소 산만하고 그래서 약간은 지루한 감도 없지 않지만 그것들을 나중에 잘 다듬고 연결시키는데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특히 좋은 대사들이 많다. 이 드라마에서는 정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정조란 인물이 크게 부각이 되지 않으면서 할 말은 다하게끔 만들어 놓기도 한다.  

아, 정조! 그가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는 미스테리다. 단지 독살설만이 그의 죽음을 대변해 주고있지만 그것에 대한 증거는 딱히 없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의 작가들이 그를 형상화 하기에 좋은 인물로 보는 것 같다. 어떻게 그려도 아우라가 확실히 살아나지 않겠는가?  

난 왜 이 작품이 아직도 책으로 나오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책으로 나왔더라면 꽤 괜찮은 추리물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요즘 책으로 내지 않는 드라마가 어딨다고? 책이었다 드라마로 나왔다면 좀 더 그 권위가 인정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드라마로 봤다 책으로 나오는 것은 전자의 경우 보다 기대감이 떨어진다. 그래도 영상은 영상이고 문자는 문자다.  

이렇게 <한성별곡-정>을 보고 <추노>를 보니 아직 초반이라 말하기는 조심스럽긴 하지만 곽정환PD의 연출이 한결 업그레이드 됐다는 생각이 든다. 전자의 드라마도 좋긴 하지만 지금의 <추노>가 보기는 더 좋다. 앞으로 이 사람을 주목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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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1-20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7년이면 이산이 나온 때내요.엊그제 본것 같은데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갑니다 ㅜ.ㅜ

stella.K 2010-01-20 11:49   좋아요 0 | URL
이걸 보셨군요. 정말 시간 빨라요.
2007년도에 제가 뭐 했는지 정말 기억이 안 나더라구요.ㅜ

전호인 2010-01-2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7년?
글쎄요 제가 무얼했을까요?
당장 2009년에 한 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네요.
망각의 동물의 본능에 충실한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 헷갈려하고 있답니다.ㅋㅋ

stella.K 2010-01-21 10:5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옛 기억은 점점 또렷해지고 있는데 바로 몇년 전의 일은
기억이 안 나고 있으니, 인간의 기억이란 참...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