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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릭 게코스키 지음, 차익종 옮김 / 르네상스 / 2007년 12월
평점 :
스타가 처음부터 저 좋아 반짝반짝 빛났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알고 보면 무명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작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유명한 책을 낸 작가 역시 처음부터 어느 별에서 툭하고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나름 무명의 시절이 있었고, 습작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지 않으면 나 같은 벽안의 독자는 알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잘난 책의 무명시절을 알게 되면 '그들도 우리처럼'하며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 릭 게코스키는 아마도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러한 분야에 있어서 탁월한 공로를 세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독서계의 빌 브라이슨으로 불린다. 그는 희귀본에 아주 관심이 많아 그것을 수집하고 그 과정을 취재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당연히 취재하다 보면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많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가치 있게 빛나는 것 같다.
유명 작가의 삶과 작품의 이면을 본다는 것이 왜 그리 즐거운 것인가? 그것은 마치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이었다. 노벨문학상은 어렵거나 지루하다는 그 편견에서 이 책 역시 조금도 비껴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 전 읽기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영화 보기엔 성공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 문구에 눈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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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손으로 쓴 원고인데도 수정한 흔적이 극히 드물었다. 나중에 그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그는 <파리대왕>을 집필할 때 줄거리가 머릿속에 워낙에 뚜렷이 새겨 있어서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냥 타자기를 두드리는 듯했다고 한다.(45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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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질투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신은 참 불공평하다. 어떻게 여느 평범한 작가(또는 작가지망생)에겐 그토록 무지막지하게 자신의 원고를 고쳐야하는 천형을 주시면서 이런 사람에게는 타자기로 두드리듯이 한 번에 쓸 수 있는 은총을 주셨단 말인가? 그렇다면 윌리엄 골딩은 가히 문학계의 미켈란젤로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머릿속에 이미 완벽한 조각상을 그려놓고 실제로 작업을 할 땐 그 나머지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낸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완성시켰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중요한 건 윌리엄 골딩이 그럴 수 있기까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그는 교직에 있었다고 한다)을 관찰했고 그것을 글로 옮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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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엄청난 규모의 악을 행할 수도 있는 족속임을 깨달은 후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어떻게 변화한 것일까? 그의 학생들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인간성에 공포를 느낀 그는 서서히 이와 관련된 새로운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것은 아이에 대한 아이의 비인간성이었다.(50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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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렇게 타이프로 글을 찍어내듯 글을 쓸 수 있는 것엔 지난한 관찰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봐도 대단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문학에 이토록이나 잘 녹여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혜안에 탄복할 정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유명한 작품도 처음엔 푸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 스물두 군데 출판사에 보내봤지만 연속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어디 그 뿐인가? 나보코프의 <롤리타> 역시 그랬고, 우리가 그토록 추앙해 마지않는 저 유명한 롤링의<해리포터와 현자의 돌>도 12번이나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고 13번째에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헤밍웨이 역시 처음부터 잘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누구나 데뷔는 고단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밖에도 저자가 다루고 있는 작가들 역시 하나 같이 험난한 여정을 거쳐 세상에 빛을 보았음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런 걸 접하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뭐 나름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세상의 한다하는 작가의 작품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쳤어.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 중요한 건 무슨 일에든지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않는 거야.’ 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론 그 반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도 그런 긴 무명시절이 있는데 나는 어느 세월에 뜻을 이룬단 말인가 하고 지레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뜻을 이루던 못 이루던 그것은 둘째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무엇인가를 해 보는 것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인 것 같다. 그래서 해 보는 것과 그래서 못하겠다는 사람. 그래도 세상은 뭔가를 안하는 사람 보다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닐까? 물론 잘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당대의 출판사들 참 까막눈이라고 비아냥거리기라도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그렇게 유명한 작품에 퇴짜를 놓을 수가 있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들도 한마디씩은 다 했을 것이다. 누가 그렇게 될 줄 알았냐고. 가슴을 치고 후회하며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하나의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노벨문학상도 타고 명불허전이 될 수도 있었겠지. 그렇게 쉽게 예측이 가능한 작품이라면 그만한 명예를 안을 수 있었겠는가?
이 책은 이것 외에도 작가의 삶을 다루기도 하고, 희귀본을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들을 담백하게 전하기도 한다. 또한 유명 작가의 작품도 저자는 무작정 좋다고만 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지나갈 법한 면도 한마디씩 꾹 찔러주고 가는 날카로움도 지녔다. 그런 부분을 읽다보면 아, 정말? 하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러면서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어떤 생각과 정신을 가지고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깊은 안목을 가질 것을 주문하는 것 같다. 명작이니만큼 그 명성에 눌려 좋은 게 좋은 것이려니 안일한 자세로 책을 읽는 것처럼 안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비판 정신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이 있다면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연합>인 것 같다. 그것은 작가 자신도 너무 아까운 삶을 살았으며 동시에 세상에 재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책이라 더 아쉬울 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엔 절판된 상태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소홀해지고 그래서 또 안타까움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으로 이런 좋은 책을 읽어 볼 수 있는 행복을 선사해 준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물론 알 리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