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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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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장애인 아들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낳고 싶어할까? 하지만 부부가 장애아를 낳을 확률을 로또 맞을 확률에 비유하며 그들을 키우는 애환을 시종 유머러스하게 풀려고 하고 있다.  

나 역시 처음엔 상당히 공감하며 읽어갔다. '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며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 좋았다. 하지만 점점 읽어가면서 느끼는 건 역시 우울한 얘기일 수 밖에 없고 결국 저자도 쓰다가 자기 연민과 신세한탄으로 빠지지 않았나 싶어 편치않은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책 어디에선가 동정 같은 건 받고 싶지 않다고 썼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있는데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톤 역시 조절을 했다고 하는데 글쎄, 내가 볼 땐 그 톤 조절에도 실패했다고 보여진다. 마치 자기 연민이 지나쳐(장애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된다. 아내도 힘들다고 자기를 떠났다. 어찌 자기 연민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자조하듯 중절거리는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유머도 섞일 수가 있겠지.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위로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글쓰기엔 자기 치유의 목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과유불급은 아닐까?  그것을 하도 하다보니 자신의 장애 아이의 입장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 성 싶기도 하다. 만일 그의 장애 아들이 아버지가 이렇게 뇌까리듯한 이 글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자기를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빠, 이제 그만 하세요. 저도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 아니라구요!"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라면 그랬을 것 같다. 

물론 부모도 한 인간이다. 힘들게 낳은 내 아이가 정상아에 한참 뒤진다면  저자 같이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장애아를 가진 부모가 다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아이의 장애가 자신의 탓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은 특별한 신의 섭리일 것이다. 다른 사람은 조롱할지라도 그를 낳은 부모는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뇌까리다가 아이를 조롱하는 것 만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언제까지 신세한탄만 할 것인가? 아이를 좀 더 강한 아이로 만들고(물론 강해진다고 그 아이가 정상아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약간의 의문이 드는 건 이런 지극히 소박한 장애아를 가진 아버지의 글에 페미나 상을 주었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의도에서 그런 상을 줬을까? 물론 나름 기준은 있었겠지. 이런 글에 열광해서 상을 주리만큼 프랑스도 장애자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밝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 하나? 내 아이에 대한 인식과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 장애아 부모에게 돌려야 하는 걸까? 아니면 스스로 인식을 바꾸지 못하고 안으로 숨어든 장애자 스스로에게 돌려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책을 입안하는 복지 담당 책임자에게 돌려야 하는 것일까? 

가끔 보면 비장애인은 장애자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은 그럴 수 밖에 없다. 장애자가 (아직)되 본적이 없는데 장애자에 대해 어찌 알겠는가? 그렇다면 그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장애인 당사자와 그의 부모들일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큰 걸 가지고 떠들지 말라. 지극히 작고 디테일한 것 가지고 말해 보라.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비장애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인식은 작은 것에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몰라서 변화될 의지가 없고 생각이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사는 근처에 장애인 복지관을 짓고 학교를 짓는다면 가만히 지켜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이렇게 말은 하지만 나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지하면 잔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건 역지사지로 풀어 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씌여진 파급 효과를 생각할 때 어느 일정 부분 장애아와 그 부모를 이해하는데 공헌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상도 부여해 주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류의 책은 좀 더 나와야한다고 생각한다. 울지 않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새는 없다고 여기 저기서 장애아인 내 새끼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떠들어 대야 사람들은 겨우 그들의 소리를 들을 것 같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내 아이가 세상에 불의한 대접을 받고 산다. 그들의 부모는 언젠가 세상을 떠나겠지만 누가 그들의 아이를 돌봐 줄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이 책은 자기 얘기를 했다는 면에서 의도는 좋았지만 그 행간을 너무 숨기고 너무 감정에만 호소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박한 것이 미덕인가? 좀 더 아이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그 이해한 바들을 공유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난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어찌보면 심하게 말해서 페미나 상도 정말 글을 잘 써서 줬다기 보단 동정이 반 이상이 섞인 상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장애자 부모의 애환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인식을 넓혔다는 점.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에이프릴 풀스데이> 아버지로서 (장애자라기 보단) 환자인 아들을 돌보며 느꼈던 점들을 썼다는 점에서 일맥상통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이땅에 많은 특별한 자녀를 돌보고 있는 부모들에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장애아의 아빠는 항상 우울한 표정이어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고통의 마스크를 써야 한다.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쳐서도 아니된다. 장애아의 아빠는 웃을 자격도 없다. 웃는다는 것은 최고로 눈치 없는 행동일 테니까 말이다. 장애아를 둘이나 가진 아빠는 곱빼기로 슬픈 모습을 보여야 한다. (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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