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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이 이렇게 많았다니...!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먹을거리를 생각하면 춥고 배고팠던 시설을 떠올린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가 나고 자랐던 시절은 60년대 중반 70년 대를 아우른다. 지금이야 먹을 것에 대해선 그 종류도 많고 양도 많아졌지만 그 시절 한창 먹고 자랄 때야 뭐가 있었으랴 싶기도 하다.
그래도 저자가 소개한 먹을거리에 대한 소회를 읽어보면 아, 이게 있었지? 하며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시골 태생이라 그럴지 모르지만 난 서울 토박이다. 저자가 소개한 먹을거리들은 나 어렸을 땐 잘 먹지 않았던 것들이다. 오히려 좋아하기로는 우리 엄마가 더 좋아하실만한 것들이다. 이를테면 봄나물들이나 부각이나 메밀, 쑥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다. 그때나 지금도 우리 엄마는 그것들 중 한가지만 있어서 한 공기의 밥은 넉끈히 비운다.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고 먹고 싶어했던 건 소세지나 카스텔라, 길거리에서 파는 소다와 설탕을 녹여 만든 뽑기 같은 것들이다. 그땐 왜 그리도 그런 것들이 좋았던지. 생각해 보면 영양가 없는 불량식품들이다. 그런데 비해 엄마가 권하는 음식들은 하나 같이 거칠고 맛없는 것들이었다. 하다못해 그 솜씨 좋은 엄마가 만들어 주는 엄마표 찐빵도 우린 맛없다고 놀러 온 막내 이모가 다 먹어치운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랬던 내가 언제부턴가 애 서는 여자처럼 불쑥 무엇이 당기는 때가 있다. 이를테면 쑥버무리나 옛날에 엄마가 해 줬던 찐빵이나 동치미 등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 어렸을 때 결코 좋아하지 않았을 음식들이다. 입맛도 회귀를 하는 것일까?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이맛들을 커서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맛으로 맛있게 먹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오래도록 엄마의 슬하를 떠나지 않고 있어서일까? 가끔 무엇인가가 먹고 싶은데 차마 해 먹자는 말을 못하고 엄마 거동만 살피고 있다. 그런데 마침 엄마도 그것이 드시고 싶다고 겸해서 먹게되는 때가 있다. 그러면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입맛이 통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엄마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아이도 그것을 좋아하고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끔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좋아라고 먹는 것을 보면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것도 좋아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필 그 음식을 좋아해서 저 조그만 입술로 오물오물 먹을 수 있을까?
우리 엄마는 말한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복 받은 나라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신 어려서 못 먹고 못 살았을 시절 대신 배를 채웠던 것들이 오늘날 흔히 말하는 웰빙 음식들이었다고. 그래서 옛날 노인들이 요즘 젊은이들 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라고. 이 말에 정말 이의를 달 수 없을 것 같다. 돈이 귀해 먹고 싶은 것을 흥청망청 먹을 수 없었기에 조그만 땅뙈기라도 그냥 놀리지 않고 이것 저것을 심어 가꾸며 먹고 살았다. 나 먹는 것을 스스로 제몸을 놀려 먹었으니 건강한 삶이었단 밖에.
이 책은 말 그대로 음식 산문집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식재료를 가지고 흔히 하는 음식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거나 성분을 밝혀 놓은 것이 아니라 그 먹을거리를 통해 잊혀졌던 옛 정서와 추억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나 같은 사람은 결코 쓰지 못했을 것 같은 글을 저자의 고향인 전라도 방언들을 친절한 뜻풀이와 함께 차곡차곡 써 나갔다. 작가 역시도 써 나가는 과정에서 엄마 얘기를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농담삼아 말하자면, 자신의 입맛의 8할은 우리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읽는 나도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더불어 새삼 우리 먹을 것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