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그러니까 17일엔 리더스 가이드와 웅진이 함께 주최한 <경성, 사진에 박히다>의 저자의 미니 간담회에 다녀왔다.

사실 이 책은 출간 때부터(지금도 출간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의 관심을 끌었던 책이다. 그것은 내가 사진 찍히는 것은 싫어해도 나름 사진 자체에 대해선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담회면 간담회지 왜 하필 '미니'란 수식어를 앞에 붙였던 것일까? 안 그래도 저자 간담회에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인데 미니라면 얼마나 더 작은 것을 의미하는 걸까? 그것은 주최측에서 공지글을 띄울 때 약간의 짖궃은 실수는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더랬다.   

그런데 막상 참석하고 보니 '미니'란 말이 딱 어울릴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말이다 보니 그만큼 모이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 책의 저자인 이경민 선생 역시도 음지에서 활동하시는 분이라 사람이 북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신단다. 그점에 있어서는 나 역시도 같은 성향이라 분위기는 의외로 좋았다고나 할 수 있을 것이다.(거기에 한몫한 건 주최측인 웅진에서 준비해 주신 풍성한 간식도 무시 못할 것으로 작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약간은 큰 키에 호남형이었다. 하지만 그가 쓴 검은테 안경이 누가 보아도 학자란 것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아니나 다를까, 막상 시간이 주어지자 누구 못지 않게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다. 내용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사진 아카이브가 걸어 온 길, 우리나라에서의 사진의 역사와 위상등에 관해 거침이 없이 그러나 조금 조근하게 설명을 한다. 그의 말은 청산유수다. 나 같은 사람은 사진에 관심만 있지 문외한이나 다름 없는데 선생의 말을 들으니 막연했던 사진에 대해 뭔가 막이 걷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의 무지함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놀라웠던 건 우리나라에 사진사(史)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에 몇 개의 대학에 사진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의 사진사는 가르칠지언정 우리나라 사진사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가르친 바가 없으며 정교수 조차 둔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선생이 강사로 후학들을 가리치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하니, 그가 가는 길이 얼마나 외로운 길인지 미루어 짐작이 갔다.

이경민 선생은 그렇게 우리나라에 귀중한 자료가 될만한 사진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고, 고증하는 일을 한다. 그분은 정말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시는 사람 같았다. 그 증거가 사진아카이브 연구소를 개설하고 뜻있는 몇몇과 이 일을 해오다 지금은 다 자기 살 길 찾아 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일을 놓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건, 우리나라 사진의 역사는 일제시대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데, 당시 일본이 사진으로 우리나라를 얼마나 오도된 의식을 퍼뜨렸는지를 하는 것이다. 특히 기생의 사진을 앞세워 우리나리가 일본의 기생하는 나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지 또는 긴 담뱃대에서 당시의 조선 사람을 나태의 상징으로 만든 것, 또는 저고리 바깥으로 가슴을 내놓고 다녔던 것이 남아선호 사상의 이미지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개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건 정말 새롭게 안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한가지 드는 의문은, 해방이 된지가 몇년인데 이런 역사적 왜곡을 아직도 방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옛 조선 총독부 건물이 철거된지가 몇 년인데 말이다. 우린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 치우면 역사에 지은 죄를 씼을 수 있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우리나라의 학문분야의 발달을 해방 이후로 잡고 있기 때문에 일제 시대는 그야말로 암흑의 시대로 치부해 버려 역사적 고증이 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거기다 학제간의 교류는 말할 것도 없고. 이래서야 학문의 내일을 기약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그날 선생은 여러가지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렇게 단아한 선비 같으신 분이 열정을 가지고 한길을 갈수 있는지 그의 열정에 놀라고, 박식함에 놀라며 그리고 또 하나의 결정타는 시대를 초월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를테면 그도 한땐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전도가 유망한 길을 걸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길을 버리고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거기엔 선생의 낙천적인 천성도 한몫 했으리라. 그가 자신을 일컫어 말하기를, 자신은  무슨 일이든지 주어진 일은 무던히 해내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 그가 사진을 택하기 보단 사진에게 선택 당해버린 그의 운명과도 연관이 있으리라. 그는 참으로 소박하고 정이 많은 인상이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도 그 자리가 전혀 어색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정말 언젠가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

나는 개인적인 용무 때문에 그 자리를 좀 일찍 나와야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오늘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으면 어떻게할뻔했나 정말 뿌듯함이 있었다. 모쪼록 그가 하는 일에 많은 발전과 행운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또한 그 귀한 만남을 갖게해 준 리더스 가이드와 웅진 출판에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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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2-21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 관심은 가는데 어떨까 싶어 지켜보고 있는 중인데 스텔라님 글 보니까 혹하네요. ^^

stella.K 2008-12-22 10:48   좋아요 0 | URL
음, 솔직히 말하면 보기에 따라선 약간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좀 학술서적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읽으면서 내가 정말 사진을 편협하게 보고 있었구나 반성도 하게
되더라구요.^^

L.SHIN 2008-12-22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에 끌려서 들어와 읽었지만, 역시 내용도 좋습니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그리고 거기에 신념을 가지고 앞을 향하는 자는 누구든지 멋있습니다.

stella.K 2008-12-22 10:50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사실 학자라서 좀 재미없을 것 같다는 선입관도 없지 않았지만
실제로 만나 보니까 나름 좋으신 분 같더라구요. 어쩌면 엘신님도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하하.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2009-01-06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