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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2008년 무자년 새해 나의 첫번째 완독 도서는 바로 이 책이다. 더 정확히 나는 이 책을 작년 12월 31일에 붙들었다. 무슨 심술인지 나는 항상 마지막과 처음에 항거하고 싶어진다. 변함없이 오늘의 해는 지고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떠오를텐데 그것을 나눈다는 게 왠지 시간의 편에선 억울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내일이면 내가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게 싫어서인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그러는 것은 그것을 애써 무마하려는 감출 수 없는 나의 조그만 몸부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어 온 것은 아니지만,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후로 꾸준히 책을 읽어왔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독후감이나 리뷰는 쓰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본격적으로 쓰게 된 것은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기 시작하고도 한참 후였다. 도대체 내가 읽은 책에 대해 말한다면 뭘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도 써 버릇하니 쓰겠다. 리뷰를 쓰는 것에 왕도가 있는 것도 아닐텐데 매주 잘 쓴 리뷰를 뽑고 그 리뷰어에게 얼마의 시상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왕도는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어떤 리뷰어는 상금은 물론 댓글도 많이 달리더구만, 지금도 그렇지만 초기에 내가 쓴 리뷰에 대해선 무플이 더 많으니 그때 받은 충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주목 받는 리뷰를 쓸 수 있는 것인가? 고민이 되기도 했다.(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내가 리뷰를 쓴지 이제 5년차로 들어 가고 여전히 댓글 없는 고독한 리뷰를 쓴다만, 그동안 왕도처럼 느껴졌던 우수 리뷰에도 턱걸이로 들어 보기도 했으니 더 이상 원은 없다.(얼마 전 난 세번째로 대박을 건졌다.) 어차피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라고 자위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정혜윤의 <침대와 책>은 이런 나의 자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저자의 빼어난 글솜씨를 자랑한다. 일종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수필 형식의 독서 체험기를 보여주고 있다. 나이도 나 보다는 훨씬 젊은 것 같은데 나 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고 글은 훨씬 잘 쓴다. 문장 인용도 자유로우며 상당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는 한다지만 확실히 이렇게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럽지 않을 수가 없고 셈도 난다.
이 사람은 그 나이에 이런 독서기도 써 내는구만 나는 도대체 뭐하는 거냐? 자책이 절로 나온다. 과연 나도 평생 이런 글을 써 볼 수나 있을까? 책을 읽을 때는 나름 재미있고 관심있게 읽었다고는 하지만 막상 덮고나면 단 한 문장도 기억해 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좋은 문장이 있으면 메모도 하고, 또 그것이 책을 사랑하는 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난 도무지 이것에 익숙치 않다. 이 책의 인용구를 보면 저자는 어지간히 밑줄긋기도 하고 메모도 부지런히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글이 나올 수가 있겠는가? 어쩌면 인용을 잘 하는 것도 리뷰를 잘 쓰는 방법중의 하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지. 하지만 난 여전히 인용구 하나 없는 리뷰를 쓰고 있다.ㅜ.ㅜ
사람들은 책의 제목에서 관능적인 뭔가를 느끼고 멋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닥 와 닿지는 않았다. 실제로 내 방엔 침대가 없고, 취침을 위해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나는 대체로 책을 읽다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침대에서 관능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믿거나 말거나).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란 부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내용이 관능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건, 이 책은 누가 보아도 잘 쓴 책이다. 하지만 독서체험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저자가 유려한 인용구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지 않았거나 생각하지 못한 것에 저자의 생각을 쫓으려니 조금은 버겁고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만일 나도 수필 형식을 빌어 독서기를 쓴다면 어떻게 쓸까? 한번 생각해 보게도 된다. 물론 읽은 건 많은데 기억나는 것은 없으니 쓸 확률은 극히 미미하긴 하지만.(헉, 그렇게 생각하니 좀 억울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