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외국 영화 보다 우리영화를 더 많이 보기 시작했다. 외화를 보려면 눈이 좋던가 외국어 실력이 좋던가 해야 하는데 난 이 두 가지가 다 결격사유다. 아마도 가면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 같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우리영화도 제법 잘 만든다. 결국 아주 좋은 작품이 아니면 이제 외국영화 볼 일은 별로 없지 싶다.             


                   


몇년 전에 일본 원작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제목은 원작소설 그대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를 그대로 썼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판에선 그냥 '조제'만 쓴다. 조제는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주인공 이름이란다. 일본판은 본지가 오래되서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조제를 위해 버려진 헌책들을 모아 가져다 준 것 외엔. 어쨌든 그래서일까? 한국판이 훨씬 좋다는 느낌이다. 물론 일본판은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맛이 있지만 영화의 미장센이나 음악이 한국판이 훨씬 더 좋다. 잔잔하고 차분한 진행도 좋고. 남주혁의 소년 같은 연기도 좋긴 하지만 한지민의 속삭이는듯한 연기가 더 좋다. 

하지만 이 영화의 숨은 주역은 따로 있다 싶다. 그건 할머니 역을 맡은 허진이란 배우다. 워낙 옛날 배우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7.80년에 주로 조연으로 나왔고 이후 한동안 활동을 중단하다 최근 다시 심심찮게 tv나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창 때 다소 이국적 외모로 나름 인기가 많았었다. 그땐 어려서 이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지 어떤지 잘 몰랐다. 요즘 다시 보니 연기를 정말로 잘하는 배우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래봐야 노인 역이겠지만 왜 진작 주목해서 보지 못했을까, 조금만 젊었다면 다양한 배역을 보여 줄 것 같은데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배역에 따른 역할 창조와 호흡이 좋은 배우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나이가 많아 몇씬 밖엔 나오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선 꼬장하면서도 억척스런 노인으로 나온다. 

초반엔 밥 먹는 장면이 유난히 많이 나온다. 그게 뭔가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알겠지만 조제와 할머니는 서로 모르는 사이로 유사가족이다. 거기에 영석이 끼어서 밥 먹다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같은 동명의 미국영화를 떠올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용은 전혀 다르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와, 이렇게 재수없고 비극적인 여자가 있을 수 있을까? 한숨이 절로 나온다. 7년 전 6살 난 아들을 잃어버렸다. 그 아들을 찾느라 남편은 안 다녀 본 곳이 없고, 여자는 남편을 대신하여 생계를 책임지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 남편도 아들을 찾으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다. 그것도 아이들의 장난 문자를 받고 가다가. 

하다못해 진짜 믿을 만한 제보를 받긴하는데 그 연락을 직접 받지 못하고 시동생을 통해 받은 것이라 남편의 사망보험금도 뜯긴다. 여기까지만 보면 좀 작위적이란 느낌도 든다. 

어쨌든 제보를 받고 낚시로 유명한 어느 한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 뭔가 범죄의 냄새와 왠지 아들이 여기 있을 것만 같은 강한 느낌을 받는데 주민들도 뭔가를 숨기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쯤되면 여자의 편은 하나도 없고 세상엔 악인만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정의로워야 할 경찰이 주민들을 온갖 매수하여 마을 전체를 좌지우지 한다. 그야말로 악의 끝판왕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고 나중에 이 경찰과 육탄전 끝에 겨우 아들을 만나는가 싶은데 이번엔 파도가 아들을 앗아간다. (이것 역시도 안타깝긴 하지만 작위적이란 느낌이 든다. 영화는 여자를 어디까지 불행하게 만들어야 만족할지 모르르겠다.) 남자와의 육탄전은 볼만은 하지만 이영애 배우가 그런 역을 맡기엔 좀 안쓰럽다. 여리기도 하거니와 그만도 50줄 아닌가. 그런 액션씬은 좀 힘들지 않았을까? 

아이를 잃은 부모의 삶이 어떨지 또한 유괴나 납치된 미아들은 어떤 삶을 살게될지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다.


내가 본 세 편의 영화 중 단연 최고의 영화다. 아니 아마도 올해 본 영화중 가장 최고의 영화는 아닐까 싶다. 내가 원래 영화 별점이 좀 짠 편인데 한마디로 별 다섯이 아깝지 않은 영화다. 처음엔 <<암살>>과 헷갈려서 안 보려고 했다. 근데 안 봤으면 큰 일 날뻔했다. 주인공이자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이 본의 아니게 김진우(공유)란 조선 밀정과 엮이면서 그 또한 밀정의 밀정이 되고만다는 얘기. 영화 전편에 깔리는 누가 진짜 밀정인가를 밝히는 두뇌게임도 볼만하다. 송강호 특유의 궁시렁 거리는 연기는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한다. 

다 좋긴한데, 실제로 공유나 한지민이 의열단 단원이되면 안 된다 싶다. 영화니까 봐주지 그들의 미모로 일부러 표적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밀정은 평범하거나 그 보다 더 못 생겨서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  의열단 단장의 정채산 역을 이병헌이 특별출연하여 나오는데 별로 존재감이 없다. 송강호와 공유 사이에서 함께 술통을 비우는 역할 밖엔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의외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만큼 이 영화는 을의 영화다. 

부연하자면, 가장 좋은 영화긴한데 뭔가 빠다 냄새가 난다. 제작사의 입김일까? 암튼 아직 안 봤다면 강추다.


 이 책이 모티브가 됐다는데 급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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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29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읽었는데 큰 인상을 남기지 않아 다른 작품은 읽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강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더라고요.
저도 암살, 이란 영화가 떠올라서 밀정을 안 볼 뻔했는데 님의 추천작이니 볼게요. 넷플릭스에 있을 것 같네요. 저도 외국영화를 보려면 자막도 봐야 해서 피로가 느껴지는데 넷플에서 보면 볼 만해요. 뒤로 가기가 있어 다시 보면 되고, 정지 버튼을 눌러 놓친 자막을 볼 수 있거든요.
송강호 주연의 작품은 다 봐도 좋을 듯합니다. 대스타가 출연 결정을 할 때엔 가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송강호 님 정도 되면 시나리오만 봐도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 안목이 뛰어날 것 같아서요.
대스타들은 시나리오 보고 출연 결정을 한다고 해요. 거절도 많이 한다는 거죠.^^

stella.K 2023-11-29 14:19   좋아요 1 | URL
사강은 아주 오래 전 10대 말인가? 20대 때 몇권 읽은 것 같아요.
나쁘진 않았는데 뭔가 소녀감성이었던 것 같아 아주 좋아했던 건 아니었어요.
또 그 시절 왠지 소설이 시큰둥해서 더 더욱 별로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
지금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암살-밀정. 저만 착각한 게 아니군요. ㅎ
게다가 다룬 시대도 비슷해서 더 헷갈렸을 거예요.
송강호는 약간 찌그러진 역할도 잘 소화해 내더군요. 그래야 그 특유의
궁시렁이 나올테니.ㅋ
즐감하세요.^^

2023-11-29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29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12-01 0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를 거의 안 봐서... 한지민은 <조제>와 <밀정>에 나왔군요 한지민은 이름 알고 있었네요 텔레비전 드라마도 거의 안 보니 이름 인터넷 같은 데서 봐도 얼굴 잘 몰라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네요 stella.K 님이 한국 영화 좋아하시니 좋은 한국 영화 많이 만들면 좋을 텐데... 코로나 때문에 영화 만드는 게 어려워졌다는 말도 있더군요 영화관에 가는 사람이 줄어서... 영화가 아주 없어지지는 않겠지요


희선

stella.K 2023-12-01 20:09   좋아요 0 | URL
TV나 영화를 거의 안 보시는군요.
저는 자꾸 그런 것만 보게되서 큰 일 났습니다.
아무래도 점점 눈도 안 좋아지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짧아지니 자꾸 TV를 보게되는 거 같습니다.
코로나 여파가 오래 갈 모양인가 봅니다.
뭐 그런 말도 있지만 또 나름 자구책을 모색하겠죠.
이번에 한꺼번에 몰아서 보긴했는데 그래도 우리 영화
확실히 좋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못해도 기본을 할 겁니다.^^

yamoo 2023-12-02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제 밀정 나를 찾아줘(미국판)는 봤습니다. 조제는 영화보고 후유증이 좀 갔어요. 잘 만든 영화지만 좀 우울한 영화였다는 생각...

나를 찾아줘(미국판)와 밀정은 재밌게 봤네요. 음...한국판은 내용이 전혀 다른가 봅니다. 넷플에 올라오면 봐야겠으요~~

며칠 전 서울의 봄 봤는데 대박 재밌었습니다! 뻔히 다 아는 내용임에도 연출의 승리랄까...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순식각에 가더군요..ㅎㅎ 스텔라님에게도 강츄합니당~~~

stella.K 2023-12-02 11:32   좋아요 0 | URL
오, 글치않아도 서울의 봄 평이 좋더라구요. 저도 함 봐야겠네요. 고맙습니다.^^
근데 나를 찾아줘 한국판은 전혀 다를 내용 맞아요. 하지만 야무님께 추천하기엔 조심스럽네요. 보시겠다면 크게 기대 안하시고 보시면 볼만하실 수도 있구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