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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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오래전에 사놓고 이제야 완독 했다. 

이 책이 1965년에 초판이 나오고 잊고 있다가 50년 후에 다시 재조명을 받았다지. 그러고 보니 책에도 팔자라는 게 있나 보다. 어떤 책은 거의 나오자마자 주목을 받고 사자마자 읽게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아무리 명작이어도 한쪽으로 쭈그려 있다 늦게 읽게 되는 책이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착한 서사' 장르다. 최근 대표적 작품으로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남아>>가 그렇고, 문학은 아니지만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나(읽으면서 이 영화가 유난히 많이 생각났다) <<8월의 고래>>가 그렇다. 독자를 잡아 끄는 강렬한 무엇은 없지만 잔잔하게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이 책을 어느 만치 읽다가 첫 부분을 다시 읽었다. 내용은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 스토너의 출생 연도와 생몰연도, 농과대학을 다니다 문학을 알고 문학에 평생 바치고 가르치다 죽었다는 정도가 전부다. 하다못해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그가 평생 문학과 대학에 기여한 공로를 기억해 중세 문헌을 대학에 기증하겠지만, 후대의 학생들은 그가 누군지 이름은 떠올려 보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호기심을 갖고 알아보려고 하지 않을 거라며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을 하고 있다. 그만큼 그는 쉽게 잊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나는 그 부분을 다시 읽고서야 비로소 이 '착한 서사'를 떠올렸던 것이다. (멍청한 건가? ㅋ)

 

스토너가 우리 보다 조금 잘난 점이 있다면 교수였다는 정도가 되려나? 예나 지금이나 교수는 아무나 되는 건 아닐테니. 하지만 그렇다고 교수 세계에서 뛰어난 업적이나 능력을 인정 받았냐면 그렇지는 않다. 한때 인기 교수가 될 뻔했고 가르치는 걸 좋아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욕심이 없다. 이내 그는 평범한 교수로 남는다. 그런 것을 보면 내가 아는 누구와도 흡사해 보인다. 또 누구든 그런 사람 한 사람씩은 알고 있지 않나?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아내 이디스와 평생 맞지 않았고, 그나마 딸이라도 가까이 두고 돌보고 싶어 했지만 아내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뿐인가? 그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결국 헤어지고 만다. 점잖은 교수 체면에 내연 관계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뿐인가? 제자 하나 잘못 받아들여 곤욕을 치르고 학장과는 평생 앙숙으로 지낸다. 

 

그런 점에서 스토너의 삶은 우리네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세상 누구나의 바람은 좋은 직장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토끼 같은 자식 낳고 평화롭게 사는 거 아닌가. 지극히 평범한 거 같아도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좋은 직장은 다 남의 차지고 지금 다니는 직장도 언제 잘릴지 모르고 다니고 있다, 제대로 갖춘 것도 없어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설혹 결혼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랑도 이루기보다 못 이루고 사는 인류가 더 많다. 누구는 또 이 사실을 얼마나 조롱하며 주눅 들게 만들던가. 더 비참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살아야 하고 살아내야 한다. 

 

누구는 그랬다. 소설은 실패담을 기록하는 거라고. 그것에 동의한다. 우리는 그 실패담을 읽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이러면 안 된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스토너는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아 결국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가 학문적 업적도 뛰어나고, 사랑과 결혼에서도 완벽했다면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냥 부러워하고 존경할 수는 있어도 사랑할 수 없고 그 인생에 공감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별로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나중엔 충분히 긍정해 주고 손뼉 쳐주게 만든다. 스토너를 다시 보라. 그를 앞에서 보면 평범한데 뒤에서 보면 또 그다지 나쁘지만도 않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공부했고 가르쳤으며, 악간의 균열이 없지 않았지만 가정을 끝까지 지켰고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다. 사랑? 앞서도 얘기했지만 사랑은 이루는 사람 보다 못 이룬 사람이 더 많다. 그런 걸 생각하면 짧지만 불꽃같은 사랑도 해 봤다. 긴 사랑을 했다면 완전 나쁜 사람이고 이렇게 주인공으로도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생은 이렇게 삶 쪽에서 보면 형편없어 보이는 거 같아도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나쁘지마는 않다. 누군가가 나를 조롱하고 훼방 놓는 것 같아도 죽음 앞에서는 그것이 하나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어떤 한 사람의 생을 삶의 관점과 죽음의 관점 양면에서  보여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이 작품도 착한 서사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는다고 했"던 그 말을 스토너는 여지없이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꿈으로 가득 찬 설레던 삶을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노인들의 삶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에겐 꿈을 가지며 살라고 해 놓고 당신은 정작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나는 젊고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분들의 삶을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건 얼마나 버릇없는 일이 될까. 

 

그런데 난 아직 노년에 이르진 않았지만 이쯤 살아보니 (꿈은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이루면 되는 것이고) 비록 노인은 많은 꿈을 이루며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 나름의 삶의 의미와 존재 있다는 걸 조금씩 확인하며 살고 있다. 거기 그렇게 살아서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똑같이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누구에겐 많은 위로와 힘이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 건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누구는 또 그러지 않던가, 오늘이라는 당신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사람에겐 그렇게도 살고 싶어 했던 날이라고. 이 책은 당신이 위대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못해도 있는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좋다고 말하는 평범한 위대한 책이다.  

 

착한 서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문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그래서도 이 책은 주목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근데 번역은 좀 올드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오체나 하게체는 이제 좀 지양해야 할 문체 아닌가. 요즘도 그런 문체를 쓰는 번역가가 있나?)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 봐야 할 것 같고,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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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08-02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얘기하시는 노년의 삶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잘 읽고 갑니다.

stella.K 2023-08-02 11:22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그건 울엄마를 보니 알겠더군요. 또 노년이 주는 편안함, 안정감 뭐 그런 것도 있잖아요. 여전히 불안하고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런 것들을 구축해 나가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니르바나 2023-08-02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가요 명곡이 있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 모르는 길 위에 인생.
한바탕 꿈같은 세상이란 묘사가 적당한 것이 어릴 때 꿈을 꾼게 마치 엊그제 일 같거든요.
죽고 못살던 사랑도, 잘났다고 나대던 짓도 다 한때 일입니다.
스토너의 삶 같습니다.
더운 날씨에 몸, 마음 조심하세요. 스텔라님^^

stella.K 2023-08-03 12:27   좋아요 1 | URL
아, 더위에 니르바나님도 잘 지내시나요? 저는 근근히 잘 버티고 있습니다. ㅎ
그 노래 알죠. 누구는 소풍으로도 표현하던데 전 그 표현이 좋다 싶어요. 자기 할 일 다하고 가정만 잘 이끌어가도 칭찬받을만한 인생이죠. 뭘 더 바라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3-08-03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토너 완독과 리뷰 완성을 축하드려요.
저는 이 책의 리뷰를 쓰려고 벼르다가 쓰고 나면 진이 빠질 것 같아 오늘 100자평으로 올렸어요.ㅋ
읽다 보면 주인공이 좋아지는 소설이 있는데 스토너가 제겐 그랬어요. 이것도 작가의 능력일 듯.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stella.K 2023-08-03 17:11   좋아요 1 | URL
축하는요, 쑥스럽게ᆢㅋㅋ 그래도 언니 덕분에 읽을 수 있었어요.
스토너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예요. 전 일케 일희일비하지않고 과묵하게 자기할 일 하는 사람이 좋더군요. 바람 피운건 좀 거시기하긴 하지만. ㅋㅋ

2023-08-06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6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7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