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길이다 - 루쉰 아포리즘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이철수 그림 / 예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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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의 글은 뜨겁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루쉰을 문학가의 한 사람으로 기억하기 보다 혁명가로 더 많이 기억할 테니까. 아, 사상가라고 해야 옳은 것인가? 하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혁명가로 더 각인되어 있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것은 20대 시절에 <청년들이여, 나를 딛고 오르거라>라는 책을 멋모르고 펼쳤다가, 그 문장의 뜨거움을 알고 그렇게 각인되어 버리고만 것 같다. 하기야, 혁명가나 사상가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리영희 씨가 생각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이 글을 쓰기 전, 어떤 이의 리뷰를 보니, 리영희 씨는 루쉰을 존경하다 못해 사랑한다고까지 했다고 씌여있다. 꼭 그렇지 않더라 누구든 루쉰의 책을 읽으면 그를 존경 내지는 말마따나 사랑하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루쉰을 그토록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며 존경의 대상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것일까? 사실 그것을 말하기는 어찌보면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무슨 루쉰 연구가도 아니고. 그래도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건, 그의 글이 뜨겁기 때문이리라.

그는 말했다. ..."피로 쓴 문장은 없으리라. 글은 어차피 먹으로 쓴다. 피로 쓴 것은 핏자국일 뿐이다. 핏자국은 물론 글보다 격정적이고, 직접적이며 분명하다. 하지만 쉽게 변색되고 지워지기 쉽다. 문학의 힘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157p)고. 피는 곧 변색되고 지워지겠지만, 먹으로 쓴 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관통한다.

그는 한번도 자신의 조국 중국과 중국인을 긍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이란 이름이 사라질까 두려워하지만, 나는 중국인들이 '세계인' 속에서 밀려날까 두렵다."(210p)고 했다. 그러면서 당대의 중국을 통렬히 비판했다.

루쉰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오늘 날에 그가 살아서 작금의 현실을 비판하는 육성을 듣는 것 같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그는 중국인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것이 오늘 날의 세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 것인지, 그의 감식안에 경의를 표할뿐이다.

지금은 현실을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만 표피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듣기 좋은 아첨만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그것에 대해 루쉰은 말했다. "...자신을 사육한 주인에게 버림받고 굶주려서 들개가 되더라도 부자를 만나면 여전히 꼬리를 치며,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짖어댄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키운 주인이 누구인지 점점 더 모르게 될 뿐이다.(76p)고 했다. 통렬하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나는 오늘 날의 지식인이 무슨 말을 해도 그게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전문 분야에 관해서만 말할 뿐이지, 오늘의 현실을 통찰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설혹 그런다손 치더라도 색깔론으로 덧씌워버리기 때문에 바른 말하기도 슂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오늘 날의 지식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으며, 양심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루쉰은 작가는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꼼꼼하게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하라고 집어 주기까지 한다. 얼마나 고마운 어른인가? 오늘 날의 선배 작가들이 글쓰기의 노하우를 가르칠 땐 기술을 전수해 줄 뿐, 작가의 가슴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부턴가 글 한 줄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에 회의적이었다. 그냥 쓰고 싶어 쓸뿐이다. 하지만 작가도 지식인이다. 지식인이라면 양심이 있어야 하고, 불타는 뜨거운 심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린 루쉰 같은 사람을 더욱 그리워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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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공주 2007-07-20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stella09님.애완동물 시리즈 무서워서 못 읽었어요.뭔가 울 수 밖에 없는 글일 것 같아서요.

stella.K 2007-07-21 11:16   좋아요 0 | URL
ㅎㅎ 무섭다는 말 처음 듣겠네요. 뭐 물론 제 글이 도넛공주님을 울게 만들 수도 있지요.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어요. 잔잔한 웃음도 있답니다. 흐흐

잉크냄새 2007-07-2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에 소개된 그의 모든 글에 잘 벼려진 칼날이 숨겨져 있군요. 피가 아니라 먹으로 쓰여져야 한다는 글, 오래 남겠네요.

stella.K 2007-07-21 11: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전작 읽기에 도전하고 싶기도 해요.^^

2007-07-21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7-21 11:19   좋아요 0 | URL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