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과 휴일 두 편의 영화를 연이어 보았다. 그런데 어째 둘이 뭔가 공통점이 느껴진다. 우선 둘 다 실화를 바탕으로한 전기 영화라는 것. 또 주인공이 다 남자면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


먼저 <뮤직위딘>은 리차드 피멘틀의삶을 다뤘다. 이 사람이 누구냐면 미국에 장애인 권익을 위해 공헌한 사람이다. 


뭐 새삼스럽게 그런 선진국의 장애인 권익인가 싶겠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베트남 참전 전후를 다뤘다는 점에서 그 시절 미국의 장애인 권익은 바닥이었나 보다. 


사실 리차드 피멘틀 자체가 재수가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는 주기적으로 자살 소동을 벌이는 우울증 환자다. 즉 그는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후 현실 도피처럼 베트남 전쟁에 자원한다. 작전 하나를 성공해 포상으로 모처럼 배터지게 성찬을 즐겨보겠다고 음식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폭격을 맞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지만 청력을 잃어버린다. 


결국 본국으로 송환된 후 그는 움직이는 입술 모양에서 사람의 말을 읽어내는 능력을 습득하게 된다. 대학에 다시 지원해 보지만 청력이 문제가 되어 그곳 입학 관계자와 대판 싸운다. 이쯤되면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는 재수 옴붙은 사람 맞지 않나. 그런데 그 대학 식당인지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우연히 천재지만 뇌성마비 환자인 아트를 만난다. 그때부터 그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둘은 단짝이 되어 세상을 오히려 비웃으며 괴짜의 극대화를 이룬다. 


그때만 해도 장애인은 '어글리법'에 의해 일반인으로 하여금 혐오를 조장한다고 해서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없다.     


      

 

이 장면은 아트의 생일을 맞아 리차드가 팬케이크 맛집에 데려가지만 점원에 의해 제제 받는 장면이다. 바로 여기서 리처드는 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싸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게된다. 사실 그의 어렸을 때 꿈은 연설하는 것을 좋아해 수퍼히어로 되는 거였다. 그땐 너무 어려서일까 정치가가 아니라 수퍼히어로가 꿈이란다. 그런 것을 보면 약간의 허세가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부모를 이기는 것이다.


무슨 얘기냐면, 주기적으로 자살 소동극을 벌이는 그의 엄마는 결국 요양원으로 간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오랜만에 어머니를 만나러 요양원에 오지만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아들의 기쁨에 함께하지 못하고 비참한 낮빛을 보인다. 그 장면이 참 짠하다. 부모의 지원은 고사하고 자식의 기쁨에 잠시도 함께해 주지 못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만하면 자기연민에 빠져 신세 한탄을 할 법도한데 그는 그러지 않는다.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이고 자신은 자신의 인생이다. 난 그런 그가 참 좋았다. 


이 영화에 흐르는 음악들이 좋고 위트있는 진행이 좋다.           

 

 이 영화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인공인 1993년 영화다. 나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그를 처음 봤는데 공교롭게도 이것 역시 1993년 영화다. 한 해에 장편영화를 두 번씩이나 찍다니. 좀 놀랐다. 두 영화 역시 소년티를 벗지 못했다. 하지만 1974년 생인 디카프리오의 영화 인생은 이 보다 조금 더 오래다. 1989년 <뉴 래시>란 영화에 단역으로 나오면서 영화계에 노크한다.     


엄밀히 말하면 <길버트 그레이프>는 조니 뎁의 영화다. 디카프리오는 조연으로 나왔다. 그래서도 한 해에 두 작품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선 주인공으로 꽤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사실 영화 <디스 보이스 라이프>는 우리시대의 헤밍웨이라 불리는 토비어스 울프의 자서전 <이 소년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왜 이렇게 영화에 대한 정보가 빈약한가 했더니 책이 영화 개봉보다 한참 후에 번역되어 나왔다. 2019년에야 비로소. 그래서 개봉 당시 영화가 얼마나 유명한 작가의 삶을 다루고 있는지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건 좀 유감이다.


앞서 소개한 <뮤직위딘>와 배경이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단지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영화는 토비어스 울프의 어머니를 통해 당시 여성의 위상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를 동시에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 이를테면 토비는 다섯 살이던 때에 부모의 이혼 후 형은 아버지와 자신은 어머니와 살게 된다. 여자가 이혼하고 아들을 혼자 키우는 게 쉽지 않으니 적당한 홀아비를 만나 결혼하는게 인생 최대의 목표다. 어머니는 그 목표대로 홀아비 드와이트(로버트 드 니로 분)를 만나 결혼을 하지만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다. 자신과 아들의 안위를 위해 참고 산다. 


또한 결혼을 앞두고 사격 대회에서 여자에겐 웬만해선 출전 자격을 주지 않는데 외모를 보고 출전 자격을 준다. 근데 뜻밖에도 최고 점수를 받는다. 하지만 당시의 가부장적 분위기 때문에 맘놓고 기뻐하지도 못한다. 드와이트는 사람들 앞에선 기뻐하며 자신의 아내를 한껏 추켜주지만 뒤에선 화를 결코 감추지 않는 이중인격의 찌질이다.    


    


어머니의 자유분방한 기질을 이어 받았을까. 토비는 점점 반항아에 불량아로 자란다. 이 불량스러운 소년의 연기를 10대의 마지막 시절을 보내고 있던 디카프리오가 정말 자유분방하게 연기했다. 무엇보다 이런 아들을 가르치겠다고 폭력을 정당화했던 드와이트와 대립하고 갈등하는 사춘기 소년의 복잡한 내면을 잘 연기했다. 나중에 의붓 아버지와 격렬한 격투를 벌이게 되는데 나는 토비에게서 아버지를 이겨야 했던 오이디푸스의 신화가 겹쳐 보였다. 그러면서 서양의 개인주의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비해 동양 특히 한국은 인연을 강조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인간의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가. 물론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겠지만 거기서 파생하는 문제점과 부조리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부모는 끊임없이 자녀의 삶을 지배하려고 하고, 마마 보이, 마마 걸을 양산한다. 자녀는 자녀대로 자신이 부모가 하자는대로 안한 게 뭐가 있냐며 결정적일 때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며 부모를 원망한다. 


그나마 다행인건 토비의 어머니가 그 싸움 끝에 남편을 버리고 아들과 함께 그 집을 나온다는 것. 그것은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독립하겠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 또는 배우자에게서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잘 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실제로 토비도 성공한 작가가 되지 않는가. 물론 한때 그 과정이 정당하지는 않았지만. 


앞의 영화 <뮤지위딘>과 이 영화가 다른 점이 있다면 리차드 피멘틀은 어머니의 사랑을 아예 받지 못하지만 토비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다는 정도. 하지만 모자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로 하고 헤어진다. 역시 미쿡 영화답다 싶다. 우리나라 영화 같으면 어땠을까.  


나는 이 두 영화를 보면서 자기 삶의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 그러니까 찌질하게 자기 삶의 패배를 부모에게 돌리지 말자.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요모양 요꼴이 됐다는 이 잘못된 자기연민은 좀 버릴 필요가 있다. 특히 금수저, 은수저 따져가면서 그것이 마치 당연한 양 부모 도움의 질과 양을 따지는 거 그만하자. 부모 역시도 자식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조정하고 지도하는 일도 그만해야 한다. 자기 인생 자기가 살 뿐이다.


영화에서 디카프리오의 머리 모양을 보는 것도 재미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머리를 흉내냈을까. 올백으로 넘기는 머리였다가 의붓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 우리나라 말로 소위 깍뚜기(스포츠) 머리를 했다. 즉 머리모양조차도 양아버지의 간섭을 받고 살았으니 그 인생이 얼마나 까깝했을까.  


두 영화 모두 볼만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2-01-19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드스쿨>을 가지고 있어서 토바이어스 울프가 반갑네요! <디스 보이스 라이프> 봐야겠어요. ‘어글리법‘이라니... 지금 시각으로보니 인종분리처럼 잔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stella.K 2022-01-19 21:41   좋아요 1 | URL
디스 보이스...는 지난번 프레이야님 글 보고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알고 봤더니 전에도 올레티비 영화목록에서 익히 봤더라구요. 포스터가 디카프리오일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제가 무려 이렇습니다.ㅋㅋ
이건 영화와 책 서로 보완해서 봐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미쿡이 그랬던 적이 있다는게 새삼스럽긴 하더라구요.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을텐데 말입니다.

기억의집 2022-01-20 0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읽고 잤는데 저도 디스 보이 라이프, 봐야겠어요. 미국 애들은 남자애들 성장소설 영화가 많네요. 그 얘긴 십대 시절이 녹록치 않다는 말도 되겠죠. 하고 싶은 말을 어딘가 쏟아내고 싶어하는 맘이니깐요!!!

stella.K 2022-01-20 16:50   좋아요 1 | URL
오, 잘 됐네요. 리뷰 기대하겠슴다.ㅎ
기억님 말씀도 맞지만 또 그렇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미국의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우린 언감생심이죠. 가부장은 여자도 힘들게 했지만
아이들도 힘들게 했죠. 하지만 그게 문학이나 영화로 나온 작품이
얼마나 될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