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2는 시즌1에 비하면 확실히 좀 김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건 아무래도 작가에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작가가 원톱이다. 물론 서브 작가가 있겠지만 메인 작가가 그것도 의학드라마에서 한 명이 쓴다는 건 아무래도 그렇지 않나.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잘 쓴 대본을 연출이 말아 먹을 수는 있어도 못 쓴 대본을 연출이 살리는 법은 없다고. 드라마의 답은 사랑이라고 결국 슬의생 5인방도 사랑찾기로 귀결나는건가 싶기도 하다.


이 드라마가 성공적이지 못하는 것은 또 있다. 드라마가 너무 밝다. 드라마는 언제나 인간 내면을 보여줘야 하는데(그런 점에선 '낭만닥터 김사부'는 탁월했다) 거의 대부분 치료 가능한 케이스를 보여준다. 뭐 그만큼 현대 의학이 좋아지고 있으니 굳이 실패한 치료를 보여줄 필요도 없고, 밝은 명랑 드라마니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환자와 보호자들은 하나 같이 의사에게 배꼽인사를 한다. 마치 그들이 생명을 주관하는 신인 양. 게다가 슬의생 5인방뿐 아니라 등장하는 의사들은 하나 같이 친절하고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나라도 그런 의사를 만나면 배꼽인사를 할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라 그렇지 우리가 배꼽인사를 하고 받고하는 관계는 아니지 않나? 인터넷의 발달로 의사를 만나기 전 자신의 병을 조사하고 진찰 때 의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 안 하나 간을 보지 않나.


물론 나는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병원을 다녀보지 않아 의사들이 실제로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대체로 친절하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도 보인다. 일종의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환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혹시 치료 가능한 병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물론 너무 빼면 능력없는 의사로 보일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로 나를 보여줄 것이냐가 고민이긴 할 것 같다. 그러다 환자가 고비를 넘기고 회복하면 그들의 어깨는 한 없이 높아진다.    


또한 의사는 살인적인 업무량을 소화해 내기도 한다. 환자 보고, 학생 가르치고, 논문 쓰고 이것만으로도 머리가 빠질 것 같은데 율제병원은 사랑의 병원이긴 하다. 과부 사정 과부가 알고, 전장에서 피어나는 우정이나 사랑도 남다르긴 할 것이다. 원래 드라마에서 사랑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보여지고 있는데 여기선 5인방이니 사랑도 다섯 가지로 보여줘야 한다. 다섯 가지로 보여주려니 작가도 머리 깨나 아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들 5인방의 사랑을 평해 볼까 한다. 개인적으로 김준환과 익순과의 사랑은 가장 드라마에 익숙한 사랑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이들의 연기는 나름 좋다. 하지만 그냥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정도다. 


그런데 비해 안정원 커플은 개인적으론 가장 짜증 난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라면서 선생과 학생의 관계를 영원히 떨쳐버리지 못할 것만 같다. 조금 편하게 봐주면 오누이 관계 정도? 안정원이 한때는 사제가 되려는 마음도 품었으니 몸에 벤 경건의 모습도 있을 텐데 작가가 그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하긴 초반에 사제인 안정원의 형을 보면 이건 그냥 시트콤이다. 안정원의 상대(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누가 모범생 아니랄까 봐 안경 쓰고 눈만 껌벅거리는 이미지는 끝까지 개선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뭐 병원이란 특성도 있으니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면 대등한 관계를 보여줘야 하는데. 드라마를 생각한다면 사랑 타령은 접고 원래 마음 먹은 사제의 길로 가는 것으로 좋을 것 같은데 그럴 가능은 1도 없지? 이래서 결론을 알 것 같은 명랑 드라마가 힘들다고 하는가 보다. 이대로 언제고 시즌3을 한다면 난 안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장 이상적인 건 역시 익준과 송화 커플은 아닐까. 가랑비에 옷 젖듯 친구로 지내다 사랑으로 발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뜨겁게 연애하다 결혼하는 거 난 별로다. 결혼해서도 뜨거울 수는 없다. 자고로 결혼은 친구처럼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둘은 대학 때 사랑을 할뻔 하지 않았나. 그걸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에 이루게 됐으니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신뢰고 친밀함이다. 문제는 익준도 그렇고 송화도 그렇고 흔한 인간형은 아니라는 것.  


엉뚱한 건 양석형-추민아 커풀이다. 이미지에 맞게 곰 같은 사랑을 한다. 특히 11회를 보다 나도 모르게 심쿵한 장면이 있었다. 둘이 영화를 보고 거리를 걷는데 늘 질문이 많은 추민아가 역시 또 질문을 한다. 왜 고백하지 않냐고. 그러자 석형이 꼭 고백을 해야하는 거냐고 되묻는다. 그럼요 한다. 그러자 석형이 넌 내가 무섭지 않냐고 묻는다. 내가 너의 생각과 달리 나쁜 사람이면 어쩔거냐고. 그러자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팔자려니 하죠. 그리고 덧붙이기를, 걱정 없다고 자신이 좋은 사람이니까라고 말한다.


그걸 보는데 새삼 난 누구의 좋은 사람이 되본 적이 있던가 싶다. 누구든 사랑(또는 고백)의 흑역사가 있지 않을까. 즉 고백했다 까이는. 왜 사랑은 꼭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물론 성공하면 좋긴 하지만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시작조차 못하는 사랑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물론 실패하면 엄청 아프긴 하다. 하지만 빨리 실패하면 그만큼 빨리 일어나지 않을까. 난 그런 방법도 있다는 걸 누군가를 몹시 좋아만 하고 고백하지 못했던 그 젊은 날엔 생각도 못했다. 또한 아무리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해도 고백을 해 보는 것과 하지 않는 건 다르지 않을까. 그건 어쩌면 상대 보다는 내 자신을 위해 해 보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데미안>의 알 깨기 같은 거라고 하면 너무 뻔한 대답일까? ㅋ 


어쨌든 추민아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의외의 반전이고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사랑이어도 자기 자신 이상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설혹 그 자리에서 석형의 고백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얼마 후엔 마음을 추스르고 또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않을까.동시에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얼마나 자기 자신과 상대를 옥죄는 것인가. 모르긴 해도 우리가 익준 같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인기있는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유머 감각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유머 감각은 장착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물론 노력하면 되지만. 하지만 그게 실제 사람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얼마나 인간적이냐, 따뜻한 마음을 가졌느냐, 얼마나 예의 바른가 뭐 이런 거 아닌가. 그렇다면 석형이 같은 인간형을 만날 확률이 익준 보다는 좀 더 높지 않을까.         

       

분명 시즌2는 1에 비하면 쳐지긴 하지만 슬의생이 추구하는 중심 주제까지는 깎을 생각은 없다. 뭐 병원이 실제로 그렇게 인간적인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는 이상을 담기도 하지 않은가. 드라마 때문에 율제병원 같은 곳이 앞으로도 많아진다면 그도 좋은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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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1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즌 1은 잠깐 본것 같은데 시즌 2는 본적이 없네요 😅 확실히 시즌 1이 인기 있으면 시즌 2는 전편보다는 힘을 못받는거 같아요 ㅜㅜ
이런 이상(?)적인 병원 모습이 일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21-09-12 12:25   좋아요 1 | URL
형만한 아우가 없는 거죠.
저는 2를 그냥 습관성으로 봤습니다.
2를 본 건 이 작품이 처음이지 싶어요.
예전에 <보이스>를 재밌게 봐서 2를 한다기에
기대를 가지고 봤다 그냥 접었죠.
좋다고 하는데 전 좀 질리더라구요.
그런 장르를 즐기지 않는지라.ㅋ

페크pek0501 2021-09-12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는 시간 맞춰 보기가 어려워 주말연속극만 충실히 보게 됩니다.
의학드라마는 한석규 님이 나오는 것 있었잖아요. 그거 흥미롭게 봤었어요.
오늘 주말드라마인 KBS의 광자매는 괜찮았어요. 끝날 때가 되어서인지 잘 짜여져서 지루한 줄
몰랐어요. 어떤 날은 시시했거든요. 후속 드라마의 광고를 본 듯해요. 몇 회 안 남은 듯.
슬기로운~ 도 봐야겠군요. ^^

stella.K 2021-09-13 14:45   좋아요 1 | URL
ㅎㅎ 낭만닥터 김사부요. 맞죠? 조기다 썼는데...ㅋ
그건 시즌2도 좋았어요. 형만한 아우 없다는데 그 작품은 예외더군요.
사실 드라마는 시간도 많이 들죠. 영화는 앉은 자리에서후딱 보는데.
저는 주로 다시보기로 해서 제가 보고 싶을 때 보는데
그것도 시간이 꽤 들더군요. 덕분에 영화를 많이 못 봐요.
영화든 드라마든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 보는 것 같습니다.ㅠ

희선 2021-09-13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학드라마인데 여기 나오는 사람 다섯 사람 사랑 이야기도 다 있군요 그런 거 쓰려면 쉽지 않겠습니다 어느 한사람이 아닌 다섯 사람이 중심인물이기도 해서 다들 사랑도 하게 하는가 보네요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 간호사는 다 좋아요 실제 그런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 제가 잘 모르는 거고 어딘가에는 있을까요 병원에도 거의 안 가면서 의사, 간호사 말을 했군요


희선

stella.K 2021-09-13 14:52   좋아요 1 | URL
ㅎㅎ 건강하시군요. 병원에 안 가면 좋은거죠.
의사나 간호사는 기본적으로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적어도 제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어요.
그리고 아픈 사람 앞에서 불친절할 수는 없겠죠.

의학드라마는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더구나 5톱으로 그들 각자의 캐릭터와 사랑을 쓰려니 힘들겠죠.
이우정 작가 다음엔 누구하고 같이 쓰면 좋겠어요. 안쓰럽더군요.
전 이상하게 드라마든 영화든 감독이 누구냐 보다 작가를 먼저 보게
되더군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