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 갠적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 뭐냐구요?

바로 은행 채무를 상환한 날입니다. 

글쎄요... 얼마만일까요? 엄니는 20년만이라고 하는데 제가 볼 땐 그 보다 더 되지 않나 싶습니다. 

빚 권하는 사회라고 은행 대출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그게 꼭 나쁘기만 하겠습니까?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해서 사업을 하고 번창하면 가정 경제뿐 아니라 나라 경제에도 보탬이 될 테니 꼭 나쁘다고마는 할 수 없겠죠.

우리도 그러려고 대출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더 정확히는 울오빠가 그렇게 한 거죠. 

하지만 오빠는 8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빚은 오롯이 살아있는 가족의 몫이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론 채무자는 오빠에서 엄마로 넘어 갔죠. 

뭐 당장 거지가 되어 길바닥에 나앉은 건 아니고 이자만 꼬박꼬박 내면 사는대는 그렇게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침 어찌된 일인지 오빠가 세상을 떠나자 엄마 앞으로 유족 연금이라는 게 나와서 이자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죠.

근데 작년 여름 대출 연장하러 갔을 때 우리를 응대했던 은행 직원이 이번이 마지막 연장이라며 내년부턴 원금 상환을 조금씩이라도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크게 부담 가질 필요는 없고 방법은 그때 가서 알려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걱정이 안 된 건 아니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말대로 그땐 또 그때의 방법이 있겠지 애써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무슨 말 끝에 엄마가 누가 엿듣기라도 하듯 저에게 낮고 작은 소리로 은행 돈 갚을 거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노인네가 무슨 돈이 있어 그걸 갚겠다는 건지 좀 놀랐습니다. 그러니까 엄마는 오랜 세월을 두고 동생이 주는 생활비에서 돈을 조금씩 떼어 모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땐 엄마가 사치하거나 낭비가 심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구두쇠처럼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언제 그 돈을 모았다는 건지 미스터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울오빠가 나쁜 놈이긴 합니다.

엄마 명의로된 집을 담보로 인생의 거의 반을 은행 대출로 살고 제대로 갚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부모 먼저 세상을 떠난 것도 부족해 엄마를 채무자로 만들고 하늘 나라에서 편한가.전 살아오면서 은행 대출 할 때마다 오빠한테 이를 갈았습니다. 죽어서는 대출 연장하러 1년에 한 번씩 은행갈 때도 원망스러웠고. 물론 이미 죽고 없는 사람 원망해 뭐하겠습니까. 그래도 그때 엄마라도 오빠 편을 들지 않았다면 오빠를 덜 미워했을지도 모르죠.

그 돈을 모으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은행문을 나서면서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우리 모녀는 하늘을 날 것만 같았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을 가면서 엄마가 그러더군요. 처음 그 돈을 모으는데 과연 다 모을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고. 그런데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막내 아들내미 때문에 모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제 동생은 엄마에겐 위로의 아들임에 틀림없습니다. 평생 4남매를 낳아 키우셨지만 엄마에겐 이 아들을 제외하곤 모두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제 동생이 엄마한테 살갑고 효도하는 자식이라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엄마에겐 그늘 정도는 되어주는 자식이니 나름 위로는 되죠.

저는 말입니다, 이담에 죽어 하늘 나라 가도 오빠는 찾지 않을 겁니다.

살아서도 정없는 오누이지간이었는데 하늘 나라에서까지도 그 인연을 이어 갈 필요가 있나 싶네요. 그냥 하늘 나라 어디쯤에서 잘 살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우리 집 해방의 날입니다. 이 해방감이 얼마를 가겠습니까만 오늘만큼은 마음껏 즐겨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도 모은행에선 돈 꿔 줄게 빚지고 살라고 문자가 오네요. 당분간은 그럴 생각 1도 없는데.ㅋ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니르바나 2021-07-06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축하합니다.^^

리뷰 채택되어 축하 받는 것이랑 비교할 수 없는 엄청 기쁜 날이었네요.
이자는 밤에도 자지 않고 늘어난다고 하잖습니까.
빚 무서운 줄 모르면 평생 가난하게 살게 마련입니다.
정직하게 분수 지키며 사는 스텔라님이 부자입니다.

stella.K 2021-07-07 14:1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글을 책과 교묘하게 연결시켜
이달의 페이퍼가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아니어도 좋더군요.
은행 가기 전날은 약간 설레어었고 어제는 정말 다리 쪽 뻤고 잤습니다.
저나 울엄니는 좀 보수적이어서 그런진 몰라도
빚내서 좋은 집에 살기 보다 작더라도 빚없이 사는 게 더 좋다는주의입니다.^^

syo 2021-07-07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대단하시다. 고생 많으셨겠어요. 전 아버지 돌아가실 때 상속포기하고 모든 걸 다 털어버렸는데.... 애증의 아버지여....

stella.K 2021-07-07 18:43   좋아요 1 | URL
제가 뭐 한 일 있나요? 울엄마가 대단하죠.
손 큰 사람에겐 별 것 아닐지 몰라도 평생 살림만 해 온
분으로선 결코 작지않은 액수였죠. 그걸 말없이 모아 오셨다는 게
저도 참 마음이 찡했습니다.
어제는 유난히 더 오빠가 원망스럽더군요.
뭐 객관적으로 보면 남에게 해 안 끼지고 성실하게
살아오긴 했지만 그때문에 본의 아니게 가족들에겐 좀 피해를 준 사람이죠.
불쌍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냥 그렇게만도 봐 줄 수 없는 내면에
거시기한 게 있어요.ㅋ
에고, 근데 스요님도 나름 어려운 시절을 보냈나 보군요.
나중에 살면서 이렇게 저렇게 웃는 날이 있을 거예요.
축하 고마워요.^^

scott 2021-07-08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정말 정말 대단, 대단
맘껏오빠분 원망 하시고
어머님은 꼭 안아주세요
스텔라 케이님 오늘 부터 다리 쭈욱 !뻗으시고
앞으로 매일 매일 웃는날 ,
어머님과 건강하게 화목하게 ( •͈ᴗ•͈)◞

stella.K 2021-07-08 18:13   좋아요 1 | URL
고맙, 고맙.ㅎㅎ
그래야죠.
참, 이달의 거시기 2관왕 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