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던 하루키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지금까지 드문드문 읽어도 몇 권 읽었다. 하루키 빠도 아니면서 읽게 되는 걸 보면 정말 하루키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하긴 그의 책은 제법 많고 명성도 있으니 아무래도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다. 


본격 에세이를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 하루키가 인기를 끌면서 하루키 문체 또한 주목을 받았었다. 정말 누구라도 하루키를 따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한다. 결국 이것 때문에 그의 오리지널리티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를 두고도 장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가 보다. 누구는 단편이 좋다고 하고, 누구는 장편이라고 하고, 누구는 에세이라고도 한다. 이쯤 되면 이 사람을 두고 장르를 말한다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저 독자로서 즐기는 게 서로 다를 뿐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오죽하면 그의 독자들을 가리켜 하루키 안이라고 하겠는가. 그래도 굳이 말하라면 난 에세이가 좋고 단편이 좋은 것 같다. 장편은 분량이 만만치 않아 늘 읽기에 실패한다. 그놈의 <1Q84>도 1권만 두 번씩 읽고, 2권을 3분의 1쯤 읽었던 것 같고, 3권은 아예 손도 못되고 있다. 하루키가 다시 좋아지면 모를까 앞으로 계속 내 방 어딘가에 나만 째려볼 것 같다. 이럴 것 같으면 나를 왜 샀냐고 절규하는 것 같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그래도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책을 몇 년 전에 사긴 했다. 그런데 몇 년이 흘러도 안 읽고 있기에 나완 인연이 없는가 보다고 중고샵에 미련 없이 팔았다. 그리고 다시 몇 년 만에 이렇게 중고샵에서 다시 건져 와 읽은 걸 보면 언제고 <1Q84>도 완독 하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은 갈대다. 책은 워낙에 많아서 어떤 책은 멀어지다가도 또 어느 순간 가까워진다. 


솔직히 같은 책을 다시 사니 좀 한심하긴 했다. 이렇게 다시 읽을 거면서 그땐 왜 팔았을까 싶다. 책 중독 테스트 중 같은 책을 두 번 산적이 있다는 항목이 있던데 나는 절대로 이 항목엔 해당 사항이 없을 줄 알았다. 뭐 그것도 독자의 권리라면 권리일 것이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다는 건 약간 김 빠진 맥주를 마시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는 하다. 그의 삶 자체가 딱히 극적이고 실험 정신으로 무장돼 있고, 모험 가득하고 뭐 그런 건 아니지 않나. 또한 그의 사진을 본 사람은 알 것이나 그 특유의 무표정. 기껏 표정을 짓는다면 떨떠름함 정도가 전부다. 그나마 노년이 되니 조금은 멋있고 표정이 유해진 느낌도 든다. (나만 이러나?) 게다가 그의 일상은 어떠한가, 매일 조깅을 한다고 그러지. 잠은 밤 9 신지 10시쯤에 자고 새벽 5시면 일어난다고 하지. 글은 그 사람을 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의 에세이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이미 그의 명성이 그렇게 할 수도 없겠지만 실제로도 그 안에 유머와 위트가 있다. 무심한 듯 시크해도 예리한 관찰력이 있다. 그것 없이는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의 에세이도 오리지널스럽긴 하다. 모든 에세이는 하루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산문은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거라고 하지만 단서가 있다. 정제되었다는 것. 하지만 이 둘은 엄밀한 의미에서 조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화면 조화고, 자유면 자유다. 많은 작가들이 산문을 쓸 때 전자 보단 후자에 방점을 찍고 있지 않을까. 그래야 공감을 얻고 뭔가 글의 품위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하루키는 자유롭게 쓴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의 글을 선택한다. 기존에 점잖게 글을 썼던 작가는 좀 당황하지 않았을까?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이렇게 쓸 걸. 내가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흐흑. 그러면서 어쩌면 하루키는 작가들 내에서는 공공의 적이 돼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리지널리티를 이뤄낸 사람의 비애쯤이라고 해 두자. (내가 지금 뭐라는 거니?) 


어쨌든 글은 그 사람을 닮는 법이다. 잔뜩 기대를 하고 읽으면 김이 빠지기 시작한 맥주 같기도 하지만 또 좋게 말하면 그가 재즈를 좋아해선지 재즈의 자유분방함을 닮은 것도 같다. 사실 산문은 그 정제된 문장 때문에 뭔가 밑줄 그을 부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하루키의 글도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아주 없는 것 아니지만 그냥 넘어가도 크게 나쁘지 않다. 어쩌면 그게 하루키 인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처음 글을 쓸 때부터 독자를 의식하고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독자를 의식했다면 이렇게 오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신문 연재를 그렇게 싫어했다면서 이 책은 무려 5년간 모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거라고 한다. 하루키는 거짓말쟁이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80년대 중반에 쓴 글들이다. 작가로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고 전업을 진지하게 생각했거나 막 했을 때였을 것이다. 기회가 왔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그의 일화 가운데 한때 재즈 바를 운영하면서 밤에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한데 그럼 가난하게 살진 않았겠지 싶지만 그도 가난한 때가 있었다. 그게 이 책 맨 마지막 장 '가난은 어디로 가버렸나?'에 나온다. 어찌나 그리도 시크하면서도 명랑하게 쓰고 있는지. 우린 가난을 경제적인 관점보다 문학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건 그의 유명한 단편소설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쓰게 만들었겠구나 생각했다. 거기선 가난을 얼마나 낭만적으로 그랬던지. 난 여기서부터 하루키가 좋아지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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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15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표 에세이 장르를 탄생 시킨 장인! 이분에 에세이는 사물과 풍경이 살아 숨쉬고 꿈틀거리게 만드는 문장을 구사해요. 안자이 미즈마루랑 콜라보레이션한 에세이들이 최고에요.

stella.K 2020-12-16 18:23   좋아요 1 | URL
오, 생각 보다 깊게 보시는군요.
저 <치즈케이크...>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상당히 오래 전에 읽었는데
알라딘에서 찾아 보니까 이미 절판되면서
헌책방에선 희귀본이 돼서 2만원에서 4만원 선까지 거래가 되고 있더군요.
작년까지 책 박스에 담겨 있었는데 가을에 통째로 들어냈는데
아까워 죽을 것 같습니다.ㅠ

scott 2020-12-16 20:23   좋아요 1 | URL
오! 혹시 ‘치즈케이크와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가난‘이라는 단편인가요?
우리는 그 땅을 ‘삼각 지대‘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자를 대고
그린 듯한 완전 한 삼각형의 땅이었던 것이다.
나와 그녀는 그러한 땅 위에서 살았다. 1973년인가 1974년 무렵의
이야기다. ‘삼각 지대‘라고 해도, 이른바 델타 모양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던 ‘삼각 지대‘ 는 훨씬 가늘고 길어 쐐기 같은 모양
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우선 완전한 사이즈의 둥근 치즈 케
이크를 머리에 떠올려 주기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칼로 12등분해 주
기 바란다. 즉 시계의 문자반 같은 모양으로 잘라 나가는 것이다. 그
러면 끝이 뾰족한 부분의 각도가 30도인 케이크 조각 열 두 개가 만
들어진다. 그 중의 하나를 접시에 담아, 홍차라도 마시면서 차분히 바
라봐 주기 바란다. 이것이 - 이 끝이 뾰족하고 기다란 케이크 조각이
- 우리 의 ‘삼각 지대‘의 정확한 모양이다.
어째서 그처럼 부자연스런 모양의 땅이 만들어졌느냐고 당신은 물
을지도 모른다. 혹은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좋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 마을 사람에게 물어 보아도 잘 몰랐
다. 그것은 먼 옛날부터 삼각형이었고, 지금도 삼각형이며, 앞으로도
죽 삼각형일 거라는 정도의 사실밖에 몰랐다. 그 마을 사람들은 그
‘삼각 지대‘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
도 않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왜 ‘삼각 지대‘가 그런 식으로 - 귀 뒤에 있는 사마귀처럼 - 냉담
하게 다루어지는지,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이상한 모양
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삼각 지대‘의 양옆에는 서로 다른 종류
의 두 개의 철로가 뻗어 있었다. 하나는 국철 선로이고, 또 하나는
민영 철도 선로다. 그 두 개의 철로는 상당한 거리를 평행하게 뻗어
오다가, 이 쐐기의 뾰족한 끝 부분을 분기점으로 삼아, 마치 갈라지
는 것처럼 부자연스런 각도로 꺾이며 북쪽과 남쪽으로 각기 방향을
달리하고 있다. 이것은 꽤 볼 만한 광경이다. ‘삼각 지대‘의 뾰족한
끝 부분에서 열차가 오가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파도를 가르고
해상을 돌진해 가는 구축함의 함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쾌적함이나 거주성(居住性)이라는 관
점에서 보면, ‘삼각 지대‘는 정말 지독한 곳이었다. 우선 소음이 심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철로 사이에 꽉 끼여 있는 셈이므로 시끄럽
지 않을 턱이 없다. 현관문을 열면 눈앞에 열차가 달리고 있고, 뒤
쪽 창문을 열면 거기도 다른 열차가 달리고 있다. 눈앞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승객과 눈이 마주쳐 인사할 수 있을 정
도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지독한 곳이 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막차가 지나가 버리면 그 다음은 조용하지 않냐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실제로 이사를 올
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막차 따위는 존
재하지 않았다. 여객 열차가 새 벽 한시 전에 모든 운행을 끝내 버리
면, 다음에는 심야에 운행되는 화물 열차 들이 그 뒤를 이어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새벽녘까지 화물 열차들이 모두 지나가 버린 뒤에는
이튿날의 여객 수송이 시작된다. 이러한 일들이 매일 되풀이되는 것
이다.
아이고 맙소사.
우리가 일부러 그러한 장소를 골라서 살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집
세가 쌌기 때문이다. 단독 주택으로, 방이 셋이고 욕조가 딸려 있고
작은 마당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다다미 여섯 장 방 한 칸 짜리 아파트
의 집세와 비슷했다. 단독 주택이므로 고양이도 기를 수 있었다. 마
치 우리를 위해 마련된 집인 듯싶었다. 우리는 갓 결혼을 하고, 자랑
하는 건 아니지만, 기네스북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난했다.
우리는 역 앞의 복덕방에 붙은 쪽지를 보고 그 셋집이 나와 있는 걸
알았다. 조건과 집세, 방의 배치 등을 감안할 때, 의외로 쌌다.
˝쌉니다, 싸요. 상당히 시끄럽지만 그것만 견딜 수 있으며, 의외로
싸고 진귀한 셋집이라고 할 수 있을 거요˝하고 대머리 복덕방 주인
이 말했다.
˝하여튼 보여 주시겠어요?˝하고 나는 물었다.
˝좋아요. 하지만 당신들만 갔다 오지 않겠어요? 나는 거기에 가면
머리가 아파요.˝
그는 열쇠를 빌려 주고, 집까지 가는 약도를 그려 주었다. 마음 편
하고 태평스런 복덕방 주인이었다.
역에서 바라보면 ‘삼각 지대‘ 는 바로 가까이에 보인다. 그래도 실
제로 걸어 가보면,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철로를 빙 돌아 우회하고, 육교를 건너고, 지저분한 고갯길을 오르내
리다가, 겨우 ‘삼각 지대‘의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다. 주위에
는 가게도 하나 없었다. 정말 초라한 곳이었다.
나와 그녀는 ‘삼각 지대‘의 뾰족한 끝 부분에 외따로 서있는 집 안
으로 들어가, 한 시간쯤 거기서 멍하니 있었다. 그 동안 꽤 많은 열
차들이 집의 양쪽을 지나갔다. 특급 열차가 통과하면 유리창이 덜거
덕거렸다.
열차가 지나가는 동안은, 서로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무엇인
가를 한창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 열차가 지나가면, 우리는 입을 다물
고 열차가 완전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조용해져서 우리가 다시 이
야기를 시작하면, 금방 또 다음 열차가 달려왔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의 분단이라고 할까, 분열이라고 할까, 상당히 장 뤽 고다르풍이다.
그래도 소음을 제외하면, 집의 분위기 자체는 꽤 나쁘지 않았다. 구
조는 확실히 고풍스럽고 전체적으로 파손되어 있었지만, 도코노마(역
주:일본식 방의 상좌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 벽에는 족자를 걸
고, 바닥에는 꽃이나 장식물을 놓아 꾸민다. 보통 객실에 꾸밈)나 덧
문 밖의 툇마루 등이 있어 좋은 느낌 을 주었다. 창문으로 비쳐 드는
봄의 햇살이, 다다미 위에 작고 네모진 ‘양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과 유사했다.
˝이 셋집에 들기로 하지. 시끄럽긴 하지만, 곧 익숙해질 거야˝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 있으니까, 마치 내가 결혼하여 가정을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
˝하지만 정말로 결혼했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우리는 복덕방으로 되돌아가 그 셋집에 들겠다고 말했다.
˝시끄럽지 않았어요?˝하고 대머리 복덕방 주인이 물었다.
˝시끄럽긴 하지만, 그럭저럭 익숙해 질 거예요˝하고 나는 말했다.
복덕방 주인은 안경을 벗어 거즈로 렌즈를 닦고, 찻잔에 담겨진 차
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안경을 다시 끼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젊으니까˝하고 그는 말했다.
˝네˝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임대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이사를 하는 데는, 친구의 라이트밴 한대로 충분했다. 이부자리와
옷, 식기, 전기 스탠드, 몇 권의 책,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등이 우리
의 전 재산이었다. 라디오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었다. 세탁기나 냉장
고, 식탁, 가스 스토브, 전화, 물을 끓이는 주전자, 진공 청소기, 토
스터 따위도 없었다. 우리는 그만큼 가난했다. 그래서 이사라고 해도
겨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인생은 아주 간
단하다.
이사하는걸 거들어준 친구는, 두 선로 사이에 끼인 우리의 새 거주
지를 보고 꽤 놀란 듯했다. 그는 이사를 끝낸 다음에 나를 향해 뭔가
를 말하려고 했는데, 마침 특급 열차가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말했어?˝
˝정말 이런 곳에 사람이 사는구나˝하고 감탄한 듯이 그는 말했다.
결국 우리는 그 집에서 2년 동안 살았다. 상당히 아구가 안맞는 집
이어서, 사방의 틈새에서 외풍이 들어왔다. 덕분에 여름철에는 쾌적
했지만, 그 대신 겨울철에는 지옥 같았다. 스토브를 살 돈이 없었기 때
문에, 해가 지면 나와 그녀 와 고양이는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 말
그대로 서로 껴안고 잠을 잤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보면 부엌의 싱
크대가 얼어붙어 있곤 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봄은 근사한 계절이었다. 봄이 오자, 나와
그녀와 고양이도 한숨 돌렸다. 4월에는 철도 직원들의 파업이 며칠 동
안 계속되었다. 파업을 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하루 종일 단 한
대의 열차도 선로 위를 달리지 않았다. 나와 그녀는 고양이를 껴안고
양지바른 선로로 내려가 햇볕을 쬐었다. 마치 호수 바닥에 앉아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우리는 젊고, 결혼한 지 얼마 안되었고, 햇볕은 공
짜였다.
나는 지금도 ‘가난‘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삼각형의 기다란
땅을 연상한다. 지금 그 집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stella.K 2020-12-16 20:3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맞아요! 읽으셨군요!!
와, 근데 이거 내용 전부를 타이핑하신 건가요?
대단하십니다. 스콧님 쵝오!!!!
그렇지 않아도 하도 오래되서 가물가물했거든요
덕분에 다시 읽게되서 넘넘 기쁘옵니다.
고맙습니다. 잘 간직하겠습니다.^^


scott 2020-12-16 20:40   좋아요 1 | URL
헌책방으로 넘어간 책박스에서 꺼내 드림 (⁀ᗢ⁀)

psyche 2020-12-19 15:46   좋아요 2 | URL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기차길 앞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어요. 기차가 지나갈때면 티비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런 곳이었죠. 밤에는 낮만큼 자주는 아니만 화물 열차가 지나갔고요. 그 아파트에서 이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읽었어요. 읽고나면 까먹는 저인데 이 책만큼은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scott 2020-12-19 15:57   좋아요 2 | URL
프쉬케님 저는 처음 배정된 기숙사가 옛날 2차세계대전때 야전 병원으로 썼던 곳이였는데 방방마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했고 저는 괜찮았는데 다른 층(수술실이였던)에 살던 학생들은 밤마다 귀신을 목격했다고 난리를 쳐대서 가을학기때 다른기숙사로 옮겼는데 1층으로 바로 창을 열면 달리는 전차 바퀴가 보여서 전차가 달릴떄마다 창문 전체가 흔들리고 탁자 책상까지 요동을 쳤어요 ㅋㅋ
새벽 4시 30분 출발에 그다음날 새벽 12시 30분까지 달리는 전차여서 전차 달리는 시간에 깨서 서둘러서 학교 가서 도서관에서 12시까지 버티다가 막차 타고 기숙사로 돌아와서 자는 생활을 했는데 (방에 놀러온 친구들이 충격을 받을정도로 소음이 심했고 당연히 말소리도 안들림) 그곳에 산지 몇달후에 전차 노동자들이 두달 넘게 파업해서 전차 길에 소복히 눈이 쌓이는 걸 구경하며 고요하게 두달을 보냈었네요.
하루키에 ˝치즈 케이크~‘는 몇번을 읽어도 질리지가 않아요 공감하면서 읽어서 인지 ^*^

stella.K 2020-12-19 19:06   좋아요 1 | URL
아웅~! 프시케님, 스콧님 그런 추억을 남겨 주시다니 감동입니다.
물론 옛날 얘기니까 이렇게 말씀하시지 당시엔 얼마나 괴로우셨겠습니까?
그게 하루키의 단편과 딱 맞물렸으니
정말 하루키는 대단한 사람 같습니!.
더구나 스콧님은 딱 치즈케이크네요. 미국은 파업을 하면 두 달씩하고
그러는가 봅니다. 근데 저는 그렇게 살라고 그러면 못 살 것 같아요.
전차길에 눈이 소복히 내려 쌓이다니. 정말 황금 같은 기간이었겠습니다.
이거 완전 단편 소설인데요? 소설로 완성해 보심이...!ㅎㅎ
저는 뭐 그런 추억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정말 <치즈케이크...>는
그 은유가 기가 막힌 것 같습니다.
귀한 말씀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 2020-12-16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잘 모르면서 하루키 소설 여러 권 보기는 했어요 무라카미 라디오 첫번째 책 볼 때는 재미없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재미있더군요 예전에는 무라카미 유머를 잘 몰랐나 봐요 시간이 흐르고 조금 알다니... 하루키는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할 듯합니다 저는 소설 안 보다 《1Q84》 보고 재미있네 하기도 했어요 좀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상상 같은 건 괜찮기도 해요


희선

stella.K 2020-12-16 18:25   좋아요 2 | URL
하루키는 좀 묘한데가 있는 것 같긴해요.
처음엔 뭔가 기대를 갖고 읽다가
생각보다 별로네 하다가 또 어느 순간 야금야금 읽게되는 것 같습니다.ㅋ

페크pek0501 2020-12-16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고 삼분의 일 정도 읽었을 거예요.(목차에 읽은 제목에 동그라미를 쳐 놓고 읽는 습관이 있고 여러 책을 돌려가며 읽어요.) 이 책은 그의 에세이 중 빼어나지 못한 것 같아요. 오디오로 비밀의 숲 중 몇 개를 들었는데 이건 좋더라고요.

명성 있는 작가라고 해서 작품이 다 좋지는 않고, 몇 개의 수작 때문에 그들이 빛나는 게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어떤 문장은 하루키가 아니라면 쓰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드는 게 있긴 하더라고요.
최근에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라는 책을 구매했죠. 하루키의 문장을 분석, 소개하는 책이죠.
앞으로도 하루키에 속아 더 구매할 것 같은 예감을 느낍니다.

stella.K 2020-12-16 20:15   좋아요 2 | URL
맞아요. 유명한 작가라고 모든 게 다 좋은 건 아니죠.
고 몇 편의 수작 땜에 명성을 얻고 나머지 작품도 덩달아
수작을 반열에,,,ㅋㅋ
말씀하신 책 막 발간됐을 때 모처에서 서평 이벤트 했는데
신청할까 하다 포기했어요. 시간에 쫓겨서 서평을 쓰는 게
점점 귀찮고 부담스럽더라구요.
언제고 중고샵에 나오면 사려고 대기하고 있습니다.ㅋ

근데 하루키에 속으시다뇨. 그냥 즐기십시오.
누가 뭐라고 안 그럽니다.ㅎㅎ

scott 2020-12-16 20:46   좋아요 2 | URL
맞아요 페크님 장편-단편-여행기- 에세이
*비밀의 숲-‘장수 고양이의 비밀(하루키가 30대때 쓴 에세이중 최고로 재미짐 ㅋㅋ)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이윽고 슬픈 외국어 스텔라 케이님께 추천~*
번역가들이 말하는 하루키(한국+미국) 이문장에 이단어를 딱 끼워 맞춰쓰는 기술, 정교하게 문장을 다듬는 장인 글쓰기 장인이래요 ㅋㅋ
사실 하루키는 자신에 창작 서랍장에 있는 여러개 테마중에 주인공이름 직업 배경 기타 등등만 조금씩 바꿔서 변형시키는 귾임없이 글쓰기 태엽을 감는 새 같은 작가에요 ㅎㅎ

장편 ‘태엽감는 새‘에서 그동안 무수히 많은 장편들이 파생되었고 몇몇 단편에서 장편으로 확장 시켜도 하루키표 소설에 가장 큰 테마는 ‘태엽감는 새‘안에 전부 담겨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 하고 하루키가 새책을 출간하면 구매하게 되는 이유가 읽혀지는 글,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영리한 작가에요 ㅋㅋ



scott 2020-12-23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케이님
내일은 미세먹지 최악
그럼에도 불구 하고 크리스마스 이브~*
트리 한그루 심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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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ry ☆ Christmas! ** ★
│Merry..........:+☆+:............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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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rry ..:+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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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행복한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stella.K 2020-12-24 15:56   좋아요 1 | URL
아웅~ 저에게도 이런 크리스마스 이모티콘을
만들어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올해 가장 기쁜 일 중 하나는
제가 스캇님을 알게 되었다는 일일겁니다.
근데 스캇님 활동하신지는 꽤 되셨더군요.
왜 몰랐을까요?
어쨌든 별 볼 일없는 서재에 관심 가져주시고
말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이웃으로 잘 지내보아요.ㅋ
스캇님도 행복하고 뜻깊은 성탄절 되시기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페크pek0501 2020-12-23 2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십시오. 메리 크리스마스!!!!!!!!!!!!!!!!!!!

stella.K 2020-12-24 15:57   좋아요 1 | URL
와~ 느낌표 장난 아닌데요?
그만큼 언니가 저를 많이 애정하신다는 게
뚝뚝 느껴지네요.ㅎㅎ
언니도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십시오!^^

후애(厚愛) 2020-12-24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 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stella.K 2020-12-24 15:58   좋아요 1 | URL
네. 후애님도 기쁜 크리스마스 되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