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자이자 민속학자인 고 김열규 교수는 이 책에서, 자신의 독서의 시작은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아직 한글도 깨지지 않았을 어린 시절 할머니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떼를 쓰면 할머니는 늘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 옛날 옛날, 그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고 한다. 여기서 '이바구'는 이야기를 일컫는 경상도 말이지만, 떼바구, 강떼바구는 별 뜻이 없는 말이다. 모르긴 해도 이야기를 시작할 때 갑자기 시작하기가 뭐하니 시간을 끌기 위한 일종의 시동을 거는 그런 건 아닐까. 문득 이렇게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싶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어렸을 때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 할머니는 조근조근 짧고 굵게 몇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내용은 기억에 없다. 한글을 아직 깨치기 전이고, 재미 보단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어 자꾸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던 건 아닐까. 


나는 보통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라고 말하곤 하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내가 한글을 깨친 후 책에 관심이 생겨서 돈 주고 사서 보기 시작한 때가 대략 그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독서는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라 남에게 의지하여 건 독서 행위라고 보지 않았다. 하지만 김열규 교수는 할머니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던 때를 독서의 시작으로 보고 있는데 반박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요즘 귀로 듣는 오디오북도 있지 않은가. 오디오북이나 조부모에게서 옛날 얘기를 듣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단지 오디오북은 좀 더 조직적이고 기계적이라는 정도가 될까. 


그렇게 시작한 김열규 교수의 독서는 청장년 시절에 한창 맹위를 떨치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느슨해진다. 노년의 책 읽기는 산책하듯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다 말다 어슬렁대는 것이 산책인 것처럼 책 역시 읽다 말다 하는 것이다. 


...... 읽기와 걷기가 절로 겹쳐진다. 가령 한참을 어슬렁대다가 갈림길에 왔다 치자. 어디로 갈까? 망설일 것이 전혀 없다. 왼쪽 손바닥에 침을 뱉고는 오른쪽 손바닥으로 탁! 친다. 침방울이 튀는 쪽으로 자동적으로 발길이 향한다. 들고 온 책을 어디쯤 펼칠까 하는 것도 비슷하게 결판이 난다. 바람이 책장을 넘겨주면 거기서부터 읽으면 된다.

그런가 하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풀썩 풀밭에 주저앉아 더없이 멍해 있는 것도 산책의 재미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다가 내려놓고 멍하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것도 산책하듯 읽기의 바른 자세다.(159p)


요즘 같이 공기도 믿을 수 없는 때에 얼마나 그림 같은 풍경인지. 언젠가, 무슨 책을 읽다 독서도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읽고 약간 뜨악한 적이 있었다. 난 그때까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여러 이유가 있는데, 좋아하는 책을 그냥 평생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는 거지 무슨 노후를 생각한단 말인가. 더구나 난 책을 좋아하지만 많이 읽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계획을 짠다는 건 내 사전에 없다. 닥치는 대로 읽는다는주의다. 또 이건 좀 모순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는데, 독서는 취미 같은 것이 아닌가. 취미는 여건이 허락되고 마음이 허락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싫으면 언제든 접고 원하면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다. 물론 난 이 취미를 죽을 때까지 할 것 같으니 노후의 독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처럼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한 장면이 자주 떠오르는 때도 없다. 거기 보면 남자 주인공이 꼭 책을 읽으면 첫 장부터 읽지 않고  끝장을 읽은 후 첫 장을 읽기 시작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만일 천재지변 같은 게 있어 끝을 못 읽게 되면 안 되니까 그런 것이란다. 처음엔 그게 참 엉뚱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언젠가 읽겠다고 모아 둔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죽을지 모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은 백퍼다. 사다 놓은 책의 마지막 장이 어떤지, 완독은 고사하고 손때라도 묻혀둬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영화<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한 장면


느림보 같긴 해도 나도 한때는 치열하게 책을 읽었던 때가 있다. 그때 난 어렵거나 지루한 책은 영락없이 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때가 오면 난 저자나 역자를 차마 비난하지 못하겠다. 왜 책을 이렇게 썼냐고. 다 내가 소양이 부족해서 못 읽는 걸 누굴 비난하겠는가. 그게 언제부턴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 세상엔 나에게 맞지 않는 책이 있고 읽지 못할 책이 있다. 그럴 땐 빨리 다른 책을 읽기로 한다.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들은 많은데 그런 걸 가지고 자책하는 건 시간 낭비다. 그러다 보니 완독에 대한 강박도 좀 버리게 됐다. 


바람이 펼쳐준 페이지부터 읽는다. 왠지 낭만적이면서도 숨이 쉬어지는 독서다. 이걸 풍독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흔히 연말에 또는 월별로 자신이 몇 권의 책을 읽었는가를 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노년엔 아무래도 눈도 안 좋아지고 집중력도 떨어질 테니 어느 순간 그렇게 세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다. 책을 완독에만 매달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읽되 내가 오늘 얼마의 독서를 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라고. 그것이 권 수를 세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오늘이란 하루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엄밀한 의미에서 내일은 아직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냥 허락될 거라고 믿을 뿐이다.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독서는 오늘 하루만 할 수 있다. 실존적인 독서를 하는 것이다. 


요즘엔 책을 대신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 요점 정리의 요정 설민석 같은 사람 말이다. 그것도 일종의 독서 행위라면 그가 나오는 TV 프로를 보면서 "그 프로를 보느라 책을 못 읽었어." 이런 말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것의 단점은 원작자의 문체의 맛을 느낄 수 없다는 정도가 될 텐데, 독서의 주요 행위는 작가의 문체를 아는 것보다 그 내용을 얼마나 내 것으로 이해했느냐 또는 다른 사람과 얼마나 토론이 가능한가 가 아닐까? 누구는 그런 데서 주워듣고 아는 척하는 거 얌생이 같다고 할지 모르겠는데, 원래 독서 토론이란 아는 척하는 것이고, 얌생이 독서법도 독서는 독서라고 인정해 주자. 요는 독서 행위를 한 두 가지에 국한시키지 말고 넓은 시각으로 보자는 말이다.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그런 프로를 시청하면 어느 땐가 한 번은 꼭 그 책을 사서 읽게 되지 않는가.


김열규 교수가 젊은 시절 그렇게 맹렬하게 독서를 했던 건 그땐 여가 시간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는 1932년 생으로 그 시대가 그렇듯 책 읽는 것조차도 사치였던 시절이었다. 영화 <동주>에서도 보면, 시인 윤동주 역시 독서만 줄곧 해 대는 인물로 나오기도 한다. 만일 이들이 이 시대를 살았다면 과연 책만 읽었을까? 이 시대는 어쩌면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히 독서만 하기 힘든 시대라고 생각한다. 영화도 봐야 하고, 동아리나 모임에도 나가야 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요즘에도 독서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옛날의 기준을 가지고 독서가를 생각하면 안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어느 때부턴가 에세이류를 많이 읽게 됐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면 장편소설을 읽을 경우 구조나 얼개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해 에세이는 그런 파악을 할 필요 없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금방 공감하게 된다. 게다가 요즘 에세이는 인문학적 소양까지 갖추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 좋은 에세이를  읽지 않는다면 얼마나 손해인가 싶을 정도다. 그래도 내 마음은 늘 소설에 가 있다. 그것도 고전 소설. 앞으로 내가 얼마를 더 살지 모르겠지만 어느덧 나도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 보다 조금 짧아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전에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이 책을 읽지 않고 생을 마감한다면 평생 후회할 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그 책에 대한 목록을 만들고 한 권, 한 권 읽어나가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목록을 만들어도 나는 3분의 1도 다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가 생각보다 빨리 세상을 떠날 수도 있고, 아니면 평소 게으르고 어영부영하는 성격이라 그것을 망칠 수도 있다. 그래도 세워 보고 싶다. 아예 계획 없이 살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완주는 못할지라도 계획을 실천하다 죽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김열규 교수는 그렇게 노년의 독서를 산책하듯 한다고 했지만 그 독서는 조금도 느슨해지거나 틈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노련해졌고 웅숭깊어졌다. 그는 토마스 만이나 릴케에 대한 존경을 굳이 숨기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선택한 작가는 츠바이크였다. 특히 츠바이크가 쓴 <에라스뮈스 평전>를 좋아했는데, 알다시피 에라스뮈스는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에 참여했던 인문학자다. 그는 츠바이크가 그 책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므로 에라스뮈스가 되고자 했다고 말한다. 또한 그런 츠바이크를 김열규 교수는 숭배했다.  

'제1의 에라스뮈스와 제2의 에라스뮈스, 츠바이크! 제1의 츠바이크와 제2의 츠바이크, 김 아무개! 우리 셋은 그렇게 피가 통하는 한 동아리가 되기를 나는 축원했다. 그것이 현실이 될지 아니면 꿈으로 끝날지는 나중 문제였고 우선 마음은 그렇게 조급했다(311p).'


누구는 방에 책을 쌓아 놓는 건 정신적으로 나무에서 피톤치드를 마시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고도 했다. 언젠가 저 책을 읽어야지 하는 기대가 나를 건강하게 만든다나. 일 일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쩌면 내가 저 책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약간의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앞으로 읽을 것을 생각하면 기대감으로 충만할 때가 더 많다. 읽다가 누구 한 사람에게 꽂혀 그를 알고 싶고, 사상적으로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면 그건 성공한 독서고 훌륭한 독서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김열규 교수의 저 말에 빛 댄다면 말이다.    


지금까지 서평집은 많이 봤지만, 독서 가지고 이렇게 할 말이 많은 줄은 몰랐다. 김열규 교수는 진정한 독서 고수다. 문장이 쉽고 깊이가 있는 것이 본받고 싶은 문체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이런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건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읽는 동안 마음이 든든히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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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3-19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나 책장에 쌓인 먼지가 건강에 좋지 않아요. 집에도 미세 먼지가 많이 있다고 하던데, 아마도 미세 먼지가 가장 많은 곳은 서재일 거예요. ^^;;

stella.K 2020-03-20 11: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넌 꼭 이 공들인 글에 초를 쳐야겠냐?
기껏 애써서 써 놨구만.
너와 같은 말에 울엄니가 하시는 말씀이 있지.
그래도 7, 80년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너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체질은 아니라고 보는데.ㅋㅋ

니르바나 2020-03-2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고 있는 김지안 작가님의 <네 멋대로 읽어라>이후 최고의 서평집인가 봅니다.^^
김열규 교수님이 서울 생활을 끝내고 낙향하여 고향 가까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편안한 모습으로 인터뷰 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2층으로 오르던 목재 계단에 발 옮기기 어렵게 책이 쌓여 있고
서재 문 밖까지 온통 점령한 책들이 참 인상적이었죠.
연구를 위해 관련도서를 읽는 다른 학자들의 서재 풍경과 달리
저명한 국문학, 민속학자이면서도
다양한 책읽기를 진정 사랑한 애서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2020-03-20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0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20-03-21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정말 많이 봤던 영화압니다.^^
몇 번을 봣는지 기억도 없네요.
정말 좋았던 영화지요.

좋은 꿈 꾸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stella.K 2020-03-21 15:3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오래 전 멕 라이언 리즈 시절에 한번 보고
여태 다시 못 보고 있는 영홥니다.
그런 사람이 아는 채를 하고 있네요.ㅋㅋ
근데 맞죠? 해리가 책 맨 뒷장부터 읽다가 다시 첫장부터 읽는 이유.
후애님 같으신 분이 계셔서 팩트 체크부터 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말입니다.ㅠ
좋은 주말입니다.^^

페크pek0501 2020-03-2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세이를 읽을 때가 제일 편한 독서가 되는 것 같아요. 목차를 보고 글 제목이 끌리는 걸로 골라 몇 개씩 읽고 나서 읽었다는 표시를 목차에다 해 둡니다. 여러 에세이책을 같은 날에 읽을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오디오북을 애용하는 편입니다. 하루에 30분~50분 정도는 듣는 것 같아요.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들을 수 있는 건 장점이에요. 종이책을 여러 번 읽는 건 어려운데 비해 오디오북은 편하죠. 그런데 오디오북으로 들어서 좋은 건 꼭 종이책으로 사게 되더군요. 이중으로 책값이 드는 건 단점. ㅋ

stella.K 2020-03-23 12:2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나이들면 에세이가 편해요.
어렸을 때 에세이도 글이냐? 했던 때가 있었는데 정말 무식하면 용감한 거죠.

오디오북은 전 아직 생각 안해 봤는데 조만간 써야할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