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민음사|조구호 옮김|716쪽|3만원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3부작으로 구상하고 있는 자서전 중의 첫 번째 책으로, 그의 유년시절과 보고타에서의 학창시절, 신문기자 초기 시절을 비롯해 유럽으로 취재를 떠날 때까지의 순간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외할아버지와의 특별한 관계와 사춘기 때 알았던 사창가의 여자들, 수크레로 이사하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역사와 더불어 유나이티드 프루트 회사의 바나나 농장 수탈과 콜롬비아 정당들의 반목으로 야기된 1948년 4월 9일의 대규모 폭력사태 같은 콜롬비아 역사를 다채롭게 들려준다.

이 자서전에 서술된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사건들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경험이거나 그가 살아온 콜롬비아의 현실이지만, 동시에 그를 작가로 만든 요소이기도 하다. 그것을 강조하듯이 이 책은 1950년 2월의 일화로 시작한다. 아라카타카의 집을 팔기 위해 그를 찾아 온 어머니는 “하찮은 글이나 쓰면서 형편없는 보수를 받기보다는” 중단했던 법학 공부를 계속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은 채 부모에게 허락해달라고 조른다. 만일 부모의 의사를 따랐다면, 오늘날 노벨문학상을 받고 세계 최고의 작가로 인정 받는 대신 아마도 상상력 풍부한 ‘실패한 법조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1928년에 태어났다는 기존의 공식적인 자료를 뒤집고 1927년생이라고 밝힌다. 그의 출생년도에 대한 논란은 ‘백년의 고독’의 상상적 마을인 마콘도에서만 진실을 발견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예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바랑키야에서 ‘엘 에랄도’ 편집국 기자로 일할 때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출생년도를 바꿔 신분증에 기록했다고 설명하면서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것은 ‘백년의 고독’의 독자들이 너무나 터무니없어 현실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으로 믿었던 것이 실제로 작가가 주장하듯이 “현실에 기반을 두고” 씌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 책의 여러 대목에서 중남미의 현실이 우리의 상상력보다 더욱 풍부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 첫 장에는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에 걸맞게 자서전은 연대기적 순서를 밟지 않고 작가의 기억에 따라 시간을 오간다. 문체 역시 그가 탁월한 이야기꾼임을 유감없이 보여주듯이 매우 유쾌해서 마치 ‘백년의 고독’과 ‘콜레라 시대의 사랑’, 그리고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를 종합해서 읽는 것 같은 즐거운 느낌을 준다. 이 책의 제목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가 아니라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 살다’라고 붙여도 좋을 것 같다.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 중남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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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7-03-28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아무리 자신의 삶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 이게 삼부작의 첫 권이라니

구입해 보려던 마음이 갑자기 흔들리네요.

왜 저는 이런 책만 보면 환장하는지 모르겠어요. ㅎㅎ


stella.K 2007-03-2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그래요, 니르바나님! 으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