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스토리
임경선 지음 / 뜨인돌 / 2007년 2월
절판


집에 돌아온 하루키는 새로 산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소설 쓰기를 위한 자신만의 몇 가지 원칙을 먼저 세웠다.
첫째, 익숙하지 않은 것을 처음 시도하는 것이므로 그리 어렵게 고민하지 않는다. 둘째, 글은 1인칭으로 쓰고 주인공은 '나'로 정한다. 셋째, 되도록이면 허구를 쓴다. 넷째, 문장은 최소한 세 번 이상 고쳐 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변명은 절대하지 않는다. -70~71쪽

번역은 무라카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왜 그가 이토록 번역을 많이하는지 신기해하지만, 번역은 하루키가 실질적으로 글을 쓰는데 적지않은 도움을 주었다. 소설은 여태까지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게 되는데 소설가가 자기에 대한 것 혹은 자신이 아는 것만 쓰다 보면 아무래도 하나의 스타일로 고착되기 쉽다. 따라서 소설가에게는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자극이 필요하다. 그런데 번역을 하고 있으면 또 다른 작의 눈으로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번역자에게 유형무형의 재산이 되어 준다. 소설가는 소설을 읽지 않으면 끝장이다. 그런 면에서도 이왕이면 번역할 작품을 선정할 때, 적어도 자신이 배울 수 있는 작품을 고른다면 금상첨화인 것이다.

......번역은 무라카미에게 한 여자를 사귀는 것과 비슷하다. '어, 좀 괜찮네.'하면서 건드려 보는 게 아니고 과연 자신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124~125쪽

레이먼드 카버는 위에서 아래로 사물을 내려다보지도 않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에 따르면, 가장 먼저 땅을 자신의 두 발로 밟아 확인하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시선을 움직여 위를 올려다 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레이먼드 카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는 척하거나 잘난 척하는 소설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달변을 싫어할뿐만 아니라 요령을 배격하고, 샛길이나 새치기를 싫어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우직함에 대해 무리카미 하루키는 안심할 수 있었다.

"카버에게는 자신의 신체를 깎는 고통으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 살아가면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하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실행하지 않는 사람을 용납할 수 없었죠."

레이먼드 카버는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작가로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과는 결코 친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람이 아무리 인간성이 좋다고 해도 그 '좋은 인간성'마저 부정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이먼드 카버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긍정적인 '긴장감'을 안겨 주었다. -128~129쪽

하루키: 매일 4~5시간씩 쓴다고 치면 하루에 10장 정도? '한번 10장'이라고 정하면 매일 어김없이 10장을 씁니다. 기계적으로 적금을 붓듯이 말이예요. 원고의 양은 일정하게 늘어 가죠. 흐루에 10장, 한 달에300장, 반년에 1,800장, 이런 식으로.-150쪽

하루키: ......그 즐거운 상상을 '과제'로 생각한다면 이미 그건 자유롭지 못한 거죠. 편하게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글의 소재는 '자신이 가야할 곳'을 알아서 찾게 된답니다. 단편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자발성'입니다. 그래서 특히나 단편소설 초고는 3일을 넘기지 말고 단숨에 써야 합니다.-155쪽

......좋은 문장을 쓰려면 몇 번이라도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수정해야 합니다. 좋은 글의 원칙은 '수정, 수정 또 수정!'입니다. 필요한 만큼,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수정해야 합니다.-157쪽

......달리 말하면 어렵게 맛있는 소재를 찾아내서 평범하게 쓰는 것보다 평범한 소재를 찾아서 맛깔스럽게 쓰는 편이 더 좋아요. 내용 면에서도 비정상적인 사람들에게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이나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정상적인 일이 일어나는 스토리가 아닌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는' 스토리가 더 좋구요. -161쪽

필자: ......그 주인공들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루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죠.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어 버리는 것, 그것이 소설을 읽는 옳은 방법이에요.
필자: 그렇다면 주인공들은 우리에게 이 지루하고도 함난한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 혹은 그 의미를 기꺼이 가르쳐 줄까요?
하루키: 인생이란 건 '질 걸 빤히 아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아요. 빠르던 늦던 우린 쓰러져 죽으니까. 존 어빙도 '인생은 불치병일 뿐이다'라고 말했잖아요. 어찌되었거나 빤히 질 것을 안다면 규칙을 지켜 제대로 지는 것도 후회가 되진 않을 듯합니다.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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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3-28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재밌겠어요. 실제 인터뷰한 거겠죠? 아님 가상으로...

stella.K 2007-03-28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실제죠. 저자가 하루키를 워나에 좋아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