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언젠가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너무 오래된지라 몇 장면만 기억날뿐 스토리는 처음 보는 느낌이다.
나는 80년대 들어서 영화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 작품은 많이 보질 않았다. 바로 이때야말로 한국 영화는 태동기를 거쳐 본격 중흥기를 맞이했는데 왜 그 시절
난 한국 영화에 대해선 무관심했는지 모르겠다. 지난 번 <만다라>도 최근에야 처음 봤으니.
그때는 국내 영화보단 외국 영화가
좋다는 선입견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기술적으로 보나 영상의 세련미가 와화의 그것을 따라가지 못할 거란 편견이 지배했을 것이다. 사실 지금
봐도 촌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옛 영화는 옛 영화대로 보는
맛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시절의 문화를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아련한 추억속으로 빠질 수 있다. 무엇보다 배우들을 보고 어머나, 저 시절엔
저렇게 풋풋했는데 하며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자조하는 건 또
어떤가?
하지만 옛 영화의 백미는 그 배우나
감독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배창호 감독과 안성기를 다시 보게 됐다. 그 시절 배창호 감독은 이장호
감독과 함께 우리나라 주요 영화 시상식이나 매스컴에서 가장 많이 호명된 감독은 아닐까 싶다. 그 시절 내가 감독에도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이
감독을 눈여겨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감독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일 정도는 아니었으니 어쩌면 감독은 나와 인연이 없었다고
해야겠지.
그리고 40년 넘은 세월에 다시
보니 아, 이 감독이 얼마나 재능이 있었는가가 눈에 들어 온다. 촬영도 나름 여러 시도도 많이했다. 당시엔 유영길 촬영 감독을 능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감독들마다 그와 함께 작업을 한다면 행운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배창호 감독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그렇게 열심히 영화를 찍던 그가 지난 2009년 이후로 필모를 남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지병설이 간간히 흘렀던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다 낫지 않았나 보다. 빨리 건강해져서 그의 영화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배우 안성기는 그동안 좀 어정쩡했던
것도 사실이다.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그 어정쩡함이 연기를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약간
탁하면서도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는 그런 그의 인상을 배가 시켰다. 하지만 이 배우 정말 열심인 것도 인정해줘야 한다. 지금까지 한눈 팔지
않고 스크린을 지켜오지 않았던가. 뭐든지 열심히 꾸준히만 하면 인정을 받는다는 건 만고불변의 법칙
같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 그도 잘하는
연기는 있구나 싶다. 배우가 천의 얼굴을 가졌다지만 분명 유독 잘하는 연기가 있는 것 같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바보스러우리만큼 순진무구한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를 연기했다. 당시 흔하게 유행하던 검은테 안경을끼고 말이다. 그게 조금은 멍청하게도 보이지만 또 얼핏 채플린을
느끼게도 한다. 아, 이래서 안성기, 안성기 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 어렵게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데이트 허락을 받고 저렇게 벤치에 앉아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또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주인공의 어린 딸과
같은 장면으로 구성되는데 보고 있으면 좀 찡한 느낌이
든다.
사실 저렇게 생긴 사람이 이성에겐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크로스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사랑은 그 사람이 가진 분위기나 배경, 연애 스킬이
아니다. 성실하면서도 진심을 다한 사랑이란 걸 영화는 끊임없이
말해준다.
시나리오나 영상이나 알찬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독특한 영화 세계를 보여 주는 이명세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각본으로 참여했다는 게 눈길을 끈다. 괜찮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