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ONE WAY TICKET


올해 원서 레벨1부터 읽기 시작해 첫 책이다. 나는 미미니까 시작을 미미하게! 이번달은 책을 구입하지 않기로 마음먹어서 도서관에 찜해둔 나의 원서 책들 중 하나를 빌렸다. 우리 도서관에는 항상 정장을 깔끔하게 입고 있는 준수한 외모의 사서쌤이 한 분 있다. 요즘 거의 대부분 후드티를 유니폼 삼아 입고 있는 나는 그분을 피해 다른 사서쌤들에게 대출할 책을 내밀거나 무인대출기를 사용하곤 한다. 레벨 1을 빌리려니 괜히 창피해서 의기소침해진 나는 아무래도 더 신경쓰여 당연하게도 무인대출기를 이용하려했다. 그런데 하필 무인대출기 위치가 사서 데스크 앞이고 하필2 정장쌤이 그걸 지켜보고 있다. 그것도 뭘 빌리는지 볼 수 있는 방향. 젠장! 굳이 멀리있는 대출기로 가기에는 오늘따라 자존심이 상해서 사서쌤이 보지 못하게 각도를 살펴 잘 가리고 레벨1인 책을 대출하려고 바코드를 찍었다. 



'삐삐! 이 책은 대출기를 통해 대여하실 수 없습니다. 부록자료가 있으니 데스크에서...' 처음 보는 빨간 글씨가 화면에서 번득인다. '이를 어쩌지?' 뒤를 돌아보니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간 건지 정장사서쌤만 우두커니 앉아 있다. '아 쪽팔리게..' 어쩔 수 없이 돌아서 사서쌤에게 레벨1을 내민다. 나는 내가 듣기에도 당황한 목소리를 쏟는다. "무인대출기는 안된다는데요. 부록은 필요없어요" 잠깐이지만 이런 상황은 놀랍도록 느리게 흘러간다. 나는 속으로 아주 수다스러워져서 '레벨1인지 나만 빼고 아무도 신경안쓸꺼야 사람이 다 그렇듯 다른 생각에 골몰해 있겠지. 이걸 왜 신경써'하며 머리로 중얼댔다. '띡띡~oo일 까지입니다.' 사서쌤이 내게 레벨1을 내민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이 책이 레벨1임을 상대가 알고 있는지 눈치를 살핀다. 이건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그는...알고 있다.ㅠ.ㅠ



꾸준히 대출하고 읽고 또 읽어서 언젠가 레벨 7을 저분에게 대출받겠어!! 다짐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나름 수치스럽게 빌린 문제의 레벨1은 'ONE WAY TICKET'이다. 열차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3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The Girl with Green Eyes




객실칸에 여러 사람이 앉아 있다. 그 중 마주앉은 목청 좋은 갈색모자의 중년 남자와 짧은 머리의 젊은 남자가 시시콜콜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만 신나는 분위기다. 젊은 남자는 초록눈의 아름다운 아내 줄리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지루해하며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남편 때문에 해마다 같은 곳으로 휴가를 떠난다. 다른 나라 곳곳으로 가보고 싶지만 남편 고집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의 칸에 키가 큰 한 남자가 신문을 읽고 있다. 그녀는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 남자가 눈으로 웃어준다. 갈색모자의 중년 남자는 과거에 경험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고 젊은이와 웃음꽃을 피운다. 그리고 둘이 점심을 먹으러 식당칸에 간다. 초록눈의 여인은 키큰 남자가 빼든 책을 눈여겨 본다. 그는 빈 자리 옆에 그 책을 올려두고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도시들'이라는 책이다. 얼마 후 점심먹은 두 남자가 돌아왔지만 줄리는 없었다. 젊은 남자는 아내를 찾는다. 그를 빼고 같은 객실에 있던 모두는 알고 있다. 그녀가 어디로 누구와 함께 떠났는지를.



she thought. "I want to go there. I want to go to Vienna,to Paris, to Rome, to Athens.‘ Her green eyes were boredand angry. Through the window she watched the little villages and hills of England.- P5






Mr. Harris and the Night Train


중년의 해리스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열차를 타고 친구가 있는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점잖은 해리스는 사람이 없고 조용한 객실칸이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으려는데 젊은 남녀 승객이 그가 있는 칸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두 사람은 바로 티격태격하는 분위기다. 흥분을 가라앉힌 여성은 동생인듯한 남성에게 제발 훔쳐간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게 없어지면 목걸이를 선물한 남편이 자길 죽일거라며 두려워한다. 동생은 웃으며 자긴 돈이 없어 러시아에 가서 살려면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필요하다고 절대 돌려줄수 없다고 한다. 해리시는 그들 때문에 더이상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어느순간 여자가 긴 칼을 빼들어 동생에게 들이대며 다시 애원한다. 동생은 그런 그녀를 비웃는데 순간, 그녀는 그에게 칼을 꽂고 울부짖는다. 당황한 해리스는 객실을 빠져나와 승무원을 찾는다. 그리고 돌아와보니...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읽어보시길!



He put his book down and closed his eyes. But he couldnot sleep because the two young people didn‘t stop talking. The young woman sat down and said in a quieter voice:Carl, you‘re my brother and I love you, but please listento me. You can‘t take my diamond necklace. Give it backto me now. Please!‘- P28





객실이 있는 유럽의 열차는 무척 낭만적이다. 어떤 사람들이 내가 있는 칸에 들어오게될지 조금 두렵기도 하고 설레어하며 기대하기도 한다. 창 밖으로는 온갖 풍경이 끝없이 이어지고 침대 칸에서는 달리는 열차 안에서 쪽잠을 잘 수도 있으니 열차 여행이란 여러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도하다. 그런 낭만과 두려움을 실은 열차에서의 이야기를 잘 만들어낸 작품들이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유럽으로 횡단 열차가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러시아를 지나 프랑스까지 달리며 중간중간 식당칸이 교체되어 각 나라별 음식과 술도 맛보고 그 지역 사람들과도 이야기나누고 조용할 땐 책도 읽는 그런 날을! 








그 밖의 북웜 레벨1책들



  

  






 

부록을 안 빌린 이유는 유튭에 어지간히 있기 때문이다.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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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04 20: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거 노래 제목 있지 않나요 ㅎㅎ이거 레벨1 맞나요. 미미님 넘 대단 👍하세요. 저 막 장하다 해주고 싶은 맘 ㅎㅎ
결말 궁금해요. 막 남매가 칼춤추며 이 칼 한 번 써봐! 하면서 판매하는 ㅋㅋ 내용은 아니겠죠 ㅠㅠ

전 크록스에 수면 양말 알라딘에서 받은 보조가방, 그리고 후드 점퍼 뒤집어 쓰고 다닙니다ㅎㅎ

청아 2022-02-04 21:33   좋아요 3 | URL
계속 읽어서 미니님 칭찬 듬뿍 받고 싶어요~♡ㅎㅎ
결말에 뜨악 했기에 공개하지 않았지요! 칼춤도 괜찮은데요?ㅎㅎ

미니님도 후드!!! 수면 양말 넘 귀여워요!ㅎ 우리 나중에 만나면 다같이 후드입고 봐요!!ㅎㅎ😍

scott 2022-02-04 23:55   좋아요 3 | URL
미니님 패숀니스톼!ㅎㅎ

알라딘은 미니님에게
럭키백을 달롸!^^

건수하 2022-03-17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런 이런 시리즈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애들용 ORT는 알고 있었지만요) 테스트도 제공한다고 하네요?

집 근처 도서관에는 단 한 권도 없어서 실망… 상호대차를 이용해 빌려보겠어요 ^^

청아 2022-03-17 13:35   좋아요 0 | URL
수하님~♡ 이 시리즈 저도 뒤늦게 알았어요ㅎㅎ 특히 이 책은 강추합니다. 유튭에 검색하면 오디오 자료도 다 있어서 들으면서 읽어도 좋고 영어공부에 도움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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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thought. "I want to go there. I want to go to Vienna,
to Paris, to Rome, to Athens.‘ Her green eyes were boredand angry. Through the window she watched the littlevillages and hills of England.
- P5

I like to go south in the winter. Life is easier in the sun,
and northern Europe can get very cold in the winter. Lastyear, 1989 it was, I was in Venice for October. I did somework in a hotel for three weeks, then I began slowly tomove south. I always go by train when I can. I like trains.
You can walk about on a train, and you meet a lot ofpeople.
- P14

He put his book down and closed his eyes. But he couldnot sleep because the two young people didn‘t stop talking.
The young woman sat down and said in a quieter voice:Carl, you‘re my brother and I love you, but please listento me. You can‘t take my diamond necklace. Give it backto me now. Please!‘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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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미러링 mirroring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미러 mirror가 거울이죠. 미러링은 거울처럼 되비추겠다는 거잖아요. 어떤게 문제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내가 이렇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행동이 어떤 건지 너도 한번 당해봐. 이 입장에처해봐 그런 거죠. 모방하는 거죠. 미러링의 핵심은 모방이고, 모방을 통해서 효과를 발생시키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떤 일들이벌어지죠? 소통이 되잖아요. 소통이 된다는 건 알아듣는다는 거잖아요. 미러링이 다 옳다는 게 아니라, 알아듣게 된다는 거죠. 우리가 여성들에게 좋은 어떤 언어체계와 사유체계를 만드는 건 좋은데, 그걸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오염된 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언어체계, 전통과 문화세계가 필요한 거죠. 그걸 다 벗어던질 수도 없는 거예요.
- P43

 ‘맞다‘ 라고 생각하는 걸 의심해보는 일에서 철학이라는 작업이 시작되는데, 이런 걸 아포리아eporia 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바로 페미니즘 철학이 같은 일을 해요. 그 철학들이 기존의 남성 철학자들, 가부장제 철학에 문제가있으니까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는 거죠. 스스로를억압해온 것일 수 있는 언어들과 사상들에서 출발해 그것들을 의심해보고 길을 잃으면서 간다는 거예요. 또 그 안에서 반대만 하는 게 아니라 여성들의 언어, 여성주의 사상을 전염시켜요. 기존의 사고와 가치를 다시 철학이라는 개념으로 부수고 다시 새로운개념으로 창조하는 것들이 페미니즘 철학의 중요한 입지라는 겁니다.
- P45

페미니즘 철학은 기존 가부장제 철학에 반대하는 반反철학이거나 여자가 하는 철학이 아니고, 또 여성만을 위한 철학도 아니라는 거예요. 저는 페미니즘 철학이라는 게 여성주의적 가치에대해 질문하고 탐구해보는 철학이면서 페미니즘의 내용들과 개념들을 철학적인 개념으로 만들어보는 철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작업의 효과는 기존 철학의 주제들, 그러니까 인식론,
존재론, 윤리학 같은 것들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페미니즘 철학의 활동은 근대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 대안을 마련하려는 현대 철학과 조우하죠 - P47

현대에 들어서 포스트모던이라는 조류가 대문자 주체의죽음을 선언했죠. 더 이상 대문자 주체의 서사로는 안 되고 우리가 서 있는 이 위치에서 철학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건데, 이것과페미니즘 철학의 질문 방식과 문제의식이 서로 맞아떨어져요.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측면이 있어요. 포스트모던 철학과 여성주의철학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의 핵심은 바로 이분법에 대한 문제 제기예요. 이분법은 A와 not A로 가르는 것, 그리고 A에만 가치를주는 거죠. 대문자 주체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건 이런 이분법적방식으로만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여성주의 철학과 상통하는 지점인 거죠.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 철학이라는 건 반철학이거나 여자들이 하는 철학이거나 여성만을 위한 철학이 아니라, 철학이 나아가는 새로운 길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 P47

그래서 페미니즘 자체도 가령 가부장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만 끝나면 안 되는 거예요. ‘남자들이 여자들을 억압한다.
그 억압에서만 벗어나면 된다‘로 그칠 수 없다는 것이죠. 페미니즘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가 남자들을 미워한다는 거죠. 물론남자들을 미워하기도 하지만 개별 남자들을 다 미워하는 게 페미니즘 목표는 아니잖아요. 남성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페미니즘의근본 언어는 아니잖아요. 거기에 그쳐버린다면 페미니즘은 그저가부장제의 반反담론으로만 존재할 뿐이죠.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기존의 언어나 사유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가부장제라는 구조를 발견하고 그것을 철학적 사유로 제기했어요.
- P48

페미니즘은 자기 정의를 업데이팅하고 갱신하는 구성 활동이에요. 예전에는 철학을 인식의 활동으로만 생각했어요. 지금은 철학을 활동, 수행이라는 입장에서도 이야기해요. 의미와 실천이 함께 작동하는 어떤 과정이라는 거죠, 페미니즘이 철학적입지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건, 탈맥락적 보편이라는 말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현대 철학의 관심이 바로 페미니즘의 관심과 맞닿아있기 때문이에요. 탈맥락적인 것이 아닌, 맥락을 갖는 차별들과문제들에서 시작하는 게 페미니즘이니까요.
- P50

이제는 철학 안에서도, 우리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에서 말하고 사고하고 행위하고 있다고 해요. 철학적 사유는 그냥이야기하면 안 돼요. 내가 말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표시해야한다는 거죠.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나는 달력도 지도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페미니즘 철학도 마찬가지예요. 페미니즘 철학은 자기의 지도, 자기의시간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의 철학적 사유들은 계속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철학이 틀린지 옳은지를 다시 검증해보죠. 이게 틀린 것인지 옳은 것인지. 그리고 검증을 통해 폐기해야 할 것은 폐기하고요. 그런 과정들이 계속 있습니다.  - P51

현대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철학이 오랫동안 사유가보편적이라고 해왔지만 사실 사유 안에는 권력이 숨어 있다고들하죠. 미셸 푸코는 권력의 ‘장치‘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사유가 순수하게 시공간과 맥락을 떠난 인간 영혼의 활동, 정신의 활동인것처럼 말하지만 사유와 지식이야말로 권력과 매우 큰 관계를 맺고 있고, 이데올로기면 이데올로기, 지식이면 지식이 기존의 질서에 따라서 작동하도록 만든다고 하잖아요. 페미니즘 역시 그렇죠. 여성들의 많은 생각과 지식, 가령 ‘여성이란 어떤 존재다‘라는지식, 참되다는 지식이 가부장제 권력을 통과해서 자기의 지식이 됐다는 거예요
🍭🍭🍭 - P51

들뢰즈Gilles Deleuze 같은 사람은 철학은 생성하는 사유고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는 배움의 운동이라고 해요. 그래서 철학은 동일자를 확인하는, 즉 A는 A다‘라는 걸 확인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고 새로운 사유의 방법을 증가시키는 작업이라는 거죠. 이제 철학은 새로운 방식의 사유를 모색하는 것을뜻합니다. 
🍭🍭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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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은 통한다는 말이있다. 여기 이 소설의 두 주인공 고민중과 앤디(본명 강병균, 그의 형은 강세균)가 그 극적인 예가 될듯하다. 이름처럼 성격도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고민중,넉살좋고 성격급한 앤디. 이 둘의 여친이었던 한재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매개로 전 남친이었던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게 된다. 근육돼지(고민중의 표현)앤디는 한재연을 헬스장에서 만나 사귀었고 이 둘이 헤어진 후 출판사에서 일하던 고민중은 한재연의 소설을 계기로 연인이 된다. 한재연은 이른바 '병사'했지만 젊은 나이에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능력주의 본보기였던 집에서도 소외당한 작가지망생이자 시나리오작가였다. 죽은 후 납골당에서도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는 가여운 그녀의 유골을 어쩌다 보니 두 남자가 1주기 되던날 함께 탈취한다. 여행을 좋아하던 그녀를 자유롭고 탁트인 곳에 뿌려주기로 한 것. 여차저차 의견이 안맞아 다투면서 남해도 가고 제주도도 간다. 영화로 치면 로드무비쯤 되시겠다.


기사는 공원 입구에차를 세우고 3만 원을 불렀다. 이미 기가 꺾인 나는 뭐라 항변은 못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그에게 카드를 건넸다. 그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여기 들어오면 남는 게 없다며 다시 한 번 지역사회를 강조했다. 돌아갈 길을 생각해 그에게 미터기를 켜고 기다려달라 하려던 마음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였다. 소심하지만 뒤끝은 있는 나는 3만 원이 결제되고 돌아온 카드를 받고는 있는 힘껏 택시 문을 닫았다. 앙갚음이라도 하듯 먼지를 일으키며 택시는 사라졌다.- P14


고민중은 이런 캐릭터다. 동네 주민이 그 거리는 2만원이라고 알려줬는데도 택시기사의 바가지에 대꾸한번 제대로 못한다. 요즘은 왠만해서 카*오 택시등이 있어 바가지 걱정이 없지만 아무리 시골이라도 택시타기전에 00까지 가는데 얼마냐고 물어보면 되는데 왜 그말을 못하고 그냥 타느냔 말이지. 이 대목 읽는데 답답해서 혼났다. 그런 그는 오죽할까? 내내 이런 식인데 의외로 재미지다. 반면 한덩치 하는 앤디는 단순하긴 한데 결단력이 있다. 고민중도 앤디도 각자 지닌 성격탓에 나름의 삶의 역경과 희극이 있다. 두 사람은 재연이라는 죽은 여자친구 때문에 '연적'으로 아웅다웅하면서도 서로의 영향을 받고 조금씩 변화된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에 군불로 방이 덮혀지듯 우정을 점점 키워나간다. 



"아따. 이모, 여전하요?" "나가 바빠 와볼 새가 없었구먼요. 내려오면 볼쎄 들러부렀지."
"거시기, 잘 있지요잉?" 앤디의 사투리가 짙어지고 있었다. 나는 몰리는 관심과 그에 따른앤디의 오지랖이 심히 부담스러운 나머지 1미터 정도 그에게서 떨어져 걸어가야 했다.- P101



두 사람의 로드 무비가 끝날때쯤 새로운 문제 하나가 드러난다. 문학,예술계의 고질적인 병폐. 과거 영화 시나리오를 준배하던 재연에게는 지도를 해주던 선배가 있었다. 그는 재연이 죽은 것을 알고 즉시 그녀의 작품을 자기 것인양 영화 시나리오로 내놓았는데 대박을 친다. 소심한 고민중과 병균은 다시한번 의기투합한다. 이 책을 펼치고부터 끝까지 거의 쉴틈없이 읽어냈던 것 같다. 두 남자의 유치한 실랑이부터 과거로 한번씩 돌아가 재연과 고민중의 만남에 대한 묘사까지 지루할새 없이 이어진다. 김호연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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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씨 2022-02-03 15: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연적> 읽으면서 이 작가님을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
일부러 작품 찾아서 읽고 싶을 정도로 애정이 생긴 작가님이시네요.
이제 <망원동 브라더스>만 읽으면 되는데, 왜 자꾸 미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청아 2022-02-03 15:49   좋아요 3 | URL
저도요! <망원동 브라더스>도 궁금하고 연극도 보고싶어요.ㅎㅎ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작가님 책인걸 오늘 알았네요.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페넬로페 2022-02-03 16: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연적‘, 이 책 넘 재미있겠어요. 설정이 어이없기도 하면서도 매력있어요. 인생은 언제나 그럴수도 있는 일이 많으니까요.
저는 최근에 김호연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소설쓰기 전에 시나리오도 쓰고 출판사에서 일도 해서 내공을 많이 쌓은 작가더라고요~~

청아 2022-02-03 17:16   좋아요 4 | URL
설정 어이가없죠?ㅎㅎ 피식피식 웃게하는 지점이 많아서 가볍게 후후룩 읽어보실만 해요!
아~어쩐지 주인공 ‘고민중‘이
작가님 같더라구요^^*

coolcat329 2022-02-03 16: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불편한 편의점 빌려놨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저도 이 분 작품 다 읽어보고 싶어요.

청아 2022-02-03 17:18   좋아요 3 | URL
망원동 브라더스 올리려다보니 <불편한 편의점>도 이분 책이네요!ㅋㅋㅋ쿨캣님의 <불편한 편의점> 리뷰 기다려집니다^^*

mini74 2022-02-03 17: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뭔가 찌질한 것이 ㅎㅎ 홍상수 감독 영화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 이름에서 뭔가 캐릭터 성격이 느껴져요 ~ 이 작가분 재미있나봐요. 미미님이 좋다시니 저도 관심이 ~ ㅎㅎ

청아 2022-02-03 18:22   좋아요 4 | URL
네!ㅎㅎ찌질함의 연속이예요ㅎ 계산 먼저 안하려고 신발끈잡는것도 있구요. 막판 테러?는 잊을수가 없네요. 미니님 금방 읽으실거예요^^*

새파랑 2022-02-03 18: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예전에도 리뷰 봤었는데 재미있어 보이더라구요. 미미님도 재미있게 읽으셨군요. 왜 함께 유골을 가지고 도망갔는지도 궁금하네요 ~!!

청아 2022-02-03 18:25   좋아요 2 | URL
가족들이 안찾았는지 유독 그녀 자리가 썰렁했어요. 그래서 1주기때 두 남자가 유골을 훔쳐서 그녀가 좋아하던 곳에 뿌려주려고 해요.^^* 그래서 여수도 가고 제주도 가고!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2-03 2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불편한 편의점 작가로군요?
불편한 편의점 재밌다고 코난님이 그러시던데..이 책도 재밌나 보군요?
재밌는 책 넘 좋은데~^^

청아 2022-02-03 20:52   좋아요 1 | URL
네ㅋㅋㅋ 저도 이번에 알았어요. 나머지 책들도 차례대로 읽어보려고요. 나무님도 후루룩 쩝쩝 읽어보세요^^*

물감 2022-02-03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읽으셨군요, 제가 다 뿌듯합니다ㅎㅎ 작가님은 지금 부지런히 차기작을 준비중이시랍니다🙂

청아 2022-02-03 22:06   좋아요 3 | URL
초반 읽기 시작하자마자 작가의 다른 책들도 봐야지 마음 먹었어요ㅎㅎ다 읽고 나서는 물감님,레삭매냐님 리뷰도 다시 찾아봤고요😄

그레이스 2022-02-03 2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망원동 브라더스 재밌다던데 읽고 싶네요
불편한 편의점은 갖고 있어요^^

청아 2022-02-03 22:19   좋아요 3 | URL
저도요! <불편한 편의점>도 재미있을것 같아요 피식피식 웃다가 두번 울었어요 묘한 매력이 있네요^^*

scott 2022-02-04 00: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수 ! 제주도!
로드 무비 처럼 전개 되네요

미미님의 연적은 ???

알라딘 중고 알리미 ㅎㅎㅎㅎ

청아 2022-02-04 09:34   좋아요 3 | URL
헉!! 스콧님 넘 핵심을 찌르셨어요ㅎㅎㅎㅎ
안그래도 이번달 구매안할껀데 알림 올까봐
떨고 있지요🤭
 

생각이 많으면 소심해진다. 아니 소심해서 생각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 P9

기사는 공원 입구에차를 세우고 3만 원을 불렀다. 이미 기가 꺾인 나는 뭐라 항변은 못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그에게 카드를 건넸다. 그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여기 들어오면 남는 게 없다며 다시 한 번 지역사회를 강조했다.
돌아갈 길을 생각해 그에게 미터기를 켜고 기다려달라 하려던 마음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였다. 소심하지만 뒤끝은 있는 나는 3만 원이 결제되고 돌아온 카드를 받고는 있는 힘껏 택시 문을 닫았다.
앙갚음이라도 하듯 먼지를 일으키며 택시는 사라졌다.
- P14

일주일 뒤 회사 앞 카페에서 그녀와만났다.
화사한 꽃무늬 남방에 청바지를 입은, 작은 얼굴에 보조개를 파며인사하는 그녀의 첫인상은 충분히 의외였다. 스모키 화장에 고스 롤리 복장을 즐기는 소설 속 여주인공을 떠올려왔기에, 저자의 완전히다른 스타일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P22

애써 호감을 감추긴 했지만 문제는 그녀가 가고 나서였다. 다음 주에 그녀를 만날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단정한 이목구비와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옷차림, 그리고 그런 외모와는 상반되게 거침없는 호흡과 도발적인 상상력을 보이는 그녀의 작품도 좋았다. 그부조화가 신선했고 과연 그녀의 어디에서 그런 이야기가 튀어나왔는지도 궁금해졌다.
- P23

그녀는 잔을 비우고 반찬으로 나온 생오이를 손으로 집어 먹었다.그 모습이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처럼 예뻐 보였다
- P24

"다 내 잘못이죠. 내가 잘못해서 재연이가 이렇게 된 거라고요. 다나 때문이라고요."
놈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과속방지턱을 지나며 차가 덜컹댔다.
덩달아 내 감정도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진짜 내가 신경을 썼으면 이럴 일 없었는데……. 진짜 내가 상병신이지 뭡니까. 다 내 잘못입니다."
"제 잘못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자책에도 경쟁심이 있나 보다.
"아닙니다. 당신보다 내가 더 문제였어요. 내가 더 재연일 힘들게했어요."
- P30

민망한 미소와 함께 혀를 쏙 내밀며 그녀가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이대로 그녀를 보내기가 싫어졌다.
뭐 하나 제대로 결정 못하는 나였지만 그때는 결정하고 자시고도 할거 없이, 방언 터지듯 말이 튀어나왔다.
"좋은 날이니까 우리 한잔 더 할까요? 제가 살게요."
"아뇨."
그녀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심장이 덜컹 멎었다.
"택시비 내실 거잖아요. 술은 제가 살게요."
못 들은 척 우리의 대화를 듣던 택시기사가 허허, 하고 웃음을 흘렸다.
- P39

"예. 그때 제 유일한 위안은 남자친구를 만나 개 자취방에서 요리해먹고 〈무한도전〉 같이 보며 지내는 거였어요. 둘 다 넉넉지 못해도 음식 사서 해 먹으면 싸거든요. 그리고 한강 같은 데 산책하며 데이트하면 돈도 안 들고….….. 아무튼 그 친구가 취업만 되면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게 하려고 했어요. 번듯한 남자친구가 있으면 더 이상 선을 보라고도 하지 않겠지, 라고 생각했죠.  - P41

"마음을 독하게 먹고 집에 들어갔어요. 아무것도 부모님께 묻지도따지지도 않았어요. 그러곤 독립을 준비했어요. 스스로 사는 법, 혼자살 공간, 나만의 일, 그런 걸 위해 부모님 말에 복종하며 살았어요. 월급을 모으고, 선보라고 하면 옷을 사 입는다는 핑계로 돈을 받아 모으고, 선은 보지만 계속 거절을 하면서 시간을 벌었어요. 부모님과 함께저녁을 먹기 싫어 일부러 야근을 하고, 아니면 극장에서 시간을 때우다 들어갔어요. 그거 알아요? 비교적 싸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곳이야구장과 극장이라는 거? 
(도서관도 있는데ㅋ) - P42

영화를 보며 늦게야 깨달았어요. 말하자면 영화가 제 스승이었던 거죠."
"그중에서 특히 좋았던 영화는 뭐가 있어요?"
"미스 리틀 선샤인>? 그거 알아요?"
"잘 모르겠는데요."
"거기에 엉망진창 가족이 나와요. 근데 그들은 서로 구제불능이란걸 알기에 한편이 돼요. 우리 집과는 정반대죠. 누군가 못나게 굴면 우리 집에선 추방될 거예요."
- P43

먼저 식사를 마친 놈이 카운터로 향했다. 밥값을 계산하려는 건가?
보쌈을 추가로 시킨 건 녀석이니 녀석이 내려는가 보다. 나로서는 생큐다. 근데 아니다. 놈은 카운터에 놓인 녹말이쑤시개를 집어 들고 문옆 커피 자판기로 향했다. 그럼 그렇지. 덩치만 큰 좀생이 녀석 같으니라고. - P53

내가 신발을 신으며 시간을 끌자 놈이 계산을 했다. 쌤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놈이 가게에서 나오며 길 건너 모텔의 네온사인을 향해 턱짓을 했다.
"밥은 내가 샀으니 모델비는 형씨가 내쇼."
내가 어처구니없어 하자 놈이 덧붙였다.
"상행선인지 하행선인지 결판이 안 나는데 어딜 가. 가서 끝장날 때까지 따져보자고."
- P55

노래를 따라 부르던 녀석이 휴게소 표지판을 보고 기성을 지른다.
마치 밥그릇을 맞이하는 개처럼 좋아한다. 짐승 같은 놈,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놈을 더 볼 이유도 없다. 조금만 참자. 하지만 그러려면 목줄 정도는 채워야 하겠다.
- P65

재연과 함께 떠난 첫 여행지가 남해였다.
그녀는 바다와 산이 겸비된 곳을 사랑했다. 설악산에 오르고 미시령을 넘어 속초에 내려가 1박을 하고, 강화도에 갔다가 마니산에 오르고, 그렇게 산과 바다를 한꺼번에 섭렵할 수 있는 곳을 좋아한다고내게 말했었다. 그것이 힌트가 되어서 나는 그녀에게 남해를 여행지로 제안했다.
- P72

"아따. 이모, 여전하요?"
"나가 바빠 와볼 새가 없었구먼요. 내려오면 볼쎄 들러부렀지."
"거시기, 잘 있지요잉?"
앤디의 사투리가 짙어지고 있었다. 나는 몰리는 관심과 그에 따른앤디의 오지랖이 심히 부담스러운 나머지 1미터 정도 그에게서 떨어져 걸어가야 했다.
- P101

"여그 누가 왔는지 나와봐라."
그러자 식당 안쪽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던 30대 후반의 여자가앤디를 보고는 놀라서 일어났다. 여자는 집 나간 개라도 본 듯 급히슬리퍼를 신고 앤디에게 다가왔다.
"도련님, 갑자기 뭔 일이다요!"
(집 나간 개ㅋ) - P102

놈의 등판을 보고 달리며 방금 전 상황을 복기했다. 아까의 사내는앤디의 친형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앤디는 집에 민폐를 끼친 동생인것이고…. 근데 강병균이라고? 앤디가 왜 영어 이름을 쓰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 P105

"아따. 인나라, 제주 안 갈 거나?"
숙취에 골골대는 나를 앤디가 깨웠다. 아침 일곱시였다. 비행기 놓친다며 녀석이 반말로 재촉해댔다. 지난밤 말을 트기로 한 게 떠올랐다. 반말로 전라도 사투리를 들으니 좀 함부로 대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녀석이 고향을 뜨는 대로 사투리를 자제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 P122

나도 울고 있었다. 휴지로 눈물을 닦아도 곧 또 젖어들었다. 코도나와 풀어야 했다. 반면 그녀는 오래 준비된 변론을 마친 변호사처럼침착하게 자리를 정리했다. 카페 구석에 앉은 우리 둘은 이별을 나누며 감정이 폭발한 연인의 클리셰였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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