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미러링 mirroring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미러 mirror가 거울이죠. 미러링은 거울처럼 되비추겠다는 거잖아요. 어떤게 문제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내가 이렇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행동이 어떤 건지 너도 한번 당해봐. 이 입장에처해봐 그런 거죠. 모방하는 거죠. 미러링의 핵심은 모방이고, 모방을 통해서 효과를 발생시키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떤 일들이벌어지죠? 소통이 되잖아요. 소통이 된다는 건 알아듣는다는 거잖아요. 미러링이 다 옳다는 게 아니라, 알아듣게 된다는 거죠. 우리가 여성들에게 좋은 어떤 언어체계와 사유체계를 만드는 건 좋은데, 그걸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오염된 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언어체계, 전통과 문화세계가 필요한 거죠. 그걸 다 벗어던질 수도 없는 거예요.
- P43

 ‘맞다‘ 라고 생각하는 걸 의심해보는 일에서 철학이라는 작업이 시작되는데, 이런 걸 아포리아eporia 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바로 페미니즘 철학이 같은 일을 해요. 그 철학들이 기존의 남성 철학자들, 가부장제 철학에 문제가있으니까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는 거죠. 스스로를억압해온 것일 수 있는 언어들과 사상들에서 출발해 그것들을 의심해보고 길을 잃으면서 간다는 거예요. 또 그 안에서 반대만 하는 게 아니라 여성들의 언어, 여성주의 사상을 전염시켜요. 기존의 사고와 가치를 다시 철학이라는 개념으로 부수고 다시 새로운개념으로 창조하는 것들이 페미니즘 철학의 중요한 입지라는 겁니다.
- P45

페미니즘 철학은 기존 가부장제 철학에 반대하는 반反철학이거나 여자가 하는 철학이 아니고, 또 여성만을 위한 철학도 아니라는 거예요. 저는 페미니즘 철학이라는 게 여성주의적 가치에대해 질문하고 탐구해보는 철학이면서 페미니즘의 내용들과 개념들을 철학적인 개념으로 만들어보는 철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작업의 효과는 기존 철학의 주제들, 그러니까 인식론,
존재론, 윤리학 같은 것들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페미니즘 철학의 활동은 근대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 대안을 마련하려는 현대 철학과 조우하죠 - P47

현대에 들어서 포스트모던이라는 조류가 대문자 주체의죽음을 선언했죠. 더 이상 대문자 주체의 서사로는 안 되고 우리가 서 있는 이 위치에서 철학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건데, 이것과페미니즘 철학의 질문 방식과 문제의식이 서로 맞아떨어져요.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측면이 있어요. 포스트모던 철학과 여성주의철학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의 핵심은 바로 이분법에 대한 문제 제기예요. 이분법은 A와 not A로 가르는 것, 그리고 A에만 가치를주는 거죠. 대문자 주체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건 이런 이분법적방식으로만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여성주의 철학과 상통하는 지점인 거죠.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 철학이라는 건 반철학이거나 여자들이 하는 철학이거나 여성만을 위한 철학이 아니라, 철학이 나아가는 새로운 길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 P47

그래서 페미니즘 자체도 가령 가부장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만 끝나면 안 되는 거예요. ‘남자들이 여자들을 억압한다.
그 억압에서만 벗어나면 된다‘로 그칠 수 없다는 것이죠. 페미니즘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가 남자들을 미워한다는 거죠. 물론남자들을 미워하기도 하지만 개별 남자들을 다 미워하는 게 페미니즘 목표는 아니잖아요. 남성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페미니즘의근본 언어는 아니잖아요. 거기에 그쳐버린다면 페미니즘은 그저가부장제의 반反담론으로만 존재할 뿐이죠.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기존의 언어나 사유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가부장제라는 구조를 발견하고 그것을 철학적 사유로 제기했어요.
- P48

페미니즘은 자기 정의를 업데이팅하고 갱신하는 구성 활동이에요. 예전에는 철학을 인식의 활동으로만 생각했어요. 지금은 철학을 활동, 수행이라는 입장에서도 이야기해요. 의미와 실천이 함께 작동하는 어떤 과정이라는 거죠, 페미니즘이 철학적입지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건, 탈맥락적 보편이라는 말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현대 철학의 관심이 바로 페미니즘의 관심과 맞닿아있기 때문이에요. 탈맥락적인 것이 아닌, 맥락을 갖는 차별들과문제들에서 시작하는 게 페미니즘이니까요.
- P50

이제는 철학 안에서도, 우리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에서 말하고 사고하고 행위하고 있다고 해요. 철학적 사유는 그냥이야기하면 안 돼요. 내가 말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표시해야한다는 거죠.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나는 달력도 지도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페미니즘 철학도 마찬가지예요. 페미니즘 철학은 자기의 지도, 자기의시간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의 철학적 사유들은 계속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철학이 틀린지 옳은지를 다시 검증해보죠. 이게 틀린 것인지 옳은 것인지. 그리고 검증을 통해 폐기해야 할 것은 폐기하고요. 그런 과정들이 계속 있습니다.  - P51

현대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철학이 오랫동안 사유가보편적이라고 해왔지만 사실 사유 안에는 권력이 숨어 있다고들하죠. 미셸 푸코는 권력의 ‘장치‘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사유가 순수하게 시공간과 맥락을 떠난 인간 영혼의 활동, 정신의 활동인것처럼 말하지만 사유와 지식이야말로 권력과 매우 큰 관계를 맺고 있고, 이데올로기면 이데올로기, 지식이면 지식이 기존의 질서에 따라서 작동하도록 만든다고 하잖아요. 페미니즘 역시 그렇죠. 여성들의 많은 생각과 지식, 가령 ‘여성이란 어떤 존재다‘라는지식, 참되다는 지식이 가부장제 권력을 통과해서 자기의 지식이 됐다는 거예요
🍭🍭🍭 - P51

들뢰즈Gilles Deleuze 같은 사람은 철학은 생성하는 사유고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는 배움의 운동이라고 해요. 그래서 철학은 동일자를 확인하는, 즉 A는 A다‘라는 걸 확인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고 새로운 사유의 방법을 증가시키는 작업이라는 거죠. 이제 철학은 새로운 방식의 사유를 모색하는 것을뜻합니다. 
🍭🍭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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