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퓌스 드라마가 희극이었다는 사실은 오로지 그 마지막 장에서분명해진다. 분열된 국가를 일치단결시키고 의회를 재심 찬성의 방향으로 변화시켰으며 결국 극우에서 사회주의자에 이르는 완전히 이질적인 집단을 화해시키도록 도와준 신은 바로 1900년의 파리 박람회였다.
신문에 매일 실리는 클레망소의 사설이나 졸라의 파토스, 조레스의 연설이나 성직자와 귀족에 대한 대중의 증오도 이루지 못했던 일, 다시말해 의회의 정서를 드레퓌스에게 유리하도록 변화시킨 것은 결국 박람회가 보이콧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1년 전 만장일치로재심을 기각했던 의회가 이제 3분의 2의 찬성으로 반드레퓌스적인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1899년 7월 발테크-루소 내각이 권력을 장악한다. 대통령 루베(Loubet)는 드레퓌스 사면시키고사건을 완전히 종결시킨다.  - P261

졸라는 이렇게 썼다.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명예로운 사람과 폭력배를 악취 나는 사면으로 일괄 처리한 것이다. 모든 게 한 단지 속에 던져졌다." - P262

1884년에서 1914년에 이르는 30년은 아프리카 쟁탈과 범운동의 탄생으로 끝난 19세기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시작된 20세기를 갈라놓는분기점이다. 이 30여 년은 제국주의 시대인데, 이때 제국주의는 유럽에서 정체되어 있었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숨가쁘게 전개되었다. 이 시기의 근본 양상 중 몇 가지는 20세기의 전체주의 현상과 너무나 유사해 보이기 때문에 이 시기 전체를 다가오는 대재난의 예비 단계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이 시기는 그 평온함 때문에여전히 19세기의 일부로 보인다.  - P267

프랑스의 국기 아래 유럽을 통합하고자 했던 나폴레옹의 실패는 한국가에 의한 정복은 피정복 민족의 민족의식을 일깨워 정복자에 대한반란을 유발하거나 전제정치를 낳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전제정치는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민족의 지배에는 성공할지모르지만, 자국민의 국가 제도를 파괴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 P275

푸앵카레가 1923년에 한 유명한 말, "프랑스는 4000만의 나라가 아니라1억의 나라이다"는 "대량생산 방식으로 산출된 경제적 형태의 군대의 발견을 지적한다.  - P276

홉스의 ‘리바이어던와 관련하여 개인의나타나는 정치 이론에 따르면 국가는 공무와 관련하여 개인의이익이 옳은가 아니면 그른가를 결정하는 구성법ㅡ신의 법이든 자연법이든 또는 사회계약법이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 자체에 근거하므로 "사적 이익은 공적 이익과같다"  - P290

공적이고 국가적인 삶은 개인에게 필연성을 가장하고 나타나며, 개인은 정치 권리를 박탈당하고 점차 자신의 사생활과 개인적 운명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관심은 점점 더 커져간다. 개인은 모든 시민이 연관된 공적인 일을 관리할 수 있는 기회로부터 배제되었기 때문에, 사회 내의 적법한 자기 자리를 잃고 또 동료와의 자연적 관계를 상실한다. 그는 이제 자신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과비교함으로써만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사회 안에서 동료와의 관계는 경쟁의 형태를 띠게 된다. 필연성을 가장한 국가가 공무를 조정하자마자, 경쟁자의 사회적 또는 국가적 경력은 기회의 통제 하에 들어온다. 각자가 천부적으로 권력에 대한 동등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상대방의 공격에 대한 보호를 국가로부터 동등하게 받는 개인의 사회에서는 오로지 기회만이 누가 성공할 것인지 결정한다.  - P293

행운은 명예와불운은 수치와 동일시된다. 개인은 국가에게 자신의 정치 권리를 넘기면서 자신의 사회 책임도 국가에 위임한다. 즉 그는 범죄자로부터 보호해달라고 국가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야 하는짐으로부터도 면제해달라고 요구한다. 빈곤자와 범죄자 간의 차이는사라진다 이 둘은 모두 사회 밖에 있다. 실패한 사람들은 고대 문명이 그들에게 남겨두었던 미덕을 빼앗긴다. - P294

자본의 무한한 축적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권력의 무한한 축적 과정은 19세기 후반의 ‘진보적‘ 이데올로기를 결정했으며 제국주의의 부상의 전조가 되었다.  - P2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정한 자기 수련이란 인간의 본질적인 핵심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우리의 정체성에 계속해서 새로운 면모를 더해 가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 주장은 자아란 우리의 소유물(또는 성취)이 아니라, 타인을 포함하여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으며 서서히 형성해 나가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 P10

나는 인간의 욕망에는 놀랄 만한 특수성이 있으며 바로 이 특수성이 우리가가진 기질을 현실에서 발휘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뒷받침해 준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이 특수성을 욕망의 "진실"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우리가이 특수성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의 기질과도 더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우리가 이 특수성을 충실히 따른다면 우리의 기질을 억압하려는 지배적인 사회적 규범에 더제대로 저항할 수 있다. - P11

내 연구 분야인 동시대 이론 사상가들은 이론의 난해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 사상가들은 이 난해함을 그 자체로서 또 다른 이론적인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미는 투명하고 처리되기 쉬워야 한다는 생각에 분개한다. 그래서 그들은 독자들이 의미가 명백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와 씨름하게 일부러 표면적인 내용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텍스트들을 만들어 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사용해 온 렌즈를 거부하고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렌즈, 즉 획기적인 관점과 획기적인 관점을 위한 렌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런 의도적인 텍스트의 불분명함에는 일종의 윤리가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태도를 마음 깊이 존경한다. 하지만 수사적으로 대단히 난해한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이 실제로는 전혀 어려운 개념이아니라는 사실을 난해함으로 가린다는 점에 나는 점점 짜증이 난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읽고 있는 300쪽에 달하는고통스러운 내용의 책이 25쪽 분량의 간단명료한 글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 느낄 때, 나는 내 안에서 분노가 치미는것을 경험한다. 내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여러 동기 중 하나가 바로 이 분노다. 또한 이것이 부분적으로 왜 내가 이러한 수사적 선택을 취했는지 설명해 줄 것이다. - P12

욕망은 우리 삶의 의미를 유연하게 하며 삶이 열린 결말을 유지하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가 상실과 박탈을 경험하며 욕망이 항상 독특한 방식으로 발생하는 한, 욕망은 지배적인 사회적 가치와는 상당히 다른 새로운 행동 규범을 낳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행동을 제한하려 드는 문화에저항할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 욕망이 지닌 특수성이 활성화되면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욕망할 거라고기대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대신 자신의 욕망이 내리는수수께끼 같은 지시에 순종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 P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회문제에서 옳고 그름은 형식논리라는 진공상태에서만 판단될 수 없다. 메시지는 언제나 맥락 의존적이며 맥락의 결정적 요소는 권력관계다."(박권일) "정치와 운동과 거기 참여하는 취약한 개개인들 사이의 관계는 모순적이다. 즉 위선과 모순은 어떤 본질적이고 실존적인 필연일지 모른다. - P21

나는 나 혼자 뭔가 읽었다고 해서, 그리고 혼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자랑도 아니고 기쁨도 아니라는 사실을 책을 만들면서 배웠다. 책이란 독자에게 다가가지 않는 한, 때로 존재만으로는 인정받지못한다. 널리 읽히지 않으면 그게 곧 실패를 뜻할 수도있는 것이 책의 속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책은 언제나 ‘나만 알고 나만 읽자‘고 내는 것이 아니다. 이 일은더욱더 많은 이들과 읽고 싶다, 읽어주기를 바란다는 바람 없이는 할 수 없다. - P24

일상에서 사람들에게크게 영향을 미치면서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는 마케팅용 글의 가격은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 매우 높아졌으며, 그에 반해 왜 안 읽느냐고 타박하는 어떤 종류의 글은 대체로 가격은 말할 필요도 없고 위신조차 크게떨어진 상황이라고 보아도 좋다. - P34

사람들이 어떤 상품에 관심이 있어서 몰입할 경우,
그 상품과 관련된 전문 용어를 익히고 구사하게 된다는사실을 앞에서 이야기했다. 용어 습득에는 ‘관심‘과 ‘몰입‘이 중요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뉴스에 나오는 저 어려운 용어들을 이해하고 구사하는 데도 역시 관심과 몰입이 중요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용어들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몰입하게 할 보편적인 교육 환경은 내가 알기로는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러나 낯설고 어려운 용어들이 누구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매체‘에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이 상황은 명백히 비대칭적이며, 도무지 수평을 찾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대칭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 P42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2-10-07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모랄까,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네요.

미미 2022-10-07 18:21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을 합니다. 행동과 실천없이는 부질없는 메아리같아요.

바람돌이 2022-10-07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요즘 이 책 또 많이 읽으시네요. 급궁금해집니다. ^^

미미 2022-10-07 23:07   좋아요 3 | URL
필요 이상으로 너무 어렵게 쓰여진 글들이 있잖아요?(심지어 학술서가 아닌 때에도) 그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어요.^^* 평소 문제라고 생각하던건데 공쟝쟝님 글 보고 대출해옴요.

공쟝쟝 2022-10-10 12:10   좋아요 3 | URL
아, 나란 얼마나 훌륭한(?) 책 팔이인가... ㅋㅋㅋㅋ 아무래도 재능있는 것 같죠? ㅋㅋ 책팔이에?ㅋㅋㅋ

미미 2022-10-10 12:17   좋아요 3 | URL
그럼요 재능 만땅 있습니다(인증!)저 읽을 책이 잔뜩 밀렸었는데 바로 달려가게만든ㅋㅋㅋㅋ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이런 무관심한 분위기에서 노동자를 떼낸 최초의 인물은 국민의 열렬한 사랑을 받던 에밀 졸라였다. 그러나 유명한공화국에 대한 고발장에서 그는 정확한 정치적 사실들을 비껴가면서
‘비밀 로마‘라는 유령을 불러냄으로써 폭민의 열정에 굴복한 최초의 인물이다. 이것은 조레스가 열렬히 수용한 반면, 클레망소는 마지못해 받아들인 태도였다. 그의 팸플릿에서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졸라의 진정한 업적은 의연한 불굴의 용기에 있다. 삶과 활동을 통해 국민을 ‘우상숭배의 경계‘ 지점까지 찬양했던 이 사람은 이런 용기를 가지고 대중에게 도전하고 투쟁하고 마침내 대중을 정복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것이다. 그러나 클레망소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내내 대중 가운데에서국민과 폭민을 구분하지 못했다. "가장 막강한 군주에게 저항하고 그들에게 허리를 굽히기를 거부할 사람들은 많지만, 군중에게 저항하고잘못 인도된 대중 앞에 혼자 일어나서, ‘예‘가 요구될 때 감히 ‘아니오‘
라고 말하기 위해 무기도 없이 팔짱을 낀 채 달래기 힘든 그들의 격분과 대면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사람이 졸라였다!"82) - P253

프랑스 가톨릭 교도의 태도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 세계 가톨릭
"88)언론이 일치단결하여 드레퓌스에 반대한 사실이다. "이 모든 언론인은상급자의 명령에 따라 행진했고 여전히 행진하고 있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프랑스의 유대인 반대 선동이 국제 노선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심지어 ‘시빌타 카톨리카』는 유대인들이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등 모든 나라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천명했다.  - P25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10-07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07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2-10-07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팟캐에서 들었는데,
뒤레퓌스 사건의 진범은 결국
처벌 받지 않았다고 하네요.

뒤레퓌스도 무죄 선고 받은 게
아니라 일단 유죄 선고를 받고
공화국 대통령이 사면하는 방
식으로 적당히 타협되었다고
하는 걸 듣고, 진실의 승리가 얼
마나 어려운 지 다시 한 번 깨닫
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뿌리 깊은 안티세미티즘
은 정말 노답입니다.

미미 2022-10-07 18:28   좋아요 2 | URL
그렇죠! 뒤레퓌스 사건이 이렇게나 오래 이어지고 많은 것들이 얽혀있다는걸 이제야 좀 알게 되었어요.

전에 소설 읽다가 관련되어 대충 찾아보고 뒤레퓌스의 명예가 결국은 회복된줄 알았는데
이 책에서 보고 놀랐습니다.

뿌리깊은 인식이 참 무섭다고 새삼 느껴요.
 

만약 우리가 반유대주의의 역사를 하나의 실체이자 단순한 정치 운동으로 생각한다면, ‘일반 유대인‘, ‘어디에나 있으며 아무데도 없는 유대인‘에 대한 추적 열풍은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정치사나 경제사에서 설명하지 못하고 사건의 표면 아래 감추어진 사회적 요소를 역사가가 인식했던 적은 없다. 단지 (사회가 자신의 삶에 대한 변론의 절망적인 고독과 외로움 속으로 추방한 사람들인) 시인이나 소설가의 예리하고 열정적인 힘에 의해 기록되었을 뿐이다. 만약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면 단순한 정치적 반유대주의가 걸어갔을 진로, 즉 반유대인법령이나 대중의 폭발로 귀결되었을 뿐 결코 대량학살로 끝나지 않았을 그런 진로를 바꾼 것은 바로 이런 사회적 요소였다. - P213

특별 사면을 받은 지 9년, 무죄 선고를 받은 지2년이 지난 1908년 말 클레망소의 간청으로 에밀 졸라의 시신이 판테온으로 옮겨졌을 때,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파리 법정은 가해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드레퓌스의 무죄 결정에 대한 ‘반대‘ 입장을 암시적으로 표현했다.(...)1935년 드레퓌스가죽었을 때, 일반 언론은 이 사건을 다루기를 두려워한 반면 좌파 신문은 구태의연한 말로 여전히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했고 우익 신문은드레퓌스의 유죄를 주장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오늘날에도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정치에서 일종의 암호이다.  - P2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