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 교수 제데다이아 퍼디의 말대로, 규범은 죽은 지도자의 동상 같은 것이다. 그가 어떤 가치를 수호하는지 모른다면 찬성해야할지 반대해야 할지 알 수 없다.13 우리는 규칙과 규범 너머 그것을 작동하게하는 원칙, 혹은 과거 정치 사상가들의 표현대로 그 뒤에 숨은 ‘정신‘
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권위주의적인 인물 때문에 중단된 게임을 재개하려면 규칙 준수를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늘 똑같은 엘리트들이 번갈아가며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의의는아닐 것이다.  - P17

기저에 깔린 원칙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규칙을 깨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때로는 그 게임 자체를 보존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민주주의 유지와 심화에 필요한 불복종을 행하기도 한다. 회의적으로 보면 이런 불복종은 무정부 상태나 권위주의로 가는 길이다. 무정부 상태를 일정 기간 이상 버텨낸 사회는 없기 때문이다(플라톤 이래 민주주의를 비판해온 모든 이들 역시 "너무 많은 자유가 독재를 불러온다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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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을지는 더더욱 모른다.  - P136

과거를 머릿속에서 되돌리는 이유는 우리가 실제로는 과거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다시한번 말하지만,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시와 소설은 이 당연한 전제를 시험하면서 시쳇말로 과거는 정말로 과거인지 묻는다. - P142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진짜 드라마를 경험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늙어간다. 그것이, 오직 그것만이우리가 늙는 이유다. 우리 얼굴의 주름은 우리를 찾아온위대한 열정, 악, 통찰이 남긴 기록이다. 그러나 주인인 우리는 집에 없었다. 

ㅡ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프루스트의 이미지 The Image of Proust」 - P148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력을 유독 자극하는 직업이 있다. 앞서 작가와 영화감독이 그런 직업이라고 말했는데, 법조인도 그중하나다. 

용의자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여러 대안을 제시해 의뢰인에 대한 기소 주장에 의심의 여지를 부여한다. 내 의뢰인이이런 행동을 했고,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가능성들도 있다는 식이다. 예컨대 내 의뢰인은 그 시각 다른곳에 있었다거나 범죄에 사용된 무기가 다른 것이었다거나 더 그럴듯한 범행동기를 지닌 다른 용의자가 있다거나....

찰스 디킨스가 살지 않은 삶에 집착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자신의 소설에 변호사를 그토록 자주 등장시킨 것도 이해가 된다. 위대한유산』에서 재거스 씨는 소설이 한창일 때 법정에 등장해 자신의의뢰인들을 위해 다른 과거들을 상상해내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발휘한다. 그는 이야기꾼이다.
- P164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면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거나, 어느쪽이든 후회할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음울한 유머는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짓밟힌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인 토머스 하디라는 맞수를 만난다. 하디의 시들은 가능하지 않을 법한 실패들을모아놓은 호기심의 방이다. - P175

" 매기 넬슨Maggie Nelson 이 말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동시에 아이를 안아줄 수 없다." 그녀가 쓴 모든 문장은, 내가 읽는 그녀의 모든 문장은 그녀가 아이를 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암묵적으로 전달한다. 결과물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바로 내려놓기인 듯하다. (넬슨의 저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내 책을 한 줄로 요약했다고 느꼈다.) - P186

지금 여기, 흑인 여자에게 보내는 허구의 편지를 읽는 백인 남자인 내가 있다. 나는그녀와 마찬가지로 편지를 읽는다. 휴스는 우리에게 같은 편지를읽게 함으로써 한자리에 모이게 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추상화함으로써 글쓰기는 내가 다른 모든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 수 있게 한다. 내가 모든 작가, 모든 독자의 혈족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내가 피부색의 경계를 뛰어넘고, 이 흑인 여성의 입장이되었다고 믿을 수 있다. 휴스의 소설 속 아이러니가 날린 결정타는 방향을 돌려 나를 향해 돌진한다. - P189

성경이 펼치는 고집스러운 주장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들은 모든 사랑노래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진정한 의미에서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은유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자녀는, 우리가 낳은 자녀, 우리가 낳지 않은 자녀, 우리가 낳았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자녀는 은유와 직설의 경계가 늘 명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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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의 꾸짖음을 달게 받을 작정으로 서간문을 시작합니다.
글이란 내가 얼마나 구린지 본격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용기를내 자모를 맞추고 문장을 만들어 자신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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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정도는 자아의식의 정도에 비례한다 - P155

115 역주: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죄가 무지‘인 것은 소크라테스적인 이해는 근본적으로 ‘지행합일‘을추구하기 때문이다. 즉 만일 내가 올바른 것을 알고 있다면 올바른 것을 행할 것이며, 따라서 내가 올바른 것을 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올바른 것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만일 내가 선한 행위를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선한 행위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사실은 그것을 참으로 알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죄의 원인은 무지‘인 것이다. 물론 키르케고르는 ‘무지가 죄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고려하기보다는 ‘무지가 곧 죄인 것처럼 고려하고 있다. 그 이유는 죄란 곧 진리를 알지 못하는 상태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 P169

정신의 생활 속에는 정지상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는본래 상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활동 중에 있다.  - P180

 사실상 참된 목사는 참된 시인보다 훨씬 드문 법이다 - P196

셰익스피어가 맥베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한 것은 과연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거장다운 말이다. "죄로 인하여 생긴 일은 오직 죄에 의해서만 힘과 강함을 얻는다" (3막 2장),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죄는 그 자신의 내부에서 일관된 것이며 악이 그 자신 속에서이처럼 일관된 것이기 때문에 죄가 그 안에서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 P205

이런 의미에서 파우스트』에서 악마메피스토펠레스가 "절망하는 악마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144라고 한말은 아주 적절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절망한다는 것은 회개나 은총의 말을 듣고 싶을 정도로 악마가 약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P210

인간이 신에게 가장 가까이 가려고 한다면 신으로부터 가장 멀리떨어져 있어야 한다.  - P219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인간적인 명성이나 인간들 사이의 신망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신은 비천한 인간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 것이다.  - P245

그리스도는 호위하는 사람도 자신을 보필하는 종도 없이 스스로 천한 종의 모습으로 이 지상에 내려왔다. 그렇지만 좌절의 가능성 (아아,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얼마나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을까!)이 그리스도와 바로 그의 곁에 서 있던 자 사이에 절대적인 심연을 만들고 있다. 이런 좌절의 가능성은 예전부터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있었고, 또지금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좌절하지 않는 자는 믿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신앙의표지인 예배는 예배받는 자와 예배드리는 자 사이에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가진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음을 표현해 주고 있다. 신앙에 있어서도 좌절의 가능성이 변증법적인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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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가 왜 오랫동안 빛이 꺼지지않은 지성인지 이 책으로 알 수 있었다 믿음의 반대되는 말은 믿지 않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절망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절망한 사람만이 구원에 다가가고 있다. 신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유용한 가르침이다. 마치 체르니를 연습하듯 구성진 문장들의 파도에 정신을 집중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뇌가 유쾌발랄해지는 느낌!
(주석에도 할 수 있다면 별점 만점을 주고싶다)

*다만 여성이 지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본질이 조용함,온순함,헌신이라는 문장에서 시대적 한계가 느꼈다. 그래도 그의 다른 책들을 더 읽어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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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03 13: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믿음의 반대지만 구원에 가까워질 수 있는 절망이란 말. 참 좋네요 미미님. 뇌가 유쾌발랄해진다니!!! 미미님 표현에 제 뇌도 유쾌발랄해집니다 ㅎㅎㅎ

미미 2022-06-03 14:04   좋아요 2 | URL
와! 세창출판사의 발견이기도 해요 미니님~♡ 번역이 매끄러워서 키르케고르의 사상을 접하기에 최상의 조건이었던거 같아요. 감탄을 일으키는 문구가 많아서 읽는 자체가 행복이었습니다ㅎㅎ🤗

scott 2022-06-03 15: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키에르케고르가 세상에는 세가지 인간의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거미-개미-나비! 미미님은 나비🦋양서를 찾아 다니능 >ㅅ<

미미 2022-06-03 15:40   좋아요 2 | URL
오오 나비 좋아요!!ㅋㅋㅋ
🦋 스콧님의 해석이 더
탁월합니다🦋 👍👍

페넬로페 2022-06-03 15: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지 않아도 제목이랑 작가를 아는 유명한 책이잖아요.
좋다고 하시니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믿음의 반대는 절망이다.
오늘의 화두로 받았어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미 2022-06-03 15:21   좋아요 3 | URL
동서문화사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창이 훨 읽기에 편해요. 페넬로페님도 좋아하실것 같아요!! 읽으면서 ‘재독해야지‘하고 마음먹었습니다. 예시도 잘 들어주어 이해하기에 수월했어요*^^*

새파랑 2022-06-03 1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젠 철학까지 전문가 미미님~!! 전 읽었으면 졸았을거 같은데 미미님은 유쾌발랄해지셨다니 역시 천재~!!

미미 2022-06-03 16:35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은 소설 저보다 훨 많이 읽으시잖아요*^^* 이 책은 누구나 왠만하면 잠이 다 깰꺼예요ㅎㅎ논리적인데 쉽게 써있어요👍

다락방 2022-06-03 1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부터 읽어야지 마음 먹었던 책인데 이번 기회에 사야겠어요.

미미 2022-06-03 16:39   좋아요 1 | URL
오 다락방님! 강추입니다. 로쟈님이 강의에 이 책 선택하셔서 세창으로 샀는데 술술 읽혀요.*^^* 주석도 재밌고 유용했어요. 키르케고르 대단합니다😆

독서괭 2022-06-03 2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성이.. 헐.. 뭐 그는 2022년에 지성 넘치는 한 여성이 자기 책을 읽으며 뇌가 유쾌발랄해지는 경험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겠지요😋 담아둡니당~

미미 2022-06-03 22:12   좋아요 2 | URL
괭님의 센스에 키르케고르에게 서운했던 맘 다 풀렸습니당ㅎㅎㅎ
저 부분 빼고는 다 감탄이었어요 책값이 사악한게 단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