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누가 죽여요?" 퍼디타가 말했다. " 우리 모두가 죽이지." 지노가 말했다. "주인공 ㅡ햄릿, 오셀로, 레온테스, 돈조반니, 제임스본드ㅡ이 직접 죽이지 않는다 해도 그의 영혼을 위한 희생양이 될 뿐이야." -263



한 친구는 나보다 두 살이 어린데 그러므로 내 남편과 동갑이다. 내가 한창 지금의 남편과 연애할 때 하루는 셋이 함께 어떤 이유로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친구는 나로 인해 내 남편과 안면이 있는 정도였는데 그날 지하철에서 둘이 몇 마디 나누더니 서로 동갑인 것을 알았다. 누가 먼저였는지 기억나진 않는데 동갑이니 서로 말 놓자고 하는 거다. 나는 속으로 '나한테 언니라고 하면서 내 남편과 친구가 되겠다고? 내 의견도 묻지 않고?' 하며 순간 둘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더러워졌다. 나로 인해서 둘이 알게 된 거니까 나를 중심으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 차라리 '형부'가 맞지 않은가? 어떻게 둘이 곧장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마치 나 없이 둘이 소개팅이라도 하는 거 같다? 뭐 그런 식으로 생각했었다. 




이른바 쿨하다는 서구의 문화에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지만 내 남자친구를 내 친구에게 소개해 주거나 내 남편을 내 친구에게 소개해 서로서로 친하게 지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같이 어울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주 잠시였지만...아마도 이런 사고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지 않나 짐작한다. 우리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유독 엄마의 외도를 의심했다. 내가 볼 때도 우리 엄마는 섹시했다. 훗날 당시 엄마의 사진을 앨범에서 봤는데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사진 속 화사한 블라우스 차림의 엄마는 활기가 있고 젊음으로 생기가 있었다. 미드 브이에 나올 법한 여배우 같은 분위기! 그런 저런 이유로 10살이나  많은 아빠는 불안했을 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는 엄마가 친구를 만나고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초조해진 아빠가 나에게 마음에 담아둔 의혹을 토로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감정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나는 아빠와 같은 마음으로(당시에는 그렇게 믿었다) 엄마를 기다렸다. 얼마 후 엄마가 집에 돌아오고 거실에서 말싸움이 들렸다. 나는 숨죽이며 내 방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귀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 때 난 아빠 편이었고 억울해하는 엄마 편이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양가적 감정이 이후 이성을 만날때 얼마간 반영이 되었다. 




연인이 있거나 배우자가 있어도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걸 탓하거나 매달려봐야 무슨 소용인가. 붙잡고 산다고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되나? 그런 감정을 속이고 옆의 사람을 기만하기보다 털어놓고 헤어지는 편이 모두를 위해 낫다. 속이고 몰래 만나는 것이야말로 최악이다. 그러므로 작은 꼬투리로 상대를 의심하기보다는 이쪽에서도 일단 믿어야 한다. 이게 내 결론이지만 문학적으로는 이런 최악의 기만이야말로 흥미진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의심하는 사람의 고통받는 내면은 너무너무 재미있다. 킬킬거리면서 읽고 있는 나 때문에 가끔 섬뜩하다. (아빠 미안해...) 이런 내가 <시간의 틈>을 읽었다. 이쯤에서 짐작했겠지만 이 소설에는 불륜을 의심하는 대목이 나온다. 리오는 절친 지노가 자신의 아내이자 임신 중인 미미와 친근하게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의심은 붉어져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들을 주시한다. 모든 의심이 그렇듯 정작 보이는 것보다 그의 의혹의 이미지는 현실을 앞서간다. 그의 상상 속에서 두 사람은 음탕한 배신자들이다. (리오의 욕설이 섞인 노골적인 대목을 올릴 수 없어 참고삼아 무난한 장면만 인용했습니다.)



미미는 지노 곁에서 편안하다. 같이 잔 사람과만 저렇게 편할 수 있는 법이다. 미미가 꿈틀거리며 아기가 든 배 위로 드레스를 올린 다음 지노가 지퍼를 올릴 수 있도록 돌아섰다. 그가 지퍼를 올린 다음 엉덩이 부분의 매무새를 다듬었다. 그 길고 섬세한 손가락을 내 마누라 엉덩이에서 떼! ㅡ87







이런 의문을 품어 보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나는 괴물일까, 아니면 이게 내가 인간이라는 뜻일까? -별의 시간




리오의 의심은 오셀로가 그랬던 것처럼,<겨울 이야기>의 시칠리아 왕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소중한 것들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선택으로 그를 몰아간다. 미미의 아기(딸)는 친자가 아닐 거라는 리오의 광적인 불신, 예기치 않은 우연의 결과들로 인해 다른 장소에서 자라게 된다. 이것은 운명이었을까? 인간은 본질 적으로 무로 돌아가려는 욕구가 있는 것일까. 그 때문에 갖가지 악의를 저지르고 또는 그것을 욕망하는 걸까. 추락한 천사. 흩어진 깃털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되돌릴 수 있다. 지넷 윈터슨이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새롭게 창작한 것처럼. 시간의 틈을 발견한다면 가능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만든 건 항상 자리를 비우는 신이 아니라 추락한 루시퍼 같은 인물이라는 거지. 일종의 흑천사야, 우리는 죄를 짓거나 지위를 잃은 게 아니야, 우리 잘못이 아니었지. 우리는 이렇게 태어났어. 우리가 무얼 하든 그건 결국 추락이야 걷는 것조차 일종의 잘 통제된 추락이지. 하지만 실패와는 달라, 우리가 이걸 안다면 영지, 그러니까 안다는 거야 고통을 견디는 게 더 쉬울 거야."-107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읽어도 모르신다면...그건 책임지지 않....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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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2-27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중 햄릿을 길리안 플린이 쓴다고 발표한 후 여태 안 나왔더라고요 ...

청아 2023-02-27 21:10   좋아요 2 | URL
저는 미리 말하면 실천이 안되더라구요. 혹시 그 분도 그런거 아닐까요?ㅋㅋㅋ

건수하 2023-02-27 21:15   좋아요 3 | URL
그건 안 나올 것 예상하고 있더군요.. 저도 햄릿 기다렸는데 :)

청아 2023-02-27 21:17   좋아요 2 | URL
햄릿 제일 좋아하는데 부디
써주었음 좋겠네요!

서곡 2023-02-27 21:19   좋아요 1 | URL
정 안 되면 딴 작가가 쓸 수도 있는데 말이죠...

서곡 2023-02-27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약 그렇다면 출판사랑 계약할 때 비밀보장조건을 달았어야 ㄷㄷㄷ 미미님 좋은 밤 되시길요 ㅋㅋㅋ

청아 2023-02-27 21:15   좋아요 2 | URL
ㅋㅋㅋ서곡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

2023-02-27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7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7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02-27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금메달을 따신 미미님!^^

청아 2023-02-27 23:14   좋아요 3 | URL
2022년 메달요?🏅
소듕소듕한 금이 벌써 2개입니다 헤헷 ^^*

페넬로페 2023-02-27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의 경험이 들어 있는 글의 내용에 공감백배입니다. 어머니 닮아 넘 예쁘실듯 한데요. 지금에사 우리가 페미니스트라 자처하지만 어릴땐 엄마가 친척 남자와 친하게 지내는것도 좀 싫었던 것 같아요.
참 이율배반적이죠 ㅎㅎ

이 책 시리즈 좋네요~~
읽을 책이 넘쳐 행복합니다^^

청아 2023-02-27 23:34   좋아요 3 | URL
저에겐 오드리 헵번만큼 완벽하지만
고슴도치가 자식 생각하듯
저희 엄마라서 그렇게 느꼈을 가능성이 큽니다ㅎㅎㅎ
네! 어린 시절 생각하면 누구보다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도요ㅎㅎ
나머지 시리즈도 하나씩 읽어보고 싶어요~^^♡

난티나무 2023-02-28 0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미미님처럼 아빠 미안해, 못 할 것 같아요..ㅠㅠ 제 경우에는… 100퍼 엄마 편, 그리고 엄마를 못미더워하는 마음이 그 100 안에 한 10퍼… 아빠는 여지없이 0 입니다…^^;;;;;;;

청아 2023-02-28 10:30   좋아요 1 | URL
그럼요 ㅠㅠ 저도 아빠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요 난티나무님^^* 아마 많이들 그럴 거예요. 엄마편 100퍼일 수 밖에 없는 일들요.
난티나무님 어릴 때에도 엄마에게 든든한 딸이셨을듯^^♡

책먼지 2023-02-28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형부”가 맞다고 생각합니다(크릉)!!

청아 2023-02-28 10:35   좋아요 2 | URL
제 앞에서 번호도
교환 했습니다ㅡ..ㅡ(이르는 중)ㅋㅋㅋ

책먼지 2023-02-28 11:23   좋아요 1 | URL
그 동생분 선 넘네요??? 델꾸 오시면 제가 참교육을!!! (실제론 쭈글)

청아 2023-02-28 11:42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책먼지님~♡(훌쩍)

기억의집 2023-02-28 1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후배분 엄청 무례한 겁니다. 친구분 예의를 지켜야죠. 저는 저의 남편하고 사겼을 때나 결혼해서도 친구들에게 남편 소개 안 시켜 줬어요. 저 또한 친구들 남친이나 남편 소개 받을 생각도 안 했고요…

그런데 불륜 맞나요? 저 인용한 문구만 보면 불륜 맞기도 해서…

청아 2023-02-28 11:41   좋아요 0 | URL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당사자와 잘지내야지 굳이 배우자나 애인까지는 불필요하게 느껴져요. 그 소개가 진짜 소개팅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요ㅋㅋㅋ

불륜 아니었어요 참고로
지노는 게이였고 리오도 그걸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도 놀랍습니다ㅋㅋ

기억의집 2023-02-28 11:4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읽어야 하나요 !! 궁금하긴 합니다~

청아 2023-02-28 11:48   좋아요 1 | URL
딱 맞으실지 장담은 못하지만 저는 간만에 재밌게 읽었어요^^*

바람돌이 2023-02-28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가장 친한 남사친은 제 친구와 결혼했고(제가 연결해준건 아닙니다), 둘 다와 사이가 좋아 둘 모두의 전번이 저에게 있지만 저는 그 남사친을 친구 없이 따로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습니다. 둘다 안다는 이유로 그 부부의 사생활에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지도 않고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잘 모르고 그 선을 넘는 사람들이 항상 있어요. 당연히 매우 기분이 나쁩니다.

청아 2023-02-28 16:49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은 글을 봐도 잘 대처하실것 같으세요.
저는 당황하면 아무말 못하고 속만 상했었던 과거가 제법 많이 있습니다. 에혀ㅋㅋ 요기다 하나씩 풀면서 뒤늦게 해소중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28 18:13   좋아요 1 | URL
아무말 못하고 집에 와서 이불킥하는 이불킥고수입니다ㅡ ㅠㅠ

새파랑 2023-02-28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인공 이름이 미미군요 ^^

저 이런 이야기 너무 좋아하는데 ㅋ

미미님의 다양한 독서범위는 언제나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

청아 2023-02-28 22:38   좋아요 1 | URL
네ㅋㅋㅋ주인공 이름이
미미라길래 더 읽고 싶었어요^^

새파랑님이 훨 대단합니다.
3월에는 소설을 좀 더 읽어볼까합니다^^*

베터라이프 2023-03-01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미미님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형부가 맞을 것 같습니다. 그 지인분이 꽤나 개방적이신 모양이네요. 보통은 아는 언니 남편한테 그렇게 친근하게 하기 어려운데요. 보기보다 꽤 어려운게 현실이죠. ^^

청아 2023-03-01 18:23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고맙습니다
지난 일이지만 공감해주시니 위로가 됩니다. 웃으면서 한 마디 해주었음 좋았을텐데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라 당황했었어요. ^^*

레삭매냐 2023-03-03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한 점이 한 가지 있는데...

중간에 들어가 있는 빔 벰더스
의 <베를린 천사의 시>는 왜
일까요.

너무 궁금해서요.

청아 2023-03-03 21:50   좋아요 2 | URL
아 일단 제가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이 소설에서 지붕에 있다가 추락한 천사에 대해 몇번이나 언급하는데 이 장면이 떠올랐습니다.ㅎㅎㅎ

2023-03-08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8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3-03-13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3-03-18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8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