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우리를 해치고 찌르는 책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통을 후려치는 충격으로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읽겠나? 자네 말대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세상에, 책이 아예 없으면 딱 그렇게 행복하겠지.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란 우리가 쓸 수 있는 책이겠지. 꼭 써야 한다면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재앙 같은 영향을 주는 책이 필요해. 가슴 깊이 슬프게 하는, 자기보다 더 사랑했던 이의 죽음 같은 책이,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자살 같은 책이 말이야.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믿어.-「엘렌 식수. 글쓰기 사다리의 세칸」
갈수록 비극에 끌린다. 세상이 코럴 블루만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아서 그런 거겠지. 누구나 백지에서 삶을 시작하지만 모두 같은 과정을 겪지 않는 것처럼 내 경우 다소 순진한 시기가 길었고 그 때문에 감정적 파고를 주변인들보다는 겪었다. (내 삶의 디테일을 잘 아는 절친은 '니 인생 참 파란만장하다'라고 했었다)그래서 였을까? 한동안 트위터를 했을때 잔인한 걸 많이 찾아봤다. 범죄수사물도 중독자처럼 즐겼고 당시엔 두려우면서도 두려운 것들을 찾는 내 심리를 기이하다고만 생각했다. 마음에 공존하는 공존이 불가능할것 같은 감정들이 가장 그 사람을 잘 드러낸다는데, 사실 그건 내것이라도 스스로 파악하기 힘드니까 . 제3자의 시각에서 봐야하는 그런 종류여서 나의 증상들의 원인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영리한 사람들은 그게 약점이란걸 알기에 되도록 자신의 본모습을 잘 숨기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말과 행동에서 수없이 유출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있다. 심한경우 자발적으로 떠벌린다. (나도 좀 그런편)이것도 나름의 비극인데 다행히 남의 비극을 거울삼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유익한 비극이기도 하다.
「빌레트」의 루시 스노우는 그런 약점을 무표정의 베일아래 감추는데 남다른 재능이 있다. 이 재능이 어찌나 부럽던지 읽는 내내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렇다고 감정도 무딘것은 아니어서 루시의 마음속에서는 때때로 심난한 폭풍이 몰아친다.) 그런 재능외에는 갖고 있는 재산도, 가족도 의지할 곳도 없던 루시는 오직 젊음을 밑천삼아 배를 타고 영국땅을 벗어나 빌레트란 도시에서 영어교사가 된다. 마침 그 학교의 교장인 베크 부인은 루시에게 이상적인 롤 모델이 되어준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없는 이성과 침착함으로 다양한 계층의 자제들이 다니는 그 학교를 어려움 없이 잘 꾸려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화한 외양과는 달리 끊임없는 감독과 감시로 모든 것을 자기 영향력 아래에 두고 통제하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루시는 그곳에서 오래전 헤어진 대모와 의사가 된 그의 아들 존 그레이엄을 만난다. 그림자 같은 존재로 살아왔던 루시에게 그들의 존재는 잠시나마 가족과 같은 안정감과 평온함을 준다.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마음깊이 존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가 자신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을 뿐더러 자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와중에 학교에서 문학을 담당하는 뽈 선생과 루시가 티격태격하다가 가까워진다. 뽈 선생은 존에 비해 키도 작고 얼굴도 가무잡잡하며 괴팍하고 잘생기지 않았지만 루시의 내면을 꽤뚫어보며 자신과 비슷한 부류임을 간파한다. 이들의 신경전과 말다툼은 그야말로 희극인데 그러는 사이 서서히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이 존의 경우보다 훨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존 브레턴 선생은 너를 '조용한 루시'라든가 '그림자처럼 거슬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고, '루시는 취향이나 태도가 너무 엄숙하고, 성격이나 습관이 밝지 못한 게 단점이오'라고 한 적도 있잖아. 너 자신이나 친구들이 너에 대해 가지는 인상은 다 그렇지. 그런데 세상에! 어떤 작은 남자가 이 모든 견해와 정반대로, 너를 너무 경박하고 발랄하다고, 너무 쉽게 폭발하고 변덕스럽다고, 너무 화려하고 다채롭다고 비난 하기 시작한거야. 그 가혹한 작은 남자. 그 가차 없는 검열관이 불쌍한 이런저런 허영의 죄와 재수없는 분홍색 천과 작은 꽃 장식과 작은 리본 조각과 너의 멍청한 레이스, 그 모두를 모아서 하나씩 설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거야. 너는 인생의 햇빛 아래 그림자로 취급받는 데 아주 익숙해져 있는데 말이야. 네게서 뿜어 나오는 빛에 눈이 부셔 짜증을 내며 손으로 눈을 가리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야." p.136
애써 남들이 씌워준 외관은 맞지 않는 옷처럼 불필요한 짐이 되곤 한다. 더구나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그가 아무리 봄의 햇살같은 사람이고 수만가지 장점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어도 사랑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을테니까. 뽈 선생은 겉보기와 달리 자신은 돌보지 않고 남들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사람이었다. 그는'고결한 정신과 넓은 마음을 지닌 사랑스러운 남자였다.'p.382 게다가 누구보다 루시의 본성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녀를 항상 눈부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루시는 감추고 덮어두고 묻어두기까지 하던 자신의 감정을 뽈과의 만남을 통해 외부로 분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체적인 삶, 두려움에 압도당하지 않는 삶으로 씩씩하게 나아간다. 루시에게 뽈은 브라우니 요정이고 나뽈레옹 보나빠르뜨이며 그레이트하트,영웅이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묘미는 루시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감춰진 루시의 내면과 혼란을 작가가 표현하는 지점들이다. 루시의 개인적인 사정이라던지 구체적인 아픔은 꼭꼭 숨겨져 있어 정확히 어떤 상황을 겪어냈고 그로인해 얼마만큼 힘들었는지 기본적인 정보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어렴풋이 짐작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고 성격이 다른 주변인들을 거울삼아 루시의 내면을 짐작해야한다. 수수께끼같은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 여성작가의 우회적인 표현력,감수성이 독보적인 방식으로 발현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신비한 경험이다. 조지 엘리엇은 빌레트를 세 번은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고 하는데 내게도 두고두고 다시 읽고 싶은 소중한 이야기가 되었다.
아름다움과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었다. 나는 그런 사랑에 감히 끼어들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랑, 오랜 사귐 끝에 내 삶 속으로 들어온 사랑, 고통의 용광로에서 단련되고 굳은 지조의 낙인이 찍힌 사랑, 애정이라는 순수하고 단단한 합금에 의해 강해진 사랑, 지성이 시험받기를 자청해 그 과정을 거쳐 마침내 흠 없는 완벽에 도달한 사랑, 순간적으로 광란하고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 '열정'을 비웃는 이 '사랑'에 대해 나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자라든 죽어버리든 손 놓고 가만있을 수만은 없었다. p.351
내맘대로 '뽈'캐스팅- 오스카 아이작「'인사이드 르윈'의 한 장면」
키가 작고 가무잡잡하고 남유럽 스타일등등의 조건고려(사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