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때문일까? 최근 발간된 이 책을 많이 찾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내일의 섹스','여성의 욕망','동의 이상'이란 키워드가 어떤 식으로 풀어질지 너무 궁금했고 그래서 이 책을 주문해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이상으로 좋아지려고 한다. 지금 40페이지 읽는 중인데 이미 밑줄을 잔뜩 그어놨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비소설의 경우 30페이지 쯤이면 이 책이 읽고 팔아버려야 하는 책인지 아닌지 확신이 선다. 이 책의 경우 29페이지 부터 느낌이 와서 이렇게 밑줄을 그었다.

펜으로 표시한 문장 위에 변호인의 말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저자에 대해 먼저 소개하자면 이렇게 나와있다
캐서린 앤젤 : 페미니즘,섹슈얼리티,젠더 및 정신 분석 등에 대한 글을 쓰는 논픽션 작가이자 학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정신의학 및 섹슈얼리티의 역사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런던 대학교 버벡 칼리지에서 문예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이번에 번역된 이 책 말고도 이런 책들이 있는데 나머지 두 권도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대디 이슈'란 뭘 말하는 거고 '가장 말하기 힘든 욕망'에 대한 책은 또 어떨지...궁금해서 일단 '대디이슈'를 검색해보니 한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떠 있다.

흠...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들어봤는데 그게 '대디이슈'로 불리우는 구나...아무튼 오늘의 책으로 돌아와서 요즘 목차 공개가 유행인듯 하여 나도 이해를 돕기 위해 목차를 올려본다.
1. 동의에 대하여
2.욕망에 대하여
3.흥분에 대하여
4.취약성에 대하여
크게 네 가지로 나눠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욕망이 이 세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얼마전 읽은 '임신중지'와도 연결된다. 왜냐하면 여성의 욕망에 대해 미디어와 언론, 법률에서 다루어지는 '사회적 요구','이상적인 모습'이란게 있고 실제 여성들의 욕망이 있다. 하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다. 감정의 위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어제 '미들마치'축약본을 읽고 내가 너무나 존경하게 된 조지 엘리엇의 말을 빌려오면 여성들은 워낙 다양해 '여인의 머리 모양이나 그들이 좋아하는 산문이나 운문의 사랑 이야기보다 훨썬 복잡'하기 때문이다. 욕망 또한 마찬가지일 터. 하지만 현실이 어떤가. 여성들의 욕망은 여성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 의해 규정되어진다. 그것도 아주 단순하게, 협소하게! 거기서 비롯된 불협화음은 비단 조지 엘리엇의 시대 뿐만 아니라 142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여기에 대해 조지 엘리엇이 미들마치 '서곡'부분에 자세하게 써 놓았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카롭다. 1416쪽이나 되는 미들마치가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나처럼 축약본이라도 꼭 읽어보시길 강추한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분명히 드러내거나 숨기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곤란에 처한다.
'싫다'가 아무 의미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좋다'가 의미 있는 말이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좋거나 싫다는 여성의 말이 아무 의미 없이 공허할 뿐이라면, 욕망을 강력히 표현하라고 계속 주장하는 것이 여성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P.32 캐서린 앤젤
남북전쟁 이전,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 여성은 정숙하지 않아 법의 영역에 포함될 자격이 없다는 선입견에 따라 흑인 노예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었다. 이러한 관념은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P.32
'임신중지'에서 인용되던 페미니스트 학자 사라 아메드가 여기서도 인용된다.
"좋은 감정의 반복은 억압적으로 느껴진다."(사라 아메드) 이는 결정적인 무언가,페미니즘적 역량 강화라는 명목하에 여성에게 실천해야 한다고 요청되던 바로 그 행동에 부과되는 징벌적 효과를 부정하기 때문에 억압적이다. 어떻게 해도 여성은 곤경에 빠진다. 해방에 대한 희망을 우리의 욕망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에 고정할때,우리는 혹시 엉뚱한 곳을 들여다보고 있는것은 아닐까?P.34

일할 땐 열심히 일하고 놀땐 미친듯이 노는게 왜 문제일까... <ㅡ핀란드 산나 마린 총리 스캔들에 대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