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ml 텀블러에 오늘 4잔째인 커피를 가득담아 모니터 앞에 앉았다. 조금전에 꽤 읽을만한 글을 읽었고 덕분에 나도 덩달아 뭐라도 쓰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기 때문이다. 뭘 써야할지도 모르면서.......한동안 장마만큼이나 우울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었다. 여기에는 그런 이야기는 쓰지 않았지만 사실 쓰고 싶은 내용들은 한가득이었다. 오프라인 상으로는 고민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다. 본래는 잘 이야기하고 들어주기도 잘했는데 그 과정에서 종종 실망과 허탈함이 혹떼려다 혹붙인 사람처럼 되려 들러붙는다는걸 알았다. 들어주는 과정에서 나도 상대에게 무심결에 혹을 붙여줄까봐 듣는것도 이제 되도록 삼가한다.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건 역시 아주아주 친한 사람만. 사람들은 대부분 아픔보다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하는것 같다. 꼭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는 더 캐묻지도 않다보니 나도 그편이 속이 편하다는걸 알았다. 그래도 이렇게 글로 쓰는건 갈수록 주저하지 않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해소하고 싶은 갈망같은게 나도 있나보다. (글을 읽는건 듣는 것보다 적극적이고 더 귀찮은 일이라서 나랑 안맞으면 읽다 말면 그만이니 누구에게 혹 붙이는 일도 훨 덜 할거란 계산도 좀 있다.)
모든 경청 행위는 '반응해야 한다'는 부채감이 따른다. 질병, 빈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땐 특히 그렇다.(중략) 듣는 이는 자신이 해결사라는 착각과 부담 때문에 불가능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말하는 이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일깨워준다'.p.77정희진.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노견이 된 츄츄가 많이 안좋았다. 또다시 안락사 이야기가 부부 사이에 화두에 올랐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내게 잔뜩 사랑을 주고 위로를 주던 친구인데 나이들고 여기저기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 인위적으로 떠나보내기는 싫었다. 자연사하기를 바랐다. 욕심이었을까 이기심이었을까. 아직도 나는 답을 모른다. 가장 큰 문제는 짖음과 끙끙거리는 소리인데 어쩔때는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방에가서 숨어버리거나 도서관으로 피신을 간다. 읽고 있던 책과 죄책감을 한아름 안고서. 인지장애도 조금 있고 치매도 있고 뒷다리에 힘이 없어 자주 주저앉는데 일으켜 달라고 또 마구 짖어댄다. 일으키면 또 주저앉고 그럼 또 울고 심할땐 1분간격으로 이런 과정을 반복한다. 얼마전에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책을 읽으려고 해도 너무 시끄러워서 집중할 수 없어서. 갇혀있지 않아도 어딘가 묶여있고 갇힌 기분이어서. 한번씩 울음이 터져나왔다. 항암을 무사히 끝낸 뒤 엄마가 활동적이시고 쭉 잘 지내셔서 다행이지 엄마에게 암이 재발하거나 어딘가 불편해지셨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남편이 결국 애견 휠체어를 구해왔다. 요즘은 반려종 키우는 분들이 많아 그런지 관련 제품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온다. 각진 구조물 안쪽으로 앞발과 뒷발을 끼워넣는 공간이 있어 츄츄를 그 안에 맞춰 세우면 다리 힘이 약해도 서 있을 수 있고 아직은 쓸만한 앞다리로 걸어나갈수도 있다. 아침 저녁으로 틈날때마다 해주니 뒷다리에도 힘이 좀 붙는지 전보다 잘 일어서고 걷는 것도 나아졌다. 짖거나 칭얼대는 것도 조금 줄었다. 다만 노견들은 잠을 많이 잔다는데 인지장애 탓인지 얘는 밤에 잠을 자지 않아 고민거리였다. 나는 식욕은 잘 참을 수 있는데 수면에는 예민하다. 그래서 자는데 깨우면 굉장히 화를 낸다. 깊은수면 중 깨어날때마다 수명을 줄인다는 연구결과를 본 뒤로는 더 분노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맥주는 절대 끊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츄츄가 모진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새벽 2~3시면 어김없이 깨어 제자리 돌기를 하고 그러다 다리힘이 풀려 넘어지면 울고 짖기를 반복...사료로 달래고 미운 마음에 쥐어박기도 했지만 그런다고 고쳐질리도 없었다. 결국 심할때는 처방받은 진정제를 먹인다. 언제까지 진정제에 의존할 수는 없지만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
츄츄가 노견이 된 후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나의 한계에 대해서도 더 자주 들여다 보게 된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얼마만큼 진심인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 아이도 낳지 않았는데 동물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걸까. 츄츄가 인간이라면 이런 부분을 이야기나누고 너가 원하는 마지막은 어떤 거냐고 물어볼 수 있을텐데. 나에게 심각한 상황이 온다면 연명치료는 받고 싶지 않고 되도록 건강한 부위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되도록 많이 기증하고 떠나고 싶다. 나를 사랑해주었던 외삼촌은 4명에게 장기기증을 했었다.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삼촌은 그렇게 누군가의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괴로워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안녕 위를 맴도는 영속적인 위협으로 야기될지 모를 고통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고통이 세 방향에서 유래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자연의 월등한 힘, 우리 자신의 나약한 신체, 다른 인간이 바로 그것이다.p.175. 레오니다스 돈스키스. 도덕적 불감증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에서만이 아니다. 인생에 대한 태도 자체가 바뀌었다. 책의 대부분에서 그녀는, 자신도 불행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각별한 동정심을 지니고 있는, 하지만 마지막까지 말없이 지켜보아야만 하는 한 여성의 눈을 통해 인생을 바라본다. p.139. 버지니아 울프, 집안의 천사 죽이기
우리 사이에-곽진언
그대 눈 속에 바다가 있는 것 같아
아무리 도망쳐 봐도 그대 품 안에 그대 품 안에
우리 사이에 넓은 강이 있는 것 같아
아무리 헤엄쳐봐도 그대는 저 멀리 떠나고
그대를 따라가다가 더 깊이 가라앉아서
그대를 향한 사랑이 빛을 잃어가요
그대여 어디 있든지 내 생각해주오
우리 사이에 넓은 강이 있는 것 같아
아무리 헤엄쳐봐도 그대는 저 멀리 떠나고
그대를 따라가다가 더 깊이 가라앉아서
그대를 향한 사랑이 빛을 잃어가요
그대여 어디 있던지 내 생각해주오
내 생각해주오
내 생각해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