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다가 너무 공감되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나는 친구들과 만날때 약속한 멤버들 중 누군가가 또 다른 친구를 초대하려면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이미 약속한 사람들에게 먼저 동의여부를 물어보는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굳이 알리지 않아도 항상 잘 지켜졌는데 그 순서가 바뀐것도 아니고 아예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당일날 약속시간이 되어서야 누군가가 더 온다는 걸 알게 된 일이 있었다. 황당했지만 사고?를 친 친구에게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다음번에는 꼭 미리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름대로 기분나쁜 티를 내지 않고 의견을 전달했지만 그 친구도 나도 뭔가 어색해진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때 난 아무말도 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 뒤 문자로 보다 더 부드럽게 설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심 내 기분도 망쳤으니 너도 좀..하는 못된 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원래부터 이런걸 문제 삼지는 않았다. 문제 삼지 않았다기 보다는 이런 것에 대해 아예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 거다. 내 기억이 맞다면 계기가 된 일은 한달간 유럽에 갔을 때 일어났다. 짝꿍이와 배낭여행을 갔는데 프라하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기 전날 쯤이었다. 숙소에서 우리는 한국인 남학생을 만났다. 혼자 여행을 왔다는 그 친구는 그런 선택과 달리 수줍음이 많았고 내성적인 편이었다. 문제는 짝꿍이가 자기보다 두어살 어렸던 그 친구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나와 상의도 없이 함께 여행하자고 제안을 해버린 것이다. 대뜸 삼자대면 상황에서 그 친구에게 그렇게 말해 버리니 대놓고 거절할 수도 없어 우리는 셋이 동행하게 됐다.
어느 한쪽은 자신의 뜻을 굽혀야 하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만사형통하는 것도 아니다. ‘저쪽이 양보했지만 사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걸 다른 한쪽이 알고 있는 이상 둘 사이가 더는 맑고 투명할 수없지 않겠는가. 그 무거운 공기를 대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p.22
지금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가 살짝 아파온다. 기분이 상했지만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거기까진 참을만 했다. 문제는 다음 여행지였던 오스트리아에서 또 한국인을 만났는데 짝꿍이가 이번에도 그 사람에게 함께 여행하자고 제안한 것이다.(이건 무슨 위아 더 월드도 아니고...) 나는 순간 폭발했지만 드러내지 못한 내부 폭발이었다. 짝꿍이는 첫 배낭여행이다보니 몇 곳의 거점을 제외하고 즉흥적인 여행을 추구하는 나 때문에 불안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두 그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는데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섣불리 그런 결정을 하니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우리 둘만 있을 때 이러저러해서 저래이랬다하고 난감하고 불쾌해진 나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래도 이미 꿀꿀해진 기분은 우울이를 등에 업은 것처럼 (아까버라...그 소중한 시간들이여)여행지에서 때때로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아득히 기억의 저편으로 스멀스멀 사라지던 기억을 이 에세이를 읽다가 떠올린다. 나는 이런 일들이 삶의 일부가 되어 성격과 성향으로, 나란 존재로 되어간다는 걸 늦게서야 조금씩 받아들였다.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애매한 성격이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피로도를 높일 수 있다. 당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런 에세이를 읽고 나의 관점을 점검해 봤다면 어땠을까? 그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분명하게 내 의견을 스스럼 없이 전달했을 거고 연이어 두번이나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수 있다. 그래도 한걸음 더 생각해보면 그런 비싼 시행착오를 겪은 덕에 시트콤 같은 추억하나를 얻었고, 나름 분명해진 의견이란 것이 내 마음에 자리잡았다. 어찌되었든 그저 생각으로 머무르다 잊어버리기보다는 이렇게 책을 읽은 후 글로 쓰며 정리해보니 앞으로는 더 부드럽고 명쾌하게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도 든다. 이런 느낌 너무 좋다. 살짝 성장한 기분! 아마도 오프라 윈프리와 인생 상담을 하고 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제 글을 읽고 덩달아 스트레스 받으신 분들은 영상으로 힐링을!ㅋㅋㅋㅋㅋ
너무 귀여워서 같이 첨부. 인형아님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