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킁킁거리는 짐승의 소리, 식식거리는 멧돼지 소리, 으르렁거리는 사자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는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그것은 자신의 거친 숨소리였다. p.514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의 둘째 아들 자크 에티엔은 6살에 홀로 고모에게 맡겨지는데 그는 자라서 일등기관사가 된다. 하지만 워낙 어린 나이에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무의식적 반감이 자리했던 것인지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적 기질과 맞물려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면 그와 동시에 불같은 살의를 품게 된다. 그래서 그는 오직 기관차로 달리며 무념무상에 빠지는 상태에서만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원장이자 철도회사 이사장인 그랑모랭이 살해당한 일에 연류된 세브린이라는 유부녀와 정열적인 사랑에 빠지고 그녀로 인해 자신의 병이 치유됐다고 느낀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둘만의 화젯거리를 갖게 되었는데, 일종의 우정의 공모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그 상황에서 그들은 마침내 눈짓만으로도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방문할 때마다 그는 그녀에게 눈짓으로 그동안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기지는 않았는지물었다. 그녀도 같은 식으로 살짝 눈꺼풀을 깜빡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런 다음 그들의 손은 남편의 등뒤에서 서로의 손을 갈구했고 그손길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그들은 오랫동안 손을 꼭 쥐는 것으로 감정을 전달했으며, 상대방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아주 소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관심을 따뜻한 손가락 끝으로 전하며, 서로 묻고 답했다. - P252
자크와 세브린이 불륜관계를 이어가며 매주 금요일 오붓한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파리행 열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자크를 오랜 시간 짝사랑했던 사촌 누이 플로르는 질투로 점점 눈이 먼다. 그녀는 건널목 차단기 앞에서 일했는데 짝사랑하던 자크가 지나갈 때마다 놓치지 않고 그의 모습에 눈길을 주었던 그곳에 서서 이제 두 연인의 행복한 일탈 여행을 매주 지켜봐야만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이 바깥을 내다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고개를 아무리살짝 들려고 조심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연적은 늘 발각되었으며 두 여자의 시선은 마치 장검이 부딪치듯 그렇게 마주쳤다. 기차가 휩쓸고 지나가버리면 기차가 싣고 가는 그 행복에 억장이 무너져서 하릴없이 눈으로 뒤쫓기만 하는 한 여자가 땅바닥에 우두커니 남겨졌다.- P399
자크의 연인이 된 세브린을 비롯해 그녀의 남편, 철도회사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논리와 맥락으로 잘 짜인 놀라운 드라마가 완성된다. 졸라는 <인간짐승>이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정교한 서사 구조를 갖추었다고 자부했다. 세기말 20 세기를 향해 가는 인간군상의 짐승적인 범죄 본능과 욕망을 기계문명의 상징인 기관차를 통해 보여 주는 것이다. 여태까지 에밀졸라의 작품 중<목로주점>과 <제르미날> <인간짐승>을 읽었는데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다. 기관차가 달리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현장을 생생하게 눈앞에서 보듯 속도감과 입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에밀졸라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 기관차의 폭주와 함께 몰아치는 주제의식이 숨막히게 다가와 울컥하고 뭉클했다.
졸라는 "분노하며 살 것, 한 줄이라도 쓰지 않으면 하루라도 살지 말것"을 좌우명으로 삼는다. 고결한 증오,곧 분노로 표현된 일종의 힘의 의지, 그것이 바로 1871년부터 1893까지 거의 매년 한 권꼴로 발표된 루공마카르 총서의 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졸라를 읽을 때 항상 새겨야 할 사항이다. ㅡp.577 옮긴이 이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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