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식당.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 서너 살이나 됐을까. 여자 아이는 조용하게 자주 웃었다. 일곱 명의 어른들이 꽃이 만발한 성곽처럼 아이를 둘러싸고 앉아 그런 웃음을 유도해 냈다.
외할아버지, 고모, 이모 등이 뒤섞인 그들은 아이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했다. 아이가 부르는 노래를 나지막하게 따라 부르기도 하고, 손 그림자 놀이를 번갈아 시연하기도 하고, 아이가 안고 있는 인형을 다독여주기도 했다.

아이는 당연한 듯 그 사랑을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저렇게 사랑받고 자라면 치유고 뭐고 아무것도 필요없겠구나. 충분히 사랑받으면 철갑옷도 생기고 셀프 치유가 가능한 내공도 저절로 생긴다. 아이 한 명을 키울 때만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한 게 아니다. 모든 인간은 온 마을에서 충분히 사랑받으며 살아야 마땅한 존재다. 그래야 살아지는데 현실은 거의 반대다. 상처의 칼날이 포탄처럼 쏟아지는 속에 서 있다.

살다 보면 어깨 위에 산 전체를 걸머지는 고통과 벼락처럼 마주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믿었던 관계가 깨지고 곤두박질하듯 무일푼 신세가 된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힘에 겨워 무릎이 꺾여 넘어진다. 그럴 때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같다. 일어나는 방법을 잊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다시 일어나고 어떻게 걸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살고 싶어서다.

지금 일어설 수 없으면 일어서려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주저앉아 있어도 된다. 꺾었을 때는 더 걸으면 안될 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그걸 인정해 줘야 한다. 충분히 쉬고 나면 저절로 걷게 된다. 당신은 원래 스스로의 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그걸 잊지 않는게 중요하다.

지옥을 빠져나갈 수 있는 힘은 외부에서 다른 힘을 빌려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온전하게 사랑 받았던 나의 원형을 훼손하는 여러 방해물들을 하나씩 걷어내다 보면 저절로 된다.

본래 나는 내 두 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지옥을 빠져나간다.

- 나는 원래 스스로 걸었던 사람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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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17-04-08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우 잊어버린 걷는 법을 기억해냈는데 그 때 마다 주저앉게 되는 일만 생기니 영원히 스스로 걸을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잊지는 않았는데 걷는법을 잊었다고 생각해야 더 이상 넘어지지 않을테니까요..

나와같다면 2017-04-08 20:05   좋아요 1 | URL
살면서 무릎이 꺾이고 주저앉아 걷는 법을 잃을 정도의 고통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이 글이 한참동안 생각나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이런 질문..
 

Blowin‘ in the Wind

얼마나 자주 위를 올려다봐야
한 인간은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그래.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귀가 있어야
한 인간은 사람들 울음소릴 들을 수 있을까?
그래, 그리고 얼마나 많은 죽음을 겪어야
한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죽어버렸다는 걸 알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나의 친구여, 바람 속에 불어오고 있지
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네


짙은 은유로 가득한 그의 시
사회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밥 딜런의 철학적이면서 사유적인 메세지들이
바람이 되어 내 마음에 불어온다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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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4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5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4-0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 것인가를 웨더맨이 없어도 우리는 알 수 있다
You don‘t need a weatherman to know which way blows
 

탄핵 결정문 초반

세월호 사건은 참혹하기 그지 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이 부분을 듣는 순간
아..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거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불성실과 무능은 직접적인 탄핵사유는 아니라고 했다

우리에게 하는 준엄한 경고였다..

우리는 어째서 이런 무능한 대통령을 가지게 되었는지 또 앞으로 다시는 이런 대통령을 뽑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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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3-10 20: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와같다면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나와같다면 2018-04-04 19:40   좋아요 3 | URL
판결문 초반에 ˝그러나˝란 말에 얼마나 몸서리 쳐졌는지..

우리가 뭘 이뤄낸거죠..? 믿기지가 않네요^^

지금부터 다시 시작 입니다

yureka01 2017-03-10 2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적인 불행이죠...어쨋거나 국민의 선택에 대한 대가는 국민이 받아야 할 몫입니다. 다수의 국민들의 통찰과 헤안이 부족했던 탓이죠...그래서 재대로 된 대통령을 뽑아야할 의무가 새롭게 생겼으니까요..단순히 멍청하기만 했다고 이해도 안되지만,멍청에 더하여 부정직함은 국민을 더 비참하게 할 뿐이니까요...무슨 죄를 지었길래 차명폰까지 써야 할까요..양아치도 아니고 무슨 조폭의 숨겨야할 잇권사업도 아니고 ....내참.....양아치가 쓰는 차명폰같은 것은 그냥 탄핵 빼박증거입니다.ㄷㄷㄷㄷ

나와같다면 2017-03-11 12:00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 저는 불성실과 무능은 직접적인 탄핵사유는 아니라는 판결에 소름이 돋고 우리에게 하는 얼마나 준엄한 경고인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느낍니다

transient-guest 2017-03-17 08: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솔직히 ‘무능‘까지는 직접적인 탄핵사유가 될 수는 없겠지만, ‘불성실‘은 이로 인해 파생된 문제득을 볼 때 직접적인 탄핵사유로 보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박근혜씨처럼 결근/조퇴/지각을 밥먹듯이 하는 직장인은 사장도 짤릴 겁니다. 사실 이 기준으로 보면 극단적인 무능의 경우도 탄핵사유가 되어야 하겠지만, 절차적인 문제가 ‘무능‘을 정확히 define하는 어려움, 그리고 탄핵을 오/남용하는 경우도 생각해야 하니까, 그건 어쩔 수가 없네요. 일반인이 이렇게 무능했다면 취직도 못했을겁니다. 탄핵인용되어 다행힌데, 이미 기록 다 지우고, 빠져나갈 구멍도 다 만들어 놨을 것 같네요...정권이 바뀌면 강력특검으로 검찰개혁과 함께 비리수사를 해야 할텐데 5년 내내 걸릴 듯...

나와같다면 2017-03-17 13:09   좋아요 1 | URL
그래도 김이수. 이진성재판관님의 세월호 관련 보충의견이 위로가 됐습니다.
또 한번 무녀졌을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어루만져지기를..
진실이 드러나기를..
 

컨택트 [Arrival]

당신이 만약 당신의 전 생애를 볼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을 바꿀건가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그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이 짧다는 걸 알면서도 과연 우리는 그 미래를 선뜻 선택할 수 있을까?
감수할 미래임을 알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을린 사랑‘의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만든 영화. 분명 SF 이지만 마음 잔잔히 철학적이고 인문학적 파문을 던진다

˝Despite knowing the journey and where it leads,
I embrace it and I welcome every moment of it˝

˝걷게 될 여행을 알고 그 끝이 어디인지 안다해도 난 이를 받아들이며 그 모든 순간을 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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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2-12 2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와같다면님 잘 퇴원하셨는지요?^^: 건강 조심하시고 빠른 회복 기원합니다

나와같다면 2017-02-12 22:12   좋아요 2 | URL
예 일주일만에 퇴원했어요.. 기억하고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2-13 0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짧지만 영화의 핵심을 담고 있는 리뷰네요. 다시 영화의 감동을 되새길 수 있어 감사합니다^^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나와같다면 2017-02-13 13:27   좋아요 1 | URL
컨택트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작품인걸 고양이라디오님 글 보고 알았어요. 덕분에 개봉하는 날 보고 왔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그때부터 질문을 던지고 다시 시작되는 그런 영화네요.. 저에게는..

몸도 마음도 많이 회복됐습니다.. 고맙습니다

2017-03-02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번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어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개체로서의 인간은 변하지 않지만, 류적 존재로서의 인류 역사는 늘 진보해 왔다고. 그러면서 역사의 전진을 믿는 자, 인류의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자가 진보주의자라고
그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마음의 힘에 가장 결정적 요소는 사람이 모여서 살아가는 세상 살이에 대한 낙관이에요. 사람을 깊이 이해해서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때 평화와 낙관이 생겨요 p86

안희정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더 좋은 민주주의‘ 를 향한 절절한 그 진심을 나는 이미 알아 버렸다. 내 눈으로 봐 버렸다

후보가 누구든 우리는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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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3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2-03 20:30   좋아요 1 | URL
아.. 남자가 보기에도 잘생겨보이는 구나 ㅋ
이번에는 문재인이 되야죠..

87년 항쟁후에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는데.. 설마.. 죽쒀서 개주지는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