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살 생일을 엿새 앞둔 새벽,
서울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기형도의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은 1980~90년대 젊은이들에게 특별했다 기형도는 한 시대와 세대의 집단 기억을 사로잡은 문화 현상이었다

기형도의 아름다운 시가 그대로 짧은 이야기의 제목이 되고, 시의 일부가 극의 중요한 모티브로 녹아든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게 된 대학생들의 이야기 [소리의 뼈] 속수무책으로 늙어가는 작가 지망생의 삶을 주제로 한 [질투는 나의 힘] 책 한 권을 놓고 투닥거리는 자매의 비밀을 그린 [흔해빠진 독서] 서점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이 겪는 기묘한 이야기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비정규직원을 해고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에서 만난 휴가나온 군인과 중년 남자가 펼치는 삶의 고단함과 고립된 감정을 엿보게 해준 [조치원]

각 에피소드는 기형도의 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그 안에 담긴 이미지와 정서를 연극적 언어로 풀어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메었으니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시는 연극이 되고, 그 연극은 지금 다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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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4-23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나와같다면 2025-04-23 17:24   좋아요 0 | URL
박호산 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직도 연극의 여운에 잠겨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