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열두 살 아이의 조현병을 느닷없이 맞닥뜨린다. 어느 날 집에 도착하니 아이가 커튼과 블라인드를 모조리 내린 채 어둠 속에서 떨고 있었다. 나쁜 사람들이 아파트 상가에 모여 자신을 위협하고 있으며, 엄마 아빠를 해칠 거라고 울며 말했다
이비인후과, 정신분석 전문가, 최면술사, 한의사를 차례로 만난 끝에 방문한 소아정신과에서 ‘소아조현병’ 이란 병명을 처음 들었다. 의사는 “조현병은 100명 중 한 명꼴로 흔한 병이지만, 소아조현병은 1만 명에 한 명꼴” 이라고 했다. 부정하고 절망할 시간도 없었다. “아이가 시시각각 무너지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자신을 보며 말했다. “우리 엄마 내놔! 우리 엄마 어딨어!” 축구도 공부도 잘했던, 총명하고 다정한 아이.
그 소년이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아이는 나쁜 사람들이 아파트 상가 앞에 모여 있다고 했다. 자신을 위협한다고, 자꾸 나오라 한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엄마 아빠를 해칠 거라고 했다. 뛰어나갔다. 상가에 가보았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돌았다. 어디에도 아이를, 우리 가족을 위협할 만한 나쁜 사람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우리에게 닥친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가? 정신 차려야 한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 18쪽
아이의 소아정신병동 생활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입퇴원을 12회 반복하며 계속되었다. 나무에게 맞는 치료제를 찾는 데 꼬박 3년 6개월이 걸렸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매일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학교까지 통학했다. 의료진과 의논한 결과 병원에서 학교로 통학하기로 했다. 의료진은 알고 있었다, 이 병이 오래갈 것을. 그리고 특히 소아 환자에게는 학교 졸업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무는 병실에서 교복을 갈아입고 1시간 30분을 달려가 1시간 수업을 받고, 조퇴해 다시 병원에 돌아왔다. 그렇게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 31~32쪽
나는 이 청년의 불안을 알지 못한다. 세상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그것을 짐작조차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말해야 한다. 이런 증상으로 힘든 사람도 있다고, 이 불안에 사로잡히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겉보기에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이런 증상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때가 있다고. (중략) 이 불안 안에서도 이 사람은 생을 꾸리고 자신을 돌보면서 살아간다
- 51쪽
나무는 자신을 사랑했고, 아프기 전의 자기 모습을 기억했다. 자존감이 그 어떤 치료제보다 가장 효과적이었는지 모른다
우리 관계는 병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세상이 소멸될것 같은 공포감에 떨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아이의 불안과 두려움이 얼마나 절망적인 것인지 알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