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 황석영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2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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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개밥바라기별은 청춘의 고뇌, 방황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4.19의 현장에서 친구의 죽음, 고등학교 자퇴, 방랑, 일용직 노동자생활, 입산, 베트남전 참전 파견을 앞두고 스물한 살 까지의 길고 긴 방황의 경험들은 주인공 유준과 그의 친구들인 영길, 인호, 상진, 정수, 선이, 미아가 그 시절을 회상하며 펼쳐지는 서사시다.

 

준이 명문 중학교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는 기뻐하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장기 결석을 하여 하급생이 되었다. 친구 중길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의 노트에 남긴 시편들을 모아 시집을 내주기도 하였다. 등산반 선배인 인호와 보급물품을 구입하여 산속에 들어가 몇 달을 생활하였다. 인호가 먼저 퇴학을 당하고, 준은 자퇴서를 담임선생님에게 제출을 한다.

 

내가 어릴때는 초등학교만 나오고 상급학교는 꿈도 못 꾸는 친구들이 많아서 이런 글을 보면 배부른 투정으로 보인다. 만학도의 길을 걸어보니 공부는 때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청소년기에 한번 쯤 방황을 해봤을테니 이해는 하였다. 학교를 정식으로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운 나만의 푸념이다.

 

 

저기 ....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가족들은 영단주택에 살았다. 어머니는 소설의 초고를 아궁이에 집어넣고 교과서와 참고서 이외 전집이나 문고판들을 치워버린 적도 있었다. 모짤트라는 음악다방을 아지트로 삼아 친구들과 만남을 가지고 선이와 미아를 알게 된다. 준의 누나들은 대학생이었고 일탈을 일삼는 동생을 못마땅해 하였다. 이 소설에서 최고로 꼽는 장면은 무전여행이다. 서울에서 호남선 완행열차를 타고 가다 인심 좋은 분들을 만나 검표할 때 피해 갈 수 있는 방법과 밥을 사주고 여비를 마련해 주는 대목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냄새가 난다. 당시는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고 사촌이나 친구들의 경험담도 들을 수 있었다. 준과 친구 세 명은 친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댁에 머물기도 하고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여행은 세상을 알아보기 위한 밑거름인데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작품 속이지만 청년들의 열정이 부러웠다.

 

나는 이제 스무 살이 넘어서야 책을 벗어나 고되게 일하는 삶의 활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도회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벽지에서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과 함께 자신을 다시 발견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불과 몇 달 동안에 수많은 낯선 사람들을 내 가슴 깊숙이 끌어안았다.(p256)

 

대숲의 모기는 몸이 새카맣고 날개가 얼룩덜룩한 놈의 모기를 가미카제 특공대라고 부른다. 이런 모기에 물리면 금방 빨갛게 부어 오르고 많이 가렵다. ‘쯩 없는 놈들아하던 선이 아버지에게 발목이 잡힌 정수, 준과 미아와의 어설픈 연애이야기, 연탄가스 중독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소변을 보고 김칫국도 마시고 링거도 맞아 살아났다. 유치장에서 만난 장씨와 전국 공사판을 떠돌고, 혼자 독립하여 진주에서 제빵 기술을 배우기도 하였다. 출가하겠다고 산문에 들이기 위한 시험으로 다른 절로 보내면 쫓겨나기를 세 차례나 거듭한 후 해운대 금강선원의 행자로 있다 아는 사람을 만나 어머니가 찾아와 집으로 돌아온 준은 자살기도를 하지만 닷새만에 깨어났다. 부산의 실제 절일까 검색을 해보았다.

 

도심지의 불빛들이 멀어지면서 어두운 들판이 다가왔다. 베트남으로 떠나는 여정에서 문득 이제야말로 어쩌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출발점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으며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따위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p263)

 

저녁 무렵 초승달 옆에 떠 있는 개밥바라기별은 고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빛을 보내준다. 그 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진정한 좌표를 찾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방황하고 헤맬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알게 해준다. 이 소설을 읽으며 작가와 함께 그 시절을 돌아보는 것은 고통스러웠던 각자의 청년 시절을 돌아보기도 하고 가난하여 대학 진학을 반대하는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학자금을 스스로 마련하는 청년들의 낙천적인 모습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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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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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로, [그레이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탄생된 작품이다. 미모의 가정부 낸시 몽고메리가 임신한 몸으로, 부유한 집주인 토머스 키니어와 함께 살해를 당한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것이다. 지도층 인사들은 그레이스가 협박에 못 이겨 범행에 가담했고, 미국까지 납치를 당했다고 생각했고, 공범인 맥더모트는 그레이스 사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재판에서 맥더모트는 교수형을 당하고 그레이스는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레이스]는 그녀를 직접 만나 관찰한 적이 있는 무디 여사의 자료 조사를 토대로 작품을 썼다고 하였다. 애트우드는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로 평가받는 인물로 작품마다 여성이 겪는 질곡한 삶을 다루었다.

 

소설의 시작은 1859, 그레이스가 수감된 지 16년 후의 이야기로 정신과 의사 사이먼 조던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삶과 행적을 쫓는다. 그레이스는 낮에는 교도소장의 집에서 하녀일을 한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평소처럼 교도소장 댁으로 호송되었다. 미인이고 어린 여성인 그레이스에게 교도관 남자들은 성추행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1843, 주인집 나리 키니어와 그의 정부이자 하녀인 낸시를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그레이스는 열여섯 살이었다. 마구간지기인 맥더모트는 죽은 주인에게 보따리장수 제러마이어에게 산 티셔츠를 입히고 그레이스는 자신의 옷을 태우고 낸시의 옷을 입고 도망을 치지만 이내 잡히고 만다. 그레이스는 죽은 친구를 잊지 못해서인지 가명으로 메리 휘트니 이름을 썼다.

 

폭력과 술에 젖어 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이가 아홉이나 되었다. 굶어 죽을수 없다며 이모는 이민을 권했다. 캐나다로 가는 배안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생활비 마련과 밀린 월세를 갚기 위해 그레이스는 가정집의 하녀가 되었다.

 

올더먼 파킨슨 나리 댁에서 그녀보다 세 살 위인 메리를 만났다.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메리는 그레이스를 알뜰하게 보살펴 주었다. 하녀도 직업의 일종이고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돈을 모아 멋진 남편을 만나 행복한 결혼을 상상하던 메리는 주인집 아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그 남자는 자기 자식인지 모르는데 자기를 붙잡지 말라며 5달러를 주었다. 메리는 만약 자신이 죽거든 전 재산을 그레이스에게 넘긴다고 서명을 한 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의사를 만나러 갔다가 배 속에 있는 뭔가를 잘라냈다고 너무 아파하며 피를 흘리며 죽었다. 주위에서는 뱃사람과 눈이 맞은거 아니냐며 수근대었다. 그녀가 죽고 그레이스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레이스는 어머니와 메리 죽음의 충격을 받고 자주 실신을 하였고, 악몽에 시달렸다. 피로 물든 시트를 몸에 감고 누워 있는 그녀(메리)와 시트를 온몸에 칭칭 감고 청록색 차가운 물속을 떠다니는 엄마가 등장하는 꿈을 꾸었다.

 

의사 사이먼은 묵고 있는 하숙집 주인인 험프리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집을 떠났던 남편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을 가버린다. 사이먼은 그레이스를 상담하면서 결혼하고 싶은 여성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목사와 박사가 그레이스가 살인 사건 전후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관찰하며 사이먼을 채용하였다. 그는 그레이스의 기억상실증이 위조가 아니라 진짜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날에 공포로 인한 히스테리성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녀도 메리 죽음 이후로 의사를 믿지 못하다 마음으로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장돌뱅이 제러마이어가 영매라는 최면술로 돈을 뜯어내든지 같이 가자고 할 때 따라 나섰다면 그레이스 인생은 달라졌을까. 그녀가 하녀일 때 옆집에 살던 제이미 월시가 멋진 남자라는 생각을 하였다.

 

1872년 드디어 사면을 받았디. 30여 년의 무고한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가장 큰 희생양이었던 그레이스는 무지한 희생양이었을까? 끔직한 범죄를 사주한 교사자였을까? 책을 읽고 난 후 그녀의 인생이 안타깝고 슬펐다. 30년 감옥살이를 어떻게 보상 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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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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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8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글쓰기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낸 25명의 여성들의 삶과 철학을 담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출간하였다. 25명의 여성들은 태어난 시기도, 살았던 장소, 쓴 글의 성격도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좋은 책을 많이 읽고 글쓰기에 매달렸다는 점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버지니아 울프, 마거릿 애트우드 책을 읽어서인지 작가들의 이름이 반가웠다. 책 속의 작품을 적기도 하고 메모를 많이 하였다.

 

글 쓰는 여자는 빛난다

글 쓰는 여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글 쓰는 여자는 오래된 비밀을 밝힌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가장이 된 뒤라스의 어머니는 여러 직업을 동시에 가져야만 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말에 수학 교사 자격증을 따고 나서 정 원하면 쓰라고 하였다. 여자가 작가로 이름을 얻고 돈을 벌 수 있을까? 만약 작가로 성공하면 우리를 떠나지 않을까? 어머니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뒤라스는 글 쓰는 여자로 눈부시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냈다.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는 자신을 닮은 딸을 자랑스러워하며 책을 좋아하는 딸이 읽고 싶은 만큼 다 읽되, 마음에 드는 책은 반드시 두 번 읽어 보라는 독서 지침까지 알려주었다. 처음에 어렵게 느껴지는 책도 두 번을 읽으면 이해가 되기 때문에 아버지 정말 멋진 분이시다.

 

코코 샤넬도 콜레트의 작품을 읽으며 영감을 얻었다 할 정도로 어머니와 친구들의 호의를 받은 작가이다. 글을 쓰고 작가로 살아가면서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꼭 그렇게 될 거라고 칭찬하며 여성 작가의 탄생을 기다렸다. 콜레트는 자신의 작품 [지지]에 오드리 헵번을 무대에 올리고 그녀는 유명해졌다. ‘펜을 든 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라며 여성의 삶을 알렸다.

 

실비아 플라스는 부부의 갈등을 겪다 남편이 다른 여성을 만나는 것을 알게 되어 우울증에 빠졌다. 자살을 선택했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렸고 삶의 전부를 글쓰기에 걸었던 여성 시인이었다. 에밀리 디킨슨은 평생 독신으로 집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평생 글만 쓰면서 살았을까? 대법관 소토마요르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를 옹호하고 나선 여성이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다. 판사로 취임했고 대법원 대법관에 임명되었다. 젠더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일관되게 고수한 그녀는 마녀, 괴물, 좀비 등 악담을 듣고도 일절 대응하지 않았고 대신 자신의 삶을 글로 남겼다.

 

토니 모리슨은 자신이 작가가 되어 흑인들의 삶과 역사를 직접 이야기하기로 결심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말과 글의 힘을 믿었다. 글 쓰는 여자는 끊임없이 질문한다는 크리스타 볼프는 신화의 가치를 긍정했다. 소설 쓰기에 입문하기 전 마거릿 애트우드는 생물학자가 될 뻔했다. 1985년 발표한 시녀 이야기는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여전히 글을 쓴다는 80대 현역 작가는 메리 웹스터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수전 손택은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책을 읽을 때만 위안을 찾았다. 유방암을 극복했지만 내전을 겪고, 병들어 가는 사회를 치료하기 위해 문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영화 박열에도 나오는 가네코 후미코는 무적자, 고학생으로 고심참담의 세월을 거친 끝에 사상가, 출판인, 문학가로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박경리 선생님은 전쟁에서 남편을, 몇 년 지나지 않아 아이를 잃었다. 고통은 혼자만의 몫이었다.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사벨 아옌데는 삶을 개척하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확장해 갔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한계에 부딪혀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글을 쓰는 그녀들이 대단하고 감동의 물결이 일렁인다. 책만 읽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곁에 두고 읽어도 좋고 선물을 해도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도서의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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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공장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9
이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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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 소도시.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있는 동네의 유일한 대중교통이 버스인 오동면, 서울에 가려면 왕복 4시간이 걸린다. 오동면에서 제일 북적거리는 곳은 오동 고등학교다. 한때는 400명이 넘었다는 전교생 수는 이제 123명까지 줄었다. 선생님을 합쳐도 150명에 미치지 않는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시간을 때우는 곳은 학교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버스 정거장 앞이다.

 

유정, 차영진, 염민서, 최나헤 네 단짝은 다 함께 오동면에서 자랐고 같은 학교를 다녔다. 어릴 적에 사귄 친구들이 오래 인연을 유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절대적인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아이들은 방학에도 갖가지 학원을 오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오동면에는 학원이 딱 한 곳뿐이었다. 네 아이들은 일주일에 사흘은 같이 학원에 가고, 가지 않는 날에는 학교 도서실에 모여서 자습을 했다. 토요일에 서울을 가기로 약속을 정하고 넷은 열심히 서울의 맛집들을 분석했다. 연리단길에서 요즘 제일 핫한 카페를 향했다.

 

   

 

 

음료는 재료가 더 떨어졌다고 하여 자몽을 시켰다. 카페는 공장이나 창고처럼 생겼다. 천정에 전깃줄과 파이프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콘르리트 벽에는 크고 작은 그림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아이들은 그냥 우리가 각자 집에 있는 물건 가지고 와서 카페 차려도 되겠네 동네에 빈 공장에 가보자고 하였다. “까짓것 진짜 차리지 뭐 어차피 장난인데..” 빈 공장은 4,5층 높이의 건물들은 한때 공장으로 쓰였지만 인구가 지금의 두 배가 넘던 시절 들어선 공장들은 세월이 흐르며 하나둘 문을 닫았고 팅 빈 건물만 남아 있었다.

 

물도 전기도 나오고 카페 차리면 딱이겠다 의견을 모았다. 집에 남아도는 의자, 개다리소반, 홤누석 등 고물들을 가져와서 모아놓고 보니 요즘 유행하는 카페 같았다. 이름까지 정했다. 원래 공장이었으니 카페, 공장중간에 쉼표를 넣으니 있어 보이고 프린트로 간판까지 만들어 붙이자 그럴싸했다.

 

네 아이들은 용돈을 모아 동네 편의점에서 음료와 과자를 사고, 약간의 마진을 붙여 메뉴판을 완성한다. 벽에는 오래된 영화포스트를 붙여주고, 솜씨 좋은 민서는 엽서를 직접 만들어 판매도 하였다. 학교 친구들의 입소문을 타고 카페 공장은 동네 아이들의 명소가 된다. 손님이 많으면 사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SNS홍보, 식재료 수급, 진상 손님 퇴치, 클레임 해결, 마진율 조정, 이익 배분, 근무 환경까지 네 명의 사장들은 좌충우돌한다.

  

  

 

동네 사람들, 부모님들이 알아채면 영진네 둘째 큰어머니께서 차린 곳이며 사회생활을 배우려고 베프들이랑 알바를 하는 중이라고 둘러대기로 하였다. 실제 입소문을 타고 학교 선생님이 찾아오기도 하였다. 손님은 더 많은 손님을 부르고 아이들은 바쁜와중에 뿌듯한 성취감을 느낀다. 그동안 재미없게 살아왔는데 카페 공장을 하며 변화가 생겼다. 정이는 바리스타, 나혜는 제빵사, 민서는 디자이너, 영진은 매출 재무관리를 각자 정한일이 있지만 단짝 사이에도 미처 모르고 지냈던 기질과 습관들이 카페에서 일하다 보니 두드려졌다. 놀 때는 눈감아 주었던 것들이 일일이 신경을 긁고 뒤끝을 남겼다. 단톡에 불만을 토로하지만 문제점은 고쳐지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벤츠 승용차가 카페 앞에 나타나고, 차에서 내린 아저씨는 다짜고짜 카페 주인을 찾는다. 건물 주인이고 땅 부자 아저씨였다. 네 아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미성년자이고 어린 학생들이 카페를 차린다는 설정이 무모하게 보이지만 함께라서 가능했던 멋진 도전은 아이들의 진로나 직업에 영향을 끼친다. 작가는 [카페,공장]을 읽는 짧은 순간만이라도 각자의 꿈과 기대를 어김없이 배반하는 현실에서 한숨 돌릴 수 있기를 희망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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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거짓말 오늘의 젊은 작가 11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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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거짓말>에서 주인공 는 거짓말 2급 자격증 소유자다. ‘는 남자와 소년을 동시에 만난다. 사귀는 것 같지만 사귀지 않는 묘한 사이면서 양다리를 걸친다. 남자와 만나는 이유가 능숙한 거짓말 때문이라면 소년을 만나는 이유는 좀 다르다. 거짓말로 사랑을 유지하는 거짓 사랑은 거대한 숲을 이룬다. 소년은 숲으로 성큼 들어서는 쪽으로 이제껏 잘 속아 왔다. 아무 문제 없이 두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1급이 될 자격은 충분할 것이다.

 

거짓말은 사랑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진실보다 더.

 

거짓말은 하는 게 아니라 치는 거라고 아버지가 알려 주었다. 2급이 되고 나서 단독으로 일할 수 있었다. 1급에게 가는 일이 2급에게 떨어졌다. 자격증 심사 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이번 심사에서 1급으로 올릴 기대를 해본다. 위원회는 의뢰 업체에서 원하는 자격 조건을 갖춘 사람을 골라 연락처를 제공하고 일반인과 섞어서 면접을 통해 최종 인원을 선발했다.

 

엄마는 주말마다 예식장에 나갔다. 생판 모르는 남의 결혼식에 하객들과 과장된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그 나이에도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건 자격증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구라였다면 엄마는 공갈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꼬실 때 건물이 자기 거라고 우겼고 엄마는 애 가졌으니 당장 같이 살자고 공갈을 쳤다. 주인공의 거짓말은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부풀렸다. 믿는 대로 진실이 되고 의심하는 대로 거짓말이 되었다. 학교에 늦어도 약속을 못 지켜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연습을 이어 가다 보니 거짓말과 진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사막에 가 있기도 했고 때로는 공장장이 되어 야근을 하고 갑자기 전국을 떠도는 사업가로 둔갑했다. 아버지는 사기를 치고 도망을 다니면서 다른 여자와 동거하며 수 개월 집을 나가 있었다. 엄마의 공갈이 날카롭기만 한게 아니라 구라를 품기도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완벽하지 않다면 차라리 진실한 게 낫고 거짓말은 사랑도 받을 수 있게 만들어주고 어떤 위기도 모면할 수 있게 해주지만 그건 거짓말이 통했을 때뿐이었다.

 

엄마는 자격정지를 당하고 목욕탕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공갈을 못 친다. 옷을 홀랑 벗은 채 마주 앉아 있어서 그런가 나이 하나 속이는 것도 만만찮더라 하였다. 그동안 목욕탕 출입을 꺼렸던 이유를 딸에게 이야기 해준다. 조금 이해가 안되는 대목인데 딸하고 목욕탕을 한번도 안가봤다는 것인가 독자인 내가 거짓말을 당한 느낌이다.

 

어린 나이에 거짓말과 진실을 적는 일기장 두 권을 가지고 있다. 소설 후반으로 가면 주인공이 그녀의 지시대로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자에게 결혼했느냐고 묻고 되물었음.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아 한번 더 질문해 보겠음. 펀치 머신에서 남자는 최고점을 기록했음. 잠자리는 남자가 먼저 시도했음. 거부하자 남자는 등을 돌리고 있음. 백화점에서 점원에게 우리가 결혼할 사이라고 했음> 주인공이 일을 마무리 하는 것은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거짓말 가이드북에선 첫 거짓말을 준비하는 때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이라고 했다. 여전히 남자와 소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남자의 택시를 타고 종일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고 소년은 나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땐 당신의 거짓말이 사랑일 수도 있단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아는 거의 모든 거짓말을 친다. 숲이 우거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녀의 거짓말 이라는게 결국 어설픈 구라였음을 스스로 밝히며 다시 숲으로 들어설 차례다. 이 소설은 참신하다. 내가 거짓말 자격증을 딴다면 몇 급이 주어질까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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