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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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까지 학교에 가본 적 없던 소녀가 박사가 되기까지 배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회고록 에세이 읽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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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 책 읽어드립니다,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지음 / 스타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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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는 김구 선생이 후손에게 남긴 유언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쓴 자서전이다. 이 책의 상권은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임시정부 시절 두 아들에게, 하권은 중일전쟁의 결과로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을 때 동포들에게 선생의 삶과 민족운동에 대한 소회를 밝히려 쓴 것이다.

 

난산 끝에 태어난 김구는 어머니의 젖이 말라 암죽을 먹이고 아버지가 품고 다니시며 동냥젖을 먹이셨다. 이 생원댁 아이들과 놀다가 억울하게 몰매를 맞았다. 다 죽일 생각으로 칼을 들고 울타리를 뜯고 있는데 그 애들 누나에게 들켜 목적도 달성 못하고 실컷 얻어만 맞고 칼도 빼앗긴 채 집으로 왔다. 밥 먹던 수저를 반으로 잘라 엿으로 바꿔 먹기도 하고, 아버지 돈을 훔쳐다 떡을 사 먹으려다 집안 어른에게 들키자 아버지는 들보 위에 매달아 회초리로 후려갈겼다. 마침 아버지와 동갑이신 학렬이 높은 장련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마구 때리셨다. 어린 것을 그렇게 무지하게 때려서 쓰겠느냐는 것이었다.

 

조상인 김자점이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었다. 멸문지화를 피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 그것은 양반의 행색을 감추고 상놈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상놈이 되야만 했나 분해서 글 공부를 하리라 결심했다. 글 선생이 글방을 옮기면 밥그릇을 메고 고개를 넘어 공부를 하는데 김구가 일치월장 하니 다른 학생들이 시기를 하였다. 과거를 보고 와서 실망을 하자 아버지는 풍수나 관상 공부를 해보라 하셨다. <마의 상서>를 빌어다 석 달 동안 꼼작도 안하고 거울을 보고 내 얼굴을 부위와 이름을 익혀가며 연구를 하는데 귀격이나 부격과 같은 좋은 상은 없고 천격, 빈격, 흉격 뿐이었다. 짐승처럼 살다가 죽어야 하는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책 속에 좋은 구절대로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동학에 입도하고 아명인 창암 대신 창수로 개명하였다. 동학당 중 나이도 어린데 가장 많은 연비를 가졌다 하여 아기 접주라고 별명 지어 불렀다. 황해도에서 도유 15명을 선출하는데 그중 한명이 되었다. 팔봉이라는 이름을 짓고 해주성을 향하여 전진했다. 민간에 행패하는 자는 적발하여 엄벌에 처했더니 백성들도 안도하였다. 청나라를 가기 전에 안 진사댁에서 만난 참빗 장수 김형진이 길동무가 되었다. 대포를 두 손으로 들었다 놓을 정도의 장사로 소문난 김이언을 찾았다. 그는 고집만 내세워 작전에는 실패하였다.

 

고 선생님의 손주 사위가 되려나 했는데 김치경과 농담 삼아 정한 청혼으로 이루지 못했다. 지하포에서 진남포로 가는 길에 왜놈을 때려 죽였다. 그때 객주의 고발로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두 다리를 주리를 틀어 지금도 큰 흉터가 생겼다. 김구는 법정에서 오히려 큰 소리를 쳤고 소문이 났는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음식을 한 상 차려서 만나러 왔다. 옥중에서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상감이 국모보수란 죄명으로 사형을 정지하도록 결정했다. 김주경은 재산을 탕진해가며 김구 석방 운동을 하였지만 효과가 없자 단념하였다.

 

2년 만에 인천 감옥을 탈옥하게 된다. 거지 행색의 김구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서울로 향했다. 약간의 노자 돈을 얻어 남쪽을 여행하다 출가하기로 결심하고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영천암의 주지가 되었다. 불심이 회복되기 어렵고 부모님도 중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 산을 내려왔다. 유인무와 성태영이 상의한 끝에 쫓기는 몸이라 김창수로 행세하기 불편할 것이니 김구로 정했다.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하여 고기나 약을 살 돈이 없어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 구어 드시게 했다니 참 대단하고 눈물겹다. 도산 안창호 여동생과의 혼담이 깨지고 최준례와 혼인을 하였다. 안창호는 미국에서 돌아와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웠다. 안중근 사촌 동생 안명근이 독립운동 자금이 필요하다 하였지만 인재를 양성하여 힘을 키워야 하니 젊은이들을 서간도로 보내 군사교육을 시키는데 노력하자고 하였다.

 

숱은 애국자를 잡아들이니 감옥이 부족했다. 신문이 아닌 고문과 악형을 하였다. 와타나베 놈은 조금이라도 숨긴다면 살아 돌아갈 생각을 말아라 하면서 17년 전의 인천 감옥의 김창수인 줄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형정지를 받고 탈옥 도주한 것은 적혀 있지 않았던 거 같다. 가출옥으로 고향으로 가니 서너 달 전에 딸 화경이가 죽었다. 7살 밖에 안된 어린 것이 아버지를 걱정했다고 한다. 상해에 임시정부가 조직되었다. 안창호 동지가 내무총장으로 국무총리를 대리하게 되었다. 아내가 인을 데리고 상해로 오고 신이 태어났다. 아내는 신을 낳은 후 폐렴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

 

문지기를 청원했는데 뜻하지 않게 경무국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서른한 살 이봉창은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 사업에 몸을 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다고 하였다.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체포된 후 사형당했다. 윤봉길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려는 큰 뜻을 품은 의기남이었다.

 

상해에 온지 14년 왜놈들의 추적을 피하려 뱃사공 주애보와 배 안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남경으로 와서 왜경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주애보의 본가에 월급을 주며 그녀와 동거를 했다, 이봉창, 윤봉길 사건이 생기자 순사대는 집을 포위하여 어머님을 감시했다. 어머니는 지방의 수토병이 걸려 손을 쓸 수 없어 돌아가셨다. 독립이 되거든 유골을 파가 고향에 묻어주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7년간 중경 생활을 회상하였다. 폭격이 심해 임시정부를 네 번이나 옮겼다. 광복이 되어 귀국하면서 동지들을 만나거나 유족들을 찾아 보았다. 독립운동가로 헌신하신 김구 선생의 뜨거운 민족애 너무 감동적이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라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민족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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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현실 편 : 역사 / 경제 / 정치 / 사회 / 윤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1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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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인문학 분야의 가장 기본 지식을 알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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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2 - 전3권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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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이해하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알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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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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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1928년 케임브리지 여자 단과대학에서 여성과 픽션 이라는 주제로 부탁한 강연회를 위해서 씌어진 글을 수정하여 출간한 것이다. 비평서이자 에세이라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의 남성의 심리와 여성이 처한 현실의 문제, 여성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여러분이 곧 알게 되겠지만 이러한 견해는 여성의 참다운 본성이니, 픽션의 참다운 특성이니 하는 문제는 미해결로 남겨두는 셈이다.p10

 

사색에 빠져 옥스브리지 잔디밭을 거닐고 있었는데 관리인이 다가와 이 길은 오로지 대학 연구원들과 학생들만 들어올 수 있고 여자는 자갈길을 걸어라였다. 윌리엄 새커리의 원고를 읽기 위해 도서관에 들어가려 하자, 그녀 앞에 나타난 관리인은 학교 도서관에 대학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지녔을 경우에만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두 번의 거절을 통해 여성이 처한 사회적 불평등을 묘사한 저자는 한 개인이 최소한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소설 작품 속엔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얼마나 많은 책이 여성에 대하여 쓰고 있는지 대부분 작가가 남성인 것에 대하여 저자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숙모 메리 비튼은 봄베이에서 말을 타고 바람 쐬러 나갔다 말에서 떨어져 돌아가셨다. 한 변호사의 편지가 우편함에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내가 계속하여 오백 파운드의 유산을 받도록 해놓았다. 이전에는 신문사 잡무직이나 결혼식에 대해 기사를 쓰며 돈을 벌었다. 봉투에 주소를 쓰고, 노부인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조화를 만들고,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며 몇 파운드의 돈을 벌었다. 1918년 이전 여성에게 열려 있는 주된 일거리였다.

 

저자는 왜 여성들이 엘리자베스 시대에 시를 쓰지 않았는가에 대해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트리벨리언 교수에 의하면 육아원을 채 벗어나기도 전인 열다섯이나 열여섯 살에 자신이 좋아하든 싫든 간에 결혼을 했다. 그들 중 누군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썼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어떤 노신사가 과거, 현재, 미래의 어떤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을 지닐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어떤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천부적 재능을 가졌으리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와 같은 천재란 고생하고 교육도 못 받고 노예같이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태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프랑스, 영국에서도 여성 시인들이 소설가에 선행한다. 조지 엘리엇,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제인 오스틴 등 그들은 글을 쓸 때에 모두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중산층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19세기 여성 작가들이 주로 소설을 쓴 이유는 그들이 주로 거실에서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시보다 집중력이 덜 요구되는 소설이 적합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빌렛, 에마, 폭풍의 언덕, 미들마치 와 같은 모든 훌륭한 소설들이 인생 경험이 없는 여성들에 의하여, 존경스런 집의 공동 거실에서 너무 가난하여 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를 쓸 종이를 한꺼번에 사들일 여유가 없었던 여성들에 의하여 쓰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한다. 조지 엘리엇은 많은 시련 후에 탈출을 하였다. 기혼 남자와 사는 죄를 짓고 있었으니 사람들은 루이스에 대해서는 동정적이면서 조지 엘리엇에 대해 악평을 퍼뜨렸다.

 

순수한 가부장제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비판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고수한다는 것은 엄청난 천재성과 성실성을 필요로 했을 것임에도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만은 해냈다. 그들은 남자들 처럼이 아니라 여성들이 쓰는 것처럼 썼다. 저자는 아무리 방대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온갖 종류의 책을 써보라고 부탁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기도 하고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사색하고 책을 보고 몽상에 잠기며 충분한 돈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여성의 픽션 예술에 도움이 될 것이다.

 

159울프는 여성남성이라는 젠더적 구별을 공고히 하거나 여성으로서의 특수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방]은 울프의 깊고 풍성한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실 울프의 소설은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쓰여 머리를 쥐어짜며 읽어야 했다. 여전히 정리가 안되지만 그녀의 작품에 빠져든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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