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초 영국 농촌사회 연구
김호연 지음 / 울산대학교출판부(UUP)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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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영국사 번역자로 몇 번 이름을 보았던 김호연 교수의 연구논문서적이다. 울산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책이라 주문 후 며칠 걸려 받아 보았다.

 

사실 내가 궁금했던 시기는 18세기인데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정확히 근대초, 16~17세기의 영국 농촌 사회를 주로 다루고 있다.  크게 보아 19세기까지 나오기는 한다. 16~18세기 영국 농촌사회의 신분 서열은 토지소유자이자 장원의 영주였던 젠틀맨, 농경에 종사하던 요먼과 허스번드먼, 오두막농과 농업 노동자로 구성되었다. 1590년 흉작 이후 영국 농촌사회는 빈부차가 심해진다. 대토지 소유자가 등장하고 가난한 농민들은 농업노동자로 전락한다. 1873년 실시된 한 토지조사에는 영국의 토지 중 89%가 7000명 이내의 사람이 소유한 것으로 나올 정도이다. 이 시기는 사회, 계급적 유동성뿐만 아니라 지리적 유동성도 심했던 시기다. 일종의 내부 이민이 등장한다. 특히 15세에서 24세 정도 결혼 연령사이 청년들은 일거리를 찾아 근처 마을을 이동해 다니는 'servants in husbandry (농사 머슴)'신분이었다. (테스는 왜 그렇게 떠돌아다녔을까? 그렇다! 테스 역시 농업 노동자였던 것이다. ) 왜 이렇게 소농들이 빨리 붕괴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믿을만한 통계 자료가 없기도 하다.

 

이런 영국 근대 초 변화하는 농촌사회의 모습은 사회 갈등으로 나타난다. 농민사회가 빈부로 양극화되메 따라 사회적인 가치관도 달라져 서로 대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판 기록의 통계를 보면, 이 시기 농촌사회의 지배계층으로 부상한 부농들은 젠트리의 가치관을 습득, 가난한 농민들의 법률 위반에 대해 빈번히 기소하는 경항을 보인다. 농촌 사회는 촌락민의 합의에 의해서 운영되던 공동체가 아니라 지배계층에 동화된 부농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로 변모한다. 마지막 4부는 미들랜드 농민사회의 변화에 대해 각종 도표를 인용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정말 밥그릇 갯수까지 세어 보여준다.

 

책은 당시 유언장, 재판기록, 토지거래문서 등을 사료로 이용하여 이 시기 농촌 사회의 변화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영어와 한자를 괄호 안 아닌 본문에 그대로 쓰고 한글로는 조사 정도만 달아놓은 문장도 많다. 딱, 공부하는 자세로 읽으면 되는 책이다. 내겐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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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 3부작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주효숙 옮김 / 까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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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제국에 대한 책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독특하다. 1900년전, 트라야누스 황제가 집권하던 기원후 115년전 로마의 하루를 6시부터 24시까지 따라가보는 식으로 서술했다. 접근 방법이 흥미롭다.

 

저자는 6시 부자들의 저택인 도무스에서 시작해서 로마인들의 아침 준비와 몸단장, 아침식사 장면을 서술한다. 도무스 외에 현대의 아파트 격인 인술라, 로마 거리, 상점과 작업장, 학교, 포룸, 공중 목욕탕, 노예시장, 신전, 콜로세움, 화장실, 만찬 파티장 등등을 마치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직접 내래이션까지 하는 듯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로마인들의 하루를 보여 준다. 독자의 이목을 끄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저자다. 매매춘 장면을 보여주다가 그때 오가는 동전에 주목하여 '탐구 : 세스테르티우스의 가치는 얼마일까?'하는 서술로 넘어가는 대목에서는 정말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서점에서는 타키투스를 만나기도 한다.

 

각 공간(그러니까 유적지)에서의 일상을 다루지만 곳곳에 기존 통사식 로마사에서 볼 수 없었던 기술이 숨어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원전 1세기 내전으로 인해 상류 계급 여성들의 지위가 상승한 부분, 뜻밖이었다. 원로의원들은 내전 중에 로마의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목숨믈 잃으면서 이들의 돈과 재산이 카이사르 같은 독재자의 손에 들어갈까봐 여성들에게도 유산을 상속할 수 있도록 새로운 법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의 소유물처럼 취급당하던 기혼 여성의 지위가 좀 높아졌다고. 부친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형태로 남편과 결합하고, 부친 사망시 유산을 상속받으며 경제적 독립이 가능, 이혼이 쉬워졌다고. (366쪽)

 

곳곳에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와 비교하는 대목이 많다. 약간 서구 지식인 남성이 갖는, 내가 보기에는 불편한 시선이 보인다. 현대의 기준으로 이해 안 되는 고대 로마의 풍습 등을 서술할 때 현재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비교하는 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노예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가전제품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에너지는 30명의 노예가 하는 일에 맞먹는다고 한다. 198쪽)을 예로 드는 것 같은 부분은 신선했다. 

 

쓰는 입장에서, 참 방대한 자료를 보며 배치하느라 머리 아팠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로마사 쪽은 유적도 자료도 많으니 이런 저런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것일까.

 

 

- 책의 저자, 알베르토 안젤라 

"나는 고대 로마 세계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항상 서점에서 찾고 싶던 책을 직접 쓰려고 시도했다.(14쪽)"라는 서문을 읽으니, 갑자기 이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져서 찾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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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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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나름 분석하다가, 이게 걍 낭만적 사랑과 결혼, 결혼과 성이 일치된(일치되기를 꿈꾸었던) 빅토리아 시기 가족과 성애의 새로운 버전일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글로 정리하자니, 자본주의와 섹슈얼리티, 근대 가족 성립 쪽으로 더 공부해야겠다는 절박함을 느꼈다. 일단, 우에노 치즈코부터. 얊고 대중적인 책부터.

 

책은 300쪽이란 얇은 분량 안에 집약적으로 여성 혐오의 역사와 현실(일본 현실)을 풀어낸다. 주로 일본 문학이나 사건, 인물 역사를 예로 들기 때문에 좀 이질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게다가 이 분 서술이 좀 과격하다. 뭐 나야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65쪽)'같은 서술이 유쾌 상쾌 통쾌했지만. 사실 내가 혼자 대강 생각하던 이야기를 이 분이 알아서 명확하게 해 주시니 뭐 그저 고맙기만 하다. ( 이제 내게 시비거는 아저씨들 만나면 걍 이 책을 권해주고 난 그 자리를 피해야겠다.)

 

아래는 목차이다. 목차만 봐도 대강 내용이 짐작될 것이다. 요약한다는 건 의미가 없고, 걍 남성이든 여성이든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2015년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여성 혐오가 현실의 본질적 문제를 은폐하는데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다들 이야기나눴으면 좋겠다.  


제1장 호색한과 여성 혐오
제2장 호모소셜, 호모포비아, 여성 혐오

제3장 성의 이중 기준과 여성의 분단 지배 ―'성녀'와 '창녀'의 타자화
제4장 비인기남과 여성 혐오
제5장 아동 성학대자와 여성 혐오

제6장 일본 황실과 여성 혐오

제7장 춘화와 여성 혐오
제8장 근대와 여성 혐오
제9장 어머니와 딸의 여성 혐오
제 10장 '아버지의 딸'과 여성 혐오
제11장 여학교 문화와 여성 혐오
제12장 도쿄 전력 OL과 여성 혐오 part 1
제13장 도쿄 전력 OL과 여성 혐오 part 2
제14장 여성의 '여성 혐오' / '여성 혐오'의 여성
제15장 권력의 에로스화
제16장 여성 혐오는 극복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여성인 내 입장에서 여성 혐오가 자기 혐오가 된다는 부분을 설명한 부분이 인상깊다. 내가 느끼는 자아 분열, 자기 기만, 모순적 감정의 뿌리를 알고 나자 해방감이 든다. 어머니와 딸 부분도 지금 내 입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아, 좀더 빨리 나 자신과 화해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남성의 여성 혐오는 타자에 대한 차별인 동시에 모멸이다. 남성은 여성이 될 걱정이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여성을 타자화하고 차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성에게 있어 여성 혐오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된다. 자기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것이다.

사회적 약자는 그 종류를 막론하고 모두 비슷한 '범주 폭력'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범주는 지배적인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156쪽에서 인용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있어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길이었다. 남성에게도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여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 혐오'와 싸우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제시하는 것은 더 이상 여성의 역할이 아니다.

- 본문 304쪽에서 인용. 인용한 마지막 문장은, 문맥상 '여성의 역할이 아니다'이다.

 

몇 달전에 거다 러너의 <가부장제의 창조>를 읽었으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책에서 설명하는 가부장제의 기원이 너무 잔혹했고, 내 감성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막혔던 부분이 뚫렸다. 최근 읽은 알베르토 안젤라 책에서 로마 남성들의 성의식 부분도 '호모 소셜, 호모 포비아, 여성 혐오'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여튼, 잡스럽게 읽어두면 어느 순간 점잇기 게임이 되어 순식간에 그림이 완성되기는 하는구나. 이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아담 이브 뱀>으로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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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제국 -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
노부타 사요코 외 지음, 정선철 옮김 / 이매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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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집이다. 일본의 여성주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와 임상심리 상담가 노부타 사요코가 2000년대 초반 일본 현실을 기준으로 결혼 제도, 연애, 성, 가정 폭력, 세대 갈등, 경제와 관련한 사회문제에 대해 대담한 내용이다.

 

결혼이 여성을 억압한다,,, 같은 기본적이고 독자가 상상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도 있고 '사랑 없이도 섹스할 수 있다'라는 낚시성 제목이 달린 장도 있다. 하지만 책은 더 깊다. 둘의 대화는 더 폭넓게 문제의 근원, 미래에 대한 우려까지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결혼 제국'이라는 제목과 출판사의 책 소개글은 책 내용을 다 담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의 대담은 여성에게 결혼이 필수냐 선택이냐,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비혼 여성의 증가와 노령화가 앞으로 사회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가 핵심인데.  특히 우에노 치즈코의 주전공은 사회학 중에서도 개호(care, 돌봄노동) 쪽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이 대담을 파악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주로 논하는 세대는 당시 30대 여성이다. 대담자들은 일본 경제의 혜택을 받아 남녀평등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여 30대가 된 2000년대 일본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과 변화를 그린다. 그 이전 세대 여성들이 결혼제도에 의지하여 노후를 보내던 것과 달리, 이들 비혼 여성들이 나이가 들면 '복지의 하위계급'이 될 수도 있다는 부분에 눈이 번쩍 뜨인다. 안타깝게도, 일본의 사회문제는 늘 10년후 우리나라의 문제가 되지 않았던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인종이나 이민자와의 갈등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공격의 대상이 내부의 적, 즉 복지 하위계급(250쪽)'이 될 수도 있겠구나. (사실 우리나라 보수언론은 지금도 그런 쪽으로 여론을 돌리고 있기는 한데. 왜 내가 낸 세금을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에게 쓰냐! 이런 식의 반응을 유도하면서. )

 

부모를 부양하는 것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부모의 재산을 가지고 먹고 사는 거예요. 요컨대 여자는 남편의 경제력이나 부모의 재정적 여유, 둘 중 어느 쪽에 매달려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의 시중을 들거나 부모의 대소변 시중을 들거나 하면서. 그런데 재산도 없고 자식도 없는 독신도 등장하겠죠. 정규직으로 계속 근무하면 연금이 있습니다만, 비정규직으로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 파견 근무일 경우에는 노후에 복지의 하위계급으로 전락될 가능성이 있어요.

- 251쪽에서 인용

 

30대 독신 여성들은 신자유주의 세대입니다. 이 신자유주의는 '자기 결정, 자기 책임'이 키워드입니다. 페미니즘에서 내세우는 '여성의 자립'도 신자유주의 맥락에서 파악하면 '자기 결정, 자기 책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페미니즘도 신자유주의 사상, 즉 '경쟁에서 이긴 쪽' 여성들의 사상으로 재해석되어버리고 맙니다.

- 253쪽

 

우리 세대에서는 선택지가 없었어요. 여자는 모두 한 덩어리로 차별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 쪽에서도 한 덩어리가 돼 연대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해를 공유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어설픈 선택지가 존재하는 탓에, 지혜와 능력을 가진 여자가 그런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다른 여자들과 연대하는 데가 아니라, 다른 여자들을 따돌리는 데 사용해요. 이런 세상에서 페미니즘이 성립할 리가 없는 거죠.

- 254쪽

 

한 대담자는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즉 이론가이고 한 대담자는 현장에서 직접 많은 사례를 접하며 상담한 현장 활동가이다. 전문가 두 분의 이론과 경험, 관록을 이렇게 쉽게 내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특히 우에노 치즈코(일본에서 열정적인 싸움닭 논객으로 소문난)를 처음 접하는 분들께 강추한다. 대담이어서 부드럽고 유머러스하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보다 편히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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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 and Goal of History (Hardcover, 1st)
Jaspers, Karl / Routledge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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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원과 목표> 

 칼 아스퍼스 지음, 백승균 역 /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86.

 

 

 

우선 밝힌다. 나는 이 책을 영어 원서로 읽지 않았다. 리뷰 올리려니 1986년도 번역본이 검색되지 않아 할 수 없이 영어번역본에 올린 것이다. Karl Jaspers(1883-1969)의 원저는 1949년도 독일어판 <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이다. 

 

 

이 책도 참 재미있는게, 여기저기서 언급은 많이 되는데 절판되어 구해 읽을 수가 없다. 도서관에도 거의 없다. (나는 남산 도서관에까지 땀 흘리며 올라 가서 대출해 읽었다.) 그런데도 '축의 시대'관련해서 언급하는 글에 이 책이 꼭 등장한다. (그들은 이 책까지 다 찾아 읽고 그 글을 쓴 것일까? 끝까지 다 읽어보면 이 책 그렇게 위대하지는 않은데? )

 

그렇다, 이 책이 중요한 것은 바로 '축의 시대( die Achsenzeit, 이 책은  '차축시대'라고 번역하고 있다)라는 개념때문이다.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이전, 그 시대를 언급한 원조가 야스퍼스 선생인 셈이므로.

 

 

이 책은 야스퍼스의 역사철학을 담았다. 주로 서양을 기준으로 삼아 세계사의 도식을 구상해 보고 있다.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 헤겔, 베버 등 선대 학자들을 종횡무진 언급해서 지금 내 수준에서 읽기가 버겁다.

 

 

이러한 역사관들을 우리는 여기서 이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전체 역사관을 위한 도식을 구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구상은 인류란 하나의 유일한 기원과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신앙적 명제에 기원한다. 우리는 역사의 기원과 목표를 알지 못한다.

- 본문 18쪽에서 인용

 

야스퍼스는 일단 차축시대를 정의 내린다. 차축시대는 인류의 정신적 비상이 응축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중국에는 공자와 노자가 생존했으며 묵자, 장자, 열자 등 중국 철학이 완성되었다.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가 성립되고 석가모니 부처가 생존했다. 이란에서는 짜라투스트라가 등장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예언자 엘리아, 이사야, 예레미야가 활약했고 그리스에는 시인 호머와 철학자 에라크레이토스, 플라톤 등이 활약했다.  

 

이러한 세계사의 차축은 기원전 약 500년경으로 BC 800년과 200년 사이에 이루어진 정신적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 같다. 이 시기가 우리에게는 가장 심오한 역사의 기점으로 되었다. 오늘날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이 바로 그 때부터 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를 우리는 요약해서 차축시대(車軸시대, die Achsenzeit)라고 부른다.

- 본문 21쪽에서 인용

 

이 시기, 이 지역의 사람들은(저자는 중국 인도 유럽 사람들을 놓고 말하고 있다) 처음으로 자신을 전체 속의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참모습을 궁금해 했으며 세계의 공포를 대면하고 자신의 무력함을 경험하자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 전쟁과 가혹한 현실 속에서 해방과 구원을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이때 인류에게 다른 사람을 이끄는 정신적 스승이 등장했다. 이들은 오늘날까지 인류 사유의 근본 범주를 형성했으며 세계 종교를 창조했다. 인류는 아직도 이 시대에 이들 스승이 창조한 틀 안쪽에서 살고 있다. 차축시대는 뛰어난 개개인이 이룩한 업적이 전체 인류에게 영향을 미쳐서 인간 존재를 비약시키는 놀라운 경험을 처음으로 이룩한 시기였다. 현재까지 인류에게 새로운 위기가 나타날 때마다 인류는 차축시대로 회기하여 돌파구를 찾았다. 르네상스나 종교개혁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차축시대의 사실을 실제로 본다는 것과 그러한 것을 우리들의 보편사로서 역사상의 지반으로 획득한다는 것 등은 신앙의 모든 차이성을 초월하여 전인류에게 공통되는 그 어떤 것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본문 49쪽에서 인용

 

인간은 4번이나 새로운 근거에서 동시에 출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1기가 선사시대로서 우리들이 거의 접근하지 못하는 프로메테우스 시기이다. (이 시기에 언어와 도구 그리고 불의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시기로 인해서 사람이 비로소 사람으로 되었던 것이다.

2기는 고대 고도문화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3시기는 차축시대로 시작한다. 차축시대로 인해서 사람은 전적인 개방적 가능성에서 정신적으로 참다운 사람으로 되었다.

4기는 과학적 기술적 시대로 시작한다. 이 시기에 접어 들면서 우리는 우리의 자신을 경험하게 된다.

- 본문 55 ~  56쪽에서 인용

 

 

- 본문 59쪽. 야스퍼스가 설명한 세계사의 도식.

 

이 정도, 이부분까지, 나는 저자의 견해를 거의 수긍하며 읽었다. 그런데 읽어나갈수록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차축시대 이후에 전개되는, 위의 도안에 제자리를 차지 못한 민족은 '무(無)역사적 삶'을 사는 '자연 민족 (Naturvolk)'이라 칭한다.  차축 시대를 이끈 중국, 인도, 그리스, 유태, 이란인이거나 아니면 이들의 영향을 받아 발전해간 민족들, 즉 마케도니아, 로마, 게르만, 일본 등등의 민족은 '역사 민족'이라고 한다.

 

모든 민족은 정신적 발현을 경험하는 세계에 기반을 둔 민족과 그런 정신적 발현을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에 기반을 두 민족으로 구별된다. 전자가 역사민족이고, 후자가 자연민족이다.

- 본문 100쪽에 인용

 

이런 견해, 의아하다. 그런데 역사 민족 내에서도 저자는 동양에서 서구를 분리해낸다. 17세기 이후 인도와 중국의 후퇴는 전 인류의 가능성을 위한 위대한 상징과 같은 것(99쪽)이라며 서양에서는 차축시대 이후에도 많은 극적인 새로운 시작이 있었지만 중국과 인도에는 없었다(101쪽) 단언한다. 이후, 이와 같은 견해가 주욱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런 서술이 세계사를 보는 역사 철학인가? 단순 무식한 나는 잘 모르겠다.

 

정신적 발현의 대변혁은 인간 존재를 신성화하는 것과 같다 그 이후의 모든 정신적 발현에 관계하는 것은 그러므로 일종의 새로운 신성화의 작업인 것이다. 정신적 발현 이후 오직 신성을 전수받은 인간과 민족들만이 참다운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였다.

- 본문 102쪽에서 인용

 

수천년을 통해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는 가운데서 서양은 결단성 있는 전진을 해왔고 단절과 비약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철저한 사고방식을 세계에다 적용시켜 왔으나 동양에서는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에서도 그러한 정도의 사실들은 전연 일어나지 않았다.

- 본문 106쪽에서 인용

  

저자는 책의 후반부로 가서, 과학과 기술이 새로운 차축시대를 열었다고 말한다. 그 과학과 기술의 기원은 로마, 게르만 로마 민족에게 유래했으며 이들이 보편적 인류사, 세계사 기틀을 마련했다고 서술한다. 이어 서양 과학 기술에 동화된 민족들만이 오로지 인류사의 결정적인 현실적 역할에 동참하게 되었고 동양은 유럽에서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아아, 지겹도록 많이 들은 이야기다. 왜 근대 이후 서양이 세계사를 주도했는가에 대한 서양 입장의 써머리와 자화자찬.

 

결국, 저자 야스퍼스 선생은 축의 시대 이후 오랜 세기에 걸친 정신적 대립속에서 서구인들은 자기 인식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 자기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것이 역사적 발전이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내가 무식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지금 내 지적 수준에서 보기에, 이 책에서 야스퍼스 선생은 서구인 철학자 입장에서 딱 그 시대에 맞는 수준의 역사 철학을 논한 것 같다. 나처럼 궁금증 대마왕인 독자는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에 언급된 야스퍼스의 견해가 궁금해서 찾아 볼 수 있겠지만, 일반 독자라면 굳이 절판되고 시중 도서관에 있지도 않은 이 책까지 찾아 읽을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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