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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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 이 분 참 묘하게 재미있다. 소설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자기 절제 능숙한 선승이다. 그런데 날 목소리가 그대로 나오는 에세이에서는 저돌적인 노지심이다.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인생론 에세이 책들과 다르다. '실용서'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 후 시골에 가서 새로운 삶을 꾸려보려는 독자를 위한 실용적 정보를 주는 것이 목적인 책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골 생활 도우미 서적이 아니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시골 생활은 이렇지만, 실상은 이렇다. 꿈 깨고 가라. 시골에 간들 당신의 삶의 자세와 정신상태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말짱 꽝이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 마루야마 선생 아니면 어떤 작가가 이런 실용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정말 좋아서 미치겠다.

 

게다가 에세이에서 보이던 이분의 돌직구 문체가 이번 책에서는 완전 웃긴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면서 그런 것, 즉 시골의 실상을 느물느물 다크하게 서술해 주시는데,,, 시골이 건강 관리에 좋다고 생각하지 마라며, 응급실 가까운 대도시와 달리 비상사태 발생시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고 말한다. 아주 진지하고 냉정하게. 눈 앞에 정색을 하고 있는 얼굴이 그려진다. 읽다보면 빵빵 터진다. 자신은 웃지도 않고 허리 꼿꼿이 세우고 무표정하게 이야기하면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를 웃기는 말 잘하는 까칠한 친구같다. 이번 번역자분은 ' ~ 입니다'라고 번역해놓아서 그런지, 정중하고 진지하게 서술하다가 핵심을 찌르며 반전을 보이는 저자의 개성이 더욱 돋보인다.

 

내용 자체도 재미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일본 국민성이라는 것이, 대도시 일본인 위주이거나 매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 위주였다는 깨달음이 온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또 이분의 시골살이 조언에서 일반적인 시골의 주된 이웃이자 원주민으로 등장하는 분들(그러니까, 연세드신 시골 분들, 전쟁을 체험한 세대)의 다크한 면을 직면하니, 현재 우리나라에서 선거 때마다 박정희의 공화당부터 시작해서 민정당, 민자당,,,, 이어 현재 여당까지 줄기차게 찍어대며 나이드신 분들의 특성과 너무도 같아서 놀랐다. '강자에게 지나치게 복종하여 눈앞의 이익만 얻으려는 국민성(125 쪽)' 같은 것.

 

이하, 이분의 매력 맛보기 인용

 

여하튼 나이만 먹어 가는 후반 인생을 시골에서 보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거의 야생동물의 최후 같은 죽음을, 말하자면 길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결의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 43쪽,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에서.

 

요컨대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이 없다고 개탄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실은 당신이 사랑에 굶주려 있는데 아무도 당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워서일 뿐입니다. 이 얼마나 보기 흉하고 망신스럽고 구제하기 힘든 60세입니까.

- 112쪽, 삭막한 도시가 싫어 시골의 정을 느끼기 위해 귀촌하려는 사람에게 해 주는 말.

  ( 이 꼭지의 타이틀은 '관심받고 싶었던 건 당신이다'이다. )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당신들의 존재 자체가, 오랜 세월 동안 시골을 지배해 온 불문율 규정을 깨고 만 것입니다. (중략) 질투와 증오의 대상은 이렇게 해서 탄생합니다.

- 114쪽. 시골 원주민들의 텃세에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는 조언.

  ( 이 9장의 타이틀은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이다. )

   

어쩌면 당신은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감정이 향하는 대로, 본능이 향하는 대로 사는 것이라고 오해하거나 자신의 형편에 맞는 해석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자연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몸에 나쁜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 야생동물은 곧 죽음을 통해 사라질 운명에 있습니다. 다른 것들에 의지하려 하거나 주의를 게을리하자마자 소리도 없이 슬며시 몸이 파멸되기 시작합니다.

- 145쪽. 건강을 위해 귀촌하려는 사람에게 해 주는 조언.

 ( 저자는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라며, 술담배 끊고 식습관 생활습관 등 삶의 태도를 바꾸라고 말한다. )

 

남존여비 시대에 당신은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 덕에 주군 대접을 받으며 살았을 텐데, 이런 것을 단점으로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가까이에 있는 여성들에게서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것과 같은 보살핌을 오랜 세월 받아 왔습니다. 그 사이에 무엇을 잃고 무엇을 몸에 익히지 못했는가에 대해 숙고한 적이 있습니까. (중략)

모친의 극진한 헌신과 봉사 덕에 당신은 겉만 번지르르한 성인 남성으로 세상에 나아갑니다. 결혼해서는 아내라는 제2의 모친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집니다. (중략) 거짓된 충실감과 성취감을 맛보면서 정년퇴직을 맞이하여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에 당신 배우자는 여자로서 겪는 이런 저런 모순을 깨닫고 의문을 품습니다. (중략)

(은퇴후 당신은) 먹고 마시고 자기만 하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중간 같은 성가신 존재로 변해 배우자를 하루 종일 압박합니다. (중략)

그것은 당신이 홀로서기를 한 성인 남성이 되지 못했고 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어린애의 혼을 가진 채 60년을 지내 왔기 때문입니다.. 명령을 받아야만 움직이고 자신의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는 목각 인형, 타율적인 빈껍데기 인생밖에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154 ~ 156쪽. 은퇴 후 귀촌을 결행할 때 같이 갈 아내의 입장 대해 생각해 보라는 부분.

  ( 이 꼭지 제목은 '엄마도 아내도 지쳤다' 이다. 대박! )

 

그리고, 아래 인용부분은 시골생활과 상관없이 내 마음에 와 박히는 문장이어서 인용한다. 

 

품격이란 어떠한 달콤함에도 어떠한 회초리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신이 비록 틀렸더라도 권위나 권력에 아양을 떨지않는 의연함 그 자체입니다.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혼자일지라도 행동할 때에는 행동한다는 독립된 한 인간에게만 적합한 말입니다.

- 125쪽

 

덧붙이면, 눈빛이 죽어 있는 야생동물은 없습니다. 야생동물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본래 눈빛을 잃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당연한 생명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75쪽

 

노년에 이르러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져가는 중에 제 정신으로 이런 말 하는 어르신들이 참 좋다. 명예나 권력에 빌붙거나, 외롭다고 자기 말 들어주고 자기 말 지면에 실어주는 게 좋아서 정부나 매체가 원하는 말 해 주는 원로들은 참으로 징글징글하다. 자신의 매력이 떨어져서 돈으로 오빠 소리 들으려는 아저씨, 할아버지들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오빠와 아저씨의 차이는 눈빛의 차이, 저항하는 포즈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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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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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참 개성 강하다. 소설로 읽으면 숨막힐 정도로 시적인 문체인데, 에세이로 읽으면 거침없이 결론만 육성으로 내지르는 문체다. 삶과 글, 심지어 외모까지 일치하는 작가다.

 

이 책은 저자의 인생론이다. 부모에게서 자립하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캥거루족, 그보다 더한 패러사이트족이라고까지 이름붙을 정도로 사회문제가 된 일본 청년들을 예상 독자로 보고 쓴 책 같다. (이제 실직 상태인 일본 젊은이들은 단카이 세대인 부모가 퇴직하고 나면 부모의 연금에 기생해 살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 젊은이들 대상이지만 꿈을 가지고 노력해라, 원래 청춘 시기는 힘들고 아픈 법이다, 이런 뻔한 이야기 없이 자기 자신이 되어 제 정신으로 살 것을 강조한다. 특히,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해, 아래와 같은 조언은 정말 좋다.

 

그러니 적은 타국이 아니라 자국이다.

나는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자기 일이 아니면 돌아보지 않는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강자를 기다리다가는, 정신이 들었을 때는 독재자에게 굴복해 소총을 들고 군가를 흥얼거리며 행진하고 있는 허울뿐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총알받이의 하나로 최전선에 배치되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68쪽에서 인용

 

책에는 부모로부터의 자립부터 시작해서 국가 권력이나 종교에 세뇌당하지 말 것, 연애 놀이에 빠지지 말 것 등 비단 일본 젊은이뿐만 아니라 착실하게 나이 들어가는 대로 남들 사는 물결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좀 까칠하고 괴팍해보일 수도 있는 인생 충고가 담겨 있다.

 

내겐 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속이 후련했다. 공연장도 아닌데 읽으면서 막 "오빠, 꺄약~ "하고 소리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솔직히, 남들에게 별나게 보일까봐 내 마음 속에 담아만두고 노트에 끼적거리던 문장들이 떡하니 책에 나와서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 같은 대 작가가 쓰니까 통하지, 내가 이런 이야기를 쓰면 욕이나 한 사발 받아 먹기 쉽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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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여자 - 과학이 외면했던 섹스의 진실
대니얼 버그너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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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성(性)스런 책 리뷰다. 좀 민망하긴 하지만 내 블로그에 오시는 글벗분들이 날 어떻게 보건 말건, 나는 이런 책을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아시다시피, 내 주된 관심사는 역사 분야다. 그런데 서양 중세사 읽다보면 모순된 부분이 보인다. 남성 지배자들은 끊임없이 여성은 수동적 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왜 그러면서도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하여 정조대를 만들고 종교 교리에 그런 내용을 넣고(이브와 뱀이 한 세트로 욕 먹는 것 등) 심지어 마녀 사냥 같은 일종의 제노사이드까지 벌였을까?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나? 여성은 성적으로 수동적 성인데 왜 그리 여성의 성욕을 무서워할까?

 

 

 

또 이상하다. 여성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지고, 법적 양성 평등이 이루어진 현재 대한민국은 물론, 거센 68혁명을 거친 현대 서구에서까지 왜 '여자의 성욕은 약하지만 남자의 성욕은 참기 힘들다.'‘남자는 처음 만난 상대와도 섹스를 할 수 있고 그게 당연하지만, 여자는 친밀한 관계가 선행되어야 섹스를 할 수 있다. 여자는 섹스보다 정서적 친밀감을 더 좋아한다. 그건 진화의 산물이다.'라는 성담론이 상식으로 되어 있을까? 같은 동물인데, 남녀 없이성욕은 다 똑같고(성 차이보다 개인차가 더 클걸?), 누구에게나 가장 흥분되는 상대는 처음 본 상대 아닌가?

 

 

 

이런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욕망하는 여자>는 성과학자 메레디스 시버스(Meredith Chivers)가 실험한 질내 혈류측정기 결과를 논한다. 시버스는 피실험 여성들에게 밀실에서 다양한 경우의 섹스 장면을 담은 포르노 영상을 틀어주고 흥분도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장치를 사용하여 질내 혈류량을 측정하는 실험을 한다. 결과는 어땠을까?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있는 사실과 달리, 여성들은 안정적 연인이나 남편과의 관계로 설정된 섹스 보다 낯선 남자나 동성과의 섹스, 심지어 보노보의 섹스 장면 등에 더 흥분했다. 하지만 지필 조사 결과는 그 반대로 나왔다. 실험 여성들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다. 실험 여성들은 진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단지 여성의 질과 두뇌가 각각 다른 말을 할 뿐이었다.

 

 

 

이어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은 남성만큼, 어쩌면 남성 이상 성욕이 강하다고. 다만 그간의 문화와 훈육 때문에 욕망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런 예가 하나 더 있다. 여성들이 성적 욕망을 품을 때 떠올리는 장면은 낯선 남자를 덮치는 장면이 아니라 자신이 낯선 남자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이다. 왜 이럴까? 분명 현실에서라면 끔찍하고 공포스러우며 여성 아무도 원하는 상황이 아닌데. 여기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강간 판타지는 죄의식과 관계가 없다. 여성은 소녀 때부터 자신에게 부과되는 성적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어려서부터 자신들을 옭아 맨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강간 판타지를 매개로 삼는다.

 

- 135쪽에서 인용

 

 

 

그렇다. 자신의 능동적 성욕을 인정할 수 없기에 여성은 자위를 위해 성적 환상을 그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당하는'장면을 상상해서 죄의식을 피하려하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좀더 알고 싶지만, 이 책은 이 정도에서 더 진도 나가지 않는다. 아마 여성 성과학 분야는 별로 많이 연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성 성과학 분야 연구가 진척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여성의 성욕은 남성보다 약하고 여성은 수동적 성이라는 것을 그냥 진리로 상식으로 여기고 싶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성을 통제하고 싶은 남성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아그라에 비해 플리반세린(여성용 핑크 비아그라)의 개발과 시판이 훨훨 어렵고 늦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

 

 

 

책은 꽤 유머러스하다. 여성용 비아그라인 리브리도와 리브리도스를 이른바 '일부일처해독제'라고 부르는 대목에서 빵 터졌다. 섹시한 여성의 사진을 보고 좋아하는 여성의 심리를 일종의 나르시즘으로 보는 시선에 감탄했다. 누드 사진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남성 입장과 달리, 여성은 그런 사진 속의 여성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남성의 시선을 받는 나르시즘의 충족을 느껴서 흥분한다니!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진화심리학자들이 하는 말, 즉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길러야하기때문에 가정을 돌볼 성실한 남성과 섹스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여 일회성 성관계보다 장기적 정서적 관계를 더 좋아하도록 진화되었다,,,, 는 것은 다 남성 위주의 냉혹한 현실을 살면서 현실적 이익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속아서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여성들은 자신의 성욕을 숨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익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맞춰 질과 두뇌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 아닐까?

 

 

 

그런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진짜 궁금하다. 왜 남성들은 굳이 그렇게 여성의 성욕이 약하다고 주장하면서 반대로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할까? 단순히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서? 혹시 먼먼 인류의 조상들이 발정기의 암컷들을 보고 무서워했던 기억(서유기에 나오는 서량여인국이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존 등 남성들이 기빨려 죽는 전설이 세계 각지에 있는 것, 먼 옛날 발정기 여성 무리에 혼자 떨어져 분투한 남성의 고통스런 기억이 반영된 것 아닐까? )이 수컷만의 Y유전자에 전해지기 때문은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해 아시는 분 혹은 관련 책 소개해주실 분들 대환영! )

 

 

 

 

 

***  

 

 

 

편집이 엉망이다.

 

 

 

230 ~ 236쪽까지, 한 쪽의 마지막 문장과 다음 쪽의 첫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다.

 

편집 디자인 과정에서 틀에 앉히면서 마구 단어를 잘라먹은 것 같다.

 

편집팀은 각성하시길. 한번도 아니고, 이거 너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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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 에오스 클래식 EOS Classic 7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나경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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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집이다. 다른 작업하다가 어린이용 편역본이 아닌 완역본으로 안데르센 동화내용을 확인해볼 일이 생겨서 읽었다. 유명한 이야기 외에 처음 읽는 이야기도 여러 편 있어, 완역본이 궁금한 독자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어른이 읽어도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화작가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시인, 극작가, 소설가, 여행작가이기도 했다. 당대에는 디킨스나 하이네, 위고 등과 나란히 거론되던 대문학가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은 아래와 같다.

 

황제 폐하의 새 옷(그러니까 벌거벗은 임금님), 눈의 여왕: 일곱 편의 이야기가 전하는 동화, 공주님과 완두콩, 나이팅게일, 못생긴 새끼 오리(미운 오리 새끼), 인어공주, 부시통, 백조왕자, 엄지공주, 성냥팔이 소녀, 꿋꿋한 양철 병정, 잠의 요정 올리, 빨간 구두, 그림자, 프시케, 가장 놀라운 일, 어느 어머니의 노래, 빵을 밟은 소녀, 불사조, 집요정과 식료품장수, 치통 아주머니, 하늘을 나는 가방, 상심 ,종소리

 

어릴적 계몽사전집에서 읽고 무서워했던 눈이 둥그런 개들이 나오는 <부싯돌>도, 불꽃놀이의 무서움을 잘 알려준 <하늘을 나는 가방>도,,,, 다들 옛친구처럼 반가왔다. <엄지공주>를 다시 읽으니, 튤립이 필 때마다 봉우리를 바라보며 엄지공주가 들어 있을까봐 설레곤하던 생각이 나서 행복했다. <공주님과 완두콩>을 다시 읽으며, 내가 멍이 잘 드는 이유를 알아내서 기뻤다.

 

이들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동화는 <빨간 구두>이다. 마치 된장녀 허영녀를 공격하는 이야기의 원조같은 이 잔혹동화. 카렌이 나쁜 아이인 것도 알겠고 그런 짓하면 받는 벌도 무서운데, 이상하게 이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내게, 아니 세상의 모든 얌전한 소녀들의 마음 속에, 벌 받아도 욕 먹어도 좋으니 빨간 구두 신고 마음껏 춤추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일까.

 

어느 날 여왕이 어린 딸인 공주를 데리고 시골을 지나 여행을 왔다. 사람들이 성 주위로 몰려들었고, 카렌도 거기 있었다. 어린 공주는 고운 흰 옷을 입고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창가에 서 있었다. 공주에게는 길게 끌리는 옷자락도 없었고 머리에 황금 왕관도 쓰지 않았지만 고급 가죽으로 지은 화려한 빨간 구두를 신고 있었다.

- 252쪽에서 인용 

 

원래 유럽에서 빨간 구두는 황제만이 신을 수 있었다. 서로마, 동로마 황제와 로마 교황(전임 교황 성하가 빨간 구두 신은 사진을 검색해보라). 종교 개혁 이후 루터파 신교 국가가 된 덴마크에서는 사악한 로마교황을 상징하는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없었겠지. 그런데 그렇게도 욕 먹는 빨간 구두를 공주가 신었을 때는 왜 아무도 욕하지 않을까. 게다가 카렌이 신은 구두는 백작이 딸을 위해 주문했다가 치수가 맞지 않아 찾아가지 않은 것이었다. 백작의 영애도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공주도 백작의 영애도 아닌 가난한 고아 카렌만 욕 먹는다. 이거 참 이상하다.

 

"춤을 추거라!"그가 카렌에게 말했다. "네가 차갑고 창백하게 될 때까지, 네 피부가 미라처럼 쭈글거릴 때까지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춰라.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춤을 춰라. 교만하고 허영심 많은 아이가 사는 집마다 문을 두드려 아이들이 네 이야기를 듣고 널 두려워하게 해라! 춤을 춰라! 춤을!"

- 257쪽에서 인용

 

게다가 카렌은 너무 과한 벌을 받는다. 아무래도 이 동화는 여성/약자의 욕망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하고 과잉반응을 보인다,,, 고 생각하며 계속 읽어나갈 즈음, <빵을 밟은 소녀>라는 작품을 처음 만났다. 주인공은 가난한 농가집 딸 잉게르. 그녀는 시골 귀족 집에 일하려 간다. 주인집은  잉게르에게 잘 대해 주었다. 옷도 예쁘게 입혀주었다. 잉게르는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워짐에 따라 점차 허영심이 커졌다. 주인집에서 1년 일한 후 잉게르는 휴가를 받아 집에 간다. 그러나 들에서 일하고 있는 어머니의 남루한 모습을 보고 어머니를 부끄럽게 여겨서 돌아선다. 다시 여섯 달 후, 주인집에서는 이번에는 흰빵을 선물로 주며 집에 보낸다. 늪지대를 지나며 잉게르는 구두가 더러워질까 걱정해서 흰빵을 땅바닥에 던지고 징검다리 삼아 밟고 건너가다가 지옥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두고두고 잉게르의 이야기를 하며 반면교사로 삼는다. 오랜 시간이 흘러, 울고 반성하던 잉게르는 작은 새가 되어 날아간다,,, 라는 이야기이다.

 

빵을 신성시하여 생긴 유럽의 전설이 바탕이긴 하지만, <빵을 밟은 소녀>는 거의 <빨간 구두>와 비슷하다. 예쁜 구두 탐닉, 허영, 가난한 소녀, 벌,,,, 그런데 이 완역본 전집 전체를 봐도 교만하거나 허영에 들뜬 소년이 과한 벌을 받는 이야기는 없다. 안데르센 자서전을 보면, 세례식에 구두 생각만 했던 자기 어릴적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자기가 쓴 작품에는 소년이 아니라 소녀로 주인공을 바꾼다. 여기에 없는 소설이지만, <즉흥 시인>을 봐도, 같이 성애에 탐닉하는 실수를 저질러도 청년에 비해 여인이 더 타락한 존재로 그려진다. 아아, 안데르센 선생은 여성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일까? 가난하고 못배운 자신의 과거로 덴마크 상류사회에서 멸시를 받은 사실 때문에, 외모에 신경쓰거나 자기 표현에 솔직한 여성들을 보면 '비뚤어져서' 허영심 많고 비기독교적이라고 공격하게 된 것일까? 

 

선생의 심리나 견해가 어떻든, 이런 이야기가 명작으로 계속 유통되는 이유는 뭘까. 소녀가 벌받기 이전에 욕망추구하는 부분을 우리 어린이/여성/약자 독자들은 더 흥미로워하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아픈 할머니를 간호하지 않고 무도회장에 가는 거, 이거 너무 통쾌하지않나? 우리는 그런 상상만 하고 실행은 못하기때문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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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테마명작관 3
니콜라이 고골 외 지음, 강완구 엮음, 고일 외 옮김 / 에디터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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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람진의 <가련한 리자>가 절판되었다. 검색 끝에 이 책에 <가엾은 리자>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 것을 알았다. 이 책에는 리자 외에 '사회적 약자'라는 주제 하에 농노 처녀, 가난한 사람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다룬 5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거의 <가난한 사람들>이 분량을 다 차지하고 있다. 실린 작품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가엾은 리자(카람진)
역참지기(푸슈킨)
외투(고골)
가난한 사람들(도스토옙스키)
관리의 죽음(체호프)

 

<가엾은 리자>는 까람진이 1792년 발표한 단편이다. 모스크바 근교에 사는 농부의 딸 리자가 귀족 청년 에라스트와 사랑을 나누다가 버림받아 자살한다는 내용. 도회지 사교계의 삶에 찌든 에라스트는 꽃을 팔러 모스크바에 온 리자를 만나 그녀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반한다. 그러나 육체적 사랑에 이른 후 전쟁을 핑계로 리자와 헤어진다. 도박 빚을 갚기위해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한다. 리자가 집으로 찾아가자 에라스트는 백 루블을 주고 그녀를 내쫓는다. 절망한 리자는 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와중에도 돈은 홀어머니에게 보낸다.

 

'지금 내 마음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있는 이가 평범한 농부나 목동으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을까!(본문 16쪽)'라는 리자의 독백에서도 알 수 있듯, 소설에서 가엾은 리자가 겪는 비극은 크게 보아 계급문제에 기인한다. 리자는 에라스트를 사랑하면서도 그와 자신과의 계급차를 알고 있다. 그와 정식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욕 한 마디 없이 저항 없이 리자는 걍 에라스트의 인생에서 미래에서 조용히 사라져 준다. 아놔, 이게 뭥미?

 

그런데, 바로 이 미련곰탱이같은 비련의 여주인공인 것이 또 18세기~ 19세기 초 러시아 독자들에게 먹혔다. 당시 러시아에서 소설의 독자층이었던 귀족들은 바로 이 점에 감동받았다. 오, 세상에, 농부의 딸도 이렇게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다니, 그들도 인간의 감정을 가진 자 였다니,,,,

 

러시아의 농노 해방은 이 소설로 부터 거의 90년후인 1861년에 이뤄졌다. 이 맥락에서 나는 <파멜라>와 <춘향전>과 함께 노예, 농노, 여성의 사랑할 권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다. 사랑의 역사는 약자가 권리를 찾아가는 역사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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