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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여자 - 과학이 외면했던 섹스의 진실
대니얼 버그너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또 성(性)스런 책 리뷰다. 좀 민망하긴 하지만 내 블로그에 오시는 글벗분들이 날 어떻게 보건 말건, 나는 이런 책을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아시다시피, 내 주된 관심사는 역사 분야다. 그런데 서양 중세사 읽다보면 모순된 부분이 보인다. 남성 지배자들은 끊임없이 여성은 수동적 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왜 그러면서도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하여 정조대를 만들고 종교 교리에 그런 내용을 넣고(이브와 뱀이 한 세트로 욕 먹는 것 등) 심지어 마녀 사냥 같은 일종의 제노사이드까지 벌였을까?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나? 여성은 성적으로 수동적 성인데 왜 그리 여성의 성욕을 무서워할까?
또 이상하다. 여성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지고, 법적 양성 평등이 이루어진 현재 대한민국은 물론, 거센 68혁명을 거친 현대 서구에서까지 왜 '여자의 성욕은 약하지만 남자의 성욕은 참기 힘들다.'‘남자는 처음 만난 상대와도 섹스를 할 수 있고 그게 당연하지만, 여자는 친밀한 관계가 선행되어야 섹스를 할 수 있다. 여자는 섹스보다 정서적 친밀감을 더 좋아한다. 그건 진화의 산물이다.'라는 성담론이 상식으로 되어 있을까? 같은 동물인데, 남녀 없이성욕은 다 똑같고(성 차이보다 개인차가 더 클걸?), 누구에게나 가장 흥분되는 상대는 처음 본 상대 아닌가?
이런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욕망하는 여자>는 성과학자 메레디스 시버스(Meredith Chivers)가 실험한 질내 혈류측정기 결과를 논한다. 시버스는 피실험 여성들에게 밀실에서 다양한 경우의 섹스 장면을 담은 포르노 영상을 틀어주고 흥분도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장치를 사용하여 질내 혈류량을 측정하는 실험을 한다. 결과는 어땠을까?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있는 사실과 달리, 여성들은 안정적 연인이나 남편과의 관계로 설정된 섹스 보다 낯선 남자나 동성과의 섹스, 심지어 보노보의 섹스 장면 등에 더 흥분했다. 하지만 지필 조사 결과는 그 반대로 나왔다. 실험 여성들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다. 실험 여성들은 진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단지 여성의 질과 두뇌가 각각 다른 말을 할 뿐이었다.
이어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은 남성만큼, 어쩌면 남성 이상 성욕이 강하다고. 다만 그간의 문화와 훈육 때문에 욕망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런 예가 하나 더 있다. 여성들이 성적 욕망을 품을 때 떠올리는 장면은 낯선 남자를 덮치는 장면이 아니라 자신이 낯선 남자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이다. 왜 이럴까? 분명 현실에서라면 끔찍하고 공포스러우며 여성 아무도 원하는 상황이 아닌데. 여기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강간 판타지는 죄의식과 관계가 없다. 여성은 소녀 때부터 자신에게 부과되는 성적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어려서부터 자신들을 옭아 맨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강간 판타지를 매개로 삼는다.
- 135쪽에서 인용
그렇다. 자신의 능동적 성욕을 인정할 수 없기에 여성은 자위를 위해 성적 환상을 그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당하는'장면을 상상해서 죄의식을 피하려하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좀더 알고 싶지만, 이 책은 이 정도에서 더 진도 나가지 않는다. 아마 여성 성과학 분야는 별로 많이 연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성 성과학 분야 연구가 진척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여성의 성욕은 남성보다 약하고 여성은 수동적 성이라는 것을 그냥 진리로 상식으로 여기고 싶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성을 통제하고 싶은 남성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아그라에 비해 플리반세린(여성용 핑크 비아그라)의 개발과 시판이 훨훨 어렵고 늦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
책은 꽤 유머러스하다. 여성용 비아그라인 리브리도와 리브리도스를 이른바 '일부일처해독제'라고 부르는 대목에서 빵 터졌다. 섹시한 여성의 사진을 보고 좋아하는 여성의 심리를 일종의 나르시즘으로 보는 시선에 감탄했다. 누드 사진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남성 입장과 달리, 여성은 그런 사진 속의 여성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남성의 시선을 받는 나르시즘의 충족을 느껴서 흥분한다니!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진화심리학자들이 하는 말, 즉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길러야하기때문에 가정을 돌볼 성실한 남성과 섹스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여 일회성 성관계보다 장기적 정서적 관계를 더 좋아하도록 진화되었다,,,, 는 것은 다 남성 위주의 냉혹한 현실을 살면서 현실적 이익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속아서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여성들은 자신의 성욕을 숨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익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맞춰 질과 두뇌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 아닐까?
그런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진짜 궁금하다. 왜 남성들은 굳이 그렇게 여성의 성욕이 약하다고 주장하면서 반대로 여성의 성욕을 두려워할까? 단순히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서? 혹시 먼먼 인류의 조상들이 발정기의 암컷들을 보고 무서워했던 기억(서유기에 나오는 서량여인국이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존 등 남성들이 기빨려 죽는 전설이 세계 각지에 있는 것, 먼 옛날 발정기 여성 무리에 혼자 떨어져 분투한 남성의 고통스런 기억이 반영된 것 아닐까? )이 수컷만의 Y유전자에 전해지기 때문은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해 아시는 분 혹은 관련 책 소개해주실 분들 대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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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 엉망이다.
230 ~ 236쪽까지, 한 쪽의 마지막 문장과 다음 쪽의 첫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다.
편집 디자인 과정에서 틀에 앉히면서 마구 단어를 잘라먹은 것 같다.
편집팀은 각성하시길. 한번도 아니고, 이거 너무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