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마루야마 겐지. 이 분 참 묘하게 재미있다. 소설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자기 절제 능숙한 선승이다. 그런데 날 목소리가 그대로 나오는 에세이에서는 저돌적인 노지심이다.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인생론 에세이 책들과 다르다. '실용서'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 후 시골에 가서 새로운 삶을 꾸려보려는 독자를 위한 실용적 정보를 주는 것이 목적인 책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골 생활 도우미 서적이 아니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시골 생활은 이렇지만, 실상은 이렇다. 꿈 깨고 가라. 시골에 간들 당신의 삶의 자세와 정신상태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말짱 꽝이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 마루야마 선생 아니면 어떤 작가가 이런 실용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정말 좋아서 미치겠다.

 

게다가 에세이에서 보이던 이분의 돌직구 문체가 이번 책에서는 완전 웃긴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면서 그런 것, 즉 시골의 실상을 느물느물 다크하게 서술해 주시는데,,, 시골이 건강 관리에 좋다고 생각하지 마라며, 응급실 가까운 대도시와 달리 비상사태 발생시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고 말한다. 아주 진지하고 냉정하게. 눈 앞에 정색을 하고 있는 얼굴이 그려진다. 읽다보면 빵빵 터진다. 자신은 웃지도 않고 허리 꼿꼿이 세우고 무표정하게 이야기하면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를 웃기는 말 잘하는 까칠한 친구같다. 이번 번역자분은 ' ~ 입니다'라고 번역해놓아서 그런지, 정중하고 진지하게 서술하다가 핵심을 찌르며 반전을 보이는 저자의 개성이 더욱 돋보인다.

 

내용 자체도 재미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일본 국민성이라는 것이, 대도시 일본인 위주이거나 매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 위주였다는 깨달음이 온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또 이분의 시골살이 조언에서 일반적인 시골의 주된 이웃이자 원주민으로 등장하는 분들(그러니까, 연세드신 시골 분들, 전쟁을 체험한 세대)의 다크한 면을 직면하니, 현재 우리나라에서 선거 때마다 박정희의 공화당부터 시작해서 민정당, 민자당,,,, 이어 현재 여당까지 줄기차게 찍어대며 나이드신 분들의 특성과 너무도 같아서 놀랐다. '강자에게 지나치게 복종하여 눈앞의 이익만 얻으려는 국민성(125 쪽)' 같은 것.

 

이하, 이분의 매력 맛보기 인용

 

여하튼 나이만 먹어 가는 후반 인생을 시골에서 보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거의 야생동물의 최후 같은 죽음을, 말하자면 길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결의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 43쪽,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에서.

 

요컨대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이 없다고 개탄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실은 당신이 사랑에 굶주려 있는데 아무도 당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워서일 뿐입니다. 이 얼마나 보기 흉하고 망신스럽고 구제하기 힘든 60세입니까.

- 112쪽, 삭막한 도시가 싫어 시골의 정을 느끼기 위해 귀촌하려는 사람에게 해 주는 말.

  ( 이 꼭지의 타이틀은 '관심받고 싶었던 건 당신이다'이다. )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당신들의 존재 자체가, 오랜 세월 동안 시골을 지배해 온 불문율 규정을 깨고 만 것입니다. (중략) 질투와 증오의 대상은 이렇게 해서 탄생합니다.

- 114쪽. 시골 원주민들의 텃세에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는 조언.

  ( 이 9장의 타이틀은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이다. )

   

어쩌면 당신은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감정이 향하는 대로, 본능이 향하는 대로 사는 것이라고 오해하거나 자신의 형편에 맞는 해석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자연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몸에 나쁜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 야생동물은 곧 죽음을 통해 사라질 운명에 있습니다. 다른 것들에 의지하려 하거나 주의를 게을리하자마자 소리도 없이 슬며시 몸이 파멸되기 시작합니다.

- 145쪽. 건강을 위해 귀촌하려는 사람에게 해 주는 조언.

 ( 저자는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라며, 술담배 끊고 식습관 생활습관 등 삶의 태도를 바꾸라고 말한다. )

 

남존여비 시대에 당신은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 덕에 주군 대접을 받으며 살았을 텐데, 이런 것을 단점으로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가까이에 있는 여성들에게서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것과 같은 보살핌을 오랜 세월 받아 왔습니다. 그 사이에 무엇을 잃고 무엇을 몸에 익히지 못했는가에 대해 숙고한 적이 있습니까. (중략)

모친의 극진한 헌신과 봉사 덕에 당신은 겉만 번지르르한 성인 남성으로 세상에 나아갑니다. 결혼해서는 아내라는 제2의 모친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집니다. (중략) 거짓된 충실감과 성취감을 맛보면서 정년퇴직을 맞이하여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에 당신 배우자는 여자로서 겪는 이런 저런 모순을 깨닫고 의문을 품습니다. (중략)

(은퇴후 당신은) 먹고 마시고 자기만 하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중간 같은 성가신 존재로 변해 배우자를 하루 종일 압박합니다. (중략)

그것은 당신이 홀로서기를 한 성인 남성이 되지 못했고 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어린애의 혼을 가진 채 60년을 지내 왔기 때문입니다.. 명령을 받아야만 움직이고 자신의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는 목각 인형, 타율적인 빈껍데기 인생밖에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154 ~ 156쪽. 은퇴 후 귀촌을 결행할 때 같이 갈 아내의 입장 대해 생각해 보라는 부분.

  ( 이 꼭지 제목은 '엄마도 아내도 지쳤다' 이다. 대박! )

 

그리고, 아래 인용부분은 시골생활과 상관없이 내 마음에 와 박히는 문장이어서 인용한다. 

 

품격이란 어떠한 달콤함에도 어떠한 회초리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신이 비록 틀렸더라도 권위나 권력에 아양을 떨지않는 의연함 그 자체입니다.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혼자일지라도 행동할 때에는 행동한다는 독립된 한 인간에게만 적합한 말입니다.

- 125쪽

 

덧붙이면, 눈빛이 죽어 있는 야생동물은 없습니다. 야생동물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본래 눈빛을 잃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당연한 생명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75쪽

 

노년에 이르러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져가는 중에 제 정신으로 이런 말 하는 어르신들이 참 좋다. 명예나 권력에 빌붙거나, 외롭다고 자기 말 들어주고 자기 말 지면에 실어주는 게 좋아서 정부나 매체가 원하는 말 해 주는 원로들은 참으로 징글징글하다. 자신의 매력이 떨어져서 돈으로 오빠 소리 들으려는 아저씨, 할아버지들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오빠와 아저씨의 차이는 눈빛의 차이, 저항하는 포즈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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