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조절 -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나를 지켜 내는 방법
권혜경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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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일 겪으며 멘붕이 왔다. 약오남용하듯 마음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다가 이 책을 만났는데,,, 오! 책 참 좋다. 리뷰 처음부터 '강추'라고 외치고 싶어질 정도로. 

 

책의 제목인 '감정 조절'부터 짚고 시작하자. 감정조절은 무조건 참으라는 것이 아니다. 또 부정적 감정을 억압하라는 것도 아니다.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화 나면 화 내라는 식이 아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 감정이 내 몸과 생각, 인식, 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  또 감정조절이란 내가 원하는 좋은 감정만 선택적으로 느끼는 것도 아니다. 슬픔이나 분노를 안 느끼게 해 버릇하다보면 긍정적 감정도 못 느끼게 되니, 그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감정 조절을 잘 하려면 반드시 안전감을 느껴야 하는데 안전감은 개인적 차원의 안전과 사회, 집단 안에서의 안전 두 가지를 다 이른다고 한다. 어라, 이거 출발부터 느낌이 좋은데? 개인적 차원의 수양만 말하는 책들과 다른걸?

 

책은 자기계발서 스타일로 나온 심리서적들 같이 가볍지 않다. 전공 서적처럼 딱딱하고 어렵지도 않다. 저자는 독자의 지식욕을 만족시킬 정도의 전문적 내용을 잘 풀어서 설명해 준다. 내용을 소개하자면,1장에서는 감정과 감정 조절의 개념을 설명한다. 감정 조절의 필수 조건이 안전감이라는 것을 밝힌다.  2장에서는 우리 몸과 감정 조절의 신경 생물학적 매커니즘을 설명한다. 최신 경향의 뇌 연구 현황을 소개해줘서 좋다. 파충류의 뇌 등등이 그 예가 되겠다. 안전이 위협받는 가운데 감정 조절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을 위해 방어 기제를 쓰게 된다고 한다. 싸우기, 도망가기, 얼어붙기 등. 흠, 나는 도망가기 스타일이었구나, 이렇게 자신의 문제 스타일을 살펴보며 읽는 재미가 있다. 뭐 굳이 지난 과거를 복기하며 또다시 괴로워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다만, 그래도 살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문제의 패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어떤 경험을 많이 하고 어떤 방어기제를 많이 쓰느냐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초기 설정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때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닥치면 다양한 방어기제를 유연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늘 쓰던 방어기제를 쓰게 된다.

- 75쪽

 

3장은 개인적 안전감과 감정 조절을 설명한다. 여기서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나오는 유아기 부모와 관계,  애착 유형을 말한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과거의 경험을 현재 상황에 투사하는 확률이 거의 90%라고 한다.  사람은 과거 경험을 통해 형성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청사진으로 내 눈앞에 있는 사람과 현상을 본다고.  마치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운전하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엉뚱한 길로 가 버리는 데에 문제가 생긴다고. 여기서 잠깐 절망한다. 그럼 애착 유형의 문제에 나는 평생 지배당해야하나? 과거는 못 바꾸는데 어쩌라구?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변한다. 변할 수 있다,라고. 우리 뇌는 평생에 결쳐 우리가 반복하는 것, 경험하는 것에 따라 변하므로 새로운 시도를 반복해서 만족스럽지 못한 인간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유레카! 나도 구원받을 수 있는 건가?

 

이어서 4장.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인데 사회적 안전감과 감정 조절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사건과 그 트라우마의 대물림 설명 부분이 나는 특히 좋았다. 2003년 미국의 어느 연구결과에 따르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손자손녀들이 소아 정신과를 찾는 비율이 일반인들에 비해 300% 더 높다고 한다. 부모가 자신들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책임을 자손이 대대손손 지게 되는 것.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 이런 트라우마 대물림 현상에 저자는 세월호와 남아선호 풍조도 함께 넣어 말한다. 아,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이런 대물림의 가장 끔직한 아이러니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무력감을 자신들보다 약한 희생양을 찾아 또 다른 피해자로 만들면서 극복하고, 이로 인한 피해자들은 또 자기보다 더 약한 누군가를 찾아 가해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무력감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195쪽

 

의식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거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릴 때 형성된 청사진대로 삶을 살아가게 되고,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세대 간의 저주, 트라우마가 대물림되는 바탕이 된다.

- 20쪽

 

그럼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개인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자신의 것과 부모에게 속하는 것을 구분하고 트라우마를 전달받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부모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구분되고 부모와 나 사이 분리가 일어나게 해야 한다고. 이는 부모를 비난하거나 부모와 절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 반면 사회적 측면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사회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파악하고 사실 그대로 인정,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명확히 파악해 내고 피해자의 치유과 회복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희생을 보상하며 가해자는 엄중히 처벌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한다고. 개인의 고통을 양지로 끌어내어 이슈화, 이를 통해 개인의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고. 이어 저자는 세월호를 말한다. 이 책이 촛불집회와 박대통령 탄핵 이전에 나온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저자의 발언은 내게 더욱 가치있게 느껴진다.

 

마지막 5장은 감정 조절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결국 감정 조절 능력이란 살면서 불가피하게 위협받는 신체적, 심리적 안전감을 보다 빨리 유연하게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능력이 부족하면 우리는 주변 환경과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자신 방어하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어  지적 심리적 신체 유연함이 떨어지게 된다.  오오, 주위에 이런 분들 많지 않은가? 다들 집 쇼파에 한 분씩은 계시지 않은가? 나이 들어가면서 맨날 서운해하고 화 내고 별 거 아닌 일에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분들 말이다. 아니, 그 인간이 바로 나였나? 흠. 그럴지도. ㅋㅋ

 

근래 읽은 대중적 심리서적 중에 제일 좋았다. 지식 요약 설명 부분도,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를 말하는 부분도 좋다. 무엇보다 개인의 잘못이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잘못된 양육 탓으로만 몰아가지 않는 점이 좋다. 변할 수 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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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같은 글쓰기 -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의 대담
아니 에르노.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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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동료 작가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 메일로 대화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주로 자네가 질문하고 에르노는 답한다.  

 

아니 에르노는 20년전에 책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아버지의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어떤 여자><단순한 열정><탐닉>을 읽었다. 에르노는 자신의 삶을 글쓰기의 소재로 삼는 데 적극적이다. 정치적으로 좌파이고 페미니스트이며, 부모의 삶이나 연인과의 성애를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냉정하게 기술한다거나 하는 점때문에,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 견해를 가진 평단과 독자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저자는 독특한 문체를 구사한다. 초기작인<아버지의 자리>에서 내세운 글쓰기 입장을 시종여일 지키고 있다. 절제하는 문장 그리고 정확하고 첨예하게 진실을 허구의 바깥에서 탐구하는 입장 말이다. 이런 작가에게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는 아니 에르노만의 작품 색깔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이며 왜 그러한 글쓰기 형태를 추구하는 건지? 등등을 질문한다.   

 

아니 에르노는 답한다. 자신의 삶과 글쓰기에 대해. 파리 외 지방 하층 계급 출신으로 신앙심 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카톨릭 기숙 학교를 다니던 성장기. 두 아이를 낳고 20대에 이혼. 교사로 일하며 가사와 육아를 혼자 해결하며 글쓰기. 2시간만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던 환경. 불법인공유산의 경험.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 담담히 읽어 내려가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에르노는 참으로 여러 가지와 싸우며 글을 써 왔구나.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구나.

 

내겐 글쓰기가 칼처럼 느껴져요. 거의 무기처럼 느껴지죠. 내겐 그게 필요해요.

- 47쪽

 

정치적으로 좌파인 저자는 문학교사로 작가로 안정적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이 출신 계급을 배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한 삶을 속죄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한다고.

 

속죄의 다른 방법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대한 지배적인 관점들을 전복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 69쪽

 

'당신은 자신을 여성작가라고 생각합니까?'라는 후진 질문에는 ‘남성적 글쓰기라는 분류는 없다. 유독 여성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명쾌히 답하며 아래와 같이 덧붙인다.

 

하지만 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역사를 통해 형성되었으며, 그 역사가 글쓰기 속에 살아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가족소설, 출신 환경, 문화적 영향, 그리고 물론 성과 관련된 조건이 그 속에 포함되겠지요. 내 내면에는 여성으로서의 역사가 있어요. 그런데 그 역사가 한 순수한 작가만을 내 작업대 앞에 남기고 사라져 버리는 기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어요? 게다가 그 순수라는 개념이 참 묘하잖아요.

129  ~130쪽

 

내 출신성분이 피지배 사회계층이라는 사실과 여자아이들에게 인위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부과하는 이중적 무게가 내게는 무척 무거웠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하고 싶군요. 거의 파탄 지경까지 이르렀던 적도 있답니다. 그리고 보부아르를 만나게 되었지요. (<2의 성> 읽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 133쪽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단순한 열정>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남성들이 쓴 텍스트에 대해서는 그런 비난을 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그들 작품 속 남근중심주의적 형태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남성 시각의 성애물에 익숙한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작가는 이어서 말한다. 

 

사람들이 흔히 여성의 글에서 기대하는 로맨스’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 책이 성적인 외설인 셈이었던 거죠. (중략) 내가 속해 있는 성에 내 존재를 빗대 이야기하는 아주 부당한 이중적 비방이었어요. 이렇게 말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좌파라고 일컫는 자들이었답니다.

- 143쪽

 

이런 식으로 '여성' 작가로서 프랑스에서조차 받아내는 공격과 비난에 대해 아니 에르노가 당당히 말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 깊었다. 저자나 질문자나 다른 프랑스 작가나 작품, 프랑스의 문화 풍조 등등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며 말하지만 이 관련해서 책 뒤에  주석 설명이 잘 되어 있어 그리 정신없지는 않다.

 

참, 아니 에르노는 단순과거시제는 거리를 두려는 태도처럼 느껴져서 복합과거시제를 사용한다고. 프랑스어의 복합과거시제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의 결과나 여파가 현재까지 미칠 때 사용하는데, 이거 원서가 아니라 번역본을 읽으니 그 차이를, 맛을 모르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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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심리학 입문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재현 옮김 / 살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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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병이 도지는 것 같다. 왜 내가 잘 해주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일단 떠오르면 평생 들었던 폭언들이 벽에서 마구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럴 때는 약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복용한 책.

 

아들러 심리학이라지만 아들러 본인이 쓴 것은 아니고,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기시미 이치로 저자가 자기계발서 성격으로 평이하게 쓴 책이다. 쉽고 빨리 읽기 좋다. 이 저자의 다른 아들러 책은 좀 웃긴 대화식이어서 집중이 안 되는 반면 이 책은 좀더 읽기 편하다.

 

저자가 말하는 아들러 심리학은 무의식이나 트라우마를 강조하지 않는다. 문제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를 문제 삼는 원인론이 아닌 '어디로' 향해 가는가를 중시하는 목적론이다. 자주 나오는 예는 응석받이 아이의 경우다. 받아주는 어머니 때문에 애가 응석받이가 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응석받이가 되겠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부모의 반응을 이용한 결과 응석받이가 되었다는 것. 결국 인간은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세상에서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모습으로 살게 된다는 것. 그러기에 저자는 말한다. 일이라는 과제, 친구들과의 교우 과제, 사랑이라는 과제가 인생의 3대 과제인데, 인생의 과제와 맞서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인내를 들이부어야만 한다고. 문제는 사람들이 종종 그와 같은 과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하고는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치려 한다는 점이라고. 그 회피의 구실로 열등 콤플렉스를 끄집어 내는 것이라고. 너무 가난했다거나, 부모님이 사이가 아주 안 좋았다거나, 이런 이유들을 들으면 사람들은 그로 인해 어떤 사람이 방황하게 되는 것을 상당 부분 인정해 주니까.

 

그러나 아들러가 보기에 그건 핑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구실을 통해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러는 그와 같은 구실을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불렀다.

- 221 ~ 223쪽에서 인용

 

혼자 있노라면 과거의 힘들었던 일이 자꾸 떠올라서 괴로운데, 그렇다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태가 내 현실과 내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한 '인생의 거짓말'인 건가? 그냥 지금 내 나이가 인생을 한 번 리셋할 나이어서 그런게 아닌가? (솔직히 부모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만,,, )

 

여튼 문제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를 문제 삼는 원인론이 아닌 '어디로' 향해 가는가를 중시하는 목적론. 이거 하나 명심하고, 너무 자학하지도 말고 경거망동하여 상황을 악화시키지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정도만 해도 이 책의 약효는 괜찮은셈.

 

깊이있는 심리학 이론 책은 아니다. 남에게 잘 휘둘리거나 착한 아이로 사랑받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길들여져서 쓸데없이 상처받고 좌절해버릇하는 사람들이 빨리 읽어보기 편한 책이다. 결국은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네 삶을 살란 이야기. 말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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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 식문화의 역사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20
다카히라 나루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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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정말 궁금해 미치겠다. 이 시리즈 기획하고 집필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국내 번역해서 출간한 사람들도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이 책은 음식사를 다룬다. 그런데 통사식도 아니고 대륙별이나 문화권 별 국가별 기술이 아니라 백과사전처럼 항목별로 온갖 관련 지식을 나열한다. 저자는 이미 음식사 몇 권 읽은 독자에게 '이거까지는 몰랐죠?'하며 별로 중요하지도 않지만 다른 책에서는 결코 읽을 수 없는, 그러나 덕후들은 좋아서 자지러질만한 잡스런 지식을 불쑥불쑥 내 놓는다.  뭐 중국에서는 인육을 팔면서 '이각양(二脚羊)'이라 불렀다던가 영국인들이 초기에 커피를 마시지 않은 이유는 '커피는 남성을 불능으로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라든가,,, 읽다보면 정말 웃겨 미치겠다.

 

백과사전식 구성이지만 크게 보면 흐름은 있다. 1장은 인류고대문명의 음식을 다루는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빵과 맥주가 메인 디쉬다. 간단히 말해 빵과 액체빵. 2장은 그리스 로마의 음식을 다룬다. 3장은 중세~근대 유럽의 음식이다. 일본인 저자가 썼지만 유럽의 음식문화 중심이다. 4장에서야 일본의 음식을 다루며 중국과 한국 등 세계의 음식을 조금 다룬다.

 

이집트인들이 신전에 바치는 제물 대신 동물 모양 빵을 만들어 바쳤다든가(제갈량과 만두의 유래가 생각난다), 스파르타인들은 평상시 먹는 스프에 일부러 담즙을 넣어 쓰게 해서 먹고, 전시에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서 사람들은 모두 전쟁을 기다렸다든가(이것도 와신상담?), 그리고 기독교의 육식 금지 때문에 생긴 해프닝(육고기는 금지인데 물에 사는 생선은 먹어도 된다고 해서 비버 고기를 먹었단다) 등등, 기본적인 서양 음식사는 물론 다른 책에서 읽을 수 없었던 시시콜콜한 에피소드가 많아서 참 재미있다. 그렇다고 흥미 위주만은 아니고, 아래처럼 음식 문화를 통해 그 시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큰 실수를 저지른 자나 심약한 자는 '평생 고기 금지'라는 벌을 받았다. 이것은 '무기 소지 금지'라는 벌과 같이 내려져 귀족의 신분을 박탈한다는 의미였다.

- 118쪽

 

계급사회였던 중세에서는 사회신분에 맞는 걸 먹는 게 좋다고 하였고, 분수에 맞지 않는 걸 먹으면 몸이 나빠진다고 생각했다.

- 116쪽

 

일본 저자가 쓴 책인지라 당연히 일본 음식문화에 대한 시시콜콜한 부분도 많다. 일본 군대 식량의 역사를 말하는 대목에서 전국시대 휴대 식량인 '이모가라와라 (芋幹繩)'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이모가라와라는 고구마 줄거리를 잘라 말린 후 노끈을 엮어 된장으로 조려서 만들어 이를 허리에 감거나 노끈으로도 사용한다. 그러다가 전장에서 물에 넣어 끓이면 그대로 국과 건더기가 되어 요긴하게 먹을 수 있다고. 아마 우거지된장국?  효로간(兵糧丸)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 읽어 보았는데 이모가라와라 이야기는 처음 읽었다. 흥미롭다.

 

편집이나 인쇄는 그 옛날 문방구에서 팔던 괴수대백과사전 수준인데 내용은 참 알차다. 관심있는 분이라면 한번 시간 여유 있을 때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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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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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페미니즘 책이다.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성폭력 사례와 대응법, 성폭력을 목격한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만화로 풀었다. 그런데 남성 등장 인물은 전부 악어로 그려져 있다. 범죄자이건 지나가는 행인이건. 이 시도가 몹시 흥미로웠다. 책이 담고 있는 구체적 사례나 대응법 내용 자체 보다. (이 말은, 내용이 별로라는 뜻이 아니다. 책 뒤에 만화 없이 악어 캐릭터에 대한 부분을 설명한 부분에 워낙 시사점이 많았기에 하는 말)

 

이 책을 접한 프랑스의 남성 독자들은 남성들이 모두 악어로 그려진 점을 불편해했다고 한다. 악어인 남성과 좋은 남성을 구분해서 그렸어야 했다고 한다. 결국 이 말은 '나는 악어가 아니야! 나는 좋은 남성이야! 일반화하지 말라구!' 이 뜻이다. 여기에 대해 책은 일갈한다. 일상에 만연한 성폭력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좋은 남성이란 존재하지 않다고. 있다치더라도 그건 남성 스스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속이 시원했다. )

 

왜 프랑스건 우리나라건, 여성들이 피해보는 현실보다 가해자로 취급받을지도 모르는 자신들의 억울함이 우선인 남성들이 많은 것일까? 나만 이런 점이 의아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국내 번역판인 이 책 뒤에는 여성학자 권김현영 선생님의 글이 실려 있는데, 선생님도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 남녀학생 같이 듣는 젠더 수업에서 여성 학우들이 성폭력 경험을 증언하면 듣는 남성들이 매우 불편해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을 가해자 취급하고 비난하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란다. 권김현영 선생님은 남학생들에게 묻는다. 왜 너는 너의 친구보다 그 친구를 모욕한 낯선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지를. 이런게 호모소셜 사회의 특징 중 하나인가.

 

아마, 그래서 이 책은 남성들을 악어로 그려야만 했을 것이다. 일반 남성으로 그리면 십중팔구 남성 독자들은 가해자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고 별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을 확률이 놓으므로. 그들은 자신이 악어로 일반회된다는 것이 불편하다, 악어는 나쁜 남자니까, 성폭력은 나쁜 것이다,,,라는 수준의 사고에조차 이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뭐, 나는 남성들은 원래 여성들보다 감정이입을 못한다는 말에 속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왕님을 불쌍히 여기며 지지하는 저 많은 내시들은 다 뭐람? 여성의 처지를 이해하고 여성이 겪는 부당함에 감정이입하지 않도록,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들에게 편하고 이익이니까 그렇게 사회화되었을뿐이다.

 

여튼, 나는 내 친오빠나 그 옛날 사귄 남성들조차 내가 겪은 폭력을 이야기하면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나에게 폭력을 행사한 악어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참 이상하다. (밤길에 더듬고 간 새끼 이야기하면 그러게 왜 밤늦게 돌아다녀, 이럴 때 말이다. 야근했는데 어쩌라구? ) 그런데, 그들은 그점을 지적하면 화를 내곤 한다. 절망스럽다. 도대체 몇 권의 책을 더 읽고 얼마나 더 떠들어대야 세상이 나아질까. 세상에 악어아닌 좋은 남자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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