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저러한
일 겪으며 멘붕이 왔다. 약오남용하듯 마음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다가 이 책을 만났는데,,, 오! 책 참 좋다. 리뷰
처음부터 '강추'라고 외치고 싶어질 정도로.
책의 제목인 '감정 조절'부터 짚고 시작하자.
감정조절은 무조건 참으라는 것이 아니다. 또 부정적 감정을 억압하라는 것도 아니다.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화 나면 화 내라는 식이 아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
감정이 내 몸과 생각, 인식, 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
또 감정조절이란 내가
원하는 좋은 감정만 선택적으로 느끼는 것도 아니다.
슬픔이나 분노를 안 느끼게
해 버릇하다보면 긍정적
감정도 못 느끼게 되니, 그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감정 조절을 잘 하려면 반드시 안전감을 느껴야
하는데
안전감은 개인적 차원의
안전과 사회,
집단 안에서의 안전 두
가지를 다 이른다고 한다. 어라, 이거 출발부터 느낌이 좋은데? 개인적 차원의 수양만 말하는 책들과 다른걸?
책은
자기계발서 스타일로 나온 심리서적들 같이 가볍지 않다. 전공 서적처럼 딱딱하고 어렵지도 않다. 저자는 독자의 지식욕을 만족시킬 정도의 전문적
내용을 잘 풀어서 설명해 준다. 내용을 소개하자면,1장에서는 감정과 감정 조절의 개념을 설명한다.
감정 조절의 필수 조건이
안전감이라는 것을
밝힌다.
2장에서는 우리 몸과 감정
조절의 신경 생물학적 매커니즘을 설명한다. 최신 경향의 뇌 연구 현황을 소개해줘서
좋다.
파충류의 뇌 등등이 그
예가 되겠다. 안전이 위협받는 가운데 감정 조절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을
위해 방어 기제를 쓰게 된다고 한다. 싸우기, 도망가기, 얼어붙기 등. 흠, 나는 도망가기 스타일이었구나, 이렇게 자신의 문제 스타일을 살펴보며
읽는 재미가 있다. 뭐 굳이 지난 과거를 복기하며 또다시 괴로워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다만, 그래도 살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문제의 패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어떤 경험을 많이 하고 어떤 방어기제를
많이 쓰느냐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초기 설정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때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닥치면 다양한 방어기제를 유연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늘 쓰던 방어기제를 쓰게 된다.
-
75쪽
3장은 개인적 안전감과 감정 조절을
설명한다.
여기서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나오는 유아기 부모와 관계, 애착 유형을 말한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과거의 경험을 현재 상황에 투사하는 확률이 거의 90%라고
한다. 사람은 과거
경험을 통해 형성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청사진으로 내 눈앞에 있는 사람과 현상을 본다고. 마치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운전하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엉뚱한 길로 가 버리는 데에 문제가 생긴다고. 여기서 잠깐 절망한다. 그럼 애착 유형의 문제에 나는 평생
지배당해야하나?
과거는 못 바꾸는데
어쩌라구?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변한다.
변할 수 있다,라고. 우리
뇌는 평생에 결쳐 우리가 반복하는 것, 경험하는 것에 따라 변하므로 새로운 시도를 반복해서 만족스럽지 못한 인간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유레카! 나도 구원받을 수 있는 건가?
이어서
4장.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인데 사회적
안전감과 감정 조절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사건과 그
트라우마의 대물림 설명 부분이 나는 특히 좋았다. 2003년 미국의 어느 연구결과에 따르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손자손녀들이 소아 정신과를 찾는 비율이 일반인들에 비해 300%
더 높다고 한다.
부모가
자신들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책임을 자손이 대대손손 지게 되는 것.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 이런
트라우마 대물림 현상에
저자는 세월호와 남아선호 풍조도 함께 넣어 말한다. 아,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이런 대물림의 가장 끔직한 아이러니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무력감을 자신들보다 약한 희생양을 찾아 또 다른 피해자로 만들면서 극복하고,
이로 인한 피해자들은 또
자기보다 더 약한 누군가를 찾아 가해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무력감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195쪽
의식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거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릴 때 형성된 청사진대로 삶을 살아가게 되고,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세대 간의 저주,
트라우마가 대물림되는
바탕이 된다.
-
20쪽
그럼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개인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자신의 것과 부모에게 속하는 것을 구분하고 트라우마를
전달받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부모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구분되고 부모와 나
사이 분리가 일어나게 해야 한다고.
이는 부모를 비난하거나
부모와 절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
반면 사회적 측면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사회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파악하고 사실 그대로
인정,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명확히
파악해 내고 피해자의 치유과 회복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희생을 보상하며 가해자는 엄중히 처벌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한다고.
개인의 고통을 양지로
끌어내어 이슈화, 이를 통해 개인의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고. 이어 저자는 세월호를 말한다.
이 책이 촛불집회와 박대통령 탄핵 이전에 나온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저자의 발언은 내게 더욱 가치있게 느껴진다.
마지막
5장은 감정 조절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결국 감정 조절 능력이란 살면서 불가피하게
위협받는 신체적, 심리적 안전감을 보다 빨리 유연하게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능력이 부족하면 우리는
주변 환경과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자신 방어하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어 지적
심리적 신체 유연함이 떨어지게 된다. 오오, 주위에 이런 분들 많지 않은가? 다들 집 쇼파에 한 분씩은 계시지 않은가? 나이 들어가면서 맨날
서운해하고 화 내고 별 거 아닌 일에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분들 말이다. 아니, 그 인간이 바로 나였나? 흠.
그럴지도. ㅋㅋ
근래 읽은 대중적 심리서적 중에 제일
좋았다. 지식 요약 설명 부분도,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를 말하는 부분도 좋다. 무엇보다 개인의 잘못이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잘못된 양육
탓으로만 몰아가지 않는 점이 좋다. 변할 수 있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