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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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페미니즘 책이다.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성폭력 사례와 대응법, 성폭력을 목격한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만화로 풀었다. 그런데 남성 등장 인물은 전부 악어로 그려져 있다. 범죄자이건 지나가는 행인이건. 이 시도가 몹시 흥미로웠다. 책이 담고 있는 구체적 사례나 대응법 내용 자체 보다. (이 말은, 내용이 별로라는 뜻이 아니다. 책 뒤에 만화 없이 악어 캐릭터에 대한 부분을 설명한 부분에 워낙 시사점이 많았기에 하는 말)

 

이 책을 접한 프랑스의 남성 독자들은 남성들이 모두 악어로 그려진 점을 불편해했다고 한다. 악어인 남성과 좋은 남성을 구분해서 그렸어야 했다고 한다. 결국 이 말은 '나는 악어가 아니야! 나는 좋은 남성이야! 일반화하지 말라구!' 이 뜻이다. 여기에 대해 책은 일갈한다. 일상에 만연한 성폭력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좋은 남성이란 존재하지 않다고. 있다치더라도 그건 남성 스스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속이 시원했다. )

 

왜 프랑스건 우리나라건, 여성들이 피해보는 현실보다 가해자로 취급받을지도 모르는 자신들의 억울함이 우선인 남성들이 많은 것일까? 나만 이런 점이 의아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국내 번역판인 이 책 뒤에는 여성학자 권김현영 선생님의 글이 실려 있는데, 선생님도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 남녀학생 같이 듣는 젠더 수업에서 여성 학우들이 성폭력 경험을 증언하면 듣는 남성들이 매우 불편해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을 가해자 취급하고 비난하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란다. 권김현영 선생님은 남학생들에게 묻는다. 왜 너는 너의 친구보다 그 친구를 모욕한 낯선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지를. 이런게 호모소셜 사회의 특징 중 하나인가.

 

아마, 그래서 이 책은 남성들을 악어로 그려야만 했을 것이다. 일반 남성으로 그리면 십중팔구 남성 독자들은 가해자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고 별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을 확률이 놓으므로. 그들은 자신이 악어로 일반회된다는 것이 불편하다, 악어는 나쁜 남자니까, 성폭력은 나쁜 것이다,,,라는 수준의 사고에조차 이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뭐, 나는 남성들은 원래 여성들보다 감정이입을 못한다는 말에 속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왕님을 불쌍히 여기며 지지하는 저 많은 내시들은 다 뭐람? 여성의 처지를 이해하고 여성이 겪는 부당함에 감정이입하지 않도록,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들에게 편하고 이익이니까 그렇게 사회화되었을뿐이다.

 

여튼, 나는 내 친오빠나 그 옛날 사귄 남성들조차 내가 겪은 폭력을 이야기하면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나에게 폭력을 행사한 악어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참 이상하다. (밤길에 더듬고 간 새끼 이야기하면 그러게 왜 밤늦게 돌아다녀, 이럴 때 말이다. 야근했는데 어쩌라구? ) 그런데, 그들은 그점을 지적하면 화를 내곤 한다. 절망스럽다. 도대체 몇 권의 책을 더 읽고 얼마나 더 떠들어대야 세상이 나아질까. 세상에 악어아닌 좋은 남자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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