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묵 ㅣ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평점 :
소설의 배경은 17세기 일본. 에도막부의 쇄국정책과 가톨릭탄압이 있던 시절이다. 페레이라 신부를 추적하는 이야기가 한 축, 로드리고 신부가
배교하는 과정이 또 다른 한 축이다. 두 이야기의 축은 두 인물이 만나면서 이노우에와의 대화, 배교를 거듭하는 기치지로의 절규가 등장하는 마지막
부분까지 밀도있게 "침묵"을 추적해 나아간다. 설마하며 의심했던 "침묵"이 끝내 "침묵"으로 끝나는 과정을 인물 심리 묘사를 통해 치열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이 종교문학으로서 갖는 의의는 모르겠다. 솔직히, 별 관심도 없다. 다만, 소설적으로 참 밀도있고 치열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점에서, 주인공과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며 작가의 주제의식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난 이 소설을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아래 인용부분처럼, 작가는
주인공 로드리고를 내세워 독자에게 끈질기게 묻고 또 묻는다. 마침내 신에게 따질 때까지.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들 비참한 농민들에게, 이 일본인들에게 박해와 고문이라는 시련을 주시는지요? 아니, 기치지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다른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 본문 86쪽에서 인용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보고하고 있는 일본 신도의 순교는 그와같은 혁혁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아아,
바다에는 비가 쉴 새 없이 계속 내립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더욱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 본문
93쪽
이 바다의 무서운 적막함 위에서 저는 하나님의 침묵을 느꼈습니다. 비애에 빠진 인간들의 소리에 하나님이 아무런 응답도 없이 다만 말없이
침묵하고 계시는 듯한 그런 느낌을,,,,, - 본문 95쪽
당신은 언제까지나 침묵을 지키셨지만, 당신이 언제까지나 침묵하실 수는 없으실 것이다. - 본문 163쪽
이것이 순교란 말인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왜 당신은 침묵하고 있는가? - 본문 186쪽
종교문학을 떠나, 한번쯤 읽어볼만한 작품이다. 에도막부의 종교 탄압과 일본인들에게 기독교가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이유를 서술한 부분도
흥미롭다.
이 책은 세월호 참사 하루 전에 읽기 시작했다. 이왕 펴든 책이라, 뉴스를 순간순간 검색하면서 계속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바다와 신의
침묵,,,, 읽으면서 좀 힘들었다. 하지만 난 순교나 사건사고가 있을 때 신을 부르며 신의 즉각적 응답이 없다고 절망하거나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보면 의아하다. 인간들이 벌이고 있는 죄업을 왜 신에게 묻고 절망하는지? 걍, 신의 침묵에 절망할 시간에 약한 자들끼리 손 잡고
연대하여 세상을 바꾸러 나서는 것이 옳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