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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사기극 - 헨젤과 그레텔의 또 다른 이야기
한스 트랙슬러 지음, 정창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책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국내에 번역, 출판되면서 참으로 책이 웃겨졌다. 이런 무책임한 출판행태라니!
이 책 <황홀한 사기극>의 원제는 <헨젤과 그레텔의 진실>이다. 고고학적 추적을 통해 그림형제가 민담을 기록하고
가필해 쓴 동화인 <헨젤과 그레텔>의 진실을 밝혀내는 구성이다. 게오르그 오세그라는 재야 사학자는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추적해서
마침내 마녀가 살았던 집터를 발굴하고 마녀의 화덕에서 시체를 발견해낸다. 마녀 재판과정 기록을 통해 알고보니 마녀는 늙은 노파가 아니라 카타리나
슈라더린이라는 젊은 제빵사였으며, 그녀가 만든 렙쿠헨 비법을 차지하기 위해 한스 메츨러라는 제빵사가 그녀를 마녀로 고발했다는 것. 무죄로 그녀가
풀려나자 한스는 동생 그레텔과 같이 숲속 그녀의 집을 찾아가 그녀를 살해했다는 것. 이것이 이야기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발굴된 집터와 화덕,
렙쿠헨 조각과 제빵 기구들,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에 묘사된 숲길이나 초기 책에 실린 삽화 등등이 증거로 제시된다. 결국 그림형제가 쓴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는 다 사기라는 것.
하지만, 국내 번역본의 제목인 <황홀한 사기극>은, 내가 보기에는 그림 형제의 동화 작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국내
출판행태가 '황홀한 사기극'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쟝르는 '패러디 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녀의 과자집이 발굴된 것이 아니다. 다 저자인
한스 트랙슬러의 창작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책 소개글 어디에도, 역자 후기에도 이 사실을 정확히 밝혀놓지 않았다. 심지어 역자 후기에는 과연 이 이야기가 진실인가 아닌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번역자의 말"까지 달려 있다. ( 내가 빠뜨리고 못 봤나,
싶어서 다른 분들의 리뷰를 다 찾아 읽었는데 다들 이 책의 발굴 내용이 사실인줄 알고 있었다. ) 이것은
정말 무책임한 출판행태이다.
한때 알고보면 잔혹동화,,,, 하는 식으로 서양 고전 동화의 패러디물이 국내 출판시장에 번역되어 쏟아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책들이
패러디물이라는 것을 국내 출판 당시 명기하지 않아 지금도 많은 독자들은 그 질 떨어지는 패러디물이 구전되던 동화의 원전인 줄 알고 있다. 참으로
무책임한 출판행태이다. 주목 받아 책만 많이 팔면 다인가!!!!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인 줄 알고 내 글에 인용하려고 했다. 그러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딸리는 독일어로 열나게 검색해보다 이 책의 쟝르가
패러디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놔, 검색에 들인 내 시간이 아깝다. 다들 속지 마시길. 영어로 검색해서 나오는 리뷰들도 다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나오는 글이 대다수이다. 속지 마시라. 독일어 검색해 확인하시라. (현재 이 책은 절판, 중고책 시장에서 꽤 비싸게 값 매겨져
있다. 그러나 진짜 역사서 아니니 그 값에 살 필요는 없다. )
뭐, 하지만 이 책의 쟝르가 슐레이만의 트로이 발굴 과정을 흉내낸 패러디물이라는 것을 알고 읽으면, 나름 괜찮다. 서양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마녀 사냥의 이면을 고찰하게 해 주는 효과도 있다. 여튼, 덕분에 디나르 인종이나 중세 제빵 길드, 마녀의 화덕에 대해 영감을
얻었으니, 내게 읽은 보람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위를 밝히느라 시간 낭비하고 고생한 것을 생각해보면, 출판사의 이런 무책임한 출판행태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나는 분노한다!!!!!
( 그리고, 일부 분들, 잔혹 동화 어쩌구 하는 성적 괴담 범벅된 엉터리 원전 이야기, 이제 그만 좀 하시길!!! 다 변태 작가들이 쓴
패러디, 즉 뻥이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