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여자의 역사
클로딘느 사게르 지음, 김미진 옮김 / 호밀밭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작년부터 젊은 여성들 사이에 일어난 '탈코르셋' 운동을  보면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안 꾸밀 수 있는 것도 권력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남자들이 여자를 욕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걸레다''못생겼다''뚱뚱하다(멧돼지 쿵쾅쿵쾅)'인 점도 새삼 흥미로왔다. 한 남자가 그런 말을 하면 참 뇌맑고 무례한 남자도 있구나, 라고 지나치면 되지만 대다수 남자들이 그런 말을 할 때는 역사와 구조를 봐야 하는 법, 그래서 찾아 읽은 책이다.

 

이 책에서, 철학을 전공한 프랑스 여성인 저자는 추한 여성에 대한 기록의 역사를 고찰한다. 여성이란 존재 자체를 추한 존재로 규정하거나, 남성 권력에 저항하는 여성을 추하다고 보고, 이 모든 추한 여자들에게 폭력을 가하여  여성을 혐오하고 남성의 권력을 유지하는 유구한 역사를 책은 잘 보여준다. 여성의 외모를 놓고 품평하여 여성 스스로 복종하게 만드는 간접적 지배 방법이 작동하는 원리도 역사적으로 서술한다.

 

철학자들이 나서서 여성의 존재 자체를 추하다고 주장한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인간 해방이 왔으나 여성은 해방되지 못한 르네상스 시대, 이어서 여성성에 문제를 제기했던 근대, 마지막으로 여성해방운동이 시작되어 법적 제도적 차별은 타파했으나 여전히 외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남아 여성 스스로 피해자며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현대까지. 저자는 세 시기로 나누어 방대한  문헌 자료를 통해 추한 여자의 역사를 살핀다.

 

이상한 일이다. 인간의 추함이란 성별을 가리지 않을텐데 추함에 관한 철학, 의학, 사회, 문학 텍스트는 확연히 여성을 더 다룬다. 늙어서 추해지는 것 역시 성별없이 마찬가지인데 늙음에 대한 혐오 역시 여성에게 집중된다. 그렇다,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갖는 단점은 모두 여성에게 집중된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는 바로 여성 혐오의 역사였다. 그리스 철학자들, 가톨릭 사제들, 의사들, 작가들,,, 왜 이들은 이토록 못생긴 여자를 혐오했을까? 각 시대의 주류 담론을 만들어 내는 인텔리 남성들이 끊임없이 못생긴 여자를 공격하는 글을 썼다는 것은 결국 남성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증거다.

 

예쁜 여자는 멍청하고 똑똑한 여자는 못생겼다. 결국 여성은 늘 불완전하다는  말이다.

- 150쪽에서 인용

 

책을 읽어가면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 페미니스트 여성을 '못생겼다'고 공격하는 이유도 간단히 알 수 있다. 그들이 남성 권력 유지에 복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제 외모와 상관없이 후진 남성들은 시대가 변해도 끊임없이 ‘못생긴 여자’를 만들어내고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 못생긴 여자는 정신적으로도 추한 존재이고 열등한 존재이므로 공격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는 각종 매체와 광고 등이 못생긴 여자에 대한 공격에 가담한다.

 

실제 외모와 관계없이 전통사회가 노처녀, 반란녀, 똑똑한 여자를 모두 추한 여자로 치부해버린 것은 추한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인 통제 수단이었음을 말해준다. 남성은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성 스스로가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므로 가치체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번화를 요구하는 여성은 추하다는 비난과 함께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 질서를 흔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보복이었다.

- 195쪽에서 인용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친어머니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고교, 대학 시절 문학회 활동을 할 때는 '못생겼으니까 글을 쓴다''못 생겨서 사랑받지 못해 페미니스트가 되었다'는 말을 같은 문청 남자들에게 들었다. 사귀던 남자 역시 조금 친해지면 내가 못생겼다고 말하곤 했다. 체중이 40kg대인대도 사람들에게 뚱뚱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제  나이가 드니 나는 늙은 여자여서 가치가 없다고 하네? 이런 내 개인적 체험을 통해, 독학으로 읽은 역사책과 페미니즘 책을 통해 나는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이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지배하고 싶어서, 나를 폄하하여 값을 후려쳐 지배하고 이용하기 위해 하는 공격이라는 걸. 이제는 내공이 쌓여 지나가던 할배가 '얼굴이 좆같이 생겼다'고 욕하면 오히려 '당신 좆은 나같이 예쁘게 생겼나요?"라고 예의바르게 반문한다. 그러나 이 경지에 오기까지 마음 고생은 꽤 했다. 

 

그러니, 다른 어린 친구들은 이런 책을 읽어서 보다 일찍 깨닫고 자유로워지길. 역사책이라고 하지만 동화나 마녀 등의 예화도 있어 통해 쉽게 읽을 수 있다. 물론 다 안다. 외모로 사람 평가하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그동안 세뇌당한 세월이 있기에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외모 평가할 수 있다. 부단히 읽고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을 낸 호밀밭 출판사는 3달 후 강동수 소설가의 <언더 더 시>를 출간한다. 어떤 출판사에서 페미니즘 책을 내더라도 편집팀에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여성주의 공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출판사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잘 보여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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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남자의 미소를 보는 것은 행복하다.

 

절차상 문제는 있었지만, 뜻밖의 돈이 생겼다. '사람은 미워하되 돈을 미워하지 말라'는 명언이 있다. 누가 한 말이냐고 묻지 말라. 내가 방금 지어냈다. 이왕 입금된 돈, 가족과 친구들에게 잘 쓰면 된다.

 

그래서 설 연휴 마지막날인 어제, 봉투 네 개를 준비해 가족 식사 자리에 나갔다. 나 아니면 집에 오는 손님도 없기에 언니의 행복을 위해 우리는 명절이면 밖에서 만나 식사하곤 한다. 명절 손님 핑계로 일거리 만들어 권력 행사하려 드는 언니의 시어머니가 싫어서 내가 제안했다. 언니의 시어머니가 누구냐고 묻지 말라. 내 친어머니시다.

 

사실, 설날이라고 굳이 만나서 같이 밥 먹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어린 조카들이 세뱃돈 받을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 동심은 돈으로 지켜 줘야 한다. 그건 고모의 의무다.

 

조카는 둘인데 봉투 네 개를 준비한 이유는 평소 간절히 해보고 싶은 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긴긴 인생, 이런 에피소드라도 있어야 늙어서 요양원 침대에 누워 회상할 거리가 있지 않겠는가.

 

만나서 밥 다 먹고, 후식 먹을 때, 드디어 꿈에 그리던 대사를 쳐 보았다. 나는 봉투 네개를 꺼내 돌리며,

 

껌정 : 자, 다들 하나씩 받으세요!
오빠 : (어리둥절) 왜 우리도 줘?
껌정 : (무심하게) 이번에 내 책이 대만에 팔려서 꽁돈이 생겼는데 쓸 데가 없어서.

 

순간, 오빠(만으로는 40대인 반백살 아저씨. 배 조금 나오고 머리숱은 아직 많음)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눈이 붙으면서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나는 안다. 말은 안 해도 지금 오빠가 얼마나 동생을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고 있는지.

 

나는 바로 이 표정이 보고 싶었다. 이 사랑스런 남자의 사랑스런 표정을.

 

여기서 끝나면 흔한 가족극이지.
내가 그럴리가. 나는 껌정드레스인데.

 

오빠는 기쁘지만 티는 안내려고 입꼬리를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역시 유전자의 50%는 경상도 남자답다. 나이들수록 오빠는 서울 남자이면서도 경북 내륙 종갓집 외삼촌들을 닮아간다.  나는 최대한 귀여운 표정을 짓고 기어이 오빠에게 물어보았다.

 

껌정 : 해외진출한 한류스타 여동생을 둔 기분이 어때? 막 걸그룹 멤버의 오빠가 된 것 같지 않아?
오빠 : 에라이~ 걸그룹은 무슨! (피식)

 

오빠는 긴장을 풀고 평소 표정대로 썩소를 지어 보였다.

사랑하는 남자의 썩소를 보는 것도 행복하다.

 

 

 

    제 책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가 대만에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童話裡 隱葬的 世界史 : 동화속 숨은 세계사>입니다.

                                    알라딘의 글벗님들께도 감사합니다.

 

https://www.books.com.tw/products/0010808886?fbclid=IwAR2wu47eNKblEWBy-75lsH2QMPj6OXTgHMn2PrWuIRagQgZyPOjpUtdn2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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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음식문화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3
맛시모 몬타나리 지음, 주경철 옮김 / 새물결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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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른 책 읽다가 생각나서 꺼내들어 잠깐 뒤적여 보다가 그만 처음부터 다시 다 읽어버렸다. 최근에 후진 음식문화사 책을 한 권 읽어서인지,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의 진가를 더욱 알 것만 같다. (마치 무식한 언행을 일삼는 남자에게 지치고 상처받아 인생 최고의 남자라고 생각했던 옛사랑에게 돌아가 다시 안긴 것 같다.) 심지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으며 넘겨가는데 막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아, 눈물겨워라.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개 읽은 책 중 최고의 음식문화사 책이다. 일반 유럽 문화사 책으로 봐도 다른 명저서들과 견주어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  주경철 선생님의 다른 저서에서 언급해서 알게 되었는데 절판이어서 구하기가 어려웠다. 여름 휴가 때, 작정하고 시내 대형 서점을 다 뒤지고 다니다가 간신히 매대 한 귀퉁이에 남은 한 권을 구하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이 책은, 내게 쉬운 남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곧 재판 찍어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게만 튕기는 남자였던 것이다.) 뭐 이런 사연이 있어 내겐 더 애틋하다. (지금 검색해보니 또 절판이다. )

 

책의 내용을 간추려 적어 놓는 것은 의미 없다. 그냥, 내 친구분들께, 문화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무작정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후추 같은 향신료가 육류의 장기 보존을 위해 필수적이었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었라는 등 특히나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 지식을 바로잡아주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보통이 아니다. 또 게르만 문화와 그리스 로마 문화의 대립을 맥주- 고기 문화와 포도주 -빵 문화의 대립으로도 서술하는 등,  정치사나 전쟁사가 아니라 음식 문화사라는 또다른 시각을 통해 유럽사를 조망해 보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매우 유익하다. 

 

그외에도 일반 유럽사 통사를 읽을 때 미처 설명해 주지 않는 세세한 점들, 유럽 배경인 소설이나 영화 볼 때 궁금했던 음식 문화 관련한 점들을 알아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가톨릭 측의 금식 목록에 얽힌 이야기나 종교 개혁 덕분에 유럽의 음식 문화가 더욱 섞이게 되었다는 등 기독교 문화와 관련된 부분이 많아, 특히 종교 개혁기 역사에 관심있으신 분이 읽으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다.

 

배경 지식이 없으면 조금 힘들 수도 있겠지만, 무조건 강추! (사실, 숨겨놓고 혼자만 몰래 만나고 싶은 남자같은 책이기는 하지만) 역덕이라면 중고 서점에 보인다면 무조건 사서 쟁여 놓고, 구하기 힘들면 먼 지역의 도서관에 택시타고 가서 대출해서라도 꼭 읽을만한 책이다. 모든 좋은 역사서가 그렇듯이 이 책은 편견없이 세상을 보는 보다 너른 시각을 갖게 만들어 독자를 성장시켜 주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남자와의 좋은 연애가 비록 헤어진 후에도 한 여자에게 평생 자신답게 살아갈 내적인 힘을 남겨 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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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 살기 동문선 현대신서 43
자크 르 고프 외 지음, 최애리 옮김 / 동문선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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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세에 살기>라는 제목에 ' 재미있는 서양사 상식'이란 부제를 달고 있고 230쪽밖에 안 된다. 그러나 만만한 책이 아니다. 상식 정도가 아니라 꽤 깊이 들어간다. 관련 배경 지식이 없다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서술한 책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책은 20명의 전문 역사가들이 한 꼭지씩 자신의 전문 연구 분야 쪽에서 서술한 글을 모았다. 통사식도 아니고 한 주제로 묶이지도 않는다. 중세 서양사라기에는 범위가 좁다. 대개 12~15세기 사이 프랑스를 다루고 있다. 내용도 왕조나 전쟁,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심성사, 문화사 위주이다. 프랑스 아날학파의 전통을 모른다면 일단 이 점도 낯설게 느껴질 독자가 있을 것 같다.

 

내용 서술도 기존 대중적 역사서와 다르다. 20인의 역사가들은 체계적으로 자신의 저작을 요약해서 들려주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연구실에 있다가 잠깐 담배 피러 나와서 제자들에게 툭툭 던지는 투로 서술하고 있다. 어떤 저자는 4쪽 정도 분량이고 어떤 저자는 14쪽 분량이다. 심지어 자크 르 고프는 본인 저술도 아니고 대담 기록이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특히 13세기부터였다. 이미 1179년에 제3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명백히 동성애자들을 겨냥한 탄핵을 공표한 바 있었다. 동성애자들은 십자군 원정으로 촉발된 감정의 여파를 겪는 것으로 여겨졌다. 서구의 많은 문적들은 이처럼 광적인 행태를 이슬람교도들의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 42쪽, 장 베르동 지음 <금지된 사랑과 금지된 성> 부분에서 인용

 

반면,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일은 도둑질이나 다름없이 여겨졌던 것이, 고리대금업자는 자고 놀면서 부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고리대금업자는 시간을 파는 것인데, 시간이란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거든요.

- 121쪽, 자크 르 고프 지음 <고리대금업자의 저주받은 삶> 부분에서 인용

 

자크 르 고프,장 베르동, 미셸 파스트루 등 쟁쟁한 프랑스 역사가들을 한 권에 만나는 즐거움이 있어 나는 즐거웠다만, 다른 독자분들은 어떻게 읽으실지 모르겠다.위에 인용한 부분처럼 부모의 사랑, 동성애, 종교, 고리대금업, 의상, 유행, 향략 등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그래도, 내가 준 별점을 믿지 마시오.)

 

프랑스 중세문학을 전공한 최애리 선생님 번역이다. 이분이 번역하신 프랑스 중세사 책은 다 재미있다. 실력 있으신 분인데 이 책에 '여성 정자(42쪽)'라는 실수가 있어 덕분에 빵 터졌다. (부가한다. 이 부분은 나의 무식 탓이다. 중세에는 여성도 정자가 있었다고 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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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0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껌정드레스 2019-05-21 13:46   좋아요 0 | URL
오, 안녕하세요, 최애리 선생님!
그 부분은 이 리뷰 쓴 뒤에 알아내어서 예스 24 리뷰에는 부가해서 써 놓았는데 제가 알라딘 리뷰에 부가하는 것은 잊었네요. 죄송해요.
그러나 제 무식과 실수 덕분에 선생님 댓글 받으니 기뻐요. ^^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중세사 책들 즐겁게 읽었습니다. 쟈크 르 고프, 조르주 뒤비, 슐람미스 샤하르 등이요.
직접 쓰신 <길을 찾아><길 밖에서>도 읽고 소장하고 있고요.
건강하게, 좋은 책 많이 번역해 주세요.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 혐오에서 연대로
오세라비 지음 / 좁쌀한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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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는 쓸 말이 많습니다. , 제 입장이 굳이 국내 저자분의 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추종자들과 댓글 배틀 벌이고 싶지도 않고요. 조심스러운 마음에 리뷰이지만 평소와 달리 ‘~ 합니다체로 글을 씁니다.

 

저자분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에는 빈틈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 부분이 허술합니다. 예를 들까요. 시각 차이가 있을 수 있는 페미니즘 부분은 제외하고, 사실 관계가 정확히 드러난 역사 부분만 밝혀 보겠습니다. 이런 지적은 역사 교과서에도 다 나와있는 부분이라 이견이 있을 수 없을테니까요. 소모적인 댓글 싸움을 피하기 위해 역사 부분만 언급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사라진 러브 스토리를 찾아서(본문 212~221)’라는 꼭지에서 남성혐오를 하는 페미니스트들 때문에 낭만적 사랑이 사라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사랑에 목숨 건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여왕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메리 스튜어트 서술 부분에 오류가 엄청 많군요. 한 문단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메리는 서출 신세였던 엘리자베스에 비하면 그야말로 황금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메리는 헨리 7세의 증손녀이자 헨리 8세의 조카인 잉글랜드 왕가의 적통이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왕이었던 부왕이 사망하자 생후 6일 만에 왕위에 봉해졌다. 한마디로 정통 왕가의 자부심이 뼛속까지 새겨진 여성이었다. 메리의 모후 역시 프랑스 최고 왕가 출신이었다.
216쪽에서 인용

 

1 '황금수저'라는 표현은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습니다. 은 숟가락입니다. 유럽에서 가톨릭을 믿는 부유한 계급 사람들이 아기가 세례 받을 때 선물로 아기의 수호 성인의 모습을 손잡이에 새긴 은 스푼을 준 것에서 '은 숟가락을 입에 물고 태어났다'라는 말이 유래했으니까요. 게다가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더한 말이니 더더욱 이상합니다. 유럽인들이 젓가락을 쓸 리 없잖아요.

 

2 '헨리 8세의 조카인'도 틀립니다. 헨리 8세의 조카는 메리의 아버지인 제임스 5세입니다. 메리는 헨리 8세의 조카손녀입니다.

 

3 ' 잉글랜드 왕가의 적통이다. '도 아닙니다. 메리는 헨리7세의 딸인 마가릿 튜더의 손녀입니다.

 

4 '메리의 모후 역시 프랑스 최고 왕가 출신이었다.'도 틀립니다. 메리의 모후는 마리 드 기즈입니다. 기즈 가문은 유럽 왕가들과 혼인할 수 있는 명문가이긴 하지만 프랑스의 준 왕족 대우를 받는 가문이지 프랑스 최고 왕가가 아닙니다.

 

이렇게 한 문단에만 살펴 보았는데도 무려 4군데나 사실과 틀린 부분이 있네요.

 

이어 217쪽에도 저자는 스코틀랜드에서 '헨리 8세가 일으킨 종교 분쟁으로 가톨릭과 영국 국교회의 대립이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라는 잘못된 서술을 하셨습니다. 당시 스코틀랜드의 신교도들은 존 녹스의 장로교도들입니다. 칼뱅파죠. 헨리 8세의 잉글랜드 국교도가 아닙니다.

 

221쪽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의 모티프도 메리 여왕의 비극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라고 쓰셨는데 아닙니다. 스코틀랜드 연대기에 있는 내용이 바탕입니다. 이때 맥베스에게 살해당한 뱅코우의 후손이라 여겨지는 제임스 1세를 위해서 썼다고 영문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극단을 왕립으로 바꾸어 후원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제임스 왕의 조상에 대한 극을 쓴 것이었죠.

 

등등,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글 구성하는 글들 중 한 꼭지만 살펴 보았는데도 이렇게 객관적 사실 자체와 틀린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사라진 러브 스토리를 찾아서(본문 212~221)’는 페미니즘 때문에 낭만적 사랑이 사라졌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그 근거로 역사적 인물인 메리 스튜어트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이건 올바른 근거가 아닙니다. 사랑에 눈멀은 여왕이란 역사 인물을 예로 들어 무모한 사랑을 찬양할 것이 아니라 다른 페미니즘 도서를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요? 페미니즘 독서 이력이 쌓인 사람이라면, 이 지점에서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 7장 로맨스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메리 스튜어트> 전기를 오해하여 인용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 부분은 개인 취향이니 깊이 쓰지 않겠습니다.

 

이상, 저는 누구에게나 상식으로 통하는 객관적인 역사 사실의 오류를 발견해서, 아무 인신 공격 없이 사실만 썼습니다. 그외, 페미니즘 비판하신 부분도 할 말이 많지만, 이만 줄입니다. 단지, 이 책으로 페미니즘 독서를 처음 시작하시는 분이라면, 더 많은, 더 좋은 책을 읽어보기를 권할 뿐입니다.

 

솔직히 저는 페미니즘이라고는 이 책 한 권만 읽은 독자분들이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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