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흐름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예문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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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루야마 겐지는 등단 20년 이후 발표한 <물의 가족>부터 시작해서 에세이 먼저 읽었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작품이 아마 <물의 가족> 부터였기 때문에 그랬나? 여튼 평범한 직장인인 마루야마 겐지가 작가의 삶으로 들어서게 된 계기인 <여름의 흐름>을 이제서야 읽는다.

 

문학계 신인상과 아쿠다카와 상을 수상한 <여름의 흐름>은 태어나서 처음 소설을 써 본 사람의 작품이라기엔 너무도 대단했다. 초보 작가의 촌스러움과 지레 혼자 흥분하고 엄숙해지는 오버가 없었다. 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더라도 마음 속으로 여러번 장면 묘사 훈련을 해 본 솜씨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어보았으니까 짐작해본다면, 영화를 보고 이리저리 분석해본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훈련이 되어 있았나, 싶다.

 

이 작품집에는 중편소설로 <여름의 흐름>과 <좁은 방의 영혼>이, 단편소설로 <만월의 시>와 <바다>,<흔들다리를 건너다>, <한낮의 피리새>가 수록되어 있다. 다 문단 데뷔 후 20년 사이에 쓴 소설들이다. 교도소 간수의 일상 며칠을 그린 표제작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 작품집에 같이 수록된 다른 소설들은 그리 기억에 남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삶의 자세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를 먼저 읽어서인지 그의 실제 삶이 소설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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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의 길
마루야마 겐지 지음, 조양욱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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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재 품절이지만, 마루야마 겐지에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인 <소설가의 각오> 이전에 나온 에세이인데, 작가의 개인적 정보가 많이 나와있다.

 

어린 시절 이야기, 중고교 시절, 직장에 들어가고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으며 어떻게 도코를 떠나 북알프스에 정착하게 되었는지의 이야기가 <소설가의 각오>나 다른 수필집 보다 더 자세하게 나와있다. 모터사이클과 사륜구동차를 타고 달리던 폭주족 시절 이야기는 이 책에만 있는 것 같다. 머리를 50에 삭발하게 된 사연도 이 책에서 처음 읽었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보이는 것은, 이 사람의 '차남콤플렉스'이다. 장남은 가업을 이어받고 차남은 창업한다. 장남은 아버지의 나라를 지키지만 차남은 혁명하여 새 나라를 건국한다. 시골 고등학교 문학 교사 아버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작가는 '이토록 많은 책을 읽어도 고작 이 정도 사내밖에 못 되는가. (43쪽)'며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마더콤플렉스'도 없다. 대리만족을 위해 장남의 교육에 자신의 인생까지 다 거는 어머니를 천박하게 생각한다. 차남에 서자였다가 국왕이 되는 홍길동은 그래도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구하기는 했는데, 이 저자는 그런 면도 없다. 부모 역시 저자에게 별 기대가 없었던듯, 저자가 신인상을 받자 표절을 의심한다. 결국 저자의 형은 아버지처럼 시골 고교 문학 교사가 되고, 저자는 일본 문단에서 인정받는 소설가가 된다. 저자는 그냥 아버지도 형도 선배도 없이 자기 생각대로 살고 글쓰는 사람이다. '네 고집대로 하는 게 좋아. 모범이 될 만한 선배가 없으면 네 자신이 모범이 되도록 해!(149)' 결국 제목인 <산 자의 길>은 죽은자, 살아도 죽어 있는자인 자기 아버지와 반대로 살려 하는 자신의 길을 말한다. 아, 난  동서고금 문학사에서 이렇게 강력한 차남 작가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매우 흥미롭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혹시 마루야마 겐지의 차남 콤플렉스를 논한 책이 이미 일본에 나와 있지 않을까?

 

그밖에, 어린 시절에 갑자기 마음에 구멍이 뚫리고 그곳으로 찬바람이 드나드는 경험을 서술한 부분을 읽고는 좀 놀랐다. 나도 그런데. 저자는 어떻게 그 구멍을 데리고 살고 있을까. 나이들면 좀 나아지나?

 

늙음의 입구가 보이게 되어 인생의 끝에 실재하는 죽음이 생생함을 더하게 되자, 가치관에 다소 변화가 생기는 게 당연하리라.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 뻥 뚫린 바람구멍이 어느 결에 막혀버렸다는 뜻은 아니다. 변함없이 거기에는 허무의 찬바람이 불어닥치고, 동시에 그에 대항하기 위한 열정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회오리바람으로부터 잇달아 새로운 소설이 튀어나오고 있다.

변함없이 나는 나인 채로 있다.

- 본문 235~ 236쪽에서 인용

 

예술도 과학도 철학도 의학도 종교도 정치도, 제아무리 용을 써보았자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위안 정도에 불과하며, 인간을 진짜로 구원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구원받지 못하는 부자유한 존재이니까 더욱 드세게 자유를 찾아 싸우고, 그것을 갈구할 때 튀는 불똥이야말로 현실에 뿌리내린 진정 살아 있는 사람의 감동이라는 것이 아닐까. 구원받지 못할 몸이니까 더욱이 이 세상을 살아갈 힘과 가치가 생겨나는 게 아닐까.

- 본문 179쪽에서 인용.

 

아, '변함없이 나는 나인 채로 있다.', ' 구원받지 못할 몸이니까 더욱이 이 세상을 살아갈 힘과 가치가 생겨나는 게 아닐까',,, 라니요!  겐지 오빠, 왜 진작 내게 나타나서 이 말을 들려 주지 않으신거에요?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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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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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의 얇은 소설집이다. 중편 두 편을 모았다.

 

표제작인 1986년작<달에 울다>는 정말이지 멋지다. 화자가 춘하추동 그림이 그려진 병풍을 보면서 10년 간격으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이런 구성, 나도 생각해봤는데 이 작가가 이렇게 미리 써 놓았다니, 분하다. ㅠㅠ ) 그림 안에는 비파를 멘 장님 법사가 있다. 마루야마 겐지 답게 시각적 묘사가 뛰어나고 문장이 시적이다.

 

가을 병풍에 그려져 있는 것은 그림자 하나 없는 명월, 가을바람에 굽이치는 초원, 그리고 거지 법사다. 흠집투성이 비파를 등에 멘 장님 법사는 회오리바람에 휘청이며 삭막한 황야를 헤매고 있다. 어디에도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짐승의 기척조차 없다. 그러나 비쩍 마른 그의 몸은 추억에 가득 차,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행복했던 나날들을 생생하게 기억해낸다.

- 본문 61

 

법사는 화자의 아버지, 사랑하는 여인 야에코, 혹은 화자 자신이 되어 세상을 떠돈다. 화자는 그저 부모님의 사과 과수원에서 묵묵히 일을 할뿐이다. 그리고 평생 딱 3년간의 사랑을 반추한다. 개 한 마리와 여러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다. 끝내, 법사도 야에코도 죽는다. 작가는 이 장면을 이렇게 담담하게 서술한다.

 

나를 대신해 법사가 방랑했다.

- 99쪽에서 인용

 

같이 실린 <조롱을 높이 매달고>는 앞서 읽은 <달에 울다>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그런지, 별로 기록할 말이 없다. 읽으면서, 이 작가의 글은, 에세이건 소설이건 산 자와 죽은 자, 산 채로 이미 죽은 자, 제대로 살고 있는지 회의하는 자,,, 이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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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7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껌정드레스 2015-07-17 22:57   좋아요 1 | URL
좀 리뷰가 짧고 성의 없죠? 헤헤. 제 작업 들어가면 마음 여유가 없어져서 책 읽어도 긴 리뷰는 못 쓰겠더라고요. ^^

2015-07-20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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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 64년까지 체코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 다녔던 저자가 소녀시절을 같이 보냈던 반친구들을 30년만에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리스인 망명객의 딸 리차, 루마니아 공산당 특권층의 딸 아냐, 유고슬라브 외교관의 딸 야스나. 이들 친구들과 같이 보낸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와 추리소설처럼 단서를 찾아가는 현재 이야기, 30년간 친구들에게 일어난 일과 동유럽의 역사변화 등등, 숨가쁘게 개인사와 역사가 얽혀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놀랍게도 따뜻하다.

 

마치 일본 요리 만화에서 초밥 하나 입안에 넣고 과장된 맛 표현하는 말풍선 읽는 것 같아, 무슨무슨 상 받았다는 심사평 따위는 안 믿는 편인데, 이 책에서는 심사평을 내 리뷰에 인용하고 싶다. 딱 내가 이 리뷰에서 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다.


“두려운 작품, 스피드 있게 한 순간에 인간 데생을 하면서도, 행간에서 인물들의 영혼까지 느끼게 해준다. 질투를 일으킬 만큼 대단한 표현력이다.”
-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심사평

 

10년전, 프라하 직항편이 생기자마자 프라하에 갔었다. 내게 프라하는 카프카의 도시였다. 그런데 몇 년 후 프라하 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카프카의 <성>이 아니라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읽고 간다는 말을 들었다. 궁금해서 책을 들춰 보았지만 영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미친듯 술술 읽힌다.  역사, 민족, 이데올로기, 운명, 우정,,,, 생각할 거리도 많고, 문장 쓰는 것과 이야기 전개 방식 등 주목할 점도 많다. 무엇보다, 과거 내가 책을 고르고 읽는 방식에 편견이 참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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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감각 기르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거침없는 대화 지식여행자 1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옥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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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가 2001~ 2005년에 일본 각계 명사 11인과 나눈 대담집이다. 사후 그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묶여 나왔으니, 책 자체의 완성도는 기대하지 말고 읽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요네하라 마리의 입말을 옮겨 놓은 것이어서 출판사 소개글 그대로 그녀의 입담을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이 대담집에서, 저자가 말하는 부분을 읽어가는데 상대방과 대화한다는 것만 빼면, 저자가 쓴 다른 책들을 읽어가는 것과 별로 큰 차이를 못 느꼈다. 그러니까, 요네하라 마리는 문어체 글도 구어로 이야기 들려주는 것처럼 편하게 쓰는 재주를 가졌던 것이다. 아마 이 부분은 일어 원문을 읽어보면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은 통역에 대한 이야기, 세계 정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녀의 절친인 이탈리아 통역사 '시모네타 도지' 다마루 구미코와의 대담이 4차례나 있다. 이 부분에 좀 사적이고 웃긴 이야기가 많다. 맨 뒤에는 저자의 집에 기숙했던 러시아 통역사의 추모글 성격의 해설이 실려 있다.

 

요네하라 마리를 추모하여 그녀의 개인적이고 세세한 에피소드까지 읽으려는 독자에게는 괜찮은 편이다. 나는, 저자가 프라하에서 고단샤 세계명작전집을 여러번 읽은 일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그렇지, 그럴줄 알았어, 라고 혼잣말하며 무릎을 쳤다. 다른 책에서 저자가 어릴적 읽었던 세계 명작에서 궁금했던 사항의 역사 문화 배경을 책을 읽으며 추적하는 대목을 읽고, 어쩜 이리도 나같은 인간이 또 있었을까, 혹시 이 분도 명작동화전집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이야기 등등, 내게는 소소하게 저자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대담집이다.

 

하지만 저자를 좋아하지 않거나 저자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저자의 전체 책 중 첫권으로 읽게 된다면, 그런 독자에게는,,, 글쎄다. 나 역시 몇 년 전에 <팬티 인문학>과 <러시아 통신>을 읽었을 때에는, 왜 이 정도 에세이가 인문학이며 러시아학으로 소개되는지에 분개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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