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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루야마 겐지의 얇은 소설집이다. 중편 두 편을 모았다.
표제작인 1986년작<달에 울다>는 정말이지 멋지다. 화자가 춘하추동 그림이 그려진 병풍을 보면서 10년 간격으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이런 구성, 나도 생각해봤는데 이 작가가 이렇게 미리 써 놓았다니, 분하다. ㅠㅠ ) 그림 안에는 비파를 멘 장님 법사가
있다. 마루야마 겐지 답게 시각적 묘사가 뛰어나고 문장이 시적이다.
가을 병풍에 그려져 있는 것은 그림자 하나 없는 명월, 가을바람에 굽이치는 초원, 그리고 거지 법사다. 흠집투성이 비파를 등에 멘 장님
법사는 회오리바람에 휘청이며 삭막한 황야를 헤매고 있다. 어디에도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짐승의 기척조차 없다. 그러나 비쩍 마른 그의
몸은 추억에 가득 차,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행복했던 나날들을 생생하게 기억해낸다.
- 본문 61
법사는 화자의 아버지, 사랑하는 여인 야에코, 혹은 화자 자신이 되어 세상을 떠돈다. 화자는 그저 부모님의 사과 과수원에서 묵묵히 일을
할뿐이다. 그리고 평생 딱 3년간의 사랑을 반추한다. 개 한 마리와 여러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다. 끝내, 법사도 야에코도 죽는다. 작가는 이
장면을 이렇게 담담하게 서술한다.
나를 대신해 법사가 방랑했다.
- 99쪽에서 인용
같이 실린 <조롱을 높이 매달고>는 앞서 읽은 <달에 울다>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그런지, 별로 기록할 말이 없다. 읽으면서, 이 작가의 글은, 에세이건 소설이건 산 자와 죽은 자, 산 채로 이미 죽은 자, 제대로 살고 있는지
회의하는 자,,, 이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