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요코의 에세이집 <나는 게 뭐라고><사는 게 뭐라고>를 읽고, 이 저자에 관심이 생겼다. 어떤 성장기를
보내고 어떤 삶을 겪었기에 이렇게 독특한 개성을 가지게 되었을지,,, 저자의 책을 검색해보니 그림책 외에 창작물 아닌 자기 이야기 쓴 책으로
국내 번역본은 이 책밖에 없었다. 게다가 저자와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 쓴 책이라니 , 원제가 걍 드라이하게 엄마 이름 그대로 <시즈코
상シズコさん>이라니,,, 이 책이 더 궁금해졌다. 그러나 현재 절판이었다. 아아, 난 이러면 돌아 버린다. 서울시 도서관 23곳을
검색했다. 이 책이 비치된 가장 가까운 도서관에 뛰어가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어 치웠다.
저자는 아버지 부임지인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다. 종전 후 고생, 일본으로 돌아와서도 고생이다. 두 동생과 오빠의 죽음을 겪고, 19세엔
아버지를 잃는다. 혼자 힘으로 대학을 다니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 두 번 결혼과 이혼을 겪는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거들지만
엄마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지는 못한다. 냉정한 엄마가 가족 외 타인에게는 더욱 친절하고 사교적인 사람이었기에 엄마를 증오한다. 그러기에 나이든
엄마가 며느리와 갈등을 겪고 학대 받는 것도 모른척한다. 몇 십 년이 흘러, 어쩔 수없는 상황이 되어 맏이인 저자가 엄마를 모시게 된다.
그렇지만, 엄마를 만지기도 싫어해서 가정부를 둔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자 엄마를 요양원에 보낸다. 애증, 죄책감,,,, 무시무시한 마음의 고통을
저자는 아래와 같이 담담하게 쓴다.
나는 어머니를 돈으로 버렸다. 사랑 대신 돈을 지불했다.
- 30쪽에서
인용
나는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싫어했다.
- 135쪽에서 인용
그러다, 엄마의 치매증세가 점점 심해지던 어느날, 저자는 요양원에 있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 역시 저자에게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엄마의 말에 조금씩 변해간다. 나중에는 엄마가 치매에 걸린 것을 고맙게까지 생각하게 된다. 여튼 엄마와
화해하고 엄마를 용서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이미 저자도 암에 걸린 상황이었다. 책은 휠체어에 앉아 엄마 장례식을 치룬 이야기에서
끝나지만, 독자인 우리는 후일담을 알고 있다. 저자는 2년 뒤, 엄마 뒤를 따르게 된다.
나는 '미안하다'와 '고맙다'가 얼마나 좋은 말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말을 하는 어머니의 웃는 얼굴은 온화했고 정감이 넘쳐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미안하다'와 '고맙다'는 말이 나를 조금씩 바꾸어갔다.
'뭐야? 그냥 귀여운 할머니잖아. 도대체 그 난폭하고 험악했던 사람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거지? 어느 쪽이 진짜야? 치매에 걸리면 인격이
망가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치매에 걸리고 나서 어머니는 인격이 훌륭해졌잖아.'
- 185 ~ 186쪽에서 인용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나는 거의 흐느끼다시피 말했다.
"전
못된 아이였어요. 미안해요."
어머니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던 것일까?
"나야말로 미안하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란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폭발했다.
"엄마, 치매에 걸려줘서 고마워요. 하느님, 어머니를 이렇게 만들어 주셔셔 고맙습니다."
수십 년 동안이나 내
안에서 응어리져 있던 혐오감이 빙산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처럼 녹았다.
- 200 ~ 201쪽에서 인용
도서관의 큰 창 앞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소나기가 내렸다. 내 엄마 생각도 났다. 비
내리는 잠깐 사이, 나도 조금 울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요새 좀 예민해서 그런거지 책이 신파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엄마 옷주머니에서
나온 외간 남자와의 숙박 영수증을 목격한 일화까지 서술할 정도로 글은 담담하다. 그렇지만 그 담담한 글이 읽는이의 마음을 후벼판다. 냉소적
유머도 곳곳에 있다. 아, 어떻게 하면 이렇게 솔직함이 주는 힘이 담긴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사노 요코 저자에게 관심있거나,
나이들어가면서 이상하게 변해가는 엄마를 둔 딸에게 이 책을 권한다.